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260048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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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巨野縣 |
영어음역 | Geoya-hyeon |
분야 | 역사/전통 시대 |
유형 | 제도/법령과 제도 |
지역 | 전라북도 김제시 금산면 삼봉리 |
시대 | 고려/고려 |
집필자 | 백덕규 |
[정의]
고려시대 전라북도 김제시 금산면 삼봉리 일대에 설치된 행정구역.
[제정경위 및 목적]
고려시대 초기는 실상 호족 시대의 후반기로 이때는 아직 왕권의 통치가 지방에까지 미치지 못하였다. 고려 왕조는 1018(현종 9)에 비로소 항구적인 지방 통치 제도를 마련하게 된다. 이전에도 여러 제도가 시도되었지만, 특히 이때에 와서 모든 고을의 이름이 다시 중국식 한자명으로 고쳐진 것이다.
그 기준은 757년(경덕왕 16) 당나라의 방식을 따라 주·군·현 간의 영속 체계를 강화하면서 전국에 걸쳐 행정 지명을 모두 중국식 한자명으로 고쳤는데, 당시의 명칭을 그대로 따르거나 이를 더욱 중국식 용어로 바꾸었다. 이에 따라 김제 지방의 무읍과 야서는 940년(태조 23)에 각각 부윤과 거야로 개칭되었고, 김제·만경·금구 등도 이 무렵부터 차차 공용화되기 시작하였다.
[관련기록]
『동국여지승람(東國輿地勝覽)』에는 신라 때 야서현으로 개칭과 동시에 태산군으로 영속되었다고 기록되어 있는데, 이는 당시 그 주변의 군·현 지명을 고찰해 보면 태산군이라는 군명(郡名)은 없고 다만 대산군[훗날 태인현]의 군명이 있는 것으로 보아 태(太)가 아니라 대(大)가 정확한 지명이 아닌가 한다. 옛 문헌에 따르면 거야현(巨野縣)은 금구현의 남쪽 13리에 위치한다고 기록되어 있다.
[변천]
백제 때는 야서이현이라 불렸으며, 757년 야서이현은 야서현이라 개칭되면서 태산군의 영현이 되었다. 940년 야서현은 거야현으로 개칭되어 전주에 영속되었다가 다시 뒤에 김제군에 속하게 되었다. 그 후 또다시 금구현으로 영속되었다가 현이 폐지되었다.
[현황]
거야현은 지금의 김제시 금산면 삼봉리 거야마을을 중심으로 한 일대였을 것으로 추측된다.
[의의와 평가]
거야현이 있던 지금의 김제시 금산면 삼봉리 일대는 고대의 야서이현, 통일신라시대의 야서현으로 이어져 왔다. 고려시대에 이르러 거야현이 되었다가, 현이 폐지될 때까지 김제시 금산면 삼봉리 일대와 김제시 역사 간의 유기적인 연관성 속에서 발전해 왔으며 그 영속성을 보여 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