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강릉의 대관령과 경포대를 배경으로 강릉부사가 등장하는 판소리 작품. 1992년 전주시 이영규 소장본 「매화가라(梅花歌라)」가 발견됨으로써 그 내용이 밝혀졌다. 타락한 인물 골생원에 대한 풍자와 희화화가 주된 내용이다. 정노식의 조선창극사에 판소리 열두마당의 하나로도 언급되었는데 송만재의 「관우희」, 신재효의 「오섬가」에도 그 내용의 전후가 들어있다. 「매화가라...
-
조선 중기 난설헌 허초희가 1570년에 지은 「광한전 백옥루 상량문」. 허난설헌은 여덟 살의 어린 나이에 지었다고 믿기 힘든 이 상량문을 짓고 여 신동이라 칭송되었다. 이것은 목판본 『난설헌집』에 유일하게 전하는 산문으로 그의 아우 허균이 1605년 충천각에서 석봉 한호에게 부탁하여 그의 글씨로 써서 1차로 간행되었다. 이 목판본은 1606년 우리나라에 왔던 중국 사신...
-
금란반월회 모임의 모습을 담은 그림. 금란반월회는 1466년(세조 12년) 강릉에서 15명의 지역 문인들이 최응현을 스승으로 모시고 조직되었으며 춘추 가절에 한 차례씩 계회를 열었다. 「금란반월회 계회도」는 당시 계회의 모습을 담아내려는 데서 비롯되었다. 주변에 숲이 우거진 기와지붕의 누정이 화폭의 중심을 이루었고, 누정에는 세 개의 반상을 중심으로...
-
1477년(성종 8) 강릉대도호부에서 상원사에 발급한 문서. 입안(立案)은 개인의 청원(請願)에 따라 특정 사안, 즉 토지·노비 등의 매매(賣買)·양도(讓渡)·소송(訴訟)의 판결, 특전(特典)의 인정 등을 관청에서 확인하여 그 사실을 입증하기 위해 발급해 준 공증문서(公證文書)이다. 예종의 원찰(願刹)인 낙산사와 세조의 원찰인 상원사를 지계승인(持戒僧人)으로 하여금 입대...
-
1481년(성종 12) 8월 24일 내수사에서 상원사에 발급한 문서. 입안(立案)은 개인의 청원(請願)에 따라 특정 사안, 즉 토지·노비 등의 매매(賣買)·양도(讓渡)·소송(訴訟)의 판결, 특전(特典)의 인정 등을 관청에서 확인하여 그 사실을 입증하기 위해 발급해 준 공증문서(公證文書)이다. 크기는 79×120.5㎝이고, 사방 7.5㎝의 '내수사인(內需司印)' 9개가 찍혀 있다....
-
1469년(예종 1) 강릉대도호부에서 상원사에 발급한 문서(文書). 입안(立案)은 개인의 청원(請願)에 따라 특정 사안, 즉 토지·노비 등의 매매(賣買)·양도(讓渡)·소송(訴訟)의 판결, 특전(特典)의 인정 등을 관청에서 확인하여 그 사실을 입증하기 위해 발급해 준 공증문서(公證文書)이다. 세조대 원찰로 왕실과 깊은 인연을 맺게 된 상원사는 각종 경제적 특권을 누리게 되...
-
1783년 강원도 영동과 영서의 사민에게 내린 정조의 교지. 1783년(정조 7) 10월 23일에 정조가 원춘도(原春道)[강원도의 조선 정조 때 이름. 1791년에 다시 강원도로 환원됨] 영동과 영서의 대소 사민(大小士民)[양반과 평민]에게 내린 윤음으로 극심한 가뭄으로 고통받는 도민들에게 각종 세금을 경감해 주는 내용을 담고 있다....
-
1600년(선조 33) 강릉 지역 사족들이 운영한 자치 규약. 지역 사회에서 사족들의 주도적 입지를 확보하려는 목적을 띠고 있다. 중국의 『주자증손여씨향약(朱子增損呂氏鄕約)』을 수용하여 그 4대 강목을 표방하고 있으면서도 별도로 ‘부록’과 별조(別條)를 두어 향촌사회의 질서를 규정하고 있다. 그 내용은 대체로 『해주일향약속』과 일치하고 있다. ‘부록’에서는 시벌(施罰)의...
-
조선 중기에 강릉 연곡면 지역에서 시행된 향약문. 1600년에 편찬되었다. 겉표지는 1862년(철종 13)에 다시 덧붙였으며, 속표지에 시행된 시기와 장소가 기재되어 있다. 필사본으로 연곡면 지역의 사족들이 주도적 입지를 확보하려는 목적을 띠고 편찬, 활용하였던 것으로 파악된다. 중국의 『주자증손여씨향약(朱子增損呂氏鄕約)』을 수용하여 그 4대 강목을 표방하고 있으면서도...
-
신사임당(申師任堂)[1504~1551]의 작품으로 전해지고 있는 조선 중기 회화작품. 「월하고주도(月下孤舟圖)」에는 나지막한 산들이 옆으로 길게 뻗어 있으며, 수면을 따라 전개되는 공간은 폐쇄됨이 없이 끝없이 펼쳐져 있다. 또한 토파(土坡)나 산의 묘사에는 당시 크게 유행되지 않고 있던 절파계(浙派系)의 필묵법이 구사되어 있다. 그 구도와 인물 중심의 표현을...
-
조선 후기 강릉 부사 정경세가 지방의 풍속 교정을 위해 제시한 절목. 1614년(광해군 6)에 수령 정경세가 생활풍속을 교정하기 위해 제시하였던 명분과 그에 따른 절목이다. 강릉 부사 정경세가 강릉 지역의 생활풍속을 목격하고 성리학적 질서로 교정하기 위해 절목을 마련하여 제시하였다. 동성동본의 혼인을 금지하고, 어머니의 장례를 소홀히 하지 말고, 상호부조를 간소하게 할 것을 권유하...
-
조선 중기의 문인 하곡(荷谷) 허봉(許篈)[1551~1588]이 36세 때에 쓴 편지. 허봉은 강릉 출신으로 초당 허엽(許曄)의 둘째아들이다. 1568년(선조 1)에 생원, 1572년 친시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여 이듬해 사가독서를 했다. 33세에 성절사(聖節使)로 명나라에 다녀온 기행문 「하곡조천기(荷谷朝天記)」를 1574년에 썼으며, 이듬해 이조좌랑, 1577년 교리,...
-
조선시대 강릉김씨의 족적 유대를 강화하기 위해 계보를 정리하여 간행한 족보. 조선시대 족보의 유형은 크게 족도(族圖)·대동보(大同譜)·파보(派譜)의 세 종류로 나누어진다. 족도는 족보의 초기 형태로 일반 족보처럼 정간(井間)을 지어 기록하지 않고 단지 계보만을 알 수 있도록 붉은 선으로 연결시켜 가계를 기록한 것이다. 대동보가 전국적으로 가문의 위세를 과시하기 위한 것이었다면 파보...
-
강릉부에 부임하였던 역대 관원의 성명, 직명, 생년월일, 본적 따위를 기록한 관원 명부. 관원의 진퇴지적(進退之蹟)을 기록하여 권과(權課)의 규범으로 삼고자 관아에서 간행한 것이다. 필사본이며 8행에 각행 20자이다. 크기는 가로 29.7㎝, 세로 41.7㎝이다. 4침(針) 선장(線裝)이다. 신라 이사부(異斯夫)부터 역대 강릉부에 부임한 관원의 부임시기와 퇴임...
-
조선 전기~현대까지 약 450여 년간 강릉 해운정을 다녀간 인사들의 방명록. 강릉 해운정(海雲亭)은 1530년(중종 25) 어촌 심언광(沈彦光)[1487~1540]이 강원도 감찰사로 있을 때 경치 좋은 곳에 지어 놓은 상류 주택의 별장[별업]이다. 『강릉해운정역방록(江陵海雲亭歷訪錄)』에는 강릉 해운정이 창건된 1530년 이후인 1538년부터 1989년까지 약 450여 년간 이곳을...
-
1793년 정조의 명에 의해 강원도 유생에게 실시한 과거의 모든 과정과 급제한 과문(科文)을 수록한 책. 1793년(정조 17) 정조는 강원도 관찰사 심진현(沈晉賢)에게 명령을 내려 강원도 내 유생 중에서 시문(詩文)과 경학(經學) 에 능한 사람을 조사해서, 공령생(功令生)과 경공생(經工生)으로 나누어 각각 문예(文藝)와 경전(經典)을 시취(試取)[시험을 보아 인재를 뽑음]하여,...
-
조선 중기 문신인 허균(許筠)이 1605년에 엮은 시선집. 허균은 정도전(鄭道傳)에서 권필(權韠)에 이르기까지 35가(家) 각체 시 877수를 수록하였다. 특히 책머리에 「허문세고(許門世稿)」라 하여 양천허씨 일문에서 허한, 허침, 허엽, 허성, 허봉 등 5인과 규수 1인 허난설헌 등 모두 6인의 시를 수록하였는데, 공정성을 위해 시우인 권필로 하여금 가려서 뽑게 했다....
-
조선 중기의 여류시인 허난설헌[1563~1589]의 시를 동생 허균(許筠)이 편찬한 시집. 『난설헌시집』은 ‘난설헌시 계제(季弟) 허균휘수(許筠彙粹)’라고 한 것으로 미루어 동생 허균이 모아서 낸 것임을 알 수 있다. 목판본 표지 다음에 허균의 글, 소인(小引), 제사(題辭)의 순서로 되어 있고, 끝에 ‘만력 기원 36년(1608) 맹하 상완’이라고 한 것으로 간행된 시...
-
조선 전기의 문인 김시습[1434~1493]의 시문집. 김시습(金時習)은 자를 열경(悅卿)이라 했고, 관향은 강릉이며, 호를 청한자(淸寒子)·동봉(東峰)·벽산청은(碧山淸隱)·췌세옹(贅世翁)·매월당(梅月堂)이라 했고 한때 불교에 귀의한 바 있어 법명을 설잠(雪岑)이라 했다. 어려서 세종대왕 앞에서 시를 지어 놀라게 했고 상으로 받은 비단을 이어 끌고 가지고 나와 그 지혜가...
-
삼가(三可) 박수량(朴遂良)의 행적을 기록한 문집. 박수량은 1475년(성종 7) 출생하여 1504년 사마시에 입격하고 연산군 때 단상법(短喪法)에 반대하며 3년상을 치른 것으로 인해 살아서 정려를 받았던 효자이다. 현량과(賢良科)에 천거되어 용궁현감(龍宮縣監)이 되었다가 기묘사화(己卯士禍)로 낙향하여 향풍 진작에 기여하다가 1546년(명종 2) 사망하였다....
-
석북(石北) 신광수(申光洙)와 난설헌(蘭雪軒) 허초희(許楚姬)의 시를 모아서 펴낸 한시집. 신광수(申光洙)[1712~1775]는 조선 영조 때의 문인으로, 악부체의 시로 유명한 「관서악부(關西樂府)」를 남겼다. 신광수의 시는 사실적인 필치로 당시 사회의 모습을 보여주는데 농촌의 어려움, 관리의 부정과 횡포, 하층민의 고난 등을 소재로 하였다. 허난설...
