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260001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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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實踐佛敎-先驅者-震默大師 |
영어의미역 | The Trailblazer in the Field of Practising Buddhism, Buddhist Master Jinmuk |
분야 | 종교/불교 |
유형 | 개념 용어/개념 용어(기획) |
지역 | 전라북도 김제시 |
시대 | 조선/조선 전기 |
집필자 | 나종우 |
[개설]
진묵대사(震默大師)[1562~1633]의 속명은 일옥(一玉)으로 1562년(명종 17) 김제군 만경면 화포리[지금의 김제시 만경읍 지역]에서 태어났다. 석가의 소화신(小化身)으로 추앙받았으며, 술을 잘 마시기로 유명하고 신통력으로 많은 이적(異跡)을 행하였다고 한다. 저서에 『어록(語錄)』이 있다.
진묵대사가 태어난 화포(火浦)는 불거촌(佛居村)의 다른 이름으로, 즉 ‘불(佛)’의 음을 취한 뒤 불을 뜻하는 ‘화(火)’자를 쓰고, ‘거(居)’가 개로 음이 변한 뒤 갯마을을 뜻하는 ‘포(浦)’자를 써서 붙인 이름이다. 불거촌은 진묵대사와 같은 고승(高僧)을 낳았다 하여 붙인 이름이다.
[개구리가 맺어 준 불가와의 인연]
진묵은 7세 때 시집 간 누나의 집인 익산군 춘포면 쌍정리에 와 있었다. 어느 봄날, 모내기를 하는 논에 나가서 구경을 하던 어린 진묵은 모판에서 모를 추리는 사람들이 개구리를 잡아 죽이는 광경을 보게 되었다. 개구리를 마구 잡아서 땅바닥에 패대기치자 개구리는 두 다리를 쭉 뻗고 바들바들 떨면서 죽어 가고 있었다. 어린 진묵에게는 무척 충격적인 광경이었다.
그 광경을 바라보는 진묵의 눈에서 쉴 새 없이 눈물이 흘러내렸다. 잠시 뒤 언덕에서 돌아 앉아 흐르는 눈물을 닦고 있던 소년은 벌떡 일어났다. 그리고 그 길로 멀지 않은 곳에 있는 봉서사로 찾아가 출가하게 되었다.
[행동하는 실존주의자]
진묵은 한국 불교사에서는 드물게 실천적 실존주의자로 유명하다. 진묵은 성격이 아주 거리낌 없이 용기가 많고 씩씩하고 굳센 정신과 멋이 흘러넘치는 인물이었다. 그런 까닭에 우리나라 불교계에서는 이상한 중으로 불린다.
진묵은 모든 이념적 불교 사상을 행동으로 실천하면서, 절은 많은 사람을 위해서 있는 것이지 도를 닦는 중을 위해서만 있는 것이 아니라고 주장하였다. 절을 떠나서 사람들이 모이는 곳이면 그곳이 마을의 정자든 길바닥이든 마다하지 않고 부처의 법을 납득할 수 있도록 꿰뚫어 말했다.
불교를 전파하는 수단을 법당에서 얻지 않고 사람이 많이 모인 곳에 직접 뛰어들어서 실존적 불교 사상을 통해서 펼쳐 나갔던 것이다. 다른 불자들은 진묵의 행동을 마뜩치 않게 여겨 거세게 대하면서 퉁기기도 하였다. 때로는 이단(異端)으로 몰렸고, 거센 시험을 당하기도 하였다. 하지만 진묵은 끝내 절은 도를 닦는 중을 위해서가 아니라 많은 사람을 위해서 존재하는 것이 불교의 정법(正法)이라고 강조하였다.
[아주 특별한 수행의 길]
7세에 출가한 진묵은 처음으로 불경을 읽기 시작했으나 마치 칼로 실을 끊듯 도리가 분명하고 한 번 눈에 스치면 곧 외워 버렸다. 이렇게 재주가 매우 뛰어났기 때문에 특별히 스승을 따로 모실 필요가 없었다. 절에 있는 사람들은 아직 수행을 쌓지 않은 소년 중이 이렇게 공부하는 것을 아무도 알지 못하였다.
어린 진묵이 경전을 들여다보는 것을 보아도 그것을 배우기에는 너무 나이가 어리고, 또 무엇에 대하여 물어보는 일이 전혀 없으므로, 어린 사미(沙彌)가 불경을 혼자 읽으리라고는 짐작도 못했던 것이다.
