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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릉 대학에서 연구 활동을 한 생물학자이며 교육자. 강영선은 해방 이후 과학계를 이끌어온 생물학자이며 교육자로 서울대학교 교수, 강릉대학 학장, 학술원 회원 등을 역임했다. 동물학, 유전학, 세포학 발전에 기여하였다. 제2공립보통학교[현 경복고등학교] 졸업[1937], 수원고등농립학교 수의축산학과 졸업[1940], 일본 북해도제국대학 이학부 동물학과 졸업[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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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주군왕(溟州郡王) 김주원(金周元)의 가신(家臣)·문객(門客). 785년 선덕왕이 죽은 후에 김주원은 김경신(金敬信)[원성왕]과 왕위계승을 위한 다툼을 벌였는데, 이 과정에서 김주원이 패배하고 김경신이 원성왕으로 즉위하였다. 이때 김주원의 부하였던 곽길은 최대내(崔大奈)·함신(咸信)·박영(朴榮) 등과 함께 왕궁으로 들어가 거사(擧事)를 도모하려 하였으나 김주원이 허락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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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의 충노. 심원준(沈元濬)의 여자 종으로 지극정성으로 주인을 섬겼다. 심원준의 처인 김씨가 사경을 헤매자 손가락을 잘라 피를 입에 넣어 소생시켰다. 향리 사람들은 주인을 극진히 섬긴 그 충성에 감복하여 ‘충노 금복 비(忠奴 金福 碑)’라는 비석을 세우고 그 마음을 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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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의 충노. 상전인 최택(崔澤)이 세 살 때부터 정성껏 길러 성인으로 성장하게 하였고, 여러 대의 제사를 자기가 보살펴 지냈다. 가묘(家廟)가 허물어져 비바람을 가릴 수 없게 되자 따로 사당을 짓고 기와를 올려 정교하게 꾸미고 신주를 봉안하였으며, 향 피우는 것을 그치지 않았다. 상전을 잘 모신 충성스러운 행동으로 어사(御使) 오명준(吳命俊)이 장계(狀啓)를 올려 정려를 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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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회의원을 역임한 대한민국 행정관리. 서울대학교 법대출신으로 사법고시에 합격하고 미국에서 유학하고 돌아와 중요 행정직을 두루 역임하였으며 국회의원까지 지낸 행정관리이다. 1947년 서울대학교 법대를 졸업하고 1950년 사법고시에 합격하였다. 1985년 미국 워싱턴대학과 조지타운대학에서 수학하고 귀국하여 중요 행정 요직을 두루 거쳤으며, 특히 행정쇄신을 위해 진력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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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강릉시 출신으로 강릉교육구 장학사를 역임한 교육자. 강원도 강릉시 출신으로 1926년 교사를 시작하였으며, 1940년 교장에 임명되었다. 이후 강릉교육구 장학사, 삼척교육구 교육장을 지냈으며, 1970년 성산초등학교에서 교장으로 정년퇴임하였다. 초등학교 교사, 강릉교육구 장학사, 삼척교육구 교육장, 성산초등학교 교장을 역임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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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릉의 초당두부 제조 및 보급에 앞장선 인물. 고(故) 김상흔은 1979년 강릉초당두부점을 개업하여 부인인 박응순과 함께 약 20여 년 간 수공업 방식으로 두부를 제조했으며 직접 만든 두부로 음식을 만들어 판매하는 음식점을 운영하면서 강릉에 초당두부의 보급 원조가 되었다. 초기에는 2평 남짓한 식당에서 소규모로 시작하였으며 점차 소문이 나고 자동차 보급이 확대되면서 식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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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강릉 지역의 장수 인물. 1764(영조 40년) 12월 그믐날 오시(午時)에 99세의 나이로 죽었는데 다섯 시간이 모자라는 100세를 살아 자손들이 100세 할머니라고 불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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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강릉군수를 지낸 일본인 행정가. 1926년과 1928년에도 강릉에는 두 명의 일본인 군수가 있었다. 그러나 1931년에 강릉군수를 역임한 다키자와 마코토[瀧澤誠]의 행적은 남달랐는데 성현의 발자취를 보존해야 한다는 생각으로 오죽헌 보호활동과 율곡, 신사임당 선양사업을 추진하였다. 특히 강릉고적보존회를 결성하여 향교 및 지역문화를 보호하였고, 향토지 발간활동에도 노력하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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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강릉 출신의 정치인. 일본대학 법학과를 졸업하였다. 광업평론사 사장을 지냈으며, 경제일보사와 현대일보사의 주간, 대한농민총연맹(大韓農民總聯盟) 중앙총본부부위원(中央總本部副委員)·대한계몽협회부회장(大韓啓蒙協會副會長)을 역임하였다. 