-
선교장 이씨 가문에서 농지를 경영할 때 작성한 일종의 경영문기. 선교장의 이씨 가문이 소유한 땅은 영동지방은 물론 강원 영서 일대에 걸쳐 있어 ‘만석꾼’이란 칭호를 듣기에 충분하였다. 추수기에는 강릉 일대를 중심으로 하여 북쪽의 주문진 일대, 남쪽의 묵호·삼척, 영서의 대화(大和)와 하진부에서의 농지경영이 기록되어 있다. 그 외에도 충청북도 충주 음죽(陰竹)...
-
성소 허균(許筠)의 시문집. 허균의 호인 성소가 지은 부부고라는 뜻으로 ‘부부’는 장독 뚜껑을 덮는다는 뜻으로 자신의 책을 겸손하게 표현한 말이다. 국립도서관본, 규장각본, 홍문관본, 연세대학본, 고 박종화본 등 필사본이 있다. 허균[1569~1618]의 자는 단보(端甫), 호는 교산(蛟山) 혹은 성소(惺所)라 했다. 초당(草堂) 허엽(許曄)의 세...
-
조선 중기의 유학자 이이(李珥)가 쓴 제왕학(帝王學)의 지침서. 강릉 오죽헌에서 신사임당[1504~1551]의 아들로 태어나 그곳에서 성장한 율곡 이이[1536~1584]의 저작인 『격몽요결(擊蒙要訣)』은 조선시대에 유학자들 사이에서 많이 읽힌 책 중의 하나이다. 서문에 의하면 사서와 육경의 내용이 너무 방대하기 때문에 그 중 가장 중요한 부분을 뽑아서 한데 엮어 도를...
-
조선 후기~근대까지 270년 동안 강릉 오죽헌을 다녀간 인사들의 방명록. 1662년 권상하(權尙夏)를 시작으로 1932년 이항구(李恒九)까지 270년 동안 오죽헌을 다녀간 인사 1,149명의 이름이 기록되어 있다. 이 중 7명의 이름이 후대에 삭제되어 확인되는 인물은 모두 1,142명이다....
-
1603년 강릉 재지사족이 약국을 운영하기 위한 약국계의 조직과 계원의 인적 상황을 적어놓은 책. 『약계입의』, 『약계선안』, 『약국계전안』 등 3권의 책이 전해진다. 약국계는 활인명(活人命)을 통해 지역사회의 안정을 도모하려는 데 목적을 두고 1603년(선조 36)에 결성되었다. 강릉 지역의 사족 약 90여 명이 주체가 되고 관부의 협조를 얻어 창계(創契)하였고, 이들...
-
강릉최대선 가에 소장되어 있는 심능규의 문집. 심능규(沈能圭)[1790~?]의 본관은 삼척. 자는 사룡(士龍), 호는 월포(月圃). 70세인 1859년(철종 10) 증광시 진사시에 합격하였다....
-
조선 중기의 성리학자 율곡 이이(李珥)의 문집을 집대성한 책. 1611년(광해군 3) 시집(詩集) 1권, 문집 9권 등 7책을 해주에서 처음 목판본으로 간행하였다. 1682년(숙종 8)에 속집(續集) 4권, 외집(外集) 4권, 별집(別集) 2권을 추가로 편찬하여 목판본으로 간행하였다. 1749년(영조 25)에 『율곡전서(栗谷全書)』로 이름을 붙여 총 38권을 활자본으로 간행하였다....
-
1777년(정조 1)부터 1782년(정조 6)까지 강릉에서 발생한 하남재의 서원화 추진 과정에서 제기되었던 문건을 필사한 고서. 2책이며, 필사본으로 필사자와 필사 시기는 미상이다. 삼척심씨들은 1778년(정조 2) 충주 운곡서원(雲谷書院)에서 주자 영정을 모셔와 하남영당에 봉안하고 하남영당의 서원화를 적극 추진하였다. 그러나 1777년 강릉 지방 유생들은 하남재는 어촌...
-
오죽헌 권처균의 후손이자 조선 후기 영조 때의 문신인 권계학의 시문집. 권계학(權啓學)[1716~1788]의 본관은 안동, 자는 성집(聖集), 호는 죽암(竹巖). 오죽헌 권처균(權處均)의 후손이다. 1747년(영조 23) 식년 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여 사헌부 감찰, 예조 정랑, 병조 좌랑 등을 지냈다....
-
1764년 영조가 참석한 대정이 끝난 후 지은 갱진시를 모은 첩(帖). 갱진시(賡進詩)는 임금이 한 편의 시를 짓고 난 뒤 신하들이 차운(次韻), 화운(和韻)하여 지은 시를 말한다. 『친정일어제갱진첩(親政日御製賡進帖)』은 1764년(영조 40) 12월 25일에 영조가 참석한 대정(大政)이 끝난 후 영조의 어제시를 비롯하여 이조 판서와 병조 판서 등 21명의 신하들이 지은 갱진시를...
-
1827년 간행된 조선 전기 강릉에서 교수를 지낸 문신 함헌의 시문집. 함헌(咸軒)[1508~?]의 본관은 강릉(江陵). 자는 가중(可中), 호는 칠봉(七峯). 조선 건국에 공을 세운 정평공(貞平公) 함부림(咸傅霖)의 5세손이다. 1531년(중종 26) 24세의 나이로 사마시에 합격한 후 성균관에 입학하여 이황(李滉)[1501~1570]과 같이 공부하였다. 1566년(명종 21)에...
-
하곡(霞谷) 정제두(鄭齊斗)[1649-1736]의 문집. 정식 명칭은 『하곡선생문집』이다. 정제두는 자(字)는 사앙(士仰)이며 영일정씨로서 포은 정몽주의 11세손이며, 조선조 현종 때 우의정을 지냈던 정유성(鄭維城)의 손자이며 숙종 때의 뛰어난 유학자로서 양명학을 집대성했다. 그러나 주자학에 경도된 관학의 통제로 인하여 조선조에서 하곡의 사상과 저술은 크게 주목받지 못하...
-
조선 중기의 문신 허균(許筠)이 중국의 여러 책에서 은둔과 한가로움에 관한 내용을 모아서 펴낸 책. 허균이 조선 사신으로 온 명나라 주지번(朱之蕃)에게 누이의 시집 『난설헌집(蘭雪軒集)』을 선물하자 그에 대한 답례로 『세설산보(世說刪補)』, 『옥호빙(玉壺氷)』, 『와유록(臥遊錄)』 등의 중국 서적을 받았다. 『한정록』은 허균이 이 책들의 내용을 은둔(隱遁), 한적(閑寂)...
-
강릉 선교장에 소장되어 있는, 송천이란 호를 가진 인물이 1926년 필사한 거문고 악보. 『현금보 초(玄琴譜抄)』는 강릉 선교장 소장 악보로 필사로 제작한 줄풍류 음악 악보책. 이왕직 아악부(李王職雅樂部)[이왕직은 일제 강점기 조선 왕실의 일을 맡아보던 관청을 말함] 글씨가 인쇄된 일반 용지를 사용하였다. '초(抄)'라는 제목에서 알 수 있듯이 어떤 악보를 보고 베낀 필사본이지만...
-
강원도 강릉시 사천면 방동리에 있는 신석기시대의 유물산포지. 경포해수욕장에서 해안도로를 따라 약 3.5㎞ 북진하면 사천해수욕장이 나타난다. 사천해수욕장 입구 도로 건너편의 도로와 접한 해발 4~5m 정도의 사구 지역에 위치하고 있다. 유적을 중심으로 주변에는 방풍림들이 있고, 방풍림을 지나면 북쪽과 서쪽에는 넓은 논이 위치하고 있다. 유적의 북쪽 약 500m...
-
강원도 강릉시 사천면 방동하리 가둔지에 있는 청동기시대 유물산포지. 가둔지 청동기시대 유물산포지는 사천천 하류의 사구지대에 위치한 가둔지마을 서쪽 해발 30m의 구릉(丘陵) 능선 지역이다. 구릉 정상부 민묘 주변에서 민무늬 토기 조각들이 지표채집되었다. 지표에서 약간의 민무늬 토기 조각이 채집되었다. 경포에서 사천 방향 해안도로 사이에 위치한 가둔지...
-
강원도 강릉시 보현사에 소장되어 있는 고려 시대의 목조보살좌상과 복장유물. 고려 시대 제작된 불상으로 제작 시기는 복장 다라니 조성 연대인 1292년(충렬왕 18) 보다 앞선 11~12세기로 추정된다. 2015년 3월 16일 강원도 유형 문화재 제173호로 지정되었다. 강릉 보현사 목조보살좌상은 목재로 만들었으며, 그 위에 금칠을 하여 화려하다. 세장형의 신체...
-
강릉 12향현, 조선시대 강릉 지역을 중심으로 충·효·예의 성리학적 이념을 실천했던 강릉의 대표적인 열두 명의 학자를 일컫는다. 이들은 향현사(鄕賢祠)에 배향되었다. -강릉을 빛낸 열두 명의 선비들 「한국을 빛낸 100명의 위인들」이라는 노래를 들을 때마다, 그 100분의 선조들을 생각한다. 그 인물들이 노래에 나오는 대로의 훌륭한 생애를 살아갈...
-
강릉 지역의 사족들과 강원도 관찰사, 강릉부사들의 친목 모임인 임영족회(臨瀛族會) 구성원의 명부. 임영족회가 열리고 그 상황을 기록하려는 의도에서 편찬되었으며, 후대에 이르면서 각 문중의 문헌록에 등재되어 전승되고 있다. 임영족회는 다섯 차례에 걸쳐 열렸다. 그 때마다 명부가 작성되었으며, 여기에 서문과 발문을 붙였다. 서문과 발문으로 족회의 명분과...
-
강원도 강릉시 용강동에 있는 고려 시대에 지은 강릉 객사의 정문. 객사란 고려와 조선 시대 때 각 고을에 두었던 지방 관아의 하나로 왕을 상징하는 나무패를 모셔두고 초하루와 보름에 궁궐을 향해 절을 하는 망궐례를 행하였으며, 왕이 파견한 중앙관리나 사신들이 묵기도 하였다. 이 객사는 고려 태조 19년(936)에 총 83칸의 건물을 짓고 임영관이라 하였는데, 문루에 걸려...
-
강원도 강릉시 초당동에 있는 신석기시대의 주거유적. 강릉시 허균·허난설헌 자료관 건립 예정지역은 행정구역상 강원도 강릉시 초당동 84-2번지 외 15필지 일대로 초당동 마을 북서쪽 끝 부분에 위치하며 해발 3~4m 정도의 사구지대로 형성되어 있다. 동 지역은 강릉 경포호 동쪽에서 바다로 흘러가는 하구에 위치한 경포다리에서 월송로를 따라 시내방향으로 300m 정...
