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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2600290
한자 三鳳里
영어음역 Sambong-ri
분야 지리/인문 지리
유형 지명/행정 지명과 마을
지역 전라북도 김제시 금산면 삼봉리지도보기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유승상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격 법정리
면적 4.12㎢
총인구(남, 여) 359명[남자 184명, 여자 175명]
가구수 176가구

[정의]

전라북도 김제시 금산면에 속하는 법정리.

[명칭유래]

1914년 행정구역 개편 당시 봉곡리·봉의리·봉암리 3개 마을의 ‘봉(鳳)’자를 따서 삼봉리(三鳳里)라 하였다.

[형성 및 변천]

조선 말기 금구군 수류면에 속했던 지역으로,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봉곡리·봉의리·봉암리·계암리 일부, 남면 송정리·유산리 각 일부를 병합하여 삼봉리라 하고 김제군 수류면에 편입하였다. 1935년 수류면을 금산면으로 개칭함에 따라 김제군 금산면 삼봉리가 되었고, 1995년 1월 1일 김제시와 김제군이 통폐합됨에 따라 김제시에 속하게 되었다.

[자연환경]

동쪽으로는 모악산이 자리하여 산지가 형성되어 있고, 남서쪽으로는 대부분 구릉지와 충적지가 나타난다. 남쪽으로 쌍용리와 이웃하고 있다.

[현황]

2009년 9월 현재 면적은 4.12㎢이며, 총 176가구에 359명[남자 184명, 여자 175명]의 주민이 살고 있다. 경지 면적은 밭 0.42㎢, 논 0.98㎢이다. 국도 1호선이 남북으로 뻗어 있다.

자연마을로 거야·양지·봉은·반곡 등이 있다. 거야는 구성산(九城山) 기슭에 자리한 마을로 삼봉리에서 으뜸가는 마을이다. 고려 때 거야현의 중심지로 현청과 객사 등이 있었다고 전해지는데, 거야라는 이름은 그때 생겨나 지금까지 이어져 내려오고 있다. 지금도 마을 곳곳에서 깨어진 기와 조각과 주춧돌 등이 나오고 있어 당시 번창했던 곳임을 증명하고 있다.

거야는 전봉준 장군과 함께 동학농민운동을 주도했던 김덕명(金德明)이 성장한 곳이라고도 한다. 김덕명 동생 김인상의 손자인 김병옥에 따르면, 김덕명 형제의 고향은 금산면 쌍용리 용제마을이고, 김병옥의 아버지인 김홍구가 거야마을로 옮겨 와 정착하게 되었다고 한다.

양지는 대학동 동남쪽에 있는 마을로, 원래는 거야에 딸린 마을이었다. 처음에는 옛날 마을 뒷산에 정자가 있었으므로 산정이라 하였고, 광복 뒤 마을을 1구·2구·3구로 나누었다가 다시 양지로 고쳤다. 봉은은 1895년경 언양김씨 김우상이 동학농민운동 당시 남원 운봉으로 피난 갔다가 3개월 뒤에 다시 돌아와 숨어 지내기 시작하면서 형성된 마을이다. 반곡은 거야 북쪽에 있는 마을로, 덕수이씨와 전주최씨가 처음 정착하였다. 그 당시에는 길이 구불구불한 골짜기란 뜻에서 서리골이라 하였는데, 한자로 표기하는 과정에 반곡(盤谷)이 되었다고 한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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