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260057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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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雙坎里遺蹟 |
영어의미역 | Relics of Ssanggam-ri |
분야 | 역사/전통 시대,문화유산/유형 유산 |
유형 | 유적/유적(일반) |
지역 | 전라북도 김제시 황산면 쌍감리 26-1 |
시대 | 고대/삼국 시대 |
집필자 | 김종철 |
성격 | 석실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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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립시기/연도 | 삼국시대 |
소재지 주소 | 전라북도 김제시 황산면 쌍감리 26-1 |
[정의]
전라북도 김제시 황산면 쌍감리에 있는 삼국시대 석실묘 유적.
[개설]
3세기 후반에서 4세기 전반에 랴오둥 반도[遼東半島]에 있던 중국계 봉토분의 영향을 받아 발생한 석실분(石室墳)은 일반적으로 널방[玄室]을 만들고 그 위에 흙과 돌무지·진흙·숯·재 등을 깐 뒤 흙으로 봉토를 만드는 방식이다. 돌무지무덤[積石塚]의 전통을 가진 고구려가 낙랑이 멸망한 뒤부터 봉토(封土) 돌방무덤을 짓기 시작하여 평양 천도 이후 이 무덤 양식이 주류를 이루었다.
가야 말기에는 백제의 영향을 받아서 깬돌[割石]로 축조한 돌방무덤이 대부분이며 널방과 널길을 가진 것이 특색이다. 신라에서는 6세기경 고구려와 백제의 영향으로 굴식돌방무덤이 등장하여 통일신라시대까지 계속되었다. 평면 사각형의 널방에 부정형(不定形)의 깬돌을 쌓아 올리고 4벽을 내경(內傾)시킨 다음 천장석을 올려놓았으며 널길이 남벽 동쪽에 치우쳐 있다. 이러한 돌방무덤은 통일신라시대 중기 이후 소멸되기 시작하여 고려시대에는 사용하지 않았다.
[위치]
쌍감리 유적은 김제시 황산면 쌍감리 26-1번지 일대로 ‘고산(高山)’이라 불리며, 높은데마을의 북쪽에 위치한 해발 고도 40~60m의 산 구릉의 중하단 부분에 위치해 있다.
[형태]
쌍감리 유적 조사 결과 북단 부분에서 석실분으로 추정되는 유구 1기가 발견되었다. 석실분은 등고선과 나란한 동서 방향으로 축조되었고 하단부의 석렬 일부만 남았으며, 유물은 청동기시대 무문토기 동체편 1점이 교란층에서 수습되었다.
[현황]
오래전에 이미 원지형이 크게 훼손되었고, 산 하단 부분은 민가와 밭으로 경작되면서 구릉의 대부분을 삭평한 상태였다. 석실분과 관련된 유물이 출토되지 않아 정확한 축조 연대를 알기 어렵고 유구의 잔존 상태도 좋지 않아 구조 등을 파악하기에는 어려움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