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260076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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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甄萱 |
영어음역 | Gyeon Hwon |
분야 |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
유형 | 인물/왕족·호족 |
지역 | 전라북도 김제시 |
시대 | 고대/남북국 시대/후백제 |
집필자 | 이창섭 |
[정의]
전라북도 김제 지역에 세운 후백제의 초대 왕.
[가계]
본관은 전주(全州). 본성은 이(李)씨였으나, 뒤에 견씨(甄氏)라 하여 전주견씨의 시조가 되었다. 아버지는 아자개(阿慈介), 동생은 능애(能哀)·용개(龍蓋)·보개(寶蓋)·소개(小蓋), 누이는 대주도금(大主刀金), 부인은 상원부인(上院夫人)과 남원부인(南院夫人)으로 전해진다. 아들로 신검(神劍)·양검(良劍)·용검(龍劍)·금강(金剛) 등이 있다.
[활동사항]
견훤(甄萱)[867~936]은 통일신라의 하급 무장으로 서남해안에 파견되었다가 그곳에서 독자적인 세력을 구축하기 시작하였다. 진성여왕 즉위 후에 경주의 서남쪽인 주현(州縣)을 공격하면서 세력을 확장하다가, 892년(신라 진성여왕 6)에 이르러 무진주(武珍州)[지금의 광주]를 점령하고 스스로 왕위에 올랐다. 900년(신라 효공왕 4)에 완산주(完山州)[지금의 전주]에 순행하여 그곳에 도읍을 정하고 국호를 후백제라 칭하였다.
후백제는 신라를 계속 공격하였고, 견디다 못한 신라가 새로 일어난 고려에 도움을 청하면서 후백제는 고려와 대립하게 되었다. 925년(고려 태조 8, 신라 경애왕 2) 고려와 화친하였으나, 인질로 잡혀갔던 견훤의 조카 진호(眞虎)가 이듬해 4월 병사하자 화친을 깨고 왕건이 보낸 볼모 왕신(王信)을 죽이고 고려를 공격함으로써 화친은 곧 깨지고 말았다. 927년(고려 태조 10, 신라 경애왕 4)에는 경주로 진격하여 포석정에서 신라 경애왕을 살해하였고, 구원에 나선 왕건을 크게 격파하였다. 하지만 929년(고려 태조 12, 신라 경순왕 3) 고창군(古昌郡)[지금의 경상북도 안동시 와룡면] 전투에서 대패하면서 열세에 놓이게 되었다.
후에 아들 중 넷째인 금강을 특별히 사랑하여 왕위를 물려주려 하다가, 금강의 형들인 신검·양검·용검과 이찬 능환(能奐)의 음모로 935년(태조 18) 3월에 강제 폐위되고 금산사에 유폐되었다. 3개월 후 막내아들 능예(能乂), 딸 애복(哀福), 첩 고비(姑比) 등과 함께 나주로 도망쳐 고려에 투항하였다. 이듬해에 왕건에 의해 후백제가 멸망하자 울분을 토하다가 등창으로 죽었다.
[묘소]
『세종실록지리지(世宗實錄地理志)』에 따르면 공주목 은진현 남쪽 12리 풍계촌(風界村)에 견훤의 묘가 있다고 기록되었으며, 현재 충청남도 논산시 연무읍 금곡리 산18-1번지에 견훤의 묘라고 전해지는 무덤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