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260052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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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錦城里古墳群 |
영어의미역 | Geumseong-ri Tumuli |
분야 | 역사/전통 시대,문화유산/유형 유산 |
유형 | 유적/고분 |
지역 | 전라북도 김제시 금산면 금성리 산37 |
시대 | 고대/삼국 시대/백제 |
집필자 | 문이화 |
성격 | 고분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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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식 | 횡혈식 석실분 |
건립시기/연도 | 백제시대 |
소재지 주소 | 전라북도 김제시 금산면 금성리 산37 |
[정의]
전라북도 김제시 금산면 금성리에 있는 백제시대 고분군.
[개설]
고분이란 성토를 한 옛 무덤을 통칭하는 것이지만, 고고학 상으로 볼 때 일정한 형식을 갖추고 있는 고대 사회의 분묘 양식을 말한다. 고분의 축조 방식은 불교의 전래 이전과 이후가 많은 차이를 보인다. 불교 전래 이전에는 분묘를 축조하면서 피장자의 곁에 껴묻거리[副葬品]를 많이 묻는 반면, 전래 이후에는 불교의 화장법이 성행함에 따라 고분의 축조가 쇠퇴했을 뿐만 아니라 무덤을 만들더라도 껴묻거리가 거의 없는 박장(薄葬)으로 축조하게 되었다.
[위치]
금성리 고분군(錦城里古墳群)은 해발 199m의 시목동마을 북쪽 산의 남사면에 위치하고 있다. 시목동마을의 서쪽으로는 우사가 자리하고 있으며, 우사 뒤편 밭으로 난 길을 따라 올라가면 도굴된 석실분이 나온다.
[발굴조사경위 및 결과]
금성리 고분군은 정식으로 보고되지는 않았지만, 전영래의 고분 내부 사진 자료에서는 M4호분으로 명명되어 있다. 금성리 고분군도 발굴 조사를 거쳐야 정확한 내용을 확인할 수 있겠지만, 횡혈식 석실분으로 이루어진 형태를 보면 박장으로 조성되었을 것으로 보인다.
[형태]
금성리 고분군의 석실은 산경사면과 평행하게 배치되어 있으며, 괴석으로 네 면을 쌓아 올렸는데, 장변(長邊)이 위로 올라가면서 안으로 기울어져 있다. 석실로 이어지는 연도(羨道)에는 문주석 2기가 세워지고 판석으로 입구를 폐쇄하였다. 석실의 개석은 장대석 5매를 덮어서 조성한 횡혈식 석실분이다.
[현황]
금성리 고분군은 현재 파악되는 석실분의 주변 일대로 상당수의 석재편들이 산재하고 있는 것으로 보아 여러 기의 석실분이 존재하고 있을 가능성이 높다.
[의의와 평가]
고대 사회의 실상을 파악할 수 있는 고고학적 자료 중의 하나는 바로 고분이다. 고분을 통해서, 또 고분에서 출토되는 유구와 유물을 통해서 당시 사람들이 생활방식과 환경 등을 짐작할 수 있다. 금성리 고분군은 김제시 금산면 금성리 일대에 분포하는 고대 사회의 횡혈식 고분을 통해서 백제 문화의 단면을 살펴볼 수 있다는 점에서 의의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