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260071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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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礪山宋氏 |
영어의미역 | Yeosan Song Clan |
이칭/별칭 | 낙송 |
분야 | 성씨·인물/성씨·세거지 |
유형 | 성씨/성씨 |
지역 | 전라북도 김제시 금구면 낙성리 |
집필자 | 김병학 |
세거지 | 전라북도 김제시 금구면 낙성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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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성촌 | 전라북도 김제시 금구면 낙성리|금구면 청운리|봉남면|백산면 |
입향시기/ 연도 | 1460년경 |
성씨시조 | 송유익 |
입향시조 | 송윤|송복 |
[정의]
송유익을 시조로 하고, 송윤과 송복을 입향조로 하는 전라북도 김제시 세거성씨.
[연원]
송씨(宋氏)의 원시조는 중국 춘추시대의 왕세손 3자인 송주은(宋柱恩)이다. 여산송씨(礪山宋氏)의 시조 송유익(宋惟翊)은 송주은의 11세손이라고 전하지만 확실한 기록은 없다. 시조의 4세손 송송례(宋松禮)가 상장군 여량부원군(礪良府院君)에 봉해지고 식읍 1,000호를 하사받았는데, 여량(礪良)은 여산(礪山)의 옛 이름으로, 이때부터 여산을 본관으로 삼았다.
[입향경위]
김제에 입향한 여산송씨는 9세손 송윤(宋倫)을 시조로 하는 불로파(不老派)[혹은 석성공파(石城公派)라고 함]와 송복(宋復)을 낙향조로 하는 역구다리파로 나뉜다. 불로파 송윤은 문과에 올라 계공랑 광흥창승을 지낼 때 세조가 왕위를 찬탈하는 험난한 세상을 겪고는 아들 송극창(宋克昌)과 함께 지금의 김제시 금구면 낙성리 사방마을에 은거하였다. 송극창의 자손들은 주로 전라북도 전주 삼천동 여의리 등지로, 또 다른 일족은 광주광역시 매동을 중심으로, 또 다른 일족은 전라남도 무안군·장흥군 등지로 퍼져 살았다. 송득창(宋得昌)의 손자들은 이웃 불로마을에도 터를 잡아 대대로 이어져 내려오면서 금구면 일대와 봉남면 일대에 집성촌을 이루었다.
역구다리파는 시조로부터 9세손인 장예원판결사(掌隸院判決事) 송복이 세조의 불의를 토벌하기 위한 계획이 사전에 탄로되자, 일체 관직을 버리고 금구로 낙향 은거하면서 이 지역에 세거하기 시작하였다. 처음에는 금구에 정착하였으나 후손들은 김제시 청하면과 백산면 일대, 완주군과 군산 등으로 이거하였다.
[현황]
불로파는 김제시 금구면 청운리 불로마을 일대에 집성촌을 이루고 있는데, 불로마을 송씨를 낙송(洛宋)이라고도 부른다. 후손으로는 송극창의 아들로 이조판서까지 지낸 송천희(宋千喜)와, 석성현감을 지낸 송윤의 현손 송저(宋氐), 효자로 이름난 송정기(宋廷耆)를 비롯한 송정구(宋廷耈)·송정모(宋廷模)의 죽백송(竹栢松) 효자 삼형제가 유명하다. 역구다리파로는 낙향조 송복의 9세손으로, 서예가로 이름을 떨친 송일중(宋日中), 시서화(詩書畵)에 모두 능한 20세손 송성용(宋成鏞) 등이 있다.
[관련유적]
김제시 금구면 청운리 불로마을에 송정기·송정구·송정모 삼형제를 배향한 낙양사(洛陽祠)와 삼형제의 정려가 있고, 송렴(宋濂)의 처 태인경씨 절행기적비가 있다. 김제시 금구면 낙성리 하사마을에는 송윤 유허비와 송호(宋昈)의 처 열녀 문화유씨의 정려(旌閭)가 있다. 김제시 봉남면 종덕리 종정마을에는 송정구의 후손으로, 5대에 걸친 청상과부들이 갖은 고초를 겪으면서 한결같이 효와 정절을 지켜 가문을 이어나간 송씨 5절부 기적비가 있다. 역구다리파 유적으로는 김제시 백산면 상리 자학마을에 송기면(宋基冕)을 배향한 병암사(屛巖祠)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