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260085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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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金淑蘭 |
영어음역 | Gim Sukran |
분야 |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
유형 | 인물/문무 관인 |
지역 | 전라북도 김제시 만경읍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채수환 |
성격 | 무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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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신지 | 전라북도 김제시 만경읍 |
성별 | 남 |
본관 | 경주(慶州) |
대표관직 | 판관 |
[정의]
조선 전기 김제 출신의 무신.
[개설]
이몽학(李夢鶴)[?~1596]의 난은 임진왜란 당시 의병 중 관군을 기피한 사람들이 많아 기근과 질병이 닥치자 군도(群盜)로 변하는 경우가 많았는데, 이들 가운데 호서 지방의 의병 모집 과정에서 하급 장교들이 농민들의 불만을 이용하여 민심을 선동해 일으킨 사건이다.
이몽학은 왕족의 서얼 출신으로 부친에게 쫓겨나 충청도와 전라도 등지를 전전하다가 모속관(募粟官) 한현(韓絢)의 부하로 들어갔다. 그 뒤 한현과 반란을 모의하고 왜군의 재침입에 대비한다는 명목으로 의병을 모집하여 훈련시키는 한편, 동갑회(同甲會)라는 비밀 결사를 조직하여 반란을 준비하였다.
1596년(선조 29) 7월 김경창(金慶昌)·이구(李龜) 등과 승려 능운(凌雲) 및 사노(私奴) 팽종(彭從) 등을 규합하여 승속군(僧俗軍) 600~700명을 이끌고 난을 일으켜 홍산을 습격하였다. 그리고 임천(林川)·정산(定山)·청양(靑陽)·대흥(大興)을 차례로 함락시킨 뒤 홍주[지금의 홍성]를 공격했다. 홍주목사 홍가신(洪可臣)과 무장 박명현(朴名賢) 등이 이끈 관군이 선방(善防)하고 충청병사 이시언(李時言)과 어사 이시발(李時發) 등이 측면을 지원하여 난을 진압하였다.
[활동사항]
김숙란(金淑蘭)은 본관은 경주(慶州)로 지금의 김제시 만경읍에서 태어났다. 무과에 급제한 뒤 판관(判官)을 지냈다. 1592년(선조 25)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위험을 무릅쓰고 왕을 호종(扈從)하여 의주 용만(龍灣)까지 갔는데, 이때 큰 병을 얻어 몸져눕게 되자 왕이 여러 차례 중사(中使)를 보내 김숙란을 위로하기도 하였다. 1596년(선조 29) 충청남도 홍산[지금의 부여]에서 이몽학의 난이 일어났을 때 홍주목사 홍가신(洪可臣)과 함께 적극 가담하여 이몽학의 난을 평정하는 데 공을 세웠다. 난이 평정된 뒤 만경에 돌아와 여생을 보냈다.
[상훈과 추모]
선무원종공신(宣武原從功臣)에 녹훈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