-
강원도 강릉시 강동면 하시동리에 있는 신석기시대의 주거지 유적. 강릉에서 남쪽으로 7번국도를 따라 내려가다 강릉 시가지를 빠져나가 섬석교를 지나면 좌우로 넓게 평야지대가 펼쳐진다. 이 평야지대의 남쪽 끝 부분에서 좌측에 마을로 들어가는 소로가 나오고, 이 길을 따라 가다보면 공군부대 후문이 나온다. 강릉 하시동리 유적은 이 후문 안에 위치한다. 서쪽으로는 월호...
-
강원도 강릉시 강동면 정동진리 괘방산 동쪽 사면에 위치한 고려 시대에 돌로 쌓은 성. 고려성지는 옛 기록에는 나오지 않고, 일제 강점기 때 작성된 『조선보물고적조사자료(朝鮮寶物古蹟調査資料)』에 ‘자가곡면 정동진리, 사유, 강릉의 동남 약 삼 리 반 괘방산의 동해[원문에는 일본해로 표기되어 있음]에 면하는 산록에 있음. 석성으로서 주위 약 사백 간(間) 거의 붕...
-
강원도 강릉시 경강로 2045[명주동 38-1번지] 일대에 분포하고 있는 강릉 관아와 관련된 건물터. 강릉은 충렬왕 14년 강릉부로 편제된 이래 공양왕 원년 대도호부로 승격되었으며, 이러한 개편 작업이 신왕조의 개창을 위한 성격을 띠는 것이었으므로 그대로 조선조에 이어졌으며, 대도호부로서 읍격은 그 승강이 없지는 않았지만 한말까지 이어진다. 강릉대도...
-
강원도 강릉시 임당동에서 발견된 거북 모양의 받침돌(龜趺). 1965년 강릉시 임당동 139번지 도로확장 공사 중에 발견되었다. 제작 시대는 확실하지 않으나 비몸자리(碑座)가 중앙에 뚜렷하게 있는 귀부이다. 귀부는 높이 42㎝, 너비 82㎝, 두께는 109㎝의 크기로 지대석(地臺石)과 같은 하나의 돌로 되어 있다. 비공(碑孔)은 가로 45.5㎝, 세로 23.5㎝, 깊이...
-
강원도 강릉시 성산면 보광리와 사천면 사기막리에 걸쳐 있는 고대 산성. 백제의 시조 온조왕(溫祚王)이 도읍지로 정하고 군사를 훈련시키기 위하여 축조하였다는 전설과 발해의 대씨(大氏)가 쌓았다 하여 대공산성(大公山城)이라 불리운다는 전설이 있다. 또한 가까운 곳에 보현사가 있어 보현산성(普賢山城)으로도 불린다. 전설로 전해 오는 백제의 온조왕이나 발해의 대씨가...
-
1389년부터 1895년까지의 강릉 읍격. 1389년(공양왕 원년), 강원 영동 지방의 행정적 군사적 중요성 때문에 강원 영동의 거진(巨鎭)의 의미로 강릉대도호부로 읍격을 정하였다. 조선 개국 후 군현제 개편 시에도 강릉 대도호부의 읍격을 유지하였다. 특히 여말 선초의 전환기에 공신의 반열에 올랐던 김광을(金光乙), 함전림(咸傳霖) 등의 출사와 고려 초에 왕씨 성을 사성받았던 세력...
-
조선시대 강릉대도호부 내의 최고 관장(官長). 강릉은 하슬라(何瑟羅), 하서량(河西良) 등으로 불리다가 신라 선덕왕(善德王)이 소경(小京)을 설치하였으며, 경덕왕(景德王) 16년에 명주(溟州)로 개칭되었다. 고려 태조 19년에는 동원경(東原京)으로 편제되었으며, 성종(成宗) 2년에 하서부(何西府), 동왕 5년에 명주 도독부(溟州都督府), 동왕 11년에 명주목(溟州牧),...
-
강원도 강릉시 성산면 보광리에 위치한 조선시대 분청사기 도요지. 강릉시내에서 구 영동고속도로를 따라 약 10㎞가면 우측으로 명주군왕릉(溟州郡王陵)을 안내하는 안내판이 있다. 그 포장길을 따라가면 삼왕동 명주군왕릉 입구에 도착하게 된다. 여기에서 북쪽의 좌측 소로를 따라 약 1㎞쯤 가면 베리안 마을이다. 이 마을의 산기슭에서 아래쪽 계곡에 닿는 경작지의 중간 지점에 위치한...
-
고려 말 설치되어 조선 말에 폐지된 강릉 지역의 지방 관청. 1308년(충렬왕 34)에 설치되어 1896년(고종 33)에 강릉군으로 개편되었다. 『강릉부읍지(江陵府邑誌)』 건치연혁조(建置沿革條)와 『증수임영지(增修臨瀛誌)』 건치연혁조(建置沿革條)에 관련 기록이 있다. 고려시대 명주(溟州), 명주목(溟州牧), 창해명주도, 경흥도호부(慶興都護府), 강릉도(江陵道)가 차례로...
-
조선시대 강릉부사를 포함한 19기의 선정비. 역대 강릉부사 및 관찰사의 선정송덕비(善政頌德碑)로 19기이다. 이중에는 진사최공재린유혜불망비(進士崔公在璘遺惠不忘碑)와 충노문리동행적비(忠奴文里同行蹟碑)도 포함되어 있는 것이 특이한 사항이다. 역대 강릉부사와 관찰사들의 선정(善政)을 찬양한 송덕비인 관계로 선정비군(善政碑群)이라 하였다. 지방 관리가 부임하여 선정을 베풀고 떠난 다음 그...
-
조선 후기에 선행을 펼쳐 마을을 구한 산계리 선각자들의 사적을 기록한 사적비. 1780년을 전후하여 산계리에는 기존의 전세(田稅)에 산삼 공납이 추가되었고 설상가상 심한 흉작으로 지역민이 마을을 떠나는 유리(流離) 현상이 심하게 되자, 고진창(高鎭昌), 우광택(禹光澤), 전삼박(全三泊) 등 14명이 상계(上啓)하여 관가로부터 경공(京貢)의 산삼을 감량 받았다. 그리고 어려움을 해결...
-
강원도 강릉시 성내동·명주동·용강동 일대에 있는 조선 시대 강릉부의 행정성(行政城). 읍성(邑城)은 지방 행정의 중심지인 치소지(治所地)에 축조한 성곽으로 조선 전기에는 대략 120여 곳이 유지되었다. 상비군에 의한 충분한 조치가 어려웠던 당시 불시에 발생하는 외침으로부터 주민의 생명은 물론, 지방 관아의 각종 행정 자료와 물품을 보호하기 위해서는 읍성이 필요하였다....
-
강원도 강릉시 강문동 경포대 현대 호텔 신축 부지 내에서 발굴·조사된 신라 시대의 토성 터. 강문동 신라 토성 터는 강릉시 강문동 265번지 일명 죽도봉(竹島峰) 일대 경포대 현대 호텔 신축 부지 내에서 발굴 조사되었다. 2011년 경포대 현대 호텔 신축을 위한 사업 시행을 목적으로 실시된 지표 조사와 발굴 조사를 통해 확인된 유적지로 토성이 위치한 죽도봉은...
-
강원도 강릉시 강문동에서 발굴된 철기·신라시대 주거지 유적. 경포호수와 동해바다 사이에 위치한 사빈 지형인 강문동 일대에서 2002년 4월 여관 신축 부지 공사 중 철기시대 주거지로 추정되는 유구와 토기편 그리고 신라토기편이 발견되어, 강원문화재연구소에서 긴급 발굴조사를 하였다. 또한 2003년과 2004년에도 같은 지역 내의 여관 신축 부지에 대한 발굴조사가...
-
강원도 강릉시 강문동 신라시대 주거지에서 출토된 일본식 토기. 암갈색을 띠는 연질(軟質)의 원저장경호(圓底長頸壺)로, 기형은 둥근 바닥에서 완만한 곡선을 이루며 올라가다 어깨에서 몸체 최대경을 이룬 뒤 급격하게 오므라들었다. 목은 길고 완만하게 바라져 올라갔으며, 아가리 끝은 비교적 날카롭게 처리하였다. 토기 외면에는 다치구(多齒具)를 이용한 정면한 흔적이 일부 남아 있...
-
강원도 강릉시 강문동에 있는 철기시대 및 신라시대의 주거지 유적. 강문동 유적은 강릉시의 동북쪽에 위치하며, 행정구역상으로는 강릉시 창해로 443[강문동 302번지] 일대에 해당하고, 경·위도상으로는 동경 128°55′, 북위 37°48′에 해당된다. 이 지역은 여름철 휴양지로 유명한 경포도립공원 내에 위치하는데, 유적은 경포호수와 동해 바다 사이에 위치한 사...
-
강원도 강릉시 강문동에 있는 철기시대의 주거지유적. 강원도 강릉시 초당순두부길 124-11[강문동 136-1번지] 일대에 분포하고 있다. 강문동 철기시대 유적은 지난 1992년 강원도 강릉시 초당순두부길 124-11[강문동 136-1번지]에 최선윤의 명의로 된 초당식품공장 건물 신축시 발견되었으며, 발굴조사는 1992년 9월 1일부터 9월 9일까지...
-
강원도 강릉시 강문동에서 발굴된 철기시대 저습지유적. 1998년에 경포호수 남쪽으로 형성된 사구(砂丘) 경작지대의 교회 신축 부지 내에서 발견되어, 1999년에 약 5개월에 걸쳐 강릉원주대학교박물관에 의해 발굴조사 되었다. 현지 표하 160㎝에서 기원전후 시기의 철기시대 문화층이 확인되었고, 점복이나 제의에 관련된 것으로 추정되는 장타원형의 웅덩이 유구가 조사되었다. 철...
-
조선 중기의 문신. 본관은 진주(晉州). 자는 숙구(叔久), 호는 설봉(雪峯)·한계(閒溪)·청월헌(聽月軒), 시호는 문정. 강인(姜璘)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강운상(姜雲祥)이고, 아버지는 강주(姜籀)이며, 어머니는 안동김씨로 김응서(金應瑞)의 딸이다. 문과에 급제하여 강릉부사와 강원감사를 지냈기 때문에 강릉과 인연을 맺었으며 청백리(淸白吏)로 녹선(錄選)될 정도로 재직 중에 청렴...
-
1688년(숙종 14)부터 1692년(숙종 19)까지, 1728년(영조 4)부터 1738년(영조 14)까지 불렸던 강원도의 옛날 이름. 조선시대에 강상죄가 발생한 지방의 경우 읍호를 강등시키는 조치를 취하였다. 또 반대로 왕실이나 국가와 관련하여 경사스러운 사안이 발생하면 읍호를 승격시켜주었다. 강원도는 조선조에 역적의 출생지라 하여 일시적으로 강춘도(江春道), 강양도(江襄道),...
-
강원도 강릉시 성산면 금산리의 옛 이름. 건금리는 조선조 중종 때 정봉 김광헌이 세운 마을이라 하여 생긴 이름인데 그 후 1916년에 장안동·제동·구동·성하를 합쳐 금산리(金山里)라 하였다. 건금리는 강릉최씨 최입지의 묘가 있는 지형이 옥녀가 거문고를 타는 형국인 옥녀탄금형(玉女彈琴形)이어서 금산(琴山)이라고 쓰다가 이 마을에 강릉김씨들이 많이 살고...
