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2600019 |
---|---|
한자 | 人文地理 |
영어의미역 | Human Geography |
분야 | 지리/인문 지리 |
유형 | 개념 용어/개념 용어(개관) |
지역 | 전라북도 김제시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정부매 |
[정의]
전라북도 김제 지역에 분포하고 있는 인문지리적 요소.
[개설]
김제시는 전라북도 서부에 위치한 도시로, 동쪽은 전주시·완주군, 남쪽은 정읍시·부안군, 북쪽은 익산시·군산시, 서쪽은 황해에 접해 있다. 김제시는 예로부터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곡창 지대인 김제-만경평야의 중심을 이루어 온 지역이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수리 시설인 벽골제[사적 제111호]가 자리하고, 농경문화 체험을 주요 테마로 하는 김제지평선축제가 매년 10월 열리고 있다.
최근 지평선 공동브랜드를 개발해 지역 농축산물의 상품화를 꾀하며 역사 깊은 농업 문화의 맥을 새롭게 창출하고 있다. 또한 김제시는 모악산도립공원과 미륵신앙의 본거지 금산사를 비롯해 국가 지정 문화재 67점과 도 지정 문화재 42점 등 풍부한 문화유산을 갖고 있으며, 조정래 장편소설 『아리랑』의 배경지로도 유명하다.
2008년 말 현재 면적은 545.06㎢로, 행정 구역은 만경읍·죽산면·백산면·용지면·백구면·부량면·공덕면·청하면·성덕면·진봉면·금구면·봉남면·황산면·금산면·광활면 등 1개 읍, 14개 면과 요촌동·신풍동·검산동·교동월촌동 등 4개 행정동으로 구성되어 있다.
2008년 12월 31일 기준 김제시 전체 인구는 97,012명[남 48,623명, 여 48,389명]이고 가구 수는 114,197가구이다. 전라북도의 전체 인구인 1,874,521명의 약 5.2%를 차지하며, 인구 규모면에서 전라북도 14개 시군 가운데 5위를 차지하고 있다. 이중 신풍동이 15,876명으로 인구가 가장 많고, 광활면이 1,805명으로 가장 적다. 1995년 김제시와 김제군이 통합될 당시의 인구는 128,490명이었으나, 이후 점진적인 감소세를 보이다가 2004년을 기점으로 10만 명 미만의 인구 규모를 갖게 되었다.
[변천]
오늘날 김제시는 조선시대의 3개 군현, 즉 김제(金堤), 만경(萬頃), 금구(金溝)가 합쳐진 지역이다. 김제는 동진강 유역 쪽의 구릉지에 자리한 지방 중심 도시이고, 만경은 만경강 유역 쪽의 구릉지에 위치한 구읍이다.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에 본래 백제시대에 ‘벽골군(碧骨郡)’이라고 불리다가 통일신라시대인 757년(경덕왕 16)에 지금의 이름 김제군으로 바뀐 것이라는 기록이 나온다. 이어 고려 초에 전주의 속현이 되었다가, 1143년(인종 21)에 전주목에서 김제현으로 그리고 1171년(명종 1)에 전주목에서 금구현으로 승격되었다.
이후 일제강점기였던 1914년 행정 구역 통폐합 때 김제군에 만경군과 금구군이 병합되었다. 1931년 김제군 김제면이 김제읍으로 승격되었으며, 1949년 광활면을 진봉면에서 분할하였다. 1989년 김제군의 김제읍·월촌·봉남면·황산면 일부가 김제시로 승격 분할되었다가, 1995년 다시 김제시와 김제군이 통합되었고 같은 해 만경면이 만경읍으로 승격되었다. 1998년 1개 읍, 14개 면, 4개 행정동으로 행정 구역이 다시 개편되어 현재에 이르고 있다.
[토지이용과 취락]
김제시는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곡창으로, 벼농사 중심의 농업 지대를 형성해왔다. 그 배경에는 동진강 유역의 김제평야와 만경강 유역의 만경평야의 개간과 간척 과정이 놓여 있다. 『여지도서(輿地圖書)』 김제군, 만경현, 금구현의 각 제언조에 수십 개에 달하는 제언들을 확인할 수 있다. 이렇듯 조선시대 이전에도 제언의 축조를 비롯해 크고 작은 개간 사업이 있었지만, 일제강점기 일제의 산미 증식 계획에 따라 간척 사업이 본격화되었다.