어린 진묵은 불경 이외의 다른 서적도 보지 않은 책이 없었다. 어느 때는 어떤 집에서 『통감강목(通鑑綱目)』 59권을 빌려서 그 집 하인에게 짊어지게 하고 절로 돌아온 일이 있었다. 돌아오는 길에서 진묵은 책을 한 권씩 뽑아 읽고는 다 읽으면 그것을 길가에 던져 버렸다. 이때 따라오는 하인이 길가에 버린 책을 다시 주웠다. 그런데 진묵은 절 문에 들어서기까지 그 많은 책을 다 읽고는 훌훌 빈손을 털어 버리는 것이었다.
나중에 책 주인이 그 까닭을 물으니, 스님은 고기를 잡았으면 발을 버리는 것이라고 말했다고 한다. 이때 진묵이 책을 버린 사실을 알고 궁금증이 생긴 책 주인이 아무 권이나 뽑아들고 진묵에게 물었다. 그러자 진묵은 단 한 자의 착오도 없이 길에서 돌아오면서 읽었던 내용을 모두 외워 버렸다.
진묵이 봉서사에 딸린 암자인 상운암(上雲庵)에 있을 때였다. 공부하는 중들이 결제(結制)를 앞두고 모두 동냥하러 나갔다. 결제 기간 중 참선 도량에서는 아무도 들어왔다 나갔다 하지 못하기 때문에 사람이 죽는다고 해도 그대로 두었다가 해제(解制)가 되어야 다비식을 치르는 것이 선방(禪房)의 규율이었다.
상운암의 중들도 그런 엄격한 규율 밑에서 진묵을 큰스님으로 모시고 공부하고 있었으므로 3개월 동안 참선하면서 먹을 양식을 구하러 한 달 동안 기일을 정하고 동냥하러 나선 것이다.
마침내 한 달이 지나 동냥을 하러 나갔던 중들이 상운암으로 돌아왔다. 그런데 진묵은 중들이 돌아오는 줄도 모르고 우두커니 석고상처럼 그대로 앉아 있는 것이었다. 가까이 가서 보니 진묵의 얼굴에 거미줄이 쳐져 있고 무릎에는 먼지가 수북이 쌓여 있었다.
중들이 얼굴에서 거미줄을 걷어 내고, 무릎의 먼지를 털어 내며 자기들의 이름을 대면서 “돌아왔습니다.” 하고 인사를 하니 진묵은 그때서야 “너는 왜 그렇게 빨리 왔느냐?” 하고 물었다고 한다. 집집마다 동냥을 다 내보내고 홀로 남아서 앉은 채로 정(定)에 들어 버린 것이다.
진묵이 월명암에 있을 때였다. 가을이 되어 중들이 동냥을 나가고 한 사람만 남아 진묵의 시중을 들고 있었다. 그런데 동네에 갑자기 초상이 나서 시중들던 시자가 초상집에 가야 하는 일이 생겼다. 이때 시자가 진묵이 먹을 음식을 준비해서 탁자 위에 올려놓고 “여기에 공양을 차려 놓았으니 때가 되면 스님께서 들어다 잡수십시오.”라고 말했다.
진묵은 고개를 끄덕이시면서 방문을 열어 놓은 채 조용히 앉아 『능엄경(楞嚴經)』을 보고 있었다. 하룻밤이 지나 마을로 내려가서 초상을 치른 시자가 다시 암자로 돌아와 보니 놀랍게도 진묵은 내려갈 때와 똑같은 모습으로 꼼짝도 하지 않고 앉아 있는 것이었다.
가까이 다가가서 보니 진묵의 손에서 피가 흘러 그대로 말라서 엉겨 붙어 있었다. 시자가 내려갈 때 문지방에 손을 얹고 있었는데 바람이 불어 문이 닫히면서 손에 상처가 났어도 아픈 줄 모르고 삼매경에 빠져들었던 것이다. 탁자 위에 차려 놓았던 음식도 그대로 남아 있었다. 시자가 절을 하고 문안을 올리자 진묵은 “너는 왜 제사 참례를 안 하고 빨리 왔느냐?” 하고 물었다.
[진묵의 놀라운 신통력]
1. 물고기의 혼이 사람으로 태어나 진묵이 되었다는 이야기
진묵이 바랑을 지고 집집마다 동냥을 하러 다니다가 한 마을에 도착했다. 때마침 마을 사람들이 커다란 가마솥에 시뻘건 불을 지펴 놓고 많은 물고기를 끓이고 있었다. 마을 사람 한 명이 중을 골탕 먹이고 싶은 장난기가 발동하여 지나가는 진묵의 발걸음을 멈추게 하였다.
