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260049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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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廣活面干拓地 |
영어의미역 | Reclaimed Land of Gwanghwal-myeon |
분야 | 역사/근현대 |
유형 | 사건/사건·사고와 사회 운동 |
지역 | 전라북도 김제시 광활면 |
시대 | 근대/일제 강점기 |
집필자 | 김승대 |
성격 | 간척사업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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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생(시작)연도/일시 | 1923년 |
종결연도/일시 | 1925년 |
발생(시작)장소 | 전라북도 김제시 광활면 |
관련인물/단체 | 동진농업주식회사 |
[정의]
1923년 동진농업주식회사가 전라북도 김제시 광활면 지역에서 3년간 축조하여 농토를 조성한 간척 사업.
[개설]
전라북도 김제시 광활면은 김제시 중심지에서 약 15㎞ 거리에 위치한 거북이 형상을 한 지역이다. 동쪽의 김제시 성덕면, 북쪽의 김제시 진봉면과 경계를 이루면서 남서쪽으로는 동진강으로 비롯되는 서해와 인접한 간척지로서 경사가 거의 없는 평야지대이다. 또한 지방도 702호선이 만경과 죽산을 연결하고, 농어촌 도로가 지방도를 중심으로 사방으로 연결되어 있어 교통이 편리한 지역이다.
[역사적 배경]
전라북도 김제시 광활면은 본래 김제시 진봉면 지역으로 동진강 하류의 개펄이었다. 1923년 10월 일본인 재벌 아베 후사치로[阿部房次郞]가 자기 자본 100만 엔과 일본 정부보조금 100만 엔 등 200만 엔으로 동진농업주식회사를 창설하고 방조제를 쌓기 시작하여 만 3년 만에 10㎞의 제방을 준공하였다. 그러나 바닷물이 드나들던 이곳을 농사지을 수 있는 논으로 만들기까지는 다시 9년이 걸렸다.
[경과]
조수가 드나들던 개펄에 방조제를 쌓고 각지에서 이주민을 모아 집단농장 체제의 인위적인 마을을 만들었다. 1924년 당시 김제군 진봉면 은파리학당에서 동진강 하구를 따라 거전(巨田)에 이르는 10㎞의 방조제가 축조되어 몽리(蒙利) 면적 1.01㎢에 달하는 농경지가 조성되었다. 일제강점기 때 만들어 당시 사상 최대 규모였던 광활면 간척사업에는 전국 각지에서 생계가 막연한 사람들이 자발적 혹은 반강제로 동원되었다. 광활면의 넓은 들은 조정래의 대하소설 『아리랑』의 무대이기도 하다.
[결과]
공사가 끝난 뒤 개펄은 농사를 짓는 땅이 되고, 간척사업에 참여한 외지 사람들 대부분은 그 ‘개땅’에 소작인으로 눌러앉았다. 그들은 초기에 수확량의 70%를 소작료로 내야 했으며, 나락 한 톨만 훑어내도 쫓겨나는 핍박을 당했다. 그들은 간척지에서 인고의 삶을 사는 자신들을 가리켜 ‘개땅쇠[개펄 땅에 사는 서민들]’라 불렀다. 그 말 속에는 당시 일제강점기 소작농들의 민중적 삶의 애환이 담겨 있었다. 이후 간척사업으로 축조한 제방이 1952년 태풍으로 유실되었다가, 다음해인 1953년에 정부의 긴급조치로 신제방이 구축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