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총독부
-
일제 강점기 김천 지역에서 활동한 교육가·사회 활동가. 광복 후 김천 지역에는 고덕환(高徳煥)을 중심으로 하는 고파(高派)와 심문(沈文)을 중심으로 하는 심파(沈派) 사이에 대립 현상이 뚜렷하게 나타났다. 국회의원 선거에서도 두 파 간에 다툼이 있었는데, 1948년 제헌국회의원 선거에 고씨 파에서는 유교계 인사 김은배를 지원하고, 심씨 파에서는 기독교계 인사 권태희를 내세워 권태희...
-
경상북도 김천시 지례면 관덕리 활람마을에 있는 산. 형상이 풍수지리로 볼 때 활을 당긴 굽은 형세라 하여 활 ‘궁(弓)’ 자 , 굽을 ‘을(乙)’ 자를 써서 궁을산이라 했다고 전해진다. 궁을산은 높이 365m에 불과한 야산이지만 1660년(현종 1) 효종의 3녀인 숙명공주와 6녀인 숙경공주의 태를 산 정상에 안치하여 태실지가 되면서 명당으로 이름이 났다. 태실 조성과 관련된 기록은...
-
경상북도 김천 출신의 독립운동가·출판인. 김연만(金鏈萬)은 1904년경 지금의 경상북도 김천시 감호동에서 태어났다. 아버지는 부산 출신으로 김천에 정착 후 우피(牛皮) 무역을 통해 거부(巨富)가 된 김기진이다. 휘문고등보통학교[현 휘문고등학교]에 진학한 김연만은 1924년 동맹 휴학 주모자로 퇴학당한 상허(尙虛) 이태준(李泰俊)이 일본으로 유학갈 수 있도록 도...
-
요즘 전 세계적으로 가장 큰 화두로 떠오르는 것이 녹색 성장이다. 현재 정부에서 일자리 창출과 홍수 예방, 안정적인 수자원 확보 등을 위해 의욕적으로 추진하고 있는 4대 강 정비 사업과 함께 하천 유역의 문화와 관광 자원에 대한 관심이 쏟아지는 것 또한 주목할 말한 일이다. 이것은 대표적인 자연 환경인 하천이 가진 친환경적이면서 녹색 자원으로의 활용 가능성을 확인해 준 것이라고 하...
-
요즘 전 세계적으로 가장 큰 화두로 떠오르는 것이 녹색 성장이다. 현재 정부에서 일자리 창출과 홍수 예방, 안정적인 수자원 확보 등을 위해 의욕적으로 추진하고 있는 4대 강 정비 사업과 함께 하천 유역의 문화와 관광 자원에 대한 관심이 쏟아지는 것 또한 주목할 말한 일이다. 이것은 대표적인 자연 환경인 하천이 가진 친환경적이면서 녹색 자원으로의 활용 가능성을 확인해 준 것이라고 하...
-
일제 강점기 경상북도 김천 지역에 있던 조선농회의 김천군 지역 단체. 김천군 농회는 조선농회령에 따라 1926년 4월 22일 군 농회로 조직되었다. 조선농회령은 조선총독부가 각종 농업 단체를 정리·통합하기 위해 1926년 1월 법령으로 공포하였다. 이에 따라 계통농회가 만들어졌으며 겉으로는 농업의 개량과 근대화를 표방했으나 실제로는 일제의 농업 정책 대행 기구로서 기능하...
-
일제 강점기 일제가 경상북도 김천 지역에 설립한 면정 자문 단체. 면 협의회는 3·1운동 이후 일제가 한국인의 민심을 수습하기 위한 회유책으로 실시한 문화 정치의 일환으로 면정의 자문을 위해 설립한 단체이다. 즉 3·1운동 이후 일제가 헌병 경찰제와 회사령을 폐지하고 문화 통치를 실시하면서 독립 만세 운동에서 나타난 한국인의 독립 의지와 민심을 수습하기 위한 회유 조치의 하나로 등...
-
경상북도 김천시 모암동에 있는 우편·체신·금융 담당 기관. 김천우체국은 김천 지역의 우편·체신·금융 관련 사업이나 업무를 관장하기 위하여 설립되었다. 김천 지역에서 현대식 우편 제도는 1904년 6월 1일 일본인 쓰지다[土田次郞]가 김천면 하신기동에 금산우체사를 개설하면서 처음 시작되었다. 1905년에는 한국인이 우편을 이용하기 시작하자 장래성이 있...
-
1917년부터 1931년까지 경상북도 김천 지역에 설치된 특별면. 1917년 10월 1일 조선총독부는 김천을 특별면으로 지정하였다. 이때부터 한국인 면장 대신에 일본인 면장을 두게 되었다. 김천의 일본인 사회는 지방 출신 인물이 면장이 되기를 바랐으나, 기대와 달리 지방과 관련이 없는 스즈오카 세이이치[鈴岡正一]이 취임하였다. 면장의 상담역으로는 모리모토 오토지로[森本音次郞], 기...
