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260080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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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鄭允喬 |
영어음역 | Jeong Yungyo |
이칭/별칭 | 대천(大遷),외암(畏庵) |
분야 | 종교/유교,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
유형 | 인물/효자·열녀 |
지역 | 전라북도 김제시 장화동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이창섭 |
성격 | 효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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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신지 | 전라북도 김제시 장화동 |
성별 | 남 |
생년 | 1733년 |
몰년 | 1821년 |
본관 | 동래 |
[정의]
조선 후기 전라북도 김제 출신의 효자.
[가계]
본관은 동래(東萊). 자는 대천(大遷), 호는 외암(畏庵). 아버지는 정천배(鄭天培)이고, 큰아버지 정천기(鄭天基)의 양자가 되었다. 어머니는 나주나씨(羅州羅氏)이다. 동생은 정윤준(鄭允俊)·정윤검(鄭允儉)이다.
[활동사항]
정윤교(鄭允喬)[1733~1821]는 18세 되던 해에 윤씨 성을 가진 여인이 친아버지인 정천배에게 강간을 당했다고 무고하여 친아버지가 관가에서 매를 맞아 세상을 떠나자, 원통함을 이기지 못해 윤씨 여인을 찾아다닌 끝에 16년 만에 만나 살해하여 보복한 뒤 자수하여 투옥되었다. 소식을 들은 인근의 선비들이 고을 수령에게 풀어 줄 것을 호소하였고, 마침내 사면되어 풀려나자 오랜 가뭄이 끝나고 비가 내렸으므로, 사람들이 정윤교의 효성에 하늘이 감응한 것이라고 하였다. 이후 학문 연구와 후진 양성에 전념하였다.
[저술 및 작품]
저서로는 『외암집(畏庵集)』 2권이 있다.
[상훈과 추모]
효행으로 철종 때 동몽교관에 증직되고, 고종 때 통정대부에 올랐으며 정려가 내려졌다. 김제시 장화동에 있는 화동서원(華東書院)에 배향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