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260076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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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李繼孟 |
영어음역 | Yi Gyemaeng |
이칭/별칭 | 희순(希醇),묵곡(墨谷),묵암(墨巖),문평(文平) |
분야 |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
유형 | 인물/문무 관인 |
지역 | 전라북도 김제시 |
시대 | 조선/조선 전기 |
집필자 | 이창섭 |
[정의]
조선 전기 전라북도 김제에서 만년을 보낸 문신.
[가계]
본관은 전의(全義). 자는 희순(希醇), 호는 묵곡(墨谷)·묵암(墨巖)이다. 아버지는 이영(李穎)이고, 어머니는 생원 채소명(蔡紹明)의 딸이다.
[활동사항]
이계맹(李繼孟)은 1483년(성종 14)에 진사·생원시에 합격하였으며 1489년(성종 20)에 식년문과에 갑과로 급제하여 설서(說書)·검교·정언·집의·좌승지 등을 역임하였다. 1498년(연산군 4)의 무오사화 때 김종직(金宗直)의 문인이라는 죄목으로 영광에 유배되었다가 사제관계가 아니었음이 판명되어 석방되었다. 오랫동안 벼슬 없이 지내다가 1503년(연산군 9)에 장령(掌令)이 되었고 전한을 거쳐 좌부승지가 되었다. 1506년(중종 1)에 중종반정이 일어나자 대사헌으로 승진했으나 이듬해 박경(朴耕)의 옥사로 진도에 유배되었다가 억울하게 연루되었음이 알려져 4개월 만에 풀려난 뒤 동지중추부사가 되었다.
1509년(중종 4)에 경기도관찰사에 임명되고 이듬해 성절사로 중국에 다녀온 뒤 평안도관찰사를 비롯하여 호조판서, 형조판서, 예조판서, 좌찬성, 병조판서 겸 지경연사(兵曹判書兼知經筵事) 등을 거쳤다. 조광조 등 소장파 사림에게 심하게 공격받았으나, 1519년 기묘사화(己卯士禍) 때에 연루된 사림들에 대한 처리가 지나치자 스스로 논의에 맞지 않다고 여겨 김제(金堤)에 있는 농막으로 퇴거하였다.
[묘소]
전라북도 김제시 제월동 월산(月山)의 선영에 묘소가 있다.
[상훈과 추모]
전라북도 전주시 서산사(西山祠)와 전라북도 익산시 여산면 향사(鄕祠), 전라북도 김제시 교동 38-2번지에 있는 용암서원에 제향되었다. 문평(文平)이라는 시호를 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