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260051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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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長華里- |
영어의미역 | Rice Chest of Janghwa-ri |
분야 | 역사/근현대,문화유산/유형 유산 |
유형 | 유물/유물(일반) |
지역 | 전라북도 김제시 장화동 210-1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남해경 |
문화재 지정 일시 | 1976년 4월 2일 - 장화리쌀뒤주 전라북도 민속문화재 제11호 지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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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재 지정 일시 | 2021년 11월 19일 - 장화리쌀뒤주 전라북도 민속문화재 재지정 |
성격 | 생활용구|뒤주 |
제작시기/일시 | 1864년 |
제작지역 | 전라북도 김제시 장화동 후장마을 |
재질 | 나무 |
높이 | 1.8m |
길이 | 2.1m |
너비 | 2.1m |
소장처 주소 | 전라북도 김제시 장화동 210-1 |
소유자 | 정주철 |
문화재 지정번호 | 전라북도 민속문화재 |
[정의]
전라북도 김제시 장화동에 소장되어 있는 조선 후기의 뒤주.
[개설]
뒤주는 곡식을 저장하기 위한 주방용 가구이다. 크기는 쌀뒤주가 1~2가마들이로서 큰 반면, 잡곡 뒤주는 훨씬 작다. 김제시 장화동 후장마을 정종수 집 마당에 있는 쌀뒤주는 고종 임금이 즉위한 후에 제작된 것이다. 이 고장 출신인 정준섭은 조부 때부터 만석꾼 집안으로 불렸다. 당시 과객이나 식객들이 매일 수백 명씩 찾아들어 작은 궤짝으로는 감당할 수 없어 결국 대·중·소문을 거쳐 안마당에 초대형 쌀뒤주를 만들었다고 한다.
[형태]
보통의 뒤주가 통나무나 널빤지를 짜서 궤짝의 형태로 만드는 데 비해 이 뒤주는 외형이 독특하다. 널빤지를 짜 맞추어 벽체를 구성하고 볏짚으로 지붕처럼 뚜껑을 만들어 씌웠다. 너비 2.1m, 높이 1.8m이며 판의 두께는 3.3㎝이다. 약 70가마의 양을 수용할 수 있는 규모이다.
[의의와 평가]
조선 고종 때 제작된 장화리쌀뒤주는 70가마 정도의 분량이 들어갈 수 있을 만큼 크고 독특한 건조물로서, 집을 찾는 사람들을 소홀하게 대접하지 않았던 당시의 훈훈한 인심을 느낄 수 있는 소중한 민속자료이다. 1976년 4월 2일 전라북도 민속문화재 제11호로 지정되었고, 2021년 11월 19일 문화재청 고시에 의해 문화재 지정번호가 폐지되어 전라북도 민속문화재로 재지정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