-
1750년부터 작성된 강릉과 양양 지방 거주 양반 사족들이 결성한 시회의 계첩. 『경락첩(鏡洛帖)』은 강릉과 양양 지방에 거주하는 양반 사족들의 모임인 경락회의 계첩이다. 경락회는 1750년(영조 26)에 결성되었고, 강릉의 대표적인 명소인 경포(鏡浦)와 양양 지방의 대표적인 명소인 낙산(洛山)의 첫 글자를 따서 ‘경락회(鏡洛會)’라 명명하였다. 경락회는 일 년에 두 차...
-
고려 시대 강릉에 설치되었던 지방 관청. 1260년(원종 1)에 설치되어 1263년에 강릉도(江陵道)로 개칭되었다. 고려 고종 때 당시 무인집정자 최의(崔竩)를 죽임으로써 최씨 정권을 무너뜨린 공을 세운 낭장(郞將) 김홍취(金洪就)의 공을 포상하기 위해 그의 고향인 강릉의 읍호를 승격시켰다. 1258년(고종 45) 김홍취는 유경(柳璥)·김준(金俊)·박송비(朴松庇)·임연(...
-
한국에서 옛날부터 전해 내려오는 상부상조(相扶相助)의 민간 협동체 문화. 강릉 지역의 사회 조직으로서 계 문화는 생활 깊숙이 자리 잡고 있다. 현전하는 미타계(彌陀契) 자료는 불교의 신도회로서 이미 고대사회에서 조직 운영되었음을 살필 수 있다. 그리고 조선 초기의 금란반월회(金蘭半月會), 죽장회(竹杖會)와 조선 중기의 약국계(藥局契), 사후계(射侯契), 향약계...
-
강원도 강릉시 교동에 있는 조선 시대의 사마소(司馬所) 건물. 강원도 내에서 하나밖에 남지 않은 고제(古制)의 사마소(司馬所) 유적(遺蹟)이다. 당명(堂名)인 '계련(桂蓮)'의 '계'는 '계림(桂林)' 또는 '절계(切桂)'에서 따온 말로 '계림'은 문인 사회를 아름답게 표현하는 이름이고 '절계'는 과거에 급제하는 것을 뜻한다. '연(蓮)'은 중국 송나라의 육현...
-
주체인 발급자와 대상인 수취자 사이에 어떤 목적을 달성하기 위하여 주고받은 옛 문서. 문서라는 용어는 예로부터 넓은 의미로 사용되어 왔다. 경우에 따라서 서책(書冊)·서적(書籍)을 뜻하기도 하였고, 추안(推案)·국안(鞫案) 등 재판 관계의 신문·진술기록을 의미하기도 하였으며, 장부(帳簿) 등을 지칭하기도 하였다. 또 관문서(官文書)·공문서(公文書)·사대문서(事大文書)·교린문서(交隣...
-
강원도 강릉시에 있는 삼국시대부터 고려·조선시대에 이르는 고분의 총칭. 고분은 광의로는 옛 무덤으로 통칭할 수 있으며, 과거 사회에서 죽은 자를 위해 수행된 매장의례가 물질적인 증거로 남은 것을 의미한다. 그러나 고고학적으로 옛 무덤은 선사고고유적과 역사고고유적으로 구분된다. 시기상으로 구석기시대부터 초기철기시대까지를 선사고고유적으로, 이후 시대의 것을 역사고고유적으로...
-
커다란 돌을 가지고 만든 청동기시대의 돌무덤. 고인돌은 작은 돌이 큰 돌을 받치고 있다는 뜻으로 ‘괸돌’, ‘지석묘’, ‘탱석’이라고도 하며, 마을 이름에도 ‘괸마을’, ‘괸돌마을’, ‘지석리’ 등이 있다. 커다란 덮개돌이 밖으로 드러나 있기 때문에 오래 전부터 사람들의 관심을 끌어 왔다. 대부분 무덤으로 쓰이지만 공동무덤을 나타내는 묘표석이나 의식을 거행하던 제단으로서도 기능이...
-
공동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친족, 혈연, 지연, 학연, 촌락, 동문수학, 나이(동갑) 등을 매개로 결성되는 결사체. -‘계(契)’를 아십니까 - 강릉 지역의 전통적인 계문화 계라고 하면 ‘아줌마들’이 식당에서 벌이는 회식 자리를 떠올리는 사람들이 많다. 계모임, 계가 깨졌다, 패가망신… 이런 말부터 먼저 떠올리는 사람도 많을 것이다. 목돈을 모으는 위험하고 원시적인 방식이 계의...
-
조선시대 관리선발 시험. 과거시험은 문과·무과·잡과로 나뉘어 실시되었다. 문과는 식년시와 별시로 나누어 시행되었는데, 식년시는 초시[향시]·복시[회시]·전시의 세 단계를 거쳐야 했다. 강원도의 경우 초시에서 15명을 선발하여 복시에 응시토록 하였다. 또한 사마시는 초시와 복시로만 실시하였는데, 강원도 향시에서는 45명이 선발되어 복시에 응시할 수 있었으며, 이 중 복시에 합격한 사...
-
조선 전기의 문신. 1399년(정종 1) 생원시(生員試)에 합격하였고, 1414년(태종 14) 문과에 올라 좌랑(佐郞)에 제수(除授)되었다. 1427년(세종 9)에 제천현감(堤川縣監)을 거쳐 홍문관교리(弘文館校理)를 역임했다. 강릉곽씨의 입향시조이다. 1411년(태종 11)에 화재로 전소된 강릉향교를 중건(重建)하기 위해 강릉유림(江陵儒林) 66인과 함께 계(啓)를 올렸다....
-
명주군왕(溟州郡王) 김주원(金周元)의 가신(家臣)·문객(門客). 785년 선덕왕이 죽은 후에 김주원은 김경신(金敬信)[원성왕]과 왕위계승을 위한 다툼을 벌였는데, 이 과정에서 김주원이 패배하고 김경신이 원성왕으로 즉위하였다. 이때 김주원의 부하였던 곽길은 최대내(崔大奈)·함신(咸信)·박영(朴榮) 등과 함께 왕궁으로 들어가 거사(擧事)를 도모하려 하였으나 김주원이 허락하지...
-
고려 전기 호족 김순식(金順式)의 소장(小將). 김순식이 고려 태조에게 귀부함에 따라 928년(태조 11) 정월에 군사 600명을 거느리고 개성에 와서 숙위하였다. 뒤에 김순식이 무리를 거느리고 태조에게 조회하여 왕씨(王氏)의 성을 하사받을 때 관경도 함께 왕씨의 성을 하사받고 대승(大丞)으로 임명되었다....
-
조선시대 강원도 영동 지역에서 부담했던 인삼과 관련한 부세(賦稅). 조선 후기 인삼의 징수나 납부 방법은 임토지공(任土之貢)의 명분에 따른 공물납, 포·미·전 등에 의한 대납(代納), 삼공인에게 청부하여 납부하게 하는 방법 등이 있었다. 또한 징수형태도 백성들로 하여금 채취 납부하게 하는 것과 대동법에 의한 포전곡의 징수, 무삼(貿蔘)이라는 이름으로 시가의 절반 이하 정도의 비용을...
-
강원도 강릉시 강동면 안인진리 괘방산 능선에 남북으로 축조된 석성(石城). 괘방산성은 얼마 전까지만 해도 전혀 알려지지 않았으나, 1998년 강릉원주대학교박물관에서 이 성의 동남쪽 3.2㎞에 있는 고려성지(高麗城址)에 대한 지표조사를 하는 과정에서 처음으로 확인되었다. 괘방산성은 강동면 안인리 본동에서 동해안과 7번국도를 따라 남쪽으로 괘방산까지 이...
-
강원도 강릉시 교1동에 있는 청동기시대의 고인돌 유적. 교1동에서는 청동기시대 고인돌 2기(二基)가 1991년 지표조사시에 발견되었고, 2006년 예맥문화재연구원에서 교동 주택신축 공사부지 문화재 지표조사 시 고인돌Ⅰ에서 동쪽으로 100m 정도 떨어진 능선에서 1기가 더 확인되어 현재 3기의 고인돌이 확인되었다. 먼저 발견된 율곡중학교 앞의 고인돌을 Ⅰ, 강일...
-
강원도 강릉시 교동에 있는 청동기시대의 주거유적. 유적이 위치한 지역은 행정구역상 강원도 강릉시 교1동, 유천동의 일부를 포함한 지역으로 동쪽으로는 포남동, 서쪽으로는 홍제동, 유천동, 북쪽으로는 죽헌동이 자리 잡고 있으며, 현재 강릉원주대학교 동남쪽 고속도로 변에 위치하며, 경·위도상으로는 북위 37°45′, 동경 128°53′에 위치한다. 동 지역은 강릉시의 북서편에...
-
강원도 강릉시 교동 택지개발지역 내에 있는 청동기시대의 주거지 유적. 강릉 지역은 태백산맥에서 동으로 뻗어 내린 해발 100m 미만의 크고 작은 많은 구릉이 선상(線狀)으로 동해를 향하여 뻗어 있다. 이들 구릉지대의 계곡에서 발원하는 하천 유역에는 낮은 구릉들이 많고 해안선 부근에는 호수들이 발달되어 특수한 지형 조건을 이루고 있다. 강원 영동지방의 중요 선사...
-
강원도 강릉시 교동 청동기시대 1호 주거지에서 출토된 구멍무늬토기. 구멍무늬토기는 아가리 주변에 구멍무늬가 연속적으로 뚫려진 형태로 대부분 심발형의 기형을 띠고 있다. 교동 청동기시대 주거지유적 출토 구멍무늬토기는 장동형의 기형으로 구연부는 몸통에서 완만하게 좁혀지다가 짧게 외반하였다. 구연부 바로 밑에는 돌아가면서 서로 교차하는 사격선을 새기고, 사선이 교차하여 이루는...
-
아가리 바깥부분에 점토띠를 말아 붙여서 아가리를 두껍게 만든 토기. 강원도 강릉시 교동 청동기시대 주거지 유적에서 출토된 겹아가리토기[이중구연토기(二重口緣土器)]는 1호, 3호, 5호, 6호 주거지에서 각각 1점이 출토, 모두 4점이 출토되었다. 1호 주거지에서는 이중구연 단사선토기가, 3호 주거지에서는 단순 이중구연토기가, 5호와 6호주거지에서는 이중구연 거치문토기가...
-
고려시대 강원도의 이름. 995년(성종 14)에 지방행정구역을 10도로 나눌 때 함경도와 합하여 삭방도(朔方道)라 하였다가 1178년(명종 8)에 삭방도를 폐지하고, 함경도와 강릉 일대의 해안지방을 연해명주도(沿海溟州道), 춘천·철원 일대의 영서 지방을 동주도(東州道)라고 개칭하였다. 1263년(원종 4)에 연해명주도는 강릉도(江陵道)로, 동주도는 교주도(交州道)로 고쳤고, 133...
