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260069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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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金溝溫氏 |
영어의미역 | Geumgu On Clan |
이칭/별칭 | 봉성온씨(鳳城溫氏) |
분야 | 성씨·인물/성씨·세거지 |
유형 | 성씨/성씨 |
지역 | 전라북도 김제시 금산면 삼봉리 |
집필자 | 김병학 |
세거지 | 전라북도 김제시 금산면 삼봉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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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성촌 | 전라북도 김제시 금구면 산동리 |
입향시기/ 연도 | 고려 공민왕 때 |
성씨시조 | 온달 |
입향시조 | 온신 |
[정의]
온달을 시조로 하고, 온신을 입향조로 하는 전라북도 김제시 세거성씨.
[연원]
온씨(溫氏)의 시조는 고구려의 온달(溫達) 장군이고, 금구온씨(金溝溫氏)는 온신(溫信)을 중시조로 하고 있다. 온신의 호는 수신재(守愼齋)이며, 왕명으로 금구에 와서 살게 되면서 후손들이 금구를 본관으로 삼았다. 김제시 금구면의 옛 이름은 봉성(鳳城)으로, 금구온씨는 봉성온씨(鳳城溫氏)라고도 부른다.
[입향경위]
온신은 1366년(공민왕 15) 12월 이존오(李存吾)·정추(鄭樞) 등과 더불어 권신(權臣) 신돈(莘旽)의 농간을 탄핵·상소한 것이 빌미가 되어 거야부곡(巨野部曲), 지금의 금산면 삼봉리 거야마을로 폐출당했다. 이것을 계기로 하여 금산면 지역에서 자손들이 번창하였다.
[현황]
금구온씨의 후손 가운데에는 온신의 아들로 고려 말에 두문동에 들어가 이성계의 조선 건국에 응하지 않고 봉의동(鳳儀洞)에 숨어 살며 스스로 운림한사(雲林寒士)라 한 온림(溫琳)이 있다. 또한 온신의 손자 온윤(溫潤)도 조부의 교훈을 따라 고려 멸망 시 벼슬길에 나아가지 않고 절의를 지켰다. 온신의 증손자 온후(溫厚) 또한 단종 폐위 때 출사하지 않고 은거하였다. 2000년 인구조사에 따르면 김제시 관내에 거주하는 금구온씨는 756명으로 나타났다. 김제시 금구면 산동리에 산동리 봉성온씨 집성촌이 형성되어 있다.
[관련유적]
김제시 금구면 산동리 792번지에 온신·온림·온윤·온후 등을 배향한 사현사(四賢祠)가 있다. 김제시 죽산면 옥성리에 온승민(溫升民)의 정려가, 금구면 선암리에는 온덕기(溫德基)의 정려가 있고, 금구면 금구리에는 온성하의 비각이 있으며, 금구면 용복리에는 온신의 신도비가 자리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