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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용녀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0305173
한자 朴龍女
이칭/별칭 용의 딸
분야 생활·민속/민속,성씨·인물/근현대 인물
유형 인물/예술인
지역 강원도 강릉시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안광선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출생 시기/일시 1912년 12월 18일 - 박용녀 출생
활동 시기/일시 1976년 6월 30일 - 박용녀 강릉 단오제 무가 예능 보유자 지정
몰년 시기/일시 1989년 9월 3일 - 박용녀 사망
출생지 강원도 강릉시
활동지 강원도 강릉시
성격 무녀
성별
본관 밀양(密陽)
대표 경력 강릉 단오제 무가 예능 보유자 지정

[정의]

강원도 강릉 출신의 국가 무형 문화재 제13호 강릉 단오제 무가 부문 예능 보유자.

[개설]

본관은 밀양(密陽). 강원도 강릉 출신으로 첫 예능 보유자였던 장재인(張在仁) 무녀가 사망한 뒤에 그 자리를 계승한 무당이다. 강릉 단오굿에서 「대관령 서낭 축원가」를 비롯하여 부정굿·서낭굿 등 열두거리를 잘 불렀다. 온화한 성품으로 후배들과 함께 며칠 동안 계속되는 강릉 단오굿을 잘 이끌었다.

[활동 사항]

박용녀(朴龍女)[1912~1989]는 삼대 째 내려온 강릉의 무당 집안 출신 강신무(降神巫)로서 강릉 단오제 굿 부문 예능 보유자였다. 강릉 단오제는 무녀와 악사 등 백여 명이 참여하는 동해안에서 가장 큰 무굿이다. 박용녀는 음력 4월 15일 대관령에서 신목을 모실 때부터 여서낭당에 이어 가설 제단으로 옮겨와 며칠을 계속되는 강릉 단오제 굿판의 주역을 맡아왔다.

굿을 잘 할뿐 아니라 인품이 좋은 무당으로 유명했다. 태백산에서 수도한 할아버지 박동불[또는 박둥굴]은 신력(神力)이 뛰어나 강릉에서 유명한 무당이었고, 박용녀의 어머니도 무녀였으나 젊은 나이에 사망했다. 1912년에 태어난 박용녀는 13세 때 무병을 앓고 18세 때 내림굿을 받은 뒤 할아버지 박동불에게 무업(巫業)을 배웠다. 강릉 단오굿에는 22세부터 참가했다. 박용녀는 강릉 단오제굿의 당주무로서 정기적으로 대관령에 올라가 국사 성황을 모셨다.

강릉 단오굿에서 장편 서사 무가인 「대관령 서낭 축원가」를 비롯한 부정굿·서낭굿·성주굿·장수 군웅굿·세존굿·조상굿·심청굿·손님굿·뒤풀이 등 열두거리를 모두 잘 불렀고 차분한 성격으로 많은 무녀들이 따랐다.

1976년 6월 30일에 국가 무형 문화재 제13호 강릉 단오제 무가 부문 예능 보유자로 지정되었고 강릉 단오굿의 발전과 전승에 힘을 기울여 오다가 1989년에 세상을 떠났다. 그 후에는 신석남(申石南)이 예능 보유자가 되었다. 박용녀의 대를 이어 무업을 하는 직계 자손은 없다. 그러나 유명한 양중(兩中)[남자 무당의 하나]이었던 남동생 박유관과 역시 세습무가 출신의 강신무 사화선(史花仙) 사이에 태어난 조카 박금천[1953]이 강릉 단오제 굿 부문 전수 교육 조교로 뒤를 잇고 있다.

[저술 및 작품]

박용녀강릉 단오굿 무가 채록본이 남아 있다. 자료에 따르면 부정굿 노래, 축원굿 노래, 조상굿 노래, 당고마기 노래, 성주굿 노래, 군웅 장수굿 노래, 심청굿 노래, 칠성굿 노래, 지신굿 노래, 손님굿 노래, 제면굿 노래, 꽃굿 노래, 등굿 노래 등이 있다. 채록본에는 세존굿, 성주굿, 심청굿, 손님굿 등 서사 무가를 비롯한 중요한 무가가 모두 채록되어 있어 큰 무당의 면모를 알 수 있다

[묘소]

강원도 강릉시 연곡면에 묘소를 마련하였으나 오래전에 화장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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