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260061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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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金堤鄕校大成殿 |
영어의미역 | Daeseongjeon Hall of Gimje Hyanggyo |
분야 | 종교/유교,문화유산/유형 유산 |
유형 | 유적/건물 |
지역 | 전라북도 김제시 교동 39[향교길 89-3] |
시대 | 조선/조선 전기 |
집필자 | 나종우 |
문화재 지정 일시 | 1971년 12월 2일 - 김제향교대성전 전라북도 유형문화재 제9호 지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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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재 지정 일시 | 2021년 11월 19일 - 김제향교대성전 전라북도 유형문화재 재지정 |
성격 | 유교 건축 |
양식 | 겹처마 맞배지붕 |
건립시기/일시 | 1404년 |
정면칸수 | 3칸 |
측면칸수 | 2칸 |
소재지 주소 | 전라북도 김제시 교동 39[향교길 89-3] |
소유자 | 향교재단 |
문화재 지정번호 | 전라북도 유형문화재 |
[정의]
전라북도 김제시 교동에 있는 조선 전기 김제향교의 대성전.
[개설]
향교는 조선시대의 대표적인 유교 건축으로 공자나 그의 제자 그리고 역대 성현들의 가르침을 기리고 공부하는 곳이다. 조선시대는 각 군·현마다 향교가 하나씩 설치되어 있었다. 김제향교는 1404년(태종 4) 대성전을 창건하고 여기에 공자의 영정을 봉안하였다고 한다. 1790년경에 작성된 『김제군읍지(金堤郡邑誌)』에 의하면 당시 임원으로 장의(掌議) 1명, 재임(齋任) 2명, 유사 2명이 있었다. 액내(額內) 유생의 수는 50명이었다.
[위치]
창건 위치에 관하여는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 김제군 향교조에 “동헌으로부터 동북 방향으로 1리쯤 떨어진 곳에 있다”라고 되어 있다. 그러나 당시의 동헌이 현재 동헌 위치인지는 알려져 있지 않기 때문에 정확한 위치를 알 수 없다. 현재 김제향교의 위치는 1635년(인조 13)부터 자리 잡고 있다.
[변천]
김제향교대성전은 1597년(선조 30) 정유재란으로 인하여 향교 건물 전체가 소실될 때 함께 불탔다. 1635년 현재의 위치에 대성전을 비롯하여 동무(東廡)와 서무(西廡)를 중건한 뒤 공자를 중앙으로 하고, 좌우에는 4성10철(四聖十哲)과 6현(六賢)을 배향하고 동서 양무에는 우리나라 18현을 배향하고 있다.
1949년 6월 성균관 결의에 의하여 10철4현의 위패를 철수하였으나, 지방 유림인 송기면과 김창배 등에 의해 5성4현과 조선조 인물 18현을 배향하였다. 향교에 소장되어 있는 『예방사례(禮房事例)』에 의하면 여러 차례 중수하였다고 하는데, 그 상세한 연대는 알 수가 없다.
[형태]
김제향교대성전은 정면 3칸, 측면 2칸의 규모로 처마는 겹처마이며, 기둥은 두리기둥이다. 초석은 자연석과 약간 다듬은 돌을 혼용하였고, 기단은 잘 다듬은 화강암을 이용하여 4단으로 축조하였다. 지붕은 옆면에서 볼 때 사람 인(人)자 모양을 한 맞배지붕이다. 앞면에 사당 건축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앞과 옆이 트인 툇간을 두었고 몸채 쪽에는 문을 달았다.
중앙칸의 가운데에 2짝의 문을 달고 양쪽 기둥에는 골판벽을 끼웠다. 양 끝 칸에는 1짝씩 문을 달고 그 옆 공간에도 골판벽을 끼워 특이한 앞면의 모습을 보이고 있다. 특히 양쪽 끝에 있는 기둥에는 건물 옆면 쪽으로 지겟다리 모양의 굽은 버팀목을 기둥 중간에 박았는데, 그 형태가 장수향교 대성전[보물 제272호]과 같다. 지붕 처마를 받치기 위해 장식하여 만든 공포는 기둥 위에만 있는 주심포 양식이다.
[현황]
김제향교대성전은 1971년 12월 2일 전라북도 유형문화재 제9호로 지정되었고, 2021년 11월 19일 문화재청 고시에 의해 문화재 지정번호가 폐지되어 전라북도 유형문화재로 재지정되었다. 향교재단 소유이며, 김제향교에서 관리하고 있다. 현재 김제향교에는 대성전 외에 명륜당, 만화루, 동무와 서무, 동재 등의 건물이 비교적 양호한 형태로 잘 보존되어 있다.
[의의와 평가]
김제향교는 창건 이래 여러 차례 중수를 거치면서도 지금까지 그 명맥을 잘 유지해 오고 있다. 오랫동안 김제의 정신적 지주 역할을 해왔으며, 지금도 출입하는 유림들이 비교적 많은 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