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천경찰서
-
경상북도 김천시에서 국가의 감독 아래 법령에 정해진 업무를 처리하는 기관. 공공기관은 국가에서 설립하고 운영하는 기관과 지방 자치 단체에서 설립하고 운영하는 기관, 기타 공공 단체 등으로 분류할 수 있다. 김천의 공공기관은 김천의 지방 자치 행정을 실현하기 위하여 설립·운영되는 기관을 말한다. 김천은 1914년 김산군과 지례군[증산면과 길방리는 제외], 개령군...
-
경상북도 김천시 율곡동에 있는 김천시 관할 치안 행정 기관. 김천경찰서는 김천시민들의 생명과 신체 및 재산을 보호하고 범죄를 예방하는 치안 유지 활동과 교통 단속 및 교통사고 처리, 자동차 단속 등 공공의 안녕과 질서의 유지를 목적으로 설립되었다. 1909년 김천 지역에 헌병분대가 설치되어 경찰 행정을 담당하다가 1919년 8월 경찰 제도의 개정에 의해 김천헌...
-
1945년 해방 후 경상북도 김천 지역에서 결성된 좌익 청년 운동 단체. 1945년 9월 5일 김천에서 조선건국준비위원회 김천지방위원회가 인민위원회로 전환한 후 김천인민위원회의 외곽 조직으로서 김천민주청동맹이 결성되었다. 김천민주청동맹은 김천군의 통일된 청년 운동 조직으로서 결성되었다. 김천민주청동맹의 위원장은 일제 강점기 김천 지역의 사회운동가이면서 조선공산당재건협의회 김천그룹의...
-
경상북도 김천시 삼락동에 있는 유도 단체. 현재의 유도는 1882년 일본의 가노가 전통무술이었던 유술의 여러 유파 중 기술을 겨루는 승부법을 체계화하여 유도라 일컬은 데에서 비롯되었다. 우리나라에서는 1906년 일본인 우치다가 서울 명동에 유도장을 개설한 것이 시초이다. 김천에서는 일제 강점기 김천경찰서에서 상무관을 개설하여 심신 단련과 호신책으로 경찰관들에게 유도를 가...
-
경상북도 김천시 삼락동에 있는 체육 단체. 김천에 근대적인 체육 단체에 관한 기록은 1922년 금릉청년회가 조직되고 산하에 체육부를 두었다는 것이 최초이다. 또한 1926년에 철육회(鐵育會)라는 체육 단체가 시민체육운동회를 열려고 김천경찰서에 대회 개최를 신청 했다가 불허되자 일본인으로 구성된 김천청년회가 1921년부터 매년 개최하고 있는 남조선육상경기대회와의...
-
경상북도 김천시 신음동에 있는 지방 자치 단체 의결 기관. 김천시의회는 김천시의 예산과 결산의 심의 및 의결, 조례 제정, 김천시 행정의 감시와 통제, 김천시 현안에 대한 조정 등의 역할을 수행하기 위해 설립되었다. 김천시의회의 역사는 금릉군 의회와의 통합 전과 통합 후로 나눌 수 있다. 통합 전 김천시는 1952년 4월 25일 초대 의원 선거를 통...
-
해방 이후 경상북도 김천 지역에 조직되었던 민간 자치 담당 기구. 김천인민위원회는 1945년 9월 무렵 조선건국준비위원회 김천지방위원회가 변경되어 발족한 것이며 미군이 들어오기 전까지 김천 지역의 자치를 담당한 민간 기구이다. 1945년 9월 초 조선건국준비위원회 김천지방위원회가 김천인민위원회로 이름을 바꾸었다. 김천인민위원회는 조선건국준비위원회 김천지방위원회 부위원장이...
-
경상북도 김천시 출신의 기업인. 나계찬(羅季燦)[1926~2004]은 1933년 3월부터 1939년 2월까지 아천보통공립학교[현 아천초등학교]를 다녔다. 1946년 1월 1일부터 1961년 12월 31일까지 김천경찰서에서 근무하였고, 1965년 1월 1일부터 1986년 12월 31일까지 대한교통주식회사 대표이사를 역임하였다. 1972년부터 1980년까지 통일...
-
경상북도 김천시에 속하는 법정동. 1914년 일제 강점기 마을에 있는 남산 이름을 따서 일본식으로 남산정(南山町)이라 하였고, 1946년 우리말로 고쳐 남산동이라 하였다. 고려 초기부터 김천역이 있어 마을이 이루어졌다. 조선 말기에는 김산군 김천면에 속했던 지역으로 1914년 행정 구역 개편에 따라 하동·중동·상신기동·성내동·우동의 일부가 병합되어 김천군 김천면 남산정이...
-
경상북도 김천시 남산동에 있는 고개. 노실고개는 경상북도 김천시 남산동 과하천이 있는 지게동에서 평화동으로 넘어가는 언덕길을 말한다. 이 고개는 평화동에서 남산동을 거쳐 황금동 지역을 연결하는 구도심 지역 중심지에 있는 고성산(古城山) 자락의 고갯길이다. 경부선 철도가 개통되고 기차역이 생긴 이후에는 이곳을 중심으로 도시의 중심지가 형성되어 김천시청은 물론 대구지방법원 김천지원과...
