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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0301339
한자 東濊
영어음역 Dongye
분야 역사/전통 시대
유형 지명/고지명
지역 강원도 강릉시
시대 고대/초기 국가 시대/동예
집필자 김대길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격 초기국가
관련문헌 『삼국지』

[정의]

지금의 함경남도와 강원 동북부 지역에 있었던 초기국가.

[변천]

동예 지역은 처음 위만조선에 복속되어 있었는데, 서기전 108년 한(漢)나라의 침략으로 위만조선이 멸망하고, 한나라가 원산·안변 일대를 중심으로 임둔군을 설치하자 동예의 북부 지역이 그 지배하에 들어가게 되었다.

이후 서기전 82년 임둔군이 폐해졌고, 서기전 75년에는 현도군이 고구려족의 저항에 의해 군치(郡治)가 흥경(興京) 노성(老城) 방면으로 옮겨지고, 현도군에 이속되었던 현 중에서 단단대령(單單大嶺)의 동쪽 7현은 낙랑군 동부도위(東部都尉)의 지배 아래 들어갔다. 이후 동예는 다시 고구려에 복속되었는데 그 시기는 대체적으로 2세기 후반으로 보고 있다.

고구려가 3세기에 두 차례에 걸쳐 위(魏)의 공격을 받아 수도가 함락되는 등의 패배를 당해 세력이 위축되자, 동예는 낙랑군의 영향 아래 귀속되었다. 그 뒤 진(晉)나라의 쇠퇴와 함께 고구려가 낙랑군을 병합함에 따라 동예 지역에 다시 고구려의 세력이 작용하게 되었다.

그러나 강원도 지역의 동예는 여전히 고구려의 지배 밖에 있었는데, 광개토왕대에 정벌전이 감행되어 많은 촌락이 고구려 영역으로 편입되었다. 광개토왕비문에는 당시 고구려가 정복했던 일부 동예 지역의 명칭이 기록되어 있다. 그리고 강원도 남부 이남의 동해안의 동예 촌락은 신라에 병합되었다.

[위치비정]

동예는 북으로 함경남도 정평에서 옥저와 경계를 이루었고, 남쪽으로는 평강·회양·강릉 등 강원도 북단 어느 지점이었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동예의 중심지를 강릉으로 보는 견해도 있다. 즉 임둔군의 치소인 동이(東暆)를 강릉 지역으로 보아 동예가 위치한 곳을 강원도 동북부 지역과 함경남도 지역으로 비정하는 것이다.

이에 따르면 『삼국사기(三國史記)』에 보이는 말갈 세력과 동예를 같은 세력으로 파악할 수 있다. 따라서 동예는 한때 삼척 지역의 실직(悉直)을 경계로 신라와 대치하고 있었으나 4세기 후반 경에는 니하(泥河)를 경계로 대치한 것으로 파악된다.

4세기 말 경 강릉 지역의 동예 세력은 신라에 편입되는 것으로 보이며, 불내현을 중심으로 한 동예 세력은 삼국 통일기인 7세기 말까지 때로는 낙랑이나 고구려에 부용(附庸)되기도 하였으나 어느 정도 독자성을 유지한 채 존재한 것으로 파악된다.

[관련기록]

동예에 관한 가장 오래된 기록은 3세기 후반 진나라 진수가 편찬한 『삼국지(三國志)』 위지 「동이전」이다. 이에 의하면 예는 남쪽으로 진한, 북쪽으로 고구려·옥저와 접하고, 동쪽은 큰 바다에 닿았으며 조선의 동쪽이 모두 예의 땅이라고 하였다. 이에 따라 『삼국지』에 기록된 예를 동예로 보기도 한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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