-
“정월 대보름날 전후로 주조 공장 일꾼들이 물지게로 과하주 빚는다고 하루 종일 물을 길어다 나르는데 사람이 부족해서 그때 이 동네 사람들도 품 팔러 다니기도 했지.” 남산동 과하천 인근에 사는 이재탁[80세] 어르신에게 과하주와 과하천은 아직도 김천의 아련한 향수와 추억으로 남아 있었다. 과하천의 본디 이름은 김천(金泉)이라고 하는 이 고장의 지명이 유래된 남산동의 ‘김...
-
“정월 대보름날 전후로 주조 공장 일꾼들이 물지게로 과하주 빚는다고 하루 종일 물을 길어다 나르는데 사람이 부족해서 그때 이 동네 사람들도 품 팔러 다니기도 했지.” 남산동 과하천 인근에 사는 이재탁[80세] 어르신에게 과하주와 과하천은 아직도 김천의 아련한 향수와 추억으로 남아 있었다. 과하천의 본디 이름은 김천(金泉)이라고 하는 이 고장의 지명이 유래된 남산동의 ‘김...
-
경상북도 김천 지역에서 전승되어 오고 있는 민중들의 생활과 습관을 반영한 놀이. 민속놀이는 옛날부터 민간에 전승되어 오는 여러 가지 놀이로서 향토색을 지니며, 전통적으로 해마다 행하여 오는 놀이를 말한다. 민속놀이는 민족 구성원의 정서를 자극시켜 대중적 흥취를 돋우고 공동적인 감흥 속에서 짜임새 있는 구조적 행동을 공동으로 경험하도록 하는 상황 조성 작업이라고 말할 수...
-
경상북도 김천시에서 활동한 교육자. 성옥환(成玉煥)[1917~2005]은 호는 일직(壹直)이며, 경상북도 상주시에서 태어났다. 1932년 4월 5일 대구고등보통학교를 입학하여 졸업하였다. 1938년 4월 1일 보성전문학교 상과에 입학하였다. 1941년 12월 8일 조선총독부 관방문서과 고원(雇員)이 되었다. 1943년 4월 1일 조선총독부 관방조사과, 1944...
-
직지사(直指寺)는 김천시 대항면 운수리에 있는 높이 1,111m 황악산 아래에 위치하고 있다. 직지사라는 이름이 붙여진 배경에 대해서는 크게 두 가지 설이 전한다. 첫째는 “수행을 통해 욕심과 번뇌를 버리고 마음을 비우면 자기 자신이 부처요, 그 마음이 곧 불심”이라는 선종(禪宗)의 핵심 가르침인 ‘직지인심 견성성불(直指人心 見性成佛)’의 맨 앞 글자인 직지(直指)에서...
-
경상북도 김천시에서 일어난 새로운 사건이나 화제를 신속히 보도, 해설, 비평하는 정기 간행물. 신문은 정기 간행물 형태의 가장 대표적인 언론 매체 중의 하나로 우리나라에서는 『독립신문』을 필두로 일제 강점기와 군사 정권기, 민주화 시기를 거치며 많은 신문이 흥망을 거듭하였다. 일제 치하 김천 지방 출신으로 언론계에서 활약한 사람은 『동아일보』 지국장 이정득을 비롯하여 이...
-
일제 강점기와 현대 김천 출신의 관료·정치인. 엄민영(嚴敏永)은 1919년 2월 4일 지금의 경상북도 김천시 봉계면 태화리에서 태어났다. 일본 이름은 기지야마 도시오[雉山敏夫]이다. 김천보통학교를 졸업하고, 1939년 일본 규슈제국대학[九州帝國大學] 법문학부를 졸업한 후 미국 노스웨스턴대학원을 수료하였다. 고등문관시험 행정과에 합격하여 조선총독부 관리가 되었고, 일제 강...
-
경상북도 김천시의 유명한 음식 제조업체 및 음식물을 조리하여 판매하는 가게. 음식점은 「식품위생법」 시행령 제7조 제8호에서 분류하는 식품 접객업으로, 식사류와 술을 판매하는 일반 음식점 영업, 주류를 조리하여 판매하고 노래를 할 수 있는 단란주점 영업, 주류를 조리하여 유흥 종사자가 판매하는 유흥 음식점 영업, 단체 급식을 하는 위탁 급식 영업, 휴게 음식점 영업 등을...
-
경상북도 김천 출신의 정치인. 이병관(李丙瓘)은 1908년 지금의 경상북도 김천시 봉산면 태화리에서 태어났다. 1933년 일본 도쿄농업대학[東京農業大學]을 졸업하고 1939년 조선총독부 농업기사로 근무했다. 광복 후 2개월 동안 봉산면장으로 재직했고, 1948년 제헌국회의원 선거에서 김천 을구에 무소속으로 단독 출마하여 무투표 당선되어 국회에 진출했다. 195...
-
일제 강점기 김천 출신의 교육가이자 사업가. 이한기(李漢驥)[1894~1955]는 지금의 김천시 감문면 덕포동[현 감문면 곡송리]에서 태어났다. 1899년 1월 덕남서당(德南書堂)에서 수학한 뒤 1910년 3월 개령 개진학교를 졸업하였다. 1911년 3월 취성의숙 중학부 제2년을 수료하였다. 1912년 12월 조선총독부 토지조사국 기술원양성소, 1913년 12월 구국기술...
