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260058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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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碧骨堤經藏渠 |
영어의미역 | Gyeongjanggeo of Byeokgolje |
이칭/별칭 | 신용리 경장거 |
분야 | 역사/전통 시대,문화유산/유형 유산 |
유형 | 유적/유적(일반) |
지역 | 전라북도 김제시 부량면 신용리 199 |
시대 | 고대/삼국 시대 |
집필자 | 김종철 |
성격 | 관개시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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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립시기/연도 | 삼국시대 |
소재지 주소 | 전라북도 김제시 부량면 신용리 199 |
[정의]
전라북도 김제시 부량면 신용리에 있는 삼국시대의 벽골제 제4수문.
[개설]
벽골제는 우리나라에서 처음으로 쌓아 만든 저수지이다. 『삼국사기(三國史記)』에는 “330년(신라 흘해왕 21)에 처음으로 벽골제를 만들었는데, 둘레가 1천 8백 보”라는 기록이 있다. 그러나 이 시기는 이 지역이 신라 땅이 아닌 백제의 땅이었으므로 나중에 연도를 고쳐서 신라가 만든 것처럼 해놓았을 가능성이 크다.
실제로 벽골제가 축조된 때는 330년(백제 비류왕 27)으로 보고 있으며, 790년(원성왕 6)과 고려 현종 때 및 1143년(인종 21)에 고쳐 쌓은 후 1415년(태종 15)에 다시 쌓았다. 현재는 길이 약 3㎞ 정도의 둑만이 남아 있다. 1925년 동진토지개량조합에서 이 둑을 농사짓는 데 필요한 수로의 둑으로 고쳐 이용하면서 원형에서 많이 변형되었다.
둑의 북쪽에는 조선시대에 벽골제를 다시 쌓고 이것을 기념하기 위해 세운 비석이 있는데 닳아서 명문을 알아보기는 어렵다. 1975년에는 저수지 물의 양을 조절하던 수문이 있던 자리 2곳을 발굴 조사하였으며, 그 결과 벽골제가 높은 수준의 측량 기술이 이용된 대토목 공사였음이 밝혀졌다.
[위치]
신용리 경장거는 현재 전라북도 김제시 부량면 신용리 용골마을에서 약 500m 떨어진 제방에 위치하고 있다.
[현황]
두 기의 석주가 나란히 세워져 있어 제2장생거와 모습이 유사하다. 제방을 따라 현재 벽골제 사적지로 지정된 장생거, 주민 김귀남 집 마당에 있는 중심거, 그곳에서 800m가량 떨어진 지점에 신용리 경장거가 존재하며 유통거와 수여거는 흔적만이 확인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