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260028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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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金山里 |
영어음역 | Geumsan-ri |
분야 | 지리/인문 지리 |
유형 | 지명/행정 지명과 마을 |
지역 | 전라북도 김제시 금산면 금산리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유승상 |
[정의]
전라북도 김제시 금산면에 속하는 법정리.
[명칭유래]
1914년 행정구역 개편 당시 금산사(金山寺)에서 이름을 따서 금산리(金山里)라 하였다.
[형성 및 변천]
조선 말기 금구군 수류면에 속했던 지역으로,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금성리·용평리·용정리 일부를 병합하여 금산리라 하고 김제군 수류면에 편입하였다. 1935년 수류면이 금산면으로 개칭됨에 따라 김제군 금산면이 되었으며, 1995년 1월 1일 김제시와 김제군이 통폐합됨에 따라 김제시 금산면 금산리가 되었다.
[자연환경]
동쪽에 모악산(母岳山)[793.5m]이 솟아 있다. 금산리 전체가 모악산도립공원의 일부로, 대부분 지역이 해발 고도 100~700m 이상의 산지로 이루어져 있다.
[현황]
금산면의 동부에 자리하고 있다. 2009년 9월 현재 면적은 11.89㎢이며, 총 267가구에 533명[남자 266명, 여자 267명]의 주민이 살고 있다. 경지 면적은 밭 0.30㎢, 논 0.22㎢이다. 동쪽의 모악산을 사이에 두고 완주군과 이웃하고 있다.
자연마을로 용화·계룡·금산 등이 있다. 용화는 계룡산 서쪽, 금산리의 가운데에 자리하고 있다. 마을을 감싸고 있는 산줄기가 마치 커다란 용이 누워 있는 형국이어서 유래된 이름이다. 1789년 간행된 『호구총수(戶口總數)』에는 용화동(龍化洞)으로 기록되어 있다. 약 300년 전에 마을이 형성되었고, 약 150년 전에 옥천육씨, 그 뒤를 이어 진사 최씨, 참봉 강릉유씨가 들어와 살았다고 한다. 마을이 지금처럼 번창하게 된 것은 증산 강일순(姜一淳)이 창시한 증산교가 들어오면서부터였다고 한다.
계룡은 용화 동쪽에 있는 마을이다. 마을 앞에 계룡산이 있어서 계룡이라 하였는데, 일제강점기 행정구역 개편 때 계곡에서 용이 올라갔다는 전설에 따라 닭 ‘계(鷄)’자를 시내 ‘계(溪)’자로 고쳐 계룡(溪龍)이라 하였다. 금동은 용화 동남쪽에 있는 마을이다. 마을이 산으로 둘러싸여 단풍이 드는 가을이면 마치 비단을 깔아 놓은 듯 아름다워서 붙여진 이름이다.
문화재로는 국보 제62호인 금산사 미륵전, 보물 제827호인 금산사 대장전, 보물 제23호인 금산사 석련대, 보물 제24호인 금산사 혜덕왕사진응탑비, 보물 제25호인 금산사 오층석탑, 보물 제26호인 금산사 방등계단, 보물 제27호인 금산사 육각다층석탑, 보물 제28호인 금산사 당간지주, 보물 제828호인 금산사 석등(金山寺石燈) 등이 있다. 그 밖에 전라북도 문화재자료 제136호로 1908년 건립된 금산교회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