“여보, 스님. 이 긴긴 오뉴월의 해에 집집마다 동냥하러 돌아다니시려니 배도 좀 고프겠소. 그래 스님을 생각하여 이 생선국 한 그릇을 끓여 놓았으니 생각이 있다면 한 그릇 하시는 것이 어떻소?”
진묵은 “후한 인심이로다. 정 그렇다면 내가 먹어 볼 만도 하이.” 하면서 가마솥 앞으로 성큼 다가섰다. 그러고는 옆에서 건네주는 국그릇을 던져 버리고는 펄펄 끓는 커다란 가마솥을 두 손으로 쳐들더니 안에 든 물고기를 하나도 남김없이 다 마셔 버렸다.
그런데 마을 사람들이 깜짝 놀라 어리둥절해하는 와중에 그곳을 떠난 진묵은 도랑을 타고 한참 동안 올라가더니 냇물에 엉덩이를 내놓고 변을 보는 것이 아닌가! 그러자 정말 신기하게도 아까 진묵이 들이마셨던 푹푹 삶은 물고기들이 펄펄 뛰며 살아서 도랑으로 헤엄쳐 내려오는 것이었다. 꿈인지 생시인지 놀란 마을 사람들이 진묵이 보통 중이 아님을 알고 용서를 빌었다.
“미흡한 인간들이 미처 고명하신 대사님을 몰라 뵈옵고……. 황공무지로소이다. 그러하오나 고기가 다 살아서 저렇게 펄펄 뛰어 노는데 어찌하여 저놈 한 마리는 꼬리가 잘린 채 소생을 못하옵니까?”
“한 마리? 과연 그렇군! 그놈의 꼬리는 저 가마솥 가장자리에 붙어 있을 거요.”
마을 사람들이 가마솥 가장자리를 살펴보니 거기엔 잘린 꼬리 한 토막이 붙어 있는 것이었다. 이 일이 있은 뒤로 물고기의 혼이 사람의 모습으로 바꾸어 입고 다시 태어나서 진묵이 되었으며, 진묵이 부처의 오묘한 이치를 다 깨달아 통하게 되었다는 소문이 나게 되었다.
2. 사라질 뻔했던 팔만대장경판
진묵이 해인사에 다녀온 지 얼마 안 된 어느 날, 갑자기 상좌에게 해인사에 갈 행장을 꾸리라고 일렀다. 의아한 상좌가 “아직은 가실 때가 아닌데 어찌 행장을 꾸리라 하시옵니까?” 하고 물었다. 그러자 진묵은 “글쎄! 해인사 팔만대장경판에 필유곡절이 생길 것 같구나.” 하고 말하고는 해인사로 달려가는 것이었다.
진묵이 해인사에 도착한 날 밤에 해인사 동쪽에 경판(經板)이 보관된 장각 옆에서 갑자기 불이 일어났다. 해인사의 수많은 중들이 발을 동동 구르며 어찌할 바를 몰라서 우왕좌왕하고 있는데, 진묵은 태연하게 불상 앞에서 기도를 드리고 있을 뿐이었다.
이윽고 기도를 다 마친 진묵이 솔잎에 물을 적셔서 불길이 번지는 곳에 몇 방울 뿌리니, 갑자기 하늘에서 한두 방울 내리던 비가 폭우로 변하여 순식간에 불길이 잡혔다. 하마터면 완전히 타서 사라질 뻔했던 팔만대장경판이 진묵의 신묘한 능력으로 보존되어 길이 남을 수 있었다고 한다.
3. 모기도 두려워한 진묵대사
진묵이 전주시 덕진구 우아동 용화산에 있는 일출암에서 지낼 때, 절 밑의 왜막촌[일명 왜망실]에 홀로 된 어머니를 모시고 있었다. 마을에는 개울이 있어서 그런지 여름이면 수많은 모기가 들끓어서 사람들을 괴롭혔다. 하루는 진묵이 어머니가 모기 때문에 밤잠을 설치는 것이 늘 마음에 걸려 산신을 불러다가 모기를 다스려 주도록 당부하니, 그 뒤로 왜막촌의 모기가 다 사라져 버렸다고 한다.
그 밖에도 나무로 오리를 만들어 날려 보낸 일, 국수를 먹겠다고 졸라 대는 중들의 발우와 자신의 발우에 바늘을 한 개씩 넣었는데 진묵의 발우에는 국수가 가득 찼고 중들의 발우에는 바늘이 그대로 남아 있었다는 이야기, 진묵대사가 태어날 때 고향 마을인 불거촌 일대의 풀이 3년 동안 말라 시들어 버렸다는 등 보통 사람들이 생각할 수조차 없는 신기하고 묘한 전설이 많이 전해 오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