한청강릉군 단장(韓靑江陵郡 團長), 3대 민의원을 지내면서 1960년대 자유당 소속 국회의원으로 활동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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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라 하대의 재상인 김주원(金周元)의 가신(家臣). 785년 선덕왕이 죽은 후에 김주원은 김경신(金敬信)과 왕위계승을 위한 다툼을 벌였는데, 이 과정에서 김주원이 패배하고 김경신이 원성왕으로 즉위하였다. 이때 박영은 최대나(崔大奈)·함신(咸信)·곽길(郭吉) 등과 함께 왕궁으로 들어가 거사(擧事)를 도모하려 하였으나 김주원이 허락하지 않아 실패하였다. 김주원이 명주(溟州)...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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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강릉시 출신의 교육자. 해방 후 초등학교 교사로 강원도의 초등교육에 이바지하였으며 1982년 강원도 고성군 교육장을 역임하였다. 해방 후 강원 교육계에 투신하였으며 강원 교육 발전에 이바지한 인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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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의 정치인. 강원도 강릉시 사천면 출신으로 자유당 정권 시절 국회의원과 그에 따른 요직을 두루 거친 정치인이다. 경성제국대학 법학부를 졸업하였다. 봉화(奉化)·예천(醴泉) 군수와 경상북도 상공국장(商工局長)을 역임했다. 이후 정계에 진출하여 3·4대 국회의원에 당선되었고 대한임산개발주식회사 사장을 지냈다. 1954년 5월 20일 치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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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릉 지역에서 활동한 신학자이자 교육자. 원적은 대구시 남구 봉덕동 862번지이나 강릉 소재 관동대학교에 근무하며 본적을 강릉시 내곡동 산 72-1번지로 전적하였다. 사리원농업학교[전문대학]와 장로회총회신학대학을 졸업한 후 경북대학교 문리대학 철학과를 졸업하였다. 경북대학교 철학과 강사, 계명대학교 철학과 전임강사, 동국대학교 불교대학 철학과 강사, 장로회총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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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가집의 음식을 보급 및 전수하여 강릉의 음식 문화 발전에 기여한 인물. 1920년 성삼문(成三問)을 배출한 창녕 성씨 집안의 셋째 딸로 태어나 1940년 전주 이씨 효령 대군의 후손이며 선교장 종손인 이기재(李起載)와 결혼하여 3남 2녀를 두었다. 성기희는 전주 이씨 완풍종가인 강릉 선교장의 14대 종부로 강릉의 음식 문화 발전에 기여하였다. 경기 여자 고등학교를 졸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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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 무형 문화재 제13호 강릉 단오제 굿 부문 예능 보유자. 삼척에서 출생하였지만 강릉으로 이사와 살면서 강릉 단오굿 발전에 많은 기여를 하였다. 세습무로 일가를 이루어 현재 남동생 신동해(申東海)[악사], 아들 김명익[악사]·김명광[악사]·김명대[악사], 며느리 빈순애(賓順愛)[세습무], 외손주 박현수, 외조카 김장길 등이 대를 이어 단오굿을 계승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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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의 정치가. 1935년에 평양의전(平壤醫專)을 졸업하고 1956년에 신흥대학 정경학부 정치외교학과를 졸업하였다. 1948년 제 1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대동청년단 소속으로 출마하여 전체 득표율 42.7%로 강릉 갑구에서 제헌국회의원으로 당선되었다. 1962년 한국유네스코 의전협회장, 1990년 대한민국 헌정회 운영위원, 1990년 민족문화통일회 이사, 1993년 제헌동지회장,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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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의 충노(忠奴). 박영수(朴英秀)의 종이었으며 타고난 성품이 충직하고 공손하였다. 상전인 박영수의 상사(喪事) 때에는 6년을 하루같이 죽만 먹고 지냈다. 유성에 대한 기사는 『증수임영지(增修臨瀛誌)』인물조에 기재되어 있다. 부사가 쌀과 미역으로 포상하고 요역을 면제해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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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의 충노(忠奴). 최빈현(崔斌鉉)의 종으로 상전이 대를 이을 자손이 없이 죽자 3년 동안 상식(上食)을 하루도 거르지 않고 올렸다. 또 상전의 4대에 걸친 제사를 받들고 산소의 성묘를 죽을 때까지 게을리 하지 않았다. 을득에 대한 기사는 『증수임영지(增修臨瀛誌)』인물조에 기재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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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릉 갈골 과줄의 전통 제조 기술을 전수하고 보급한 사람. 한국식 전통 과자인 과줄은 예로부터 궁중 음식에 사용하는 고급스런 과자로서 일반 서민들은 명절이나 잔칫날이 아니고서는 맛볼 수 없는 귀한 음식이었다. 