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260084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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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柳棹 |
영어음역 | Yu Do |
분야 |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
유형 | 인물/의병·독립운동가 |
지역 | 전라북도 김제시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채수환 |
[정의]
조선 후기 김제 출신의 의병.
[가계]
본관은 문화(文化). 자는 용재(用齋), 호는 반곡(盤谷). 아버지는 별좌(別坐) 유태형(柳泰亨)이고, 자의(諮議) 유집(柳楫)의 동생이다.
[활동사항]
유도(柳棹)[1592~?]는 큰형인 유집을 따라 사계(沙溪) 김장생(金長生)의 문하에서 수학하였다. 그리고 시남(市南) 유계(兪棨), 기암(畸庵) 정홍명(鄭弘溟) 등과 더불어 교우하면서 학문을 연마하였다. 유집과 함께 남국(南國)의 난형난제(難兄難弟)로 불릴 만큼 학식이 뛰어났다. 1633년(인조 11) 생원시에 합격하였다.
1624년(인조 2) 이괄의 난이 일어나자 유집과 함께 고을마다 격문(檄文)을 보내며 창의(倡義)하였다. 병자호란 때는 유집을 따라 창의하여 의병과 곡식을 모아 청주에 이르렀으나, 이미 화의(和議)가 성립된 뒤인 탓에 군량을 관에 보내고 귀향하였다. 향리에 은거하며 많은 후학을 양성하였다. 뒤에 학행(學行)으로 천거되어 제용감참봉(濟用監參奉)에 이어 동몽교관(童蒙敎官)에 임명되었으나 모두 취임하지 않았다.
[상훈과 추모]
김제시에 있는 백석사(白石祠)에서 제향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