항목 ID | GC0260088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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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裵世彤 |
영어음역 | Bae Sedong |
분야 | 역사/근현대,성씨·인물/근현대 인물 |
유형 | 인물/의병·독립운동가 |
지역 | 전라북도 김제시 금산면 원평리 |
시대 | 근대/근대 |
집필자 | 채수환 |
성격 | 독립운동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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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신지 | 전라북도 김제시 금구면 |
성별 | 남 |
생년 | 1894년 |
몰년 | 1942년 |
[정의]
일제강점기 전라북도 김제 출신의 독립운동가.
[활동사항]
배세동(裵世彤)은 1894년 전라북도 김제시 금구면에서 태어났다. 김제시 금산면 구월리에서 농사를 짓고 있던 배세동은 평소 나라를 빼앗긴 백성으로서 일제에 대한 적개심을 품고 있었는데, 1919년 3월 13일 전주시장에 나갔다가 그곳에서 벌어진 만세운동에 참여한 후 집으로 돌아왔다. 이후 배세동은 고향에서도 만세운동을 일으킬 것을 결심하고, 같은 마을에 사는 전도명(全道明)·전도근(全道根)·전부명·이병섭·김성수·고인옥(高仁玉) 등과 함께 모여 3월 20일 원평장날 장터에서 만세운동을 일으키기로 결의하였다.
3월 20일 오후 6시 배세동 외 8명의 동지들은 원평장터에서 긴 장대에 태극기를 달고서 “대한독립만세!”를 외치며 준비한 선언문과 태극기를 뿌렸다. 그러자 여기저기서 대기하고 있던 김대희 외 수백 명의 군중들이 뛰쳐나와 원평장터는 삽시간에 시위 군중의 함성으로 들끓게 되었다.
그러나 장날이라 여기저기서 감시하고 있던 일본 경찰과 헌병들의 무력 제지에 의하여 시위 군중들은 흩어지고 배세동 외 8명의 동지들은 구속되어 모진 고문 끝에 6월에서 1년의 실형을 선고받았다. 배세동은 출옥한 후에도 일본 경찰의 감시를 받다가 1942년 다시 구속되었으며, 고문의 후유증으로 같은 해 48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