-
강원도 강릉시 주문진읍 교항리에 있는 신라 토기 산포지. 강원도 강릉시 주문진읍 교항리 옹막동마을의 남쪽 구릉일대에 분포되어 있다. 주문진읍 교항리 옹막동마을의 남쪽 구릉지대는 현재 과수원으로 경작 중에 있는데, 이곳에서는 삼국시대의 신라토기편이 채집되고 있다. 신라토기는 주로 굽다리접시, 긴 목 항아리 등이 채집되고 있는데, 토기의 형식으로 보아...
-
강원도 강릉시 주문진읍 교항리 강원도립대학 부지 일대에 있는 철기시대의 주거지 유적. 교항리 철기시대 유적은 강원도립대학 부지 내에 위치하고 있다. 동해 바다와는 약 500여m 떨어진 해안가 충적 사구지대이다. 경·위도상으로는 북위 37°52′, 동경 128°50′에 해당된다. 교항리 유적은 지난 1994년 주문진 중학교 내 테니스장 주변에서 철기시...
-
강원도 강릉시 주문진읍 교항리에서 발굴된 철기시대 주거지유적. 주문진읍의 중심 하천인 신리천(新里川) 하류 남쪽에 형성된 사구지대(砂丘地帶)에 있는 강원도립대학 일대에 해당된다. 1994년 주문진중학교 내에서 철기시대 토기편이 채집되어 처음으로 알려졌다. 1997년 강원도립대학 내의 실험실습동 터파기 공사와 수목 이식 작업 중에 철기시대 주거지 바닥과 경질민무...
-
강원도 강릉시 주문진읍 교항리에 있는 청동기시대의 유물산포지. 북쪽에 위치한 유물산포지는 서에서 동으로 뻗은 해발 40m 전후의 구릉 지역이며, 남쪽에 위치한 유물산포지는 남에서 북으로 뻗어 내린 구릉 능선부 민묘 주변 지역이다. 교항리 청동기시대 유물산포지는 7번국도에서 장덕리 쪽으로 향하는 도로를 따라 가다 보면 대동교가 나오는데 신리천을 기준으로 북쪽에...
-
인류가 처음으로 나타난 시기부터 약 1만 년 전에 신석기시대가 시작되기 전까지 돌을 깨뜨려 도구를 만들어 사용하던 시기로 인류 최초의 문화 단계. 구석기시대(舊石器時代)는 생물학 분류에서 인류가 유인원(類人猿)에서 진화하여 사람으로 분류되는 고인류(古人類)가 처음 등장한 때부터 1만 2천 년 전 무렵 플라이스토세가 끝날 때까지에 이르는 긴 시간대에 걸친 인류 문화의 원초 단계를 가...
-
조선 중기의 문신. 본관은 능성(綾城). 자는 천로(天老). 구강(具綱)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구신충(具信忠)이고 아버지는 구이(具頤)이다. 어머니는 덕수이씨로 현감 이의영(李宜榮)의 딸이다. 어릴 때부터 성리학에 몰두하여 명망이 있었고 언론을 통하여 기묘사림파에 대한 신원의 길을 열었다. 1519년(중종 4)에 생원이 되고 1528년 식년 문과 병과(丙科)에 급제하여 박사를 거쳐...
-
후고구려[태봉]의 건국자이자 왕. 신라 제47대 헌안왕(憲安王) 또는 제48대 경문왕(景文王) 김응렴(金膺廉)의 아들이라고 한다. 왕비는 강씨부인이고, 아들은 청광보살(淸光菩薩)과 신광보살(神光菩薩)이다. 궁예는 신라 하대 왕의 서자로 태어났다. 태어날 때의 여러 징조가 장차 국가에 해로울 것이라고 하여 죽이려고 하였으나 탈출하는 과정에서 유모가 잘...
-
조선 후기의 문신. 본관은 안동. 자는 성집(聖集), 호는 죽암(竹岩). 참판인 오죽헌 권처균(權處均)의 후손으로 할아버지는 권윤재(權允載)이고 아버지는 효자인 권득형(權得衡)이다. 1747년(영조 23)에 식년문과에 병과(丙科)로 급제하여 부사직 겸 춘추시강원문학(副司職 兼 春秋侍講院文學)을 지냈다. 1781년에 기후가 고르지 못하여 재앙이 생겼을 때에 정조(正祖)가 구언(求言)...
-
조선 중기의 문신. 고조는 문직장(文直長)을 지낸 권의(權義), 증조는 문판관(文判官)을 지낸 권심(權深)이다. 할아버지인 권종(權悰)은 대사성(大司成)을, 아버지인 권적(權迪)은 현령을 각각 역임하였다. 1484년(성종 15)에 태어났으며 1560년(명종 15)에 세상을 떠났다. 학문과 문장이 뛰어나 중종반정 다음해인 1506년(중종 1)에 사마양시(司馬兩試)에 합격하였으며 성균...
-
조선 중기의 문신인 권사균(權士均)의 가계, 행적 등을 기록한 비. 권사균의 호는 보진당이다. 보진(葆眞)이란 마음이 자세하고 한결같아 공부에 전념하여 천심(天心), 즉 도심(道心)의 진리를 회복하여 그 진리를 효우(孝友)의 근본으로 삼고 자손훈계(子孫訓戒)로 남기고 행동의 모범으로 삼는다는 뜻이다. 이러한 권사균의 명의(名義)를 계승하고 보존하기 위하여 후손들이 162...
-
조선 후기의 문신. 본관은 안동. 자(字)는 치오(稚五). 세마(洗馬)인 권련(權璉)의 후손으로 증조부는 권상익(權尙益), 할아버지는 권시창(權始昌) 그리고 아버지는 권두재(權斗載)이다. 1727년(영조 3)에 생원시에 합격하고 장령을 지냈다. 벼슬을 지낸 후 서울에 가지 않고 20여 년이나 경호(鏡湖)에 은거하였다. 그러던 중 어사(御史) 이현중(李顯重)이 포상을 위하여 계(啓)...
-
조선 중기의 문신인 권송(權悚)의 묘비. 권송은 안동권씨 추밀공파조 권행의 19세손이며, 강릉 낙향시조이다. 무공랑(務功郞)으로 선원전(璿源殿) 참봉을 지냈다. 강원도관찰사를 지낸 권륜(權綸)의 아들이며, 형은 권구(權懼)이다. 연산군 때 누이가 후궁 숙의(淑義)로 입궐하자 외척으로 지목될 것을 우려하여 한양에서 강릉으로 낙향하였다. 부인은 삼척심씨 심산보(沈山甫)의 딸...
-
조선 전기의 선비. 본관은 안동. 예판전교시사(禮判典敎寺事) 권숭(權崇)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대사성(大司成)을 지낸 권륜(權綸)이고 아버지는 참봉인 권송(權悚)이며, 어머니는 군수를 지낸 청송심씨(靑松沈氏) 심산보(沈山甫)의 딸이다. 문장에 능숙하여 1519년에 사마시에 응시하였는데 회위(會圍) 김모재(金慕齋)가 그의 글을 보고 “금년 장원은 반드시 자네에게 돌아갈 것이네.”라...
-
조선 전기의 문신. 본관은 안동. 안동권씨 시조인 권행(權幸)의 19대 손으로 안동권씨 복야공파(僕射公派) 대사성공(大司成公) 후손의 입강시조(入江始祖)이다. 고조인 권시중(權時中)은 문과에 장원하여 서주목사(瑞州牧使), 증조인 권업(權業)은 문과급제하여 선교랑(宣敎郞), 조부인 권심(權深)은 승훈랑(承訓郞)과 강릉대도호부판관을 각각 역임하였다. 1477년(성종 8)에 성균진사시에...
-
조선 중기의 선비. 본관은 안동. 자는 사중(士中), 호는 오죽헌(烏竹軒). 감사인 권륜(權綸)의 증손이고 세마(洗馬)인 권연(權璉)의 손자이며 율곡(栗谷) 이이(李珥)의 이종제(姨從弟)이다. 정시(庭試)에 수석으로 올랐으나 허균이 권처균은 율곡 이이의 무리라고 하면서 조정에 글을 올려 관로(官路)를 저지하였다. 권처균은 세상의 도가 어지러움을 개탄하면서 과거를 단념하고 벼슬을 구...
-
조선 후기의 선비. 미호(渼湖) 김원행(金元行) 문하에서 수학하였다. 율곡(栗谷) 이이(李珥)의 학문을 추종하였으며 오죽헌의 주인이 되었다. 1791년(정조 15) 어포를 줄인 일로 인해 위원군 조촌(祚村)으로 유배되어 1793년(정조 17) 오죽헌에서 감시(監試)가 시행될 때 응시하지 못하였다. 왕이 권한서의 시장(試章)이 없음을 알고 다시 상세히 알리라고 평양감사와...
-
강원도 강릉시 연곡면 삼산리 청학동 소금강 지역에 있는 고대 산성. 금강산성은 해발 714m의 소금강산을 정점으로 하여 노인봉(老人峰) 쪽으로 피동 부근의 남쪽에 위치한 산성이다. 성이 위치한 이 지역은 1970년 11월 18일 명승 제1호로, 1975년 2월 1일 국립공원으로 지정된 ‘청학동 소금강’ 지역으로 금강산성은 1984년 6월 2일 강원도 문화재자료...
-
조선시대 강릉 지역 유학자들의 계회(契會). 조선 초기의 재지사족들은 중앙의 숭유억불 정책에 힘입어 성리학을 수용하여 정착시키는데 선도적 역할을 하고 있었으며, 강릉 지역도 예외는 아니었다. 성리학을 수용한 재지사족은 기본적으로 성리학을 교양으로 하여 입신출사를 지향하였으며, 나아가 성리학적 향촌질서를 추구하였다. 강릉 지역 금란반월회의 성향도 이와 같았다. 한편, 조선 초기에 강...
-
조선 중기의 충노. 심원준(沈元濬)의 여자 종으로 지극정성으로 주인을 섬겼다. 심원준의 처인 김씨가 사경을 헤매자 손가락을 잘라 피를 입에 넣어 소생시켰다. 향리 사람들은 주인을 극진히 섬긴 그 충성에 감복하여 ‘충노 금복 비(忠奴 金福 碑)’라는 비석을 세우고 그 마음을 기렸다....
-
조선 전기의 문신. 본관은 봉화(奉化). 호는 청원정(淸遠亭). 증조부는 금진고(琴進高), 조부는 금조(琴操), 아버지는 금극해(琴克諧), 아들은 금이영(琴以詠)이다. 외조부는 이인실(李仁實)이며 박천석(朴天錫)의 사위이다. 1396년(태조 5) 문과에 급제하여 대사간(大司諫)과 대사성(大司成) 등 청환직(淸宦職)을 거쳤다. 1419년(세종 1) 참의(參議)로서 강릉부사에 임명되어...
