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260029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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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銀波里 |
영어음역 | Eunpa-ri |
분야 | 지리/인문 지리 |
유형 | 지명/행정 지명과 마을 |
지역 | 전라북도 김제시 광활면 은파리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최진성 |
[정의]
전라북도 김제시 광활면에 속하는 법정리.
[형성 및 변천]
조선 말기 만경군 하서면에 속했던 지역으로 원래는 넓은 갯벌이었다. 이후에 간척되어 김제군 진봉면 가실리에 편입되었고, 1949년 진봉면에서 광활면을 분할함에 따라 김제군 광활면 은파리가 되었다. 1995년 1월 1일 김제시와 김제군이 통폐합됨에 따라 김제시에 속하게 되었다.
[자연환경]
해발 고도 2~3m 안팎의 낮은 평야 지대로, 일제강점기에 본격적으로 간척되기 전에는 갯벌 지대였다. 과거의 흔적을 군평마을 바로 위에 있는 군평저수지(郡平貯水池)에서 찾을 수 있다. 군평저수지는 소하천이 자유 곡류하면서 만든 ‘S’자 모양인데, 이것은 바닷물이 드나들면서 만들어진 갯고랑이 너무 깊이 파여 경지 정리를 할 수 없어 그대로 방치했기 때문이다. 이를 증명이라도 하듯이 군평저수지 일대를 갯고랑이 깊어서 마치 동진강(東津江)이 끊어진 것처럼 보인다고 하여 절강(切江)이라고 불렀다. 현재 군평저수지 대부분이 논으로 개간되어 과거의 모습은 찾아볼 수 없다.
[현황]
2009년 12월 31일 현재 총 279가구에 614명[남자 318명, 여자 296명]의 주민이 살고 있으며, 이 가운데 18가구가 빈집이다. 전체 경지 면적은 1.71㎢로 논 0.35㎢, 밭 0.35㎢, 과수원 3,972㎡, 목장 0.01㎢, 대지 0.09㎢, 임야 0.27㎢이다.
자연마을로 선광(先光)·선진(先振)·학당(學堂)·용지(龍池)·군평(郡平)·진흥(振興) 등이 있다. 선광은 일제강점기에 일답구(一沓區) 지역으로, 1929년 91가구가 이주하여 형성된 마을이다. 광활면 동쪽에 있어 해가 가장 먼저 뜨는 마을이어서 붙여진 이름이다. 선진은 1981년 7월 1일 행정구역을 조정하면서 선광에서 나누어진 마을로, 선광보다 더 흥하라는 뜻에서 붙여진 이름이다.
학당은 일제강점기에 이답구(二沓區) 지역으로, 1929년 85가구가 이주하여 형성된 마을이다. 마을에 야학당(夜學堂)이 있었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용지는 1981년 7월 1일 행정구역을 조정하면서 진흥에서 나누어진 마을로, 주위에 크고 작은 연못이 많아서 붙여진 이름이다.
군평은 1981년 행정구역을 조정하면서 학당 서쪽에서 나누어진 마을이다. 옛날 이곳에는 소금을 구우면서 나온 재가 산처럼 쌓여 있었다고 한다. 소금을 굽던 들이라는 뜻에서 구은들이라 불렀는데, 한자로 바꾸는 과정에서 군평이 되었다. 진흥은 일제강점기에 사답구(四沓區) 지역으로, 1932년 82가구가 이주하여 형성된 마을이다. 지대가 낮고 유독 소금기가 많아 마을을 육성하기 위한 지원이 계속되면서 붙여진 이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