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260070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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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全州崔氏 |
영어의미역 | Jeonju Choe Clan |
이칭/별칭 | 둔최,둔산최씨 |
분야 | 성씨·인물/성씨·세거지 |
유형 | 성씨/성씨 |
지역 | 전라북도 김제시 금구면 산동리 |
집필자 | 김병학 |
세거지 | 전라북도 김제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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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성촌 | 전라북도 김제시 금구면 산동리 둔산마을|사방마을 |
입향시기/ 연도 | 1512년경 |
성씨시조 | 최군옥(崔群玉) |
입향시조 | 최식(崔湜) |
[정의]
최군옥을 시조로 하고 최식을 입향조로 하는 전라북도 김제시 세거성씨.
[연원]
전주최씨는 고려 전기인 1090년(성종 7) 삼중대광문하시랑평장사를 지낸 최군옥(崔群玉)을 시조로 하는 성씨이다. 중시조 최양(崔瀁)은 조선의 건국을 반대한 두문동 72현 중 한 사람으로 고려 후기의 충신이었다. 1392년 고려가 망하고 조선이 개국하자 벼슬에서 물러나 전라북도 전주시 대승동 봉강리에 은거하였다. 전주최씨는 최양의 손자 4형제를 파조로 하여 갈라졌는데, 김제의 입향시조 매촌(梅村) 최식(崔湜)은 최양의 둘째 손자 최여정(崔如貞)에서 시작된 도사공파이다.
[입향경위]
최식은 1512년경 지금의 김제시 금구면 산동리 둔산(屯山) 앞 두월천 인근 일명 ‘묵은들’이란 곳에서 정착하였다. 이후 그곳의 지대가 깊고 토사가 밀려 살 수 없게 되자 둔산마을, 신흥마을, 용사마을, 용전마을, 광현마을 등 높은 곳에 터를 잡고 살기 시작하였다.
[현황]
전주최씨는 현재 김제시 금구면 산동리 둔산마을과 사방마을 등지에 집성촌을 이루고 약 500여 년간 세거하고 있다. 최식의 후손인 최일운(崔逸雲)은 철학박사로 전북대학교 대학원장과 우석대학교 총장 등을 지냈고, 국민훈장 목련장이 수여되었다.
[관련유적]
입향조 최식과 최응삼(崔應參)은 김제시 금구면 월전리의 쌍계서원에 배향되었는데, 쌍계서원은 고종 때 훼철된 뒤 현재 복원되지 못하여 터만 남은 상태이다. 김제시 금구면 산동리 둔산마을에는 최식·최응삼·최화(崔和)의 삼효자 정려가 있고, 금구면 용지리 용사마을에는 효자 최광악 정려(孝子崔光岳旌閭), 금구면 용지리 광현마을에는 효자 최달호 정려(孝子崔達昊旌閭)와 효자 최명서 정려(孝子崔命瑞旌閭)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