-
경상북도 김천시 조마면에 속하는 법정리. 이 마을 출신으로 목사(牧使)를 역임한 허직(許稷)이 바위에 자신의 이름을 새긴 후 힘센 장사에게 바위를 3층으로 쌓게 하였다 하여 장수바위 또는 삼층바위라 하였는데 음이 변하여 장바우가 되었고 한자로 장암(壯岩)이라 하였다. 이 바위를 기준으로 위쪽 마을을 상장(上壯)[일명 웃장바우], 아랫마을을 하장(下壯)[일명 아랫장바우]이...
-
해방 직후 경상북도 김천 지역에 조직된 조선건국준비위원회 산하 김천 지역 위원회. 조선건국준비위원회는 해방 전후 국가 건설 능력을 가진 한국인들이 자발적으로 근대 통일 민족 국가를 수립하기 위해 조직한 기구로, 일제가 태평양 전쟁에서 패배함으로써 조국 광복이 이루어질 것이라는 예상 아래 1945년 8월 14일 서울에서 여운형을 중심으로 건국을 준비하기 위해 만들어졌다....
-
일제 강점기 경상북도 김천 지역에 있던 조선식산은행의 지점. 조선식산은행은 일제 강점기인 1918년 10월 산업 개발을 위한 조선총독부의 금융 정책에 따라 설립된 장기 투자 금융 기관이다. 1906년 한국 칙령 제12호 은행 조령 및 칙령 제13호 농공은행 조령에 따라 자본금 14만 원으로 주식회사 대구농공은행이 설립되었다. 1908년 대구농공은행은 진주농공은행을 합병하...
-
경상북도 김천시의 특산물인 지례 흑돼지를 이용한 향토 음식. 흑돼지 사육지인 지례면은 대부분이 200~500m의 산지를 이루며 감천이 면의 서부를 곡류하고, 대가천의 지류가 면의 동부를 남류하는 곳이다. 지례 지역은 이들 하천 연안을 따라 경작이 행해질 뿐 평야의 발달은 미약하며 쌀 이외에 양파가 많이 생산되고 예로부터 가축으로 흑돼지를 많이 사육하였다. 1927년 조선...
-
천주교 김천황금성당 주임신부 겸 성의중학교와 성의고등학교 교장을 역임한 가톨릭 성직자. 최재선(崔再善)은 1912년 1월 7일 지금의 경상남도 울주군 상북면 길천리 413번지에서 태어났다. 세례명은 요한이다. 1932년 9월부터 1934년 6월까지 대구 성유스티노신학교 철학과를 다녔고, 1938년 6월까지 같은 대학 신학과를 다녔다. 1938년 6월 11일 사...
-
일제 강점기 김천 출신의 독립운동가. 최학길(崔鶴吉)은 1862년 지금의 경상북도 김천시 조마면 신안리 639번지에서 한학자인 남애(南厓) 최창락(崔昌洛)[1832~1866]의 둘째 아들로 태어났다. 최익길(崔益吉) 또는 최학광(崔鶴光)으로도 불렸다. 18세에 아버지 최창락을 따라 성재(性齋) 허전의 문하에서 수학했으며, 이후 족형인 양오(陽梧) 최봉길(崔鳳吉)[1853...
-
1919년 경상북도 김천 출신을 비롯한 유림들이 파리 강화 회의에 한국의 독립을 호소하는 서한을 보낸 사건. 1919년 3·1운동 이후 유림 세력들은 독립 선언서에 서명한 인물들에 유림이 빠져 있다는 것을 수치로 여겼다. 이를 만회하기 위해 유림 세력은 곽종석(郭鍾錫)을 대표로 내세워 파리 강화 회의에 한국의 독립 요구를 밝히고 독립을 청원하기로 합의하였다. 파리 강화 회의에 보내...
-
『동아일보』 1931년 4월 25일자에는 최송설당과 김천의 만남을 “적막(寂寞)의 김천을 활기(活氣)의 김천으로, 초야(草野)의 김천을 이상(理想)의 김천으로”라고 하였다. 또 『동아일보』 1939년 8월 17일자에는 최송설당의 “유업(遺業)은 천추(千秋)에 그 빛을 남길 것이고, 공덕(功德)과 방명(芳名)은 학교[김천고등보통학교, 현 김천중학교·김천고등학교]의 운명과...
-
경상북도 김천 지역에서 주민들이 강이나 들로 나가 음식을 나누어 먹으며 즐기는 놀이. 회취(會聚)는 봄가을에 어렵고 힘든 농사일을 끝내고 마을 사람들이 함께 강·산·들 등으로 나가서 음식을 나누어 먹으며 노는 민속놀이이다. 오늘날의 소풍이나 야유회와 같은 개념으로 볼 수 있다. 예를 들면 단오쯤이면 숨이 넘어가던 농사일이 한 고비를 넘게 되므로 동네마다 남녀노소 머슴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