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260033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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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古縣 |
영어음역 | Gohyeon |
이칭/별칭 | 부서울 |
분야 | 지리/인문 지리 |
유형 | 지명/행정 지명과 마을 |
지역 | 전라북도 김제시 성덕면 성덕리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최진성 |
[정의]
전라북도 김제시 성덕면 성덕리에 있는 자연 마을.
[형성 및 변천]
『동국여지승람(東國輿地勝覽)』에 “마을의 위치는 만경면 남쪽 13리이며, 백제시대에는 무근촌현(武斤村縣)으로 부르다가 신라시대에 무읍(武邑)으로 이름이 바뀌면서 김제군 관할이 되었다. 고려시대에 이르러 부윤현(富潤縣)으로 바뀐 뒤 잠시 임피현에 속하였다. 그 후 만경현(萬頃縣)에 속하였다가 현이 폐지되었다”라고 기록되어 있다.
고현에 처음 정착한 사람은 조선시대 때 창원구씨(昌原仇氏)라고 하는데, 여기에는 다음과 같은 이야기가 전하고 있다. 부설각시의 장인인 창원구씨는 만경 고을의 세금을 거두어 몽산포에서 배를 타고 서울로 올라갔다. 그런데 때 아닌 비로 말미암아 쌓아 놓은 곡식이 몽땅 비에 젖어 버렸다. 구씨는 너무나 안타까운 나머지 곡식 위에 올라가 통곡을 하였는데, 그 소리가 임금의 귀에까지 들렸다. 이를 이상히 여긴 임금은 신하에게 울음소리의 사연에 대해 물었다.
한 신하가 “만경 고을에서 나라에 바칠 세금을 싣고 온 구씨라는 사람이 뜻밖의 비로 말미암아 곡식이 비에 젖어 통곡하고 있습니다.”라고 고하자 임금은 절로 고개가 숙여졌다. 임금은 즉시 구씨를 불러 “그대가 이 나라의 일등 충신이다. 너무 걱정하지 말라.”며 칭찬하고는 젖은 곡식을 바꾸어 백성들에게 골고루 나누어 먹게 하고 구씨에게는 후한 상과 함께 소원을 물었다.
그러자 구씨는 높은 벼슬은 죄다 마다하고는 만경 고을 현감 밑에 있는 좌수(座首) 자리를 원한다는 것이었다. 결국 임금은 구씨에게 좌수 벼슬을 내렸고, 좌수가 된 구씨는 고현마을에 정착하게 되었다고 한다. “만경 고을 좌수가 조선 천하 좌수 중에 제일 높은 좌수다.”라는 말도 여기에서 비롯되었다고 한다.
[자연환경]
고현(古縣)은 성덕산(聖德山)[27m]의 광활간척지 평야로 진입하는 입구에 해당하는 낮은 야산에 형성된 마을로 간척되기 이전에는 바다의 영향을 받았던 것으로 보인다.
[현황]
고현은 김제시 성덕면 성덕리의 중심이 되는 마을로, 신비한 전설을 간직한 부설각시[浮雪閣氏]가 살던 마을이라 하여 ‘부서울’이라고도 한다. 고현을 포함한 광활간척지는 대부분 일제강점기 때에 간척된 것이다. 광활간척지에 필요한 용수를 공급하기 위해서 멀리 원평천(院坪川)에서부터 취수하기 시작하다가 신평천(新坪川)과 만나는 지점에서 다시 2차 취수를 하는 관개수로가 고현 앞을 통과하고 있다.
만경읍과 죽산면을 연결하는 지방도 711호선이 고현과 성덕면 소재지의 중간 지점에서 남북 방향으로 지나가고 있다. 유적으로는 성덕리 성덕산 토성 터가 남아 있다. 고현은 예로부터 현(縣)이 위치하던 마을로, 감옥을 비롯하여 저잣거리가 형성되어 있었다. 감옥 터는 기와 조각 등이 나오는 것으로 보아 마을 앞 논밭에 있었을 것으로 추측된다. 저잣거리 관련하여서는 ‘라시자리’라는 옛 지명이 남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