-
강원도 강릉시 옥계면 금진리에 있는 신라시대의 고분군. 강원도 강릉시 옥계면 금진리 금진초등학교 서편의 완만한 능선에서부터 한라시멘트 휴양소의 서북능선까지 광범위하게 신라고분들이 분포하고 있다. 능선의 가장자리에는 봉분이 남아 있는 대형고분이 있는데, 돌덧널[석곽]의 길이 450㎝, 폭 150㎝, 깊이 100㎝이며, 봉분의 크기는 동서길이 약 15m 가량 된다...
-
강원도 강릉시 옥계면 금진리에 있는, 신석기시대·철기시대의 유물산포지. 강원도 강릉시 옥계면 금진리 금진초등학교와 옥계해수욕장 사이에 형성된 사구송림지대에 위치한다. 유적의 남단은 태백산맥 계곡에서 동해로 흐르는 낙풍천과 주수천이 합류하여 해수와 만나면서 그 주변에 가평들이라는 광활한 충적대지가 펼쳐져 있다. 유적은 가평들의 북쪽인 사구 위에 형성되어 있다....
-
강원도 강릉시 옥계면 금진리에 있는 철기시대의 주거지 유적. 금진리 유적은 강릉시의 남동쪽 끝부분에 해당된다. 국도 7호선을 따라 동해 방향으로 진행하다 좌측으로 나타나는 옥계해수욕장에서 북쪽으로 약 500m 거리의 해안가 소나무 숲에 위치하고 있다. 금진리 유적은 이미 철기시대 유물과, 신석기시대 유물이 채집되어 알려진 유적이다. 그러던 중 지난...
-
조선 후기의 충노. 상전인 최택(崔澤)이 세 살 때부터 정성껏 길러 성인으로 성장하게 하였고, 여러 대의 제사를 자기가 보살펴 지냈다. 가묘(家廟)가 허물어져 비바람을 가릴 수 없게 되자 따로 사당을 짓고 기와를 올려 정교하게 꾸미고 신주를 봉안하였으며, 향 피우는 것을 그치지 않았다. 상전을 잘 모신 충성스러운 행동으로 어사(御使) 오명준(吳命俊)이 장계(狀啓)를 올려 정려를 받...
-
조선 후기의 선비. 지봉(芝峰) 김몽호(金夢虎)의 후손이다. 사람됨이 준엄하고 기풍과 도량이 뛰어 났으며, 기강을 바로잡아 세우며 엄숙단정 하였다. 강릉부사 소두산(蘇斗山)이 벼슬이 갈려 돌아갈 때 대관령을 넘으면서 “내가 비록 너희 고을을 떠나지만 김격(金格), 김니(金柅) 형제는 정말로 두려워하였다.”라고 했다는 말이 전해지고 있다....
-
고려 전기의 문신. 본관은 강릉. 신라 종실 김주원(金周元)의 후손이다. 시랑평장사(侍郞平章事) 김상기(金上琦)의 아들이며, 문하시중(門下侍中) 김인존(金仁存)의 동생이다. 1104년(숙종 9)에 밀진사(密進使)로 요나라에 사신으로 다녀왔고, 1109년(예종 4)에는 좌승선지이부사(左承宣知吏部事)를 지냈다. 1112년에는 지어사대사(知御史臺事), 1117년(예종 12)에는 대사성...
-
조선 중기의 문신인 김광국(金光國)[1489~1554]의 묘비. 김광국의 자는 관여(觀如), 아버지는 김세남(金世南), 어머니는 함종어씨(咸從魚氏) 어충경(魚忠敬)의 딸이다. 등과하여 제천현감을 지냈으며 제천 주민들이 공의 업적을 기리기 위해 유애비(遺愛碑)를 세웠다. 부인은 영일정씨 정희소(鄭希韶)의 딸이며, 3남 1녀를 낳았다. 원래 있던 묘갈이 훼손되어 1800년...
-
조선 중기의 문신. 본관은 강릉. 김광백의 아버지는 김기(金玘)이고, 할아버지는 김용려(金用礪), 증조는 김보(金黼)이다. 처부는 군수를 지낸 최운상(崔雲祥)이다. 1603년(선조 36) 생원에 입격하였고, 1612년(광해군 4)에 문과에 급제하였다. 1614년 비인현감(比仁縣監) 재직 시 병으로 직무를 수행하기 어렵게 되어 향리들의 작폐가 심해지자 사헌부에 체직(遞職)을 요청하였...
-
고려 후기의 문신. 본관은 강릉이며 명주군왕(溟州郡王) 김주원(金周元)의 후손이다. 그의 아들 김추(金錘)는 조선 초기의 문신으로 1392년(태조 1)에 공조판서를 역임하였다. 1352년(공민왕 1)에 공을 세워 찬화공신(贊化功臣)으로서 명주부원군(溟州府院君)에 책봉되었다. 관직은 문하시중(門下侍中)에 이르렀다....
-
조선 중기의 문신. 자는 자임(子任), 호는 이설당(梨雪堂). 김세훈(金世勳)의 아들이고, 애일당(愛日堂) 김광철(金光轍)의 아우이다. 1519년(중종 14) 사마시 생원에 입격하였고, 1526년(중종 21) 별시에 을과로 합격하였다. 성품이 중후(重厚)하고 덕이 높고 도량이 컸다고 한다. 당시 이기(李芑)나 윤원형(尹元衡)이 세력을 떨치며 권력을 농단할 때에도 자신의 뜻을 전혀...
-
조선 중기의 문신. 자는 자유(子由), 호는 애일당(愛日堂). 아버지는 사헌부 감찰을 지낸 김세훈(金世勳)이다. 안성이씨 이석진(李碩進)의 딸과 혼인하여 4남 2녀를 낳았는데, 장남 김양(金讓)은 직장(直長), 둘째 김인(金訒)은 찰방(察訪), 셋째 김근(金謹) 주부(主簿), 넷째 김겸(金謙)은 별좌(別坐)였고, 사위는 심운(沈雲)과 참판을 지낸 허엽(許曄)이다. 1487년(성종...
-
조선 중기의 선비. 자는 중여(仲輿), 호는 정봉(鼎峰). 명주군왕(溟州郡王) 김주원(金周元)의 24세손으로 고조는 현령(縣令)을 지낸 김윤귀(金允貴), 증조는 증통훈대부좌통례(贈通訓大夫左通禮) 생원(生員) 김필양(金匹陽), 조는 헌납을 지낸 김지(金墀)이다. 1487년(성종 19)에 증통훈대부군자감정(贈通訓大夫軍資監正) 생원공(生員公) 김반석(金盤石)과 진사 최유남(崔洧南)의 딸...
-
조선 중기의 문신인 김광헌(金光軒)[1485~1539]의 묘비. 김광헌의 자는 중여(仲輿)이다. 조는 헌납 김지(金墀), 부는 군자감정을 지낸 생원 김반석(金盤石), 모는 최입지(崔立之)의 후손인 진사 최유남(崔洧南)의 딸이다. 김광헌은 최치운의 손자인 현감 최세번의 딸을 아내로 맞이하여 4남 3녀를 낳았다. 장남은 임경당 김열(金說)이다. 1540년 후손들이 김광헌의...
-
조선시대 효자인 김담(金譚)[1522~1605]의 효행을 기리는 묘비. 김담의 자는 담지(譚之), 호는 보진재(齋眞齋), 본관은 강릉이다. 강릉김씨 부정공파(副正公派) 보진재공(葆眞齋公) 노암파(魯巖派) 파조(派祖)이다. 봉래(蓬萊) 양사언(楊士彦)이 강릉부사로 있을 때 김담의 효행을 천거하며 시를 지었다. 사후에는 첨지중추부사에 증직되고 정려가 내려졌으며, 「삼강행록」...
-
조선 전기의 문신. 본관은 강릉. 자는 등가(登可), 호는 반곡(盤谷). 진사출신으로 전객령(典客令) 김천(金蕆)의 5대손으로 부정(副正) 김경생(金慶生)의 증손이다. 할아버지는 현령인 김윤귀(金允貴)이며, 아버지는 김필양(金匹陽)이고 어머니는 강릉왕씨(江陵王氏)로 현감 왕갱(王䡖)의 딸이다. 김대(金臺)는 명주군왕인 김주원의 21대 후손으로 생몰연대는 알 수가 없고,...
-
조선 중기의 문신. 자는 임경(任卿). 김주원의 후손이며, 5대조는 김윤신(金潤身), 고조는 돈령부참봉(敦寧府參奉) 김세달(金世達), 증조는 예빈시직장(禮賓寺直長) 김광언(金光彦), 할아버지는 군자주부(軍資主簿) 김수(金鐩), 아버지는 공조참의 김몽호(金夢虎), 어머니는 인동장씨(仁同張氏) 참의(參議) 장호(張昊)의 딸이다. 부인은 간재(艮齋) 최연(崔演)의 후손인 최유성(崔有成)...
-
조선 중기의 문신인 김득의(金得毅)[1595~1653]의 묘비. 김득의는 강릉김씨로 자는 임경(任卿)이다. 김주원의 후손이며, 5대조는 괴당(槐堂) 김윤신(金潤身)이다. 김득의의 묘비는 1818년(순조 18)에 세워졌다. 강원도 강릉시 강동면 안인리 김득의의 묘 앞에 있다. 안인 대동마을에서 영동화력발전소 사원 사택을 지나자마자 우측 야트막한 산에 있다. 인근...
-
조선 말기의 선비. 유학적 소양을 지닌 문장가로서 출사하지 않고 고을 사람들과 한평생 동고동락하며 지냈다. 재주가 출중하고 문장이 뛰어나 유궁(儒宮)에 출입하였으며, 또 고인(古人)의 기상이 있어 사람들이 자랑스럽게 여겼다. 집은 동문 밖에서 몇 리 떨어져 있었으며, 뜰 가에 은행나무가 울창하게 우거져 이곳에 정자를 짓고 고을 사람들과 함께 즐겼다. 고을에서 사람의 됨됨이를 논할...
-
조선 중기의 문신. 본관은 강릉. 자는 숙무(叔武), 호는 지봉(芝峰). 김주원의 후손으로 아버지는 김수(金鐩)이다. 1582년(선조 15)에 진사시에 합격하였고 1609년(광해군 1)에 증광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였다. 이후 공조좌랑, 호조좌랑, 정언, 공조참의, 판결사 등을 역임하였다. 문장에 능하고 글씨도 잘 써서 세상에 이름이 났다. 광해군의 노여움을 사서 정경세(鄭經世)와 함...
-
조선 중기의 문신인 지봉(芝峰) 김몽호(金夢虎)[1557~1637]의 가계 및 행적을 기록한 묘비. 김몽호는 본관이 강릉이고 김주원의 후손으로 아버지는 김수(金鐩)이다. 1582년(선조 15)에 진사시에 합격하였고 1609년(광해군 1)에 증광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였다. 김몽호의 손자인 김시혁(金始爀)과 김시형(金始炯)이 세웠다. 김몽호의 묘가 대관령 넘어 강릉...
