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260069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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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羅州羅氏 |
영어의미역 | Naju Na Clan |
분야 | 성씨·인물/성씨·세거지 |
유형 | 성씨/성씨 |
지역 | 전라북도 김제시 신풍동 |
집필자 | 김병학 |
세거지 | 전라북도 김제시 신풍동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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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성촌 | 전라북도 김제시 신풍동 |
입향시기/ 연도 | 1388년경 |
성씨시조 | 나부 |
입향시조 | 나석 |
[정의]
나부를 시조로 하고, 나석을 입향조로 하는 전라북도 김제시 세거성씨.
[연원]
나씨(羅氏)는 중국 백익(佰益)의 후예로 주대(周代)에 대라씨(大羅氏)로 나국(羅國)에 봉해져 나씨가 되었고, 그 뒤 한(漢)나라 초에 예장으로 옮겨져 예장나씨(豫章羅氏)가 되었다. 문헌을 종합하면 시조 나부(羅富)가 봉명사신으로 고려에 왔다가 미처 돌아가지 못한 사이에 송나라가 멸망하니 발라현(發羅縣)[지금의 나주]에 정착하고, 고려조에 출사하여 정의대부(正議大夫) 감문위상장군(監門衛上將軍)에 이르렀다. 이를 계기로 하여 후손들이 나주를 본관으로 삼게 되었다.
[입향경위]
나석(羅碩)은 진사 나수영(羅守永)의 셋째 아들이며 시조 나부의 5세손으로 여러 관직을 지내고 금양군(錦陽君)에 봉해졌다. 나주에서 김제(金堤)로 이거하면서 자손들이 금양군파(錦陽君派)로 하여 번창하였다.
[현황]
나석의 후손들이 지금의 김제시 신풍동을 중심으로 집성촌을 이루며 세거해 왔다. 후손으로는 고려 말 춘추관편수관(春秋館編修官)을 역임하고 조선 개국 시 절의를 지켰던 나석의 장자 나중우(羅仲佑), 효자 정려를 받은 나응삼(羅應參)과 그의 장남 나표(羅表), 나석의 손자로 이조판서를 역임한 나득강(羅得康) 등이 있다.
[관련유적]
김제시 신풍동 안터 508번지에 나안인(羅安仁)·나안의(羅安義)·나응허(羅應虛)·나응삼(羅應參)·나의(羅扆)·나표(羅表)·나계(羅禊)·나한명(羅漢明)이 배향된 팔효사(八孝祠)가 있다. 경내에는 팔효사 유허비와 수령 약 500여 년의 팔효사 은행나무가 있는데, 이는 전라북도 기념물 제89호로 지정되어 있다. 김제시 하동에는 묵재(默齋) 이귀(李貴)를 배향한 지음서원이 있고, 효자 나처·나승·나형 등의 비가 있는 세효문(世孝門)이 있다. 김제시 금산면 청도리에는 나중우의 신도비가, 김제시 하동에는 나득강의 신도비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