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260086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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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趙潤琛 |
영어음역 | Jo Yunchim |
분야 |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
유형 | 인물/문인·학자 |
지역 | 전라북도 김제시 |
시대 | 조선/조선 전기 |
집필자 | 채수환 |
[정의]
조선 전기 김제 출신의 학자.
[가계]
본관은 김제(金堤). 자는 가헌(可獻), 호는 백천당(百千堂). 아버지는 공조참판을 역임한 조원우(趙元祐)이며, 셋째 아들로 태어났다.
[활동사항]
조윤침(趙潤琛)[1476~1545]은 어려서부터 글을 즐겨 읽고, 효성 또한 극진하여 주위의 칭송이 자자했다. 사람을 대하는 데 성(誠)과 예(禮)를 다했고, 생활은 한 치도 예의범절에 어긋남이 없었다. 중종 때에 조윤침을 등용하고자 한성서윤(漢城庶尹)에 명하였으나 사색당쟁(四色黨爭)이 한창인 조정의 형태에 염증을 느껴 부임하지 않고 오직 학문 연구에 전념하였다. 자연의 이치와 인간의 도리와 인의예지(仁義禮智)를 통한 유학의 구현과 후학을 양성하기 위하여 강학(講學)을 열어 여생을 바쳤다.
[상훈 및 추모]
후학들이 조윤침을 흠모하고 추배하여 김제시 교동의 용암서원(龍巖書院)에 배향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