달짝지근한 조청과 포동포동한 밥풀이 혀 끝에서 녹아드는 맛으로 간식거리가 별로 없었던 옛날에는 과자 중에서도 상품(上品) 대접을 받았다. 또한 부스스 밥풀이 불어나듯 집안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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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강릉시 출신의 의사이자 초대 참의원. 동경대 문리대 법학과를 수료하였다. 1960년 참의원 선거에서 민주당 소속으로 출마하여 초대 참의원에 당선되었으며, 강원도의사협회장 등을 역임하였다. 명주의원을 개원하여 의료사업을 펼쳤으며, 동포문학회 및 다도회를 만들어 지방문학의 발달에 이바지했다. 『한국인구문제와 대책』과 수필집 『경포호반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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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강릉 지역의 장수 인물. 사마시에 올랐으며, 성품(性稟)이 온화하고 기품이 있어 화려함을 따르지 않았다. 매화와 대나무를 즐기며 거문고와 책으로 여가를 보냈다. 94세에 가의대부(嘉義大夫)에 올랐으며, 3대에 걸쳐 추증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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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강릉시 출신의 법학자. 일본 와세다대학[早稻田大學] 법학부(法學部)를 졸업하였다. 보성전문대학의 교수를 거쳐 서울대 교수와 서울대 법과대학장을 지냈으며, 고시위원장을 역임하였다. 『민법총론』[1949]과 『물권법』[1950]을 저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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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라 하대 명주군왕 김주원(金周元)의 가신(家臣). 785년 선덕왕이 죽은 후에 김주원은 김경신(金敬信)[원성왕]과 왕위계승을 위한 다툼을 벌였는데, 이 과정에서 김주원이 패배하고 김경신이 원성왕으로 즉위하였다. 이때 최대나(崔大奈)는 곽길(郭吉)·함신(咸信)·박영(朴榮) 등과 함께 왕궁으로 들어가 거사(擧事)를 도모하였으나 김주원이 허락하지 않아 실패하였다. 김주원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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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강릉의 향리(鄕吏). 본관은 강릉. 향리로서 90세를 살아 수직(壽職)으로 가선대부(嘉善大夫)를 받았다. 최성복에 대한 기사는 『증수임영지(增修 臨瀛誌)』인물조에 기재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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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의 강릉부 향리. 강릉부(江陵府) 향리(鄕吏)로 있으면서 1628년(인조 6) 승려 담화(曇華)가 반역을 꾀하다가 도망을 가자 감영(監營)의 아전으로 들어가 담화를 체포하는 데 자원하였다. 변장을 하고 황해도에 이르렀을 때 한 중을 만났는데 바로 담화임을 알아차리고 춘천까지 유인하여 체포하였다. 참령 사훈권(參寧 社勳券)을 얻었으며, 가선대부(嘉善大夫)에 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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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주원(金周元)의 가신(家臣)·문객(門客). 785년 선덕왕이 죽은 후에 김주원은 김경신(金敬信)과 왕위계승을 위한 다툼을 벌였는데, 이 과정에서 김주원이 패배하고 김경신이 원성왕으로 즉위하였다. 이때 함신은 최대나(崔大奈)·곽길(郭吉)·박영(朴榮) 등과 함께 왕궁으로 들어가 거사(擧事)를 도모하려 하였으나 김주원이 허락하지 않아 실패하였다. 김주원이 명주(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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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7년에 강원도 강릉시 출신의 미생물학자이자 환경학자. 한국 미생물학의 기반을 마련하고 환경과학의 선구자로 활약한 강릉 출신의 과학자이다. 1927년 강원도 강릉시에서 태어났다. 1946년에 강릉농업고등학교를 졸업하고 1950년에 서울대학교 문리과대학 생물학과를 졸업하였으며, 1952년에 동대학원을 졸업하였다. 그 후 1955~1958년에 걸쳐 미국 아이오와 주립대학교 및 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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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말·조선 초기의 강릉 기생. 홍장은 경포호수를 배경으로 한 강원도 안찰사 박신(朴信)[1362~1444]과의 사랑 이야기의 주인공이다. 시조 작가로서 시조 1수가 전한다. 강원도 안찰사로 온 박신은 강릉의 기생 홍장과 정이 두터웠는데, 임기가 차서 돌아갔다가 다시 와서 홍장을 찾으니 부사 조운흘(趙云仡)이 거짓으로 죽었다고 하여 매우 슬퍼하였다. 부사 조운흘은 경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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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 강릉 지역의 장수 인물. 1510년(중종 5) 74세로 진사시에 합격하고 고향으로 돌아올 때 200여 명의 동갑들이 잔치를 베풀며 시를 지어 주었다. 이 시를 그의 손자 황계우(黃季友)가 가보로 간직하고 있으며, 이장(李璋)의 서문이 함께 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