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2600749 |
---|---|
한자 | 金希磾 |
영어음역 | Gim Huije |
분야 |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
유형 | 인물/문무 관인 |
지역 | 전라북도 김제시 |
시대 | 고려/고려 후기 |
집필자 | 이창섭 |
[정의]
고려 후기의 무신.
[가계]
아들은 김홍기(金弘己)이고, 며느리는 상장군 조염경(趙廉卿)의 딸이며, 사위는 정통보(鄭通輔)의 아들인 정상(鄭相)이다.
[활동사항]
본래 군산도(群山島)[현재의 전라북도 군산시 옥도면 선유도리] 사람이었으나, 조상이 상선(商船)을 따라 개성에 정착하게 됨으로써 적(籍)을 개성으로 하였다. 처음에 감수직(監收直)으로 있다가 산원(散員)에 보직되고, 충청도안찰사(忠淸道按察使)로 승진하였는데, 청렴하다고 하여 장군이 되었다. 1221년(고종 8) 담략이 있고 시와 예를 잘 안다 하여 횡포가 심한 몽고 사신 저고여(著古與)의 접반사(接伴使)가 되어 무리없이 접대하였다.
1223년 의주분도장군(義州分道將軍)으로 있을 때 금나라의 우가하(亏哥下)가 침입하자 이를 격퇴하고 서북면병마부사(西北面兵馬副使)로 승진하였다. 1226년 서북면병마부사로 있을 때, 또 우가하의 군대가 의주와 정주(靜州)·인주(麟州) 등지를 침범하므로 그를 물리치는 한편, 보기(步騎) 1만 명을 이끌고 압록강을 건너 석성(石城)을 쳐서 항복을 받았다. 이 때 당시 집정자였던 최우(崔瑀)[후에 최이(崔怡)로 개명]에게만 보고하고 정식 보고 절차를 밟지 않았다가 군대를 제멋대로 동원하였다는 혐의를 받고 탄핵당할 위기까지 몰렸다.
김희제는 용모와 몸가짐이 아름답고 지혜와 용기를 겸비하였으며, 경서와 역사에 통달하여 최우의 신임을 받았다. 김희제는 1227년(고종 14) 전라도순문사(全羅道巡問使)가 되었는데, 이때 최우를 해치려 했다는 참소를 받았다. 이에 최우가 사람을 나주에 보내어 체포하려 하자 아들 셋과 함께 바다에 투신하여 자살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