-
고려 전기의 문신. 본관은 강릉. 명주군왕(溟州郡王) 김주원(金周元)의 후손이며, 첨의평리(僉義評理) 김여흥(金予興)의 아들이다. 김상기의 아들은 문신이자 학자인 김인존(金仁存)이다. 1070년(문종 24) 좌우보궐(左右補闕)을 거쳐, 1084년(선종 1) 이부시랑(吏部侍郞)으로 동지공거(同知貢擧)를 겸한 뒤 호부상서(戶部尙書)를 지냈다. 이듬해 예부시랑(禮部侍郞) 최사문(崔思文)...
-
조선 후기 강릉 지역의 장수 인물. 1764(영조 40년) 12월 그믐날 오시(午時)에 99세의 나이로 죽었는데 다섯 시간이 모자라는 100세를 살아 자손들이 100세 할머니라고 불렀다....
-
조선 중기의 문신. 본관은 선산(善山). 자는 정숙(正淑) 또는 도원(道源), 호는 동명(東溟), 시호는 문강(文康)이다. 1616년 증광시에 급제해 관직에 진출하였다. 홍문관(弘文館) 수찬(修撰)·지제교(知製敎), 사간원 정언(正言), 호조판서 등을 지냈다. 사간원 정언(正言)이었을 때 폐모(廢毋)를 주장하던 이조좌랑 황덕부(黃德符) 등을 탄핵하다가 곽산(郭山)에 유배되었고, 1...
-
조선 중기의 문신. 자는 건보(健甫). 김준현(金峻賢)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김호변(金虎變)이고 아버지는 김홍적(金弘績)이다. 1658년(효종 9) 경릉참봉이 되고, 1660년 식년문과에 병과로 급제했다. 김천찰방·감찰·예조좌랑·병조좌랑·병조정랑을 거쳐 1666년(현종 7)에는 홍천현감을 지냈다. 경직(京職)에 돌아와서는 1667년 정언을, 1670년 지평 등을 차례로 역임하였다....
-
조선 중기의 문신. 본관은 강릉. 자는 퇴옹(退翁). 부정(副正) 김경생(金慶生)의 5대손으로 현령 김윤귀(金允貴)의 증손이고 할아버지는 김필양(金匹陽)이며, 아버지는 이조참판 김대(金臺)이고 어머니는 강릉권씨 권경수(權景壽)의 딸이다. 아들은 김광진(金光軫)과 김광철(金光轍)이다. 1486년(성종 17)에 생원시를 거쳐 1496년(연산군 2)에 식년시(式年試) 병과(丙科)에 합격...
-
조선 말기의 선비. 타고난 자질이 뛰어났고 용모 또한 준수하고 맑았으며, 항상 마음을 바르게 갖고 품행을 닦는데 힘썼다. 15세 때 명재(明齋) 윤증(尹拯)을 알현하였는데, 윤증은 그의 기특함을 한번 보고는 “이 사람은 나이 20이 되지 않아 성명천도(性命天道)의 근원을 꿰뚫을 것이니 우리 무리가 지향하고 있는 성리학이 앞으로 외롭고 쓸쓸하지 않을 것이다”라고 말하였다. 이후 더욱...
-
조선 전기의 문신. 본관은 강릉. 자는 열경(悅卿), 호는 매월당(梅月堂), 청한자(淸寒子), 동봉(東峰), 벽산청은(碧山淸隱)·췌세옹(贅世翁), 법호는 설잠(雪岑). 김주원(金周元)의 후손으로 아버지는 무반 계통의 충순위(忠順衛)를 지낸 김일성(金日省)이고, 어머니는 선사장씨(仙槎張氏)이다. 김시습은 서울 성균관 부근에서 태어났는데, 생지지질(生知之質)이 있었다 할 만...
-
신라 하대의 귀족이자 대신. 태종무열왕(太宗武烈王)의 9대손이며, 증조 할아버지는 김주원(金周元), 할아버지는 김종기(金宗基), 아버지는 파진찬 김정여(金貞茹)이다. 딸은 문성왕의 왕비이다. 828년(흥덕왕 3)에 고성군태수(固城郡太守)가 되고 이어 중원소경(中原小京) 대윤(大尹), 무주도독(武州都督)을 역임했는데, 가는 곳마다 치적을 남겨 명성이 높았다고 한다. 836...
-
조선 중기의 문신. 아버지는 김여계(金汝契)이며 어머니는 김겸(金謙)의 딸이다. 아우는 김양신(金養身), 김양정(金養正)이며 아내는 최충남(崔忠男)의 딸이다. 1615년(광해군 7)에 진사시에 합격하였다. 1627년(인조 5)에 문과에 올라 첨정(僉正)·동부승지(同副承旨)를 역임하였고, 집현전 창정(集賢殿 彰幀)을 개수(改修)하였다. 김양성에 대한 기사는 『증수임영지(增...
-
조선 전기의 무신. 김여명의 증조는 정순대부전객령(正順大夫典客令)으로 진사에 입격한 김천(金蕆), 조부는 봉정대부지통주사를 지낸 김용수(金龍壽), 아버지는 현신교위좌군중랑장(顯信校尉左軍中郞將)을 지낸 김중상(金仲祥), 어머니는 손씨로 조봉대부전의소감(朝奉大夫典醫少監) 손륜(孫倫)의 딸이다. 부인은 선교랑홍원현감(宣敎郞洪原縣監)을 지낸 김지(金輊)의 딸이며, 이름은 김단묘...
-
조선 전기 무신인 김여명(金汝明)의 묘비. 강원도 강릉시 저동 숭덕재 근처의 김윤신 묘 앞에 김윤신 신도비와 함께 있다. 화강석 재질의 방형비좌 위에 오석 재질의 비신이 놓여 있다. 비신의 높이는 96㎝, 비신 너비 42.5㎝, 비신 두께 5.5㎝이다. 비문은 승정원 동부승지(承政院 同副承旨兼)를 지낸 최응현(崔應賢)이 짓고, 성균관(成均館) 진사(進士) 권적(權迪)이...
-
조선 중기의 문신. 1507년(중종 2) 강릉대도호부사에 제수되었으나, 곧 강릉부사(江陵府使) 벼슬을 버리고 상경하였다. 김연수가 강릉부사(江陵府使) 직을 그만 둔 것은 당시 도사(都事)에게 욕을 받자 이에 굽히지 않고 사표를 냈기 때문이었다. 이로 인해 이조에서 그를 내섬시정(內贍寺正)으로 임명하였다. 충청도별마절도사로 재임하면서 졸하였다. 김연수에 대한 기사는 『증수...
-
조선 중기의 문신. 본관은 강릉. 김주원(金周元)의 후손으로 아버지는 진사 김광헌(金光軒)이고, 어머니는 강릉최씨 현감 최세번(崔世蕃)의 딸이다. 김열(金說)의 아버지 김광헌은 1519년(중종 14)에 진사에 올랐으나 기묘사화(己卯士禍)를 겪고 난 후에 과거에 뜻을 버렸다. 김열(金說) 또한 과거에 나아가지 않고 형제들과 더불어 오직 글 읽기에만 힘썼다. 아무리 춥고 더...
-
조선 중기의 학자인 임경당(臨鏡堂) 김열(金說)의 묘비. 김열은 1506년(중종 원년)에 출생하였으며 강릉김씨 시조 김주원(金周元)의 25세손으로 진사 김광헌(金光軒)의 장자이다. 관직은 평강훈도에 제수되었으나 부임하지 않았다. 세칭 임영처사(臨瀛處士)로서 강릉 향현사(鄕賢祠)에 배향되었다. 1812년(순조 12)에 6세손 김처진(金處鎭), 김국명(金國嗚), 8세손 김재...
-
고려 전기의 문신. 본관은 강릉. 신라의 귀족 각간 김주원(金周元)의 후손이며, 시중(侍中) 김인존(金仁存)의 아들이다. 형제인 김영석(金永錫), 김영관(金永寬)과 함께 문과에 급제하였다. 1151년에 지공거(知貢擧)가 되었고 1156년(의종 10)에 국자감대사성(國子監大司成)이 되었다. 1162년(의종 16)에는 추밀원부사 수사공(樞密院副使 守司空)이 되어 등극사(登極使)로 금나...
-
신라시대의 장군이자 대신. 김유신은 신라가 삼국통일을 이룩하는 데 큰 공을 세웠는데, 이러한 업적으로 인하여 그와 관련된 신이(神異)한 이야기들이 설화와 구전으로 전승되고 있다. 또한 사후에 신격화(神格化)되어 민간과 무속에서도 산신 또는 서낭신으로 받들어지고 있다. 김유신은 강릉 단오제(端午祭)와 관련하여 숭배되고 있다. 대관령산신당(大關嶺山神堂)에서는 김유...
-
조선 전기 강릉 출신의 문신. 김윤(金贇)은 1392년(태조 1) 진사시에 합격하였다. 이후 풍저 부사(豊儲副使)·사헌부 감찰(司憲府監察)·판교동현사(判喬桐縣事)를 역임하였다. 1419년(세종 1) 대마도 정벌에 참여하였으며, 1421년(세종 3)에 양양 부사(襄陽府使)를 지냈다....
-
강릉 출신의 조선 전기의 문신. 본관은 강릉. 자는 덕수(德叟), 호는 괴당(槐堂). 김주원(金周元)의 후손이다. 부친은 김여명(金汝明)이고, 모친은 김지(金輊)의 딸이다. 1468년(세조 14)에 생원시에 합격하고 1476년(성종 7)에 별시문과에서 병과로 급제한 후, 사록(司祿), 전적(典籍), 주부(主簿), 경상도사(慶尙都事)를 거쳐 전중감찰(殿中監察)이 되었다....
-
강릉 출신의 조선 전기 문신인 김윤신(金潤身)의 묘비. 김윤신(金潤身)은 조선 전기 문신으로 강릉 출신이다. 호는 괴당(槐堂), 자는 덕수(德叟)이다. 금란반월회를 창계했던 인물 중에 한사람이다. 김윤신 사후에 후손인 판서(判書) 김상익(金尙翼), 김형진(金衡鎭) 등이 주도하여 비를 세웠다. 강원도 강릉시 저동 강릉김씨 옥가파 종산(宗山)...
-
조선 중기 문신인 김이려(金以礪)의 묘지석(墓誌石). 전남대학교 박물관 소장 묘지명이다. 김이려의 자는 성지(成之), 본관은 강릉이다. 조부는 찰방을 지낸 김석견(金石堅), 아버지는 교수를 지낸 김보(金黼)이고 어머니는 안동권씨 권신(權伸)의 딸이다. 김이려는 1487년(성종 18)에 출생하였으며, 1552년(명종 7)에 세상을 떠났다. 부인은 참봉 김세달(金世達)의 딸...
-
조선 중기의 문신인 김인(金訒)의 묘지석(墓誌石). 김인[1516~1571]의 자는 대인(大仁)이다. 본관은 강릉이며 김주원의 후손이다. 증조는 증통정대부 예조참의 행봉정대부 사간원헌납(贈通政大夫 禮曹參議 行奉正大夫 司諫院獻納)을 지낸 김대(金臺), 할아버지는 증가선대부 이조참판 행봉정대부 종부시첨정(贈嘉善大夫 吏曹參判 行奉正大夫 宗簿寺僉正)을 지낸 김세훈(金世勳), 아...
