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260081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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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慧德王師 |
영어의미역 | Buddhist Monk Hyedeok |
이칭/별칭 | 소현(韶顯),이민(李民),범위(範圍),보리(普利),요진(了眞),정진(精進),요익(饒益),융혜(融慧),광우(廣祐),호세(護世),능화(能化),중관(中觀),진응(眞應) |
분야 | 종교/불교,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
유형 | 인물/종교인 |
지역 | 전라북도 김제시 금산면 금산리 |
시대 | 고려/고려 전기 |
집필자 | 이창섭 |
[정의]
고려 전기 전라북도 김제 지역에서 활동한 유가종(瑜伽宗) 승려.
[가계]
본관은 경원(慶源). 아버지는 문하시중 이자연(李子淵)이고, 어머니는 경주김씨이다.
[활동사항]
혜덕왕사(慧德王師)[1038~1096]는 1048년(문종 2)에 출가하여 지광국사(智光國師) 해린(海麟)의 제자가 되었고, 이듬해 복흥사(復興寺)에서 구족계(具足戒)를 받았다. 1061년(문종 15)에 승과에 합격하여 대덕(大德)의 법계를 받았고, 1069년(문종 23) 중대사(重大師), 1071년 삼중대사(三重大師)가 되었다. 후에 왕실 내전(內殿)에서 법석(法席)을 주관하거나 사찰에서 법회를 열고 강화(講話)하는 일에 몰두하였다. 1079년(문종 33)에 내전에서 대장법회(大藏法會)를 주관하였고, 같은 해에 금산사(金山寺)의 주지가 되어 절을 중창하였는데 금산사 역사상 이때에 가장 규모가 컸다고 한다.
가람 증축뿐만 아니라 금산사의 남쪽에 광교원(廣敎院)을 설치하여 경전을 강독하는 한편, 사경(寫經)·인경(印經) 등 경전의 판각과 유포를 위한 간경장(刊經藏)으로도 이용하였다. 문종 때 수좌(首座)가 되었으며 1083년(선종 원년)에 승과를 주관하고 그 해에 승통(僧統)이 됨에 따라 현화사(玄化寺)에 잠시 머물렀다. 그 뒤 다시 금산사로 돌아가서 후학들을 지도하였고, 1095년(숙종 즉위년)에는 국왕에 의해 인왕경을 강하는 법주가 되기도 하였다. 이듬해 12월 현화사 봉천원(奉天院)에서 입적하였다.
[상훈과 추모]
고려 숙종이 혜덕왕사(慧德王師)라는 시호를 내렸다. 화엄종과 유가종의 다툼으로 생전에 왕사 책봉이 이루어지지 못하였는데, 사후에 왕사로 책봉된 사례는 드물다. 금산사의 동쪽 부도전(浮屠殿)에 혜덕왕사진응탑의 비명(碑銘)이 남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