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260024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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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洛城里 |
영어음역 | Nakseong-ri |
분야 | 지리/인문 지리 |
유형 | 지명/행정 지명과 마을 |
지역 | 전라북도 김제시 금구면 낙성리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김정길 |
[정의]
전라북도 김제시 금구면에 속하는 법정리.
[형성 및 변천]
조선 말기 금구군 낙양면에 속했던 지역으로,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신흥리·장흥리·사방리를 병합하여 낙성리라 하고 김제군 금구면에 편입하였다. 1995년 1월 1일 김제시와 김제군이 통폐합됨에 따라 김제시 금구면 낙성리가 되었다.
[자연환경]
북쪽으로 완주군과 이웃하고 있으며, 남쪽으로 두월천(斗月川)이 흐르는 중산간 지역이다.
[현황]
2009년 11월 30일 현재 총 217가구에 499명[남자 264명, 여자 235명]의 주민이 살고 있다. 자연마을로 상사(上社)·분토(粉土)·하사(下社)·애통이·장흥(長興)·신흥(新興) 등이 있다. 물이 좋아 수하동(水河洞)으로 불렸다는 마을과 하사 남쪽 들 가운데 있었다는 우당리는 도적을 막기 위해 마을 주위에 담을 쌓고 대문을 달아서 일명 대문안으로도 불리는 농경지로 변했다.
상사는 마을을 둘러싼 산이 소가 먹이를 먹은 모습과 같아서 구수내 또는 식동(食洞)이라 하였다가, 1914년 행정구역 개편 때 하사의 위쪽에 있는 마을이라 하여 상사로 고쳤다. 마을에 구수내가 흐른다. 분토는 상사와 신흥 가운데 있는 마을로, 마을 주변에서 분(粉)과 같은 하얀 흙이 출토되어 유래된 이름이다. 제주양씨 집성촌이다.
하사는 1455년(세조 1) 단종이 폐위되자 단종 왕비 송씨의 친족인 송윤(宋倫)이 내려와 터를 잡아 형성된 마을이다. 처음 마을 이름은 송윤의 집터가 ‘낙지산방(樂地山方) 군자지택(君子之宅)이요, 낙지수방(樂地水方) 인자지택(仁者之宅)’이므로, 두레 ‘사(社)’자와 꽃다울 ‘방(芳)’자를 써서 사방(社芳)이라 하였다. 1914년 행정구역 개편 때 상사 아래에 있는 마을이라 하여 하사로 고쳤다가, 1985년 행정구역 변경에 따라 다시 사방이 되었다.
애통이[일명 왜총이]는 김제와 전주를 잇는 국도 1호선 도로변에 있는 마을이다. 임진왜란 때 마을 북쪽 2㎞ 지점 왜돌이란 곳에 왜구의 시체를 묻은 무덤이 있어 왜총리(倭塚里)로 불렀는데, 발음이 변하여 애통이가 되었다. 장흥[일명 장평(長坪)]은 분토 서남쪽에 있는 마을이다. 옛날 이곳에 시장이 있어 마당 ‘장(場)’자를 쓰다가 긴 ‘장(長)’자로 고쳤다. 시산허씨 집성촌이다.
신흥은 분토와 금구면 산동리 둔산 가운데 있는 마을이다. 조선시대 두문동 72현 가운데 한 명인 대제학 최양(崔瀁)의 증손자 최식이 맨 처음 금구면 산동리 둔산에 터를 잡은 뒤, 자손이 번성하여 이웃에 새로이 터를 잡고 살게 되어 붙여진 이름이다. 문화재로는 절부 문화유씨 정려(節婦 文化柳氏 旌閭), 효자 허극·허권 정려, 송윤의 도승지 벼슬 추서 사실을 기록한 도승지 유허비(都承旨 遺墟碑)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