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260053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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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校洞城山城址 |
영어의미역 | Seongsan Fortress Site in Gyo-dong |
이칭/별칭 | 교동 성산 성지 |
분야 | 역사/전통 시대 |
유형 | 유적/터 |
지역 | 전라북도 김제시 교동 262-4 |
시대 | 고대/삼국 시대 |
집필자 | 유호석 |
성격 | 성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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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건물 건립시기/일시 | 삼국시대 |
소재지 주소 | 전라북도 김제시 교동 262-4 |
소유자 | 국유 |
[정의]
전라북도 김제시 교동의 성산에 있는 삼국시대 산성 터.
[개설]
성산(城山)은 높이 42m의 남북으로 긴 독립된 산인데, 산 정상에 지형을 따라 타원형으로 토성이 세워져 있다. 성곽의 총 둘레는 559m로, 원래는 토루가 형성되어 있었으나 현재는 유실 또는 파괴된 곳도 있다.
[변천]
성산성은 김제의 주성으로 백제 때 축조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성산성의 성곽은 원래 토성과 석성의 이중성으로 되어 있었다고 하는데, 지금은 담장의 원형은 상실되고 성터만 남아 있다. 성터의 윤곽이나 기와조각이 출토되는 것으로 미루어 볼 때 중요한 성터였음을 짐작할 수 있다. 그 뒤 고려시대에 이르러 수축되었다. 전해 오는 군지에 따르면, 동헌을 중심으로 하여 성산을 비롯한 효동·옥산·요촌·서암 등 행정구역 일부를 포함하여 주위 장거리가 3,820척이고, 성 높이는 20여 척, 치첩은 2,410척이며, 옹성이 넷이었다. 못은 없었다고 하며, 성안에 샘이 여섯 개 있었으나, 고종 대에 완전히 허물어져 증축하지 못하였다고 한다.
[위치]
성산성은 김제시의 서곽(西郭)을 이루고 있는 산성으로 교동 262-4번지에 있다.
[발굴조사경위 및 결과]
성산성 터에 대한 조사는 한서고대학연구소의 전영래 박사가 전라북도 지역의 고대 산성을 조사하는 과정에서 이루어졌으며, 성안에서는 백제에서 고려시대에 이르는 기와편과 토기편 등이 수집되었다. 조사 결과는 2003년에 간행된 보고서에 실려 있는데, 여기에는 성산성의 대략적인 현황과 실측도, 위치도와 현장 사진들이 담겨 있다.
[현황]
현재 산성에서 동쪽인 시내 쪽은 성곽이 보이지 않으나 남쪽과 서쪽, 북쪽은 지금도 성곽의 형태가 그대로 남아 있다. 담장의 원형은 사라지고 없다. 현재는 김제시가 성산공원으로 가꾸어 놓았다.
[의의와 평가]
『일본서기(日本書紀)』에는 성산성이 피지산(避支山) 또는 피성(避城)으로 기록되어 있다. 이 피성이 백제 부흥군의 근거지였다는 주장도 제기되고 있으며, 전영래 박사는 백제 풍장왕(豊璋王)이 한때 주류성(周留城)에서 이곳으로 도읍을 옮겼던 곳이라는 견해를 제시하기도 하였다. 따라서 주류성의 위치는 김제보다 서쪽에서 찾아야 한다는 것이다. 이처럼 이곳 성산성은 백제 주류성의 위치를 파악하는 실마리가 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