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260056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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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大化里甕器窯址 |
영어의미역 | Kiln Site Daehwa-ri |
이칭/별칭 | 대화리 옹기가마 터 |
분야 | 역사/전통 시대,문화유산/유형 유산 |
유형 | 유적/터 |
지역 | 전라북도 김제시 금구면 대화리 산123 |
시대 | 근대/일제 강점기 |
집필자 | 문이화 |
성격 | 가마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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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건물 건립시기/일시 | 일제강점기 |
소재지 주소 | 전라북도 김제시 금구면 대화리 산123 |
[정의]
전라북도 김제시 금구면 대화리에 있는 일제강점기 옹기가마터.
[변천]
금구면 대화리에서 옹기가마가 사라진 시기는 정확하게 알려지지 않았지만, 적어도 1950년 이전에 사라진 것으로 보고 있다. 마을 사람들에 따르면, 옹기가마 근처에 살던 사람들이 보릿고개 시절 근방에 흩어져 있던 옹기를 내다 팔아 생계를 이어나갔다고 한다.
[위치]
옹기가마가 있던 자리라고 전해지는 곳은 금구면 대화리 금천마을 뒤편 구릉지이다. 대화리 옹기요지가 있는 곳에서 서북쪽으로는 대율저수지란 이름의 규모가 큰 제방이 있으며, 동쪽과 남쪽으로는 대화리 유물산포지를 비롯하여 공협신 정려(孔協臣旌閭) 등이 분포하고 있다. 가마터의 동편에 자리하고 있는 금천마을은 제법 규모가 큰 마을이다.
[현황]
대화리 옹기요지가 있는 구릉은 흔히 마을 뒤편에 조성되어 있는 야산이라 할 수 있다. 구릉 사면에는 삭녕최씨(朔寧崔氏) 묘지 두 기가 있고, 그 주변에 옹기편들이 산재되어 있다.
[의의와 평가]
옹기를 팔아서 보릿고개를 넘겼다는 마을 사람들의 이야기에서도 알 수 있듯 대화리 옹기요지는 해방 이후 힘들게 살았던 이곳 주민의 일상생활을 전해 주고 있다는 점에서 매우 중요한 자료가 될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