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2600613 |
---|---|
한자 | 白鶴洞龍子七塚 |
영어의미역 | Graves of Seven Dragon Sons in Baekhak-dong |
분야 | 역사/전통 시대,문화유산/유형 유산 |
유형 | 유적/능묘 |
지역 | 전라북도 김제시 백학동 200-3 |
시대 | 조선/조선 |
집필자 | 김종철 |
성격 | 무덤군 |
---|---|
건립시기/일시 | 조선시대 |
높이 | 60㎝ |
지름 | 260㎝ |
소재지 주소 | 전라북도 김제시 백학동 200-3 |
[정의]
전라북도 김제시 백학동에 있는 조선시대 일곱 개의 무덤군.
[개설]
백학동 용자칠총에는 용녀(龍女)와 진표(陳表)의 신비하고도 애틋한 사랑 이야기가 전한다. 옛날 선인동마을에 진표라는 총각이 홀어머니를 지극 정성으로 모시며 살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어머니가 갑자기 병에 걸리자 진표는 용하다는 의원을 모셔 왔지만 도무지 무슨 병인지 알 수 없어 그저 안타까움으로 발만 동동 구를 수밖에 없었다. 그러던 어느 날 어머니가 “내가 생선국이 먹고 싶구나. 그걸 먹으면 금방이라도 힘이 날 것 같다”고 하자, 낚싯대를 들고 밖으로 나왔다.
뼛속을 파고드는 추위였지만 아랑곳하지 않고 바위처럼 단단하고 두껍게 얼어붙은 호수에 가서 얼음을 깨고 낚싯대를 드리워 고기가 빨리 잡히기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여러 시간을 오들오들 떨며 기다렸으나 고기는 한 마리도 잡히지 않았다. 그날따라 유별나게 추워 온몸이 꽁꽁 얼어붙는 듯하였다. 날도 저물어 가고 있어 그만 포기하려는데, 낚싯줄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아이쿠! 드디어 걸렸구나!’ 번개같이 낚싯대를 낚아 올려 보니 웬 자라 한 마리가 걸리는 게 아닌가? 날이 어둑해지자 다음 날 다시 물고기를 잡기로 하고 자라를 가지고 집으로 돌아왔다. 진표는 자라를 물독에 넣어 두고 이튿날 아침 일찍 물고기를 잡으러 집을 나섰다.
‘이번에는 큰 걸 잡아야 할 텐데.’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낚싯줄이 크게 흔들렸다. 재수 좋게 큼직한 물고기 몇 마리를 잡아 기쁜 마음으로 집으로 돌아왔다. 어머님께 국을 끓여 드리려고 부엌으로 들어갔을 때 깜짝 놀랄 일이 일어났다. 밥상 위에 진수성찬이 차려져 있는 것이 아닌가?
“어떤 고마운 분이 우리 모자를 측은히 여겨 음식을 장만해 주었구나!”라고 생각하고 어머니께 밥상을 올렸다. 그러나 그날 이후로도 진표가 밖에 나갔다가 돌아올 때마다 보기만 해도 군침이 넘어가는 맛있는 밥상이 차려져 있었다. 이러한 일이 매일 일어났다.
‘이상하군! 도대체 누가 이런 일을 할까?’ 궁금함을 참지 못한 진표는 하루는 몰래 숨어서 부엌을 지켜보았다. 그때, 물독에서 한 여인이 나오더니 잠시 주위를 두리번거리고 나서 밥을 짓기 시작하는 게 아닌가. 이 광경을 숨어서 보던 진표는 하마터면 악! 하고 소리를 지를 뻔했지만 숨을 죽이고 여인의 모습을 지켜보고 있었다. 자세히 보니 참으로 아름다운 여인이었다.
진표는 더 이상 참지 못하고 불쑥 여인 앞에 나타나서 고마움을 표하며 같이 살아 주기를 간절히 청하였다. 여인은 아무런 말도 없이 부끄러운 듯 고개만 끄덕이며 빙그레 미소로 답하였다. 이러한 인연으로 진표와 여인은 혼인하여 꿈같은 세월을 보내며 슬하에 아들 일곱을 두고 오순도순 행복한 나날을 보내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아내가 남편에게 “서방님! 열 달 동안만 저와 떨어져 있어 주셔야겠습니다.”라고 하는 것이었다. “아니 갑자기 무슨 말이오?” “이유는 묻지 마시고 저의 청을 꼭 들어 주셔야 합니다.” 이 말을 들은 진표는 당황하였지만 워낙 간절한 청인지라 물리칠 수 없어 그렇게 하기로 약속하고 집을 나오게 되었다. 그러나 불과 며칠도 못 되어 아내를 보고 싶은 마음을 이기지 못하고 집으로 돌아오고 말았다.
“여보, 나왔소. 당신이 보고 싶어 참지 못하고 이렇게 돌아오게 되었소.” 방문을 여니 방 안에는 큰 용 한 마리와 작은 용 일곱 마리가 있는 것이 아닌가. “아니! 세상에 이럴 수가!” 진표를 본 용은 소스라치게 놀라더니 한스러운 듯 한동안 고통스럽게 울부짖다가 사람의 모습으로 변하며 “안타깝습니다. 서방님, 저는 원래 용궁의 용녀이며 이 어린 용들을 인간으로 만들려고 열 달의 시간이 필요했는데…… 이제 인연도 끝이군요.”라고 말을 마친 아내가 남편의 성급함을 원망하면서 사라지자 어린 일곱 용들도 결국 죽어 버렸다.
자신의 성급하고 어리석은 행동에 크게 후회하고 울부짖었지만 이미 때는 늦었다. 일곱 개의 무덤을 만들어 선인동마을 뒷산에 묻어 주고 진표는 봉래산 월출암에 들어가 평생을 수도하며 일생을 마쳤다고 한다. 정리가 깔끔하게 잘된 일곱 개의 무덤이 그때의 전설의 흔적을 잘 말해 주고 있다.
[위치]
김제시에서 전주시 이서면 방면으로 가다 보면 백학동이 나온다. 백학동 선인동마을 일성공업사 앞에 나지막한 터가 보이는데, 이곳에 일곱 개의 무덤이 나란히 자리 잡고 있다.
[형태]
길 남쪽 송림에 7개의 무덤이 약 3m 간격으로 늘어서 있는데, 크기는 대략 높이 60㎝, 직경 260㎝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