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260032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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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百子 |
영어음역 | Baekja |
분야 | 지리/인문 지리 |
유형 | 지명/행정 지명과 마을 |
지역 | 전라북도 김제시 용지면 부교리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최진성 |
[정의]
전라북도 김제시 용지면 부교리에 있는 자연 마을.
[명칭유래]
백자를 굽던 마을이라 하여 백자동(白磁洞)이라고 부르다가, 도공들이 천대받는 사회에서 자신들의 신분을 감추고 마을이 번창하기 위해서는 자식을 많이 낳아야 한다고 해서 백자(百子)라 불렀다고 한다.
[형성 및 변천]
조선 후기 천주교 신자들에 대한 박해가 심해지자 당시 익산군 함라현에 살던 유군심이 박해를 피해 숨어들어 살면서부터 마을이 형성되었다고 한다. 백자를 굽던 도공들이 방방곡곡에서 모여들면서 매우 번성하였다고 하는데, 백자를 구웠다는 근거는 찾을 수 없고 다만 옹기그릇을 굽던 가마터 흔적만 남아 있다.
백자마을 인접한 용암리 모산마을 역시 기와를 굽던 가마가 있어 와리(瓦里)라고 부르다가 모산(母山)[엄마산] 아래에 있는 마을이라는 의미로 모산으로 바꾸었다고 한다. 또 백자마을과 인접한 애통마을 사이에 골짜기가 있는데, 옛날 이 골짜기에서 기와를 구웠다 하여 기와막골이라는 지명이 남아 있다고 한다.
이런 점들로 미루어 백자마을을 비롯한 용지면 부교리 일대는 기와나 옹기그릇을 굽기에 적합한 토양과 그릇을 굽기 위해 필요한 소나무가 많았고, 그릇을 내다팔기 좋은 김제나 전주 지역이 지리적으로 가깝다는 등의 조건들이 갖추어져 가마가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현황]
백자마을 주변은 대부분 가마터와 관련 있는 지역이다. 백자마을과 인접한 자흥(子興)마을은 1920년경 위덕화라는 사람이 가마를 만들고 터를 잡으면서 마을이 형성되었는데, 이곳에 터를 잡은 이유는 옹기그릇을 굽는 땔감으로 많이 쓰이는 소나무가 많은 지역이었기 때문이라고 한다. 자흥마을에는 1978년부터는 연와공장이 건설되어 가동 중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