특히 동진강 하류의 김제평야는 동진농지개량조합의 전신인 동진수리조합이 설립되면서 큰 변화를 경험했다. 일제는 동진수리조합을 통해 1928년 섬진강의 운암제(雲岩堤)를 완공하고 유역 변경에 의해 그 물을 동진강으로 돌림으로써 식량 수탈 목적을 이루기 위해 필수적인 농업용수의 부족 문제를 해결했다.
그보다 몇 해 앞선 1924년 일제는 동진농업주식회사를 설립하고 진봉반도 남단의 간석지를 대상으로 20㎢ 규모의 간척지를 조성해 미작지대를 확대하였는데, 이것이 광활 간척지이다. 일본 자본에 의해 개발된 광활 간척지의 개답과 영농을 위해 일본인은 물론 전국적인 이민자를 모집하였고, 일본 자본가들은 효율적인 농경지 관리를 위해 농경지 곳곳에 중앙 입지적 집촌을 이루어 계획적인 간척촌을 형성하였다. 이러한 일제강점기의 간척 과정이 남긴 취락 경관의 특성은 김제시 광활면에 지금도 남아 있다.
[산업]
전라북도 김제시는 1차 산업의 비중이 높은 산업 구조를 갖고 있다. 2008년 현재도 농가 인구[29,131명]가 전체 인구의 약 30%를 차지하고 있고, 전체 농가[11,887호] 중 전업 가구[8,760호] 비율이 73.7%로 매우 높다. 김제 전역에서 쌀 생산이 이뤄지며, 광활 햇감자는 전국 봄 감자 생산량의 약 20%를 차지할 정도로 유명하다. 한편 전통적인 식량 작물 생산 외에 백구면과 용지면을 중심으로 포도, 배 등 과실류 생산이 활발하다.
최근 김제시의 주요 농축산물인 쌀·파프리카·배·감자·한우·포도를 지평선 6대 공동 브랜드로 개발하여 상품화하였다. 2010년 1월 확정 발표된 새만금 내부 개발 계획에 따르면, 새만금 김제지구 내 첨단 농업 용지는 26.3㎢에 첨단 수출 원예 단지를 비롯한 10개 지구가 조성될 예정이다.
또한 김제시 백산면 부거리 일원에 지정되어 조성중인 김제자유무역지역[2009~2011]은 외국인 투자 기업을 위한 산업 특구로, 자동차 부품 및 기계 산업, 첨단 식품, 신재생 에너지 집중 육성 등을 목표로 하고 있다. 이로써 지역의 산업 구조의 다각화를 통한 지역 발전을 도모하고 있다.
[교통]
김제시는 호남고속국도[서전주IC, 금산사IC], 서해안고속국도[서김제IC], 고속철도 호남선[김제, 2004년 개통] 등 남북을 연결하는 교통 여건이 매우 원활하다. 1914년 개통된 호남선 철도는 김제시의 동부를 남북으로 통과하며, 부용역·와룡역·김제역 등이 설치되어 있다. 그밖에 부안·익산, 군산·정읍, 전주 등 주변 지역들과 국도 23호선, 국도 29호선 및 지방도 712호선·지방도 714호선·지방도 716호선 등이 연결되어 있다.
[관광]
김제시는 국가 지정 문화재 67점과 도 지정 문화재 42점 등의 풍부한 관광 자원을 보유하고 있다. 모악산 자락에 자리한 금산사는 미륵신앙의 본거지로 우리나라 유일의 3층 불전인 미륵전이 유명하여 관광객이 많이 찾는다. 김제시 금산면 청도리 금산사 부근의 모악산 백운동은 미륵 신앙과 관련이 있는 증산교의 성지로서 종교 취락도 형성되어 있다.
사적 제111호 벽골제비 및 제방 주변에는 김제의 농경문화 전통과 근현대사를 엿볼 수 있는 벽골제농경문화박물관과 아리랑문학관이 조성되어 있다. 김제시의 대표적인 축제로는 2009년 제11회를 맞이한 김제지평선축제가 손꼽힌다. 벼고을 김제의 농경문화 체험을 테마로 한 축제로 2009년을 포함해 6년 연속 대한민국 최우수 문화 관광 축제로 선정될 만큼 비약적인 성장을 한 축제로 평가받고 있다. 그 외 광활햇감자축제, 모악산벚꽃축제 등이 유명하다. 2008년 한 해 동안 김제시를 방문한 관광객은 331만여 명에 달했고 2000년 100만여 명에 비해 3배 이상 증가하며 성장세를 지속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