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260045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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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乃利阿縣 |
영어음역 | Naeria-hyeon |
분야 | 역사/전통 시대 |
유형 | 제도/법령과 제도 |
지역 | 전라북도 김제시 청하면 |
시대 | 고대/삼국 시대/백제,고대/남북국 시대/통일 신라 |
집필자 | 백덕규 |
[정의]
백제시대부터 757년까지 전라북도 김제시 청하면에 설치된 행정구역.
[개설]
내리아(乃利阿)에서 ‘내리(乃利)’는 ‘곧다’라는 뜻이고, ‘아(阿)’는 읍이나 성을 말한다. 즉 곧은 성이라는 뜻이다. 바다의 조수가 이곳까지 밀려올 때 바다로 나갈 수 있었다는 것과 관련이 있는 것으로 추측된다.
[제정경위 및 목적]
백제 초기에는 지방 통치가 지역 부족 수장들의 자치적 기능에 맡겨져 왔다. 고이왕 이후에 5부 체제가 갖추어지면서 그들이 점차 중앙 귀족화되어 부에 편입되었고, 지방 통치가 이들을 통한 간접적인 지배가 행해지면서 내리아현으로 개칭된 것으로 보인다.
[관련기록]
『삼국사기(三國史記)』에 의하면 삼국시대에는 내리아현을 포함한 김제 지역이 백제의 영토였고, 당시 이곳에는 벽골·두내산·수동산·구지지산·무근촌·야서이 등의 고을이 있었다고 한다. 만경강 하구의 비옥한 평야 지역에 위치한 내리아현에는 창(倉)이 있었고, 만경과 함열을 연결하는 도로가 발달하였다.
[변천]
백제시대에는 내리아현으로 불렸다. 757년(경덕왕 16) 당의 방식을 따라 주·군·현 간의 영속 체계를 강화하면서 전국에 걸쳐 행정 지명을 모두 중국식 한자 지명으로 고쳤는데, 그에 따라 내리아현은 이성현(利城縣)으로 개칭되었고 김제군의 영현(領縣)이 되었다. 1018년(현종 9) 지방 통치 제도 개편에 의해 이성현이 전주목에 이속되었고, 다시 김제군에 복속된 후 현이 폐지되었다.
[의의와 평가]
내리아현이 있던 현재의 김제시 청하면 지역은 고대로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김제와 밀접한 연관을 지니고 발전해 왔으며, 그 영속성을 보여 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