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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2600835
한자 安衛
영어음역 An Wi
분야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유형 인물/문무 관인
지역 전라북도 김제시 백산면 하정리
시대 조선/조선 후기
집필자 채수환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격 무신
출신지 전라북도 김제시 백산면 하정리
성별
생년 1563년연표보기
몰년 1644년연표보기
본관 순흥(順興)
대표관직 평안방어사

[정의]

조선 후기 김제 출신의 무신.

[가계]

본관은 순흥(順興). 자는 대훈(大勳). 아버지는 안경신(安敬信)이다.

[활동사항]

안위(安衛)[1563~1644]는 지금의 김제시 백산면 하정리에서 태어났다. 1589년(선조 22) 정여립(鄭汝立)의 옥사에 무고되어 용천에 유배되었는데, 임진왜란으로 도성이 함락되자 배소를 이탈한 뒤 평양에 도착해 어느 병사의 막하에 배속되었다. 1592년 영유무과(永柔武科)에 급제하여 군인으로 발탁되었다. 이항복의 특천으로 대동찰방겸조방장(大同察訪兼助防將)이 되었다. 1594년(선조 27)에는 거제현령에 제수되었으며, 당항포 해전에서 적의 중선 한 척을 불태우는 전공을 세웠다.

안위이순신(李舜臣)이 삼도수군통제사로 12척의 빈약한 전함을 이끌고 1597(선조 30) 9월 16일 명량대첩에서 적선 30여 척을 격침시키고 대승을 거둘 때 선봉장에 나서 큰 공을 세웠다. 이어서 노량해전에도 참전하여 큰 공을 세웠다. 그러한 전공이 이순신의 장계에 의하여 널리 알려져 1598년(선조 31) 전라우수사에 제수되었다. 1599년에는 동지중추부사(同知中樞府事)가 되었고, 1600년에는 전라병사에 제수되었다.

1602년(선조 35) 전라수사에 임명되었고, 1605년에는 충청병사에 제수되었으나 부임하지 않았다. 1606년 경상수사가 되었다가, 1608년에는 전라수사로서 수군을 통제하였다. 1619년에는 평안방어사로 임명되었다. 1623년(인조 1) 인조반정 이후 다시 대장으로 임용하려 하였으나 반대파의 시론에 부딪혀 향리로 돌아와 조용히 지냈다.

1636년(인조 14) 병자호란이 일어나자 74세의 고령으로 왕의 수레를 모시고 따라가기 위해 올라가던 중 은진(恩津)에 머물고 있었으나 길이 막힌 상황이어서 남한산성에 들어가지 못하였다. 마침내 강화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고향에 돌아와 조용히 보내다가 1644년(인조 22) 향년 82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묘소]

묘소는 김제시 백산면 조종리 대산 마을에 있는데, 1999년 11월 19일 전라북도 기념물 제102호로 지정되었다.

[상훈과 추모]

1598년 통정대부(通政大夫), 1599년 가선대부(嘉善大夫), 1604년 가의대부(嘉義大夫)에 올랐으며 선무원종공신(宣武原從功臣)에 녹훈되었다. 선조가 친필과 함께 『무경칠서(武經七書)』, 공신록(功臣錄), 방어사27부교지(防禦使二七符敎旨)를 하사하였으나 병부(兵符)의 유서(諭書)만이 오늘날 전할 따름이다. 김제시 백산면 하정리 학당서원에 위패가 봉안되어 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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