-
조선 전기 경상북도 김천 출신 청백리 이약동을 기념하는 상훈. 노촌 이약동 청백리상은 조선 전기 경상북도 김천시 양천동 하로마을 출신 이약동의 청백리 정신을 기리고자 제정하였다. 이약동은 일생을 청렴한 관직 생활로 청백리에 오른 인물이다. 이약동의 정신을 이어받아 김천 지역 공직 사회에 청백리 정신을 확산하고자 청렴한 공직자에게 수여하는 상이다. 이약동(李約東)[1416~1493]...
-
경상북도 김천시 삼락동에 있는 대구지방검찰청의 지청. 대구지방검찰청 김천지청은 경상북도 김천시와 구미시[구 금릉군, 선산군 포함]를 관할 지역으로 하고 김천경찰서와 구미경찰서를 관할 경찰서로 하여 두 지역의 검찰 사무와 관련된 업무를 수행하기 위하여 설립되었다. 1907년 법률 제8호로 재판소 구성법이 제정·공포되면서 김천에 대구지방재판소 소속으로 1909년...
-
해방 이후 철도 파괴에 대한 경비를 위해 경상북도 김천 지역에 설립된 경찰대. 철도경찰대는 1946년 1월 25일 해방 이후 민족 대이동기에 처하여 운수력 부족으로 인한 혼란 사태 방지와 철도 파괴에 대한 경비를 담당하기 위해 조직되었다. 김천(金泉)에서는 같은 해 3월 16일에 철도경찰 김천경찰서가 설치되어 서장과 수사관 3명 등이 부임하여 업무를 개시하였다. 1947년 3월 철...
-
경상북도 김천시 출신의 치과 의사이자 제2대 김천문화원장. 송재성(宋在星)[1913~1999]은 충청북도 영동군 매곡면 강진리 150번지에서 태어났다. 1927년 3월 25일 충청북도의 상촌공립보통학교를 졸업하였다. 1940년 5월 15일 치과 의사 검정시험에 합격한 뒤 1942년 6월 1일 송치과의원을 개업하였다. 1952년 4월 10일부터 1960년 3월...
-
경상북도 김천시 평화동에 있었던 영화관. 김천 지역에서 영화관은 1920년 모암동 43-66번지에 설립된 조선관(朝鮮館)이 처음이며 이어 1930년 김천좌(金泉座), 1933년 김천극장이 차례로 설립되었다. 6·25전쟁으로 김천극장이 파괴된 후에는 1953년에 창설된 김천문화원에서 이동식 영화를 상영해 큰 인기를 누리기도 했으며 1961년에는 아카데미극장이 설...
-
경상북도 김천시에서 연속 촬영으로 기록한 필름상의 화상을 스크린에 투영하여 영상을 보여 주는 행위 및 그 작품. 1. 일제 강점기 김천에서는 전시 및 공연 문화가 활발하지 못했던 관계로 소규모 영화관을 제외하면 공연 시설은 미미한 수준을 벗어나지 못하였다. 일제 시대 초기 김천시 모암동 43-66번지 전 김천시 보건소 자리에 ‘조선관’이라는 극장이 들어섰다....
-
일제 강점기 김천 출신의 독립운동가. 임종업(林鍾業)은 1907년 9월 8일 지금의 경상북도 김천군 김천읍 황금정 7번지[현 경상북도 김천시 황금동 7번지]에서 태어났다. 임업이(林業伊), 임기업(林基業), 임송춘(林松春)이라고 불리기도 했다. 임종업은 김천공립보통학교[현 김천초등학교]를 졸업하고 서울로 올라와 1923년 4월 서울 배재고등보통학교에 입학하였다. 1924...
-
6·25전쟁 중 경상북도 김천시 증산면 일대에서 공산군과 경찰 사이에 벌어진 전투. 6·25전쟁 당시 김천을 점령했던 공산군은 UN군의 인천상륙작전 이후 패퇴하기 시작해 산악 지대로 숨어들었다. 그 가운데 불꽃사단이라 부르는 공산군 3000여 명이 김천시 증산면 수도리에 주둔하면서 면 소재지에 있던 국군 제877경비대와 잦은 전투를 벌였다. 1950년 10월 24일 밤 자정 무렵...
-
역사적으로 김천 지역에서 기록된 체육 활동 중 가장 오래된 것은 1700년 전 어느 여름날 감천에서 벌어진 감문국 군사들의 수영으로 볼 수 있다. 『동사(東史)』에 감문국 병사들이 반란을 일으킨 아포를 징벌하기 위해 감천을 건너다가 물이 너무 깊어 중간에서 헤엄쳐 돌아왔다는 기록이 그것이다. 이와 같이 중세 이전의 체육은 군사들의 신체 단련의 일환으로 전개되었을 것으로 추정되는데,...
-
역사적으로 김천 지역에서 기록된 체육 활동 중 가장 오래된 것은 1700년 전 어느 여름날 감천에서 벌어진 감문국 군사들의 수영으로 볼 수 있다. 『동사(東史)』에 감문국 병사들이 반란을 일으킨 아포를 징벌하기 위해 감천을 건너다가 물이 너무 깊어 중간에서 헤엄쳐 돌아왔다는 기록이 그것이다. 이와 같이 중세 이전의 체육은 군사들의 신체 단련의 일환으로 전개되었을 것으로 추정되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