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260084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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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李亨徵 |
영어음역 | Yi Hyeongjing |
분야 |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
유형 | 인물/문무 관인 |
지역 | 전라북도 김제시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채수환 |
[정의]
조선 후기 김제 출신의 의병.
[개설]
이괄(李适)은 인조반정에 대한 녹훈에 불만을 품고 부하 이수백(李守白)·기익헌(奇益獻) 등과 모의하여 1624년(인조 2) 1월 반란을 일으켜 서울을 점령하였으나 결국 부하에게 참수되었다.
병자호란은 1636년(인조 14) 12월부터 이듬해 1월에 청나라가 조선을 두 번째로 침입한 전쟁이다. 청나라 군대가 평양을 공격하여 오자 12월 14일 인조는 먼저 원임대신 윤방(尹昉)과 김상용(金尙容)에게 명하여 종묘사직의 신주를 받들고 세자빈 강씨, 원손(元孫), 둘째 아들 봉림대군, 셋째 아들 인평대군을 인도하여 강화도로 병화를 피하도록 하였다. 인조도 그날 밤 도성을 빠져나와 강화도로 향하려 하였으나 가는 길이 차단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남한산성으로 피신하였다.
[가계]
본관은 전주(全州). 호는 국헌(菊軒). 할아버지는 찰리사(察理事) 역암(櫟庵) 이정신(李廷臣)이다.
[활동사항]
이형징(李亨徵)은 이괄의 난을 평정하는 데 공을 세웠고, 병자호란이 일어나 인조가 피난길에 나서자 백의(白衣)의 몸으로 국왕을 남한산성까지 호종하였으며, 거기에서 적과 싸워 공을 세웠다.
[상훈과 추모]
이괄의 난을 평정한 공으로 진무원종공신(振武原從功臣)에 녹훈되었다. 진무원종공신은 인조 때 이괄의 난을 평정하는 데 공을 세운 사람에게 내린 칭호, 또는 그 칭호를 받은 사람을 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