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260051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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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張泰秀先生遺物 |
영어의미역 | Jang Taesu’s Remains |
분야 | 역사/근현대,문화유산/유형 유산 |
유형 | 유물/유물(일반) |
지역 | 전라북도 김제시 금구면 상신리 65 |
시대 | 근대/개항기 |
집필자 | 남해경 |
[정의]
전라북도 김제시 금구면 상신리에 소장되어 있는 한말의 문신 장태수의 유품.
[개설]
장태수(張泰秀)[1841~1910]는 본관은 인동(仁同), 자는 성안(聖安), 호는 일유재(一逌齋)이다. 전라북도 김제시 금구면 상신리 출신으로, 1861년(철종 12) 식년문과에 급제하고 1867년(고종 4) 양산군수를 시작으로 병조참의(兵曹參議), 돈녕부도정(敦寧府都正), 동부승지(同副承旨), 경연참찬관(經筵參贊官) 등을 역임하였다.
1894년(고종 31)에는 고산현감(高山縣監)으로 나갔다. 1895년(고종 32) 단발령이 내리자 이를 반대하다 사직하고 은거하였다. 1907년(순종 1) 귀향하여 신명학교를 창설하고 배일사상을 고취시키던 중 1910년 한일합병이 되고 10월에 총독부로부터 퇴관은사금이 오자 이를 거절하고, 11월 1일부터 단식을 하다가 27일 순국하였다.
[형태]
장태수선생유물은 장태수가 관직 생활을 하면서 사용하던 물건과 그의 저서 등 6종 57점으로, 영정(影幀), 금관(金冠), 소관(小冠), 각대(角帶), 흑포(黑布), 조복(朝服)[내의], 후수(後璲), 호패(戶牌), 홀(笏), 패도(佩刀), 원선(遠扇), 어사화(御賜花), 동상[궤 포함], 교지(敎旨) 35점, 칙지(勅旨), 칙명(勅命), 첩(帖) 등이다.
현재 유물 가운데 장태수의 손자인 장훈규(張薰圭)가 소장한 유물 11점은 다음과 같다. 금양관(金梁冠) 1점, 백사모 1점, 조복 1벌[홍삼과 홍상], 흉배 1점[학 8마리], 백각대(白角帶) 1점, 가죽신 1켤레, 아홀(牙笏) 1점[길이 26.5㎝, 폭 4.7㎝], 호패 2개[하나는 흰색으로 길이 9㎝, 폭 2.2㎝, 두께 0.9㎝, 다른 하나는 검은색으로 길이 10.5㎝, 폭 3㎝, 두께 0.9㎝. 2개 모두 앞면에는 ‘장태수 신축생 신유문과(張泰秀辛丑生辛酉文科)’, 뒷면에는 ‘신유’라고 새겨져 있음], 장검 1자루[길이 67.5㎝, 폭 2.9㎝, 두께 0.5㎝, 손잡이 길이 16㎝], 사옹 1점이다.
[의의와 평가]
장태수선생유물은 순절의사 장태수의 충절과 인격을 엿볼 수 있는 유물이라는 데 의의가 있다. 장태수선생유물은 1983년 8월 24일 전라북도 유형문화재 제105호로 지정되었고, 2021년 11월 19일 문화재청 고시에 의해 문화재 지정번호가 폐지되어 전라북도 유형문화재로 재지정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