-
고려 전기의 문신. 본관은 강릉. 자(字)는 처후(處厚), 호는 문성(文成), 초명은 김연(金緣). 명주군왕(溟州郡王) 김주원(金周元)의 9세손으로 시랑평장사(侍郞平章事) 김상기(金上琦)의 아들이다. 김인존의 아들은 김영석(金永錫), 김영윤(金永胤), 김영관(金永寬)으로 모두 과거에 급제하였다. 과거에 급제하여 직한림원(直翰林院)에 임명된 후 선종·헌종·숙종의 삼대에 걸쳐 벼슬을...
-
조선 전기의 문신. 아버지는 현감을 지낸 김지(金輊)이고 어머니는 전공총랑을 역임한 고첨(高瞻)의 딸이다. 1411년(태종 11)에 생원시에 급제하였고 1414년에 문과에 올라 예문관·춘추관에 기용되었다. 1421년(세종 3)에 전농시주부(典農寺主簿)로 있다가 춘추관의 관직을 겸대(兼帶)하고 1422년에 사헌부감찰이 되어 겨울에 내간(內艱)을 당하였다. 1425년에 다시 감찰에 제...
-
조선 전기의 문신. 본관은 강릉. 김주원(金周元)의 후손으로 아버지는 현감을 지낸 김지(金輊)이며 어머니는 전공총랑을 역임한 고첨(高瞻)의 딸이다. 형은 김자갱(金子䃘)이며 아우는 김자현(金子鉉)이다. 1444년(세종 26)에 식년 문과에 올라 벼슬이 호조참의(戶曹參議)에 이르렀다....
-
조선 전기의 문신인 김자흠(金子欽)의 신도비. 김자흠은 1444년(세종 26)에 과거에 올라 수직으로 호조참의(戶曹參議)에 증직되었다. 김자흠의 묘소가 있는 강원도 강릉시 대전동 두호미(豆乎彌)에 있다. 화강암 비좌, 비신, 지붕돌[옥개석]로 만들어졌으며, 전체 높이는 272.5㎝이고 비신의 폭은 82㎝이다. 1971년에는 후손들이 신도비각을 건립하였다. 비각...
-
신라 하대의 왕족. 태종무열왕의 8대 손이며, 할아버지는 이찬(伊湌) 김주원(金周元), 아버지는 소판(蘇判) 김종기(金宗基)이다. 김장여(金璋如)와 형제간이고, 아들은 김양(金陽)이다. 관등은 파진찬(波珍湌)에 이르렀다. 『삼국사기(三國史記)』 김양전(金陽傳)에 의하면 김주원·김종기·김정여가 대대로 장상(將相)이 되었다고 하였으므로 그도 시중(侍中)을 비롯한 관직을 역임...
-
신라 하대의 재상. 태종무열왕(太宗武烈王)의 7대 손이며, 아버지는 이찬(伊湌) 김주원(金周元)이고, 아우는 김헌창(金憲昌)이다. 아들은 김정여(金貞茹)·김장여(金璋如)이며, 손자로는 김양(金陽)과 김흔(金昕)이 있다. 관등은 소판(蘇判)의 관등으로서 집사부(執事部)의 시중(侍中)을 역임하였다. 아버지 김주원은 신라 하대에 무열왕계의 대표적인 인물이었지만, 785년 선덕...
-
조선 후기의 문신. 김시습(金時習)의 후손으로 첨지중추부사(僉知中樞府事) 김제한(金濟漢)의 아들이다. 1814년(순조 14) 식년 문과에 올라 벼슬이 찰방에 이르렀으며, 기로소(耆老所)에 들어가 참의(參議)로 승진되었다. 성품이 순후하고 정직하였으며, 문명(文名)을 세상에 떨쳐 당시의 선비들이 모두 따랐다. 김종호(金宗虎)의 증조할아버지인 신와(愼窩) 김수붕(金壽鵬)이...
-
통일 신라 시대 왕족이며 강릉김씨의시조. 785년 선덕왕이 죽은 후에 김주원은 김경신(金敬信)과의 왕위 계승전에서 패배하여 명주(溟州)[지금의 강릉]로 퇴거(退去)하였다. 원성왕은 786년(원성왕 2)에 김주원을 명주군왕(溟州郡王)으로 책봉하고, 명주·익령(翼嶺)[지금의 양양]·삼척(三陟)·근을어(斤乙於)[지금의 평해]·울진(蔚珍) 등을 식읍으로 주었다. 이로 인하여 김주원의 후손...
-
신라 하대의 재상인 김주원이 명주군왕의 봉작(封爵)과 함께 받은 강릉 일대의 수조지(收租地). 785년 선덕왕이 죽은 후에 김주원(金周元)은 김경신(金敬信)과 왕위계승을 위한 다툼을 벌였는데, 이 과정에서 김경신이 원성왕으로 즉위하였고, 김주원은 패배하여 명주(溟州)[지금의 江陵]로 퇴거(退去)하였다. 명주는 김주원의 선대와 밀접한 관련을 맺고 있었는데, 특히 김주원의 아버지인 유...
-
고려 전기의 문신. 본관은 강릉. 명주군왕(溟州郡王) 김주원(金周元)의 후손으로 생원(生員) 김효안(金孝安)의 손자이며 참봉(參奉) 김광(金光)의 아들이다. 1071년(문종 25) 명주에서 태어났으며 1126년 이자겸(李資謙)과 척준경(拓俊京)의 반란 때 궁궐에서 불에 타 죽었다. 과거에 급제한 후에 영광군(靈光郡)의 군수(郡守)가 되어 선정을 베풀었다. 당시 안무사(按撫使) 최위...
-
조선 전기의 문신. 본관은 강릉. 자는 안국(安國). 할아버지는 김을후(金乙侯)이고 아버지는 김근(金墐)이며, 어머니는 윤씨(尹氏)이다. 1465년(세조11)에 사마시에 합격하고 1472년(성종 3)에 춘당대시(春塘臺試) 병과(丙科)에 합격하고 출사하였다. 교서정자(校書正字)를 시작으로 전중(殿中)을 지냈으며, 재주가 문무를 겸하였으므로 영안북도평사(永安北道評事)에 제수되었고 사헌...
-
조선 후기의 문신. 본관은 안동(安東). 자는 자익(子益), 호는 삼연(三淵). 좌의정 김상헌(金相憲)의 증손이고 영의정 김수항(金壽恒)의 셋째 아들이다. 어머니는 해주목사 안정나씨(安定羅氏) 나성두(羅星斗)의 딸이다. 노론(老論) 4대신의 한 사람인 김창집(金昌集), 조선 후기 호락논쟁(湖洛論爭)에서 호론(湖論)을 주장한 김창협(金昌協)의 동생이다. 삼연 김창흡은 15...
-
강원도 강릉시 난곡동(蘭谷洞)에 있는 고인돌. 오죽헌-경포간 도로 중간 지점에서 해운정(海雲亭)으로 가는 시멘트 포장도로를 따라 진입하면 여러 개의 능선이 남-북으로 길게 뻗어 있다. 이 능선들 중 저동(苧洞)의 시루봉에서 남쪽으로 손가락처럼 길게 뻗은 능선 2곳에서 석기 및 토기가 채집되었다. 능선의 말단부에는 논들이 경포호까지 연결되었고 북쪽으로는 야산이...
-
강원도 강릉시 난곡동에 있는 청동기시대의 유물산포지. 오죽헌-경포간 도로 중간 지점에서 해운정으로 가는 시멘트포장도로를 따라 진입하면 북쪽의 시루봉에서 서쪽으로 뻗어 내린 능선들 중 서지마을 쪽으로 뻗어 내린 서지골과 르메골 사이에 위치한 구릉 지역이다. 북쪽으로는 난곡동 시루뫼 유적이, 서쪽으로는 난곡동 고인돌이 각각 위치하고 있다. 다량의 적갈색 민무늬토기...
-
강원도 강릉시 옥계면 남양3리(南陽三里) 칠재마을에 있는 구석기시대의 유물산포지. 유적은 옥계 면소재지에서 남양천을 따라 약 2.7㎞ 가면 망운산의 서쪽 산자락의 칠재마을에 위치하고 있다. 칠재마을은 망운산·화산·밥봉 등의 험준한 산악 지형에 둘러싸여 있고, 그 사이 침식 계곡면에 주수천·남양천 등의 하천이 동해로 유입되고 있다. 칠재마을 산록 말단부의 경작지...
-
강원도 강릉시 옥계면 남양2리에 위치한 조선시대 백자 도요지. 와요지가 있는 남양리는 본래 강릉군 옥계면 지역으로 1916년 올밑, 진목정, 응달말, 옹구점, 흑싯골, 범울이, 영내터, 정상골, 피밀을 합하여 남양리라 했다. 도요지 이름은 마을 이름에서 유래되었다. 강원도 강릉시에서 강원도 동해시 방향으로 동해고속도로를 타고 가다 옥계톨게이트에서 내려 옥계 방...
-
강원도 강릉시 내곡동에 있는 가톨릭관동대학교와 남대천 사이에 형성된 낮은 구릉 일대에 분포하고 있는 구석기시대 유물산포지 및 유적. 강릉 내곡동에 있는 가톨릭관동대학교와 남대천 사이에 형성된 낮은 구릉 일대로서 남대천의 남쪽 하안 단구 상면 일대에 위치하는 구석기시대 유적이다. 2000년경 지표 조사를 통해 한라아파트와 조달청 사이에 위치한 지점과 가톨릭관동대...
-
강원도 강릉시 내곡동 가톨릭 관동 대학교 내에서 발견된 구석기 시대 유적지. 내곡동 유적은 강원도 강릉시 범일로579번길 24[내곡동 522] 가톨릭 관동 대학교 내 실내 체육관 및 테니스장 일대 송림 지역으로 동경 128°52´29.98˝~128°52´41.39˝, 북위 37°44´11.46˝~37°44´19.09˝이다. 이 일대는 해발 35m 내외의 평탄면...
-
강원도 강릉시 내곡동에 있는 청동기시대의 유물산포지. 강릉의 중심 하천인 남대천(南大川) 중류의 남쪽에 위치하는 내곡동 일원의 산지성 구릉지 일대에 분포하고 있다. 1990년대 초 강릉원주대학교 박물관 지표조사에 의해 신복사지(神福寺址) 동편 해발 50m 높이의 구릉 정상에서 많은 양의 청동기시대 구멍무늬토기편과 점판암제 돌화살촉이 채집되고 집자리와 관련된 숯...
-
강원도 강릉시 담산동에 있는 구석기시대의 유적. 강릉 담산동 일대로서 여러 갈래의 구릉에 지점을 달리하여 위치하는 구석기시대 유적이다. 2000년경 모산로 321 일대의 주변 구릉에 대한 지표 조사를 통해 몸돌과 격지가 발견되면서 ‘담산동 구석기시대 유적’으로 학계에 보고되어 알려지게 되었다. 이후 2006년 담산동 구석기 유물산포지 내에 있는 강릉시 담산동...
-
고려 전기의 관직. 태조가 고려를 세운 직후에 태봉(泰封)의 관계를 이어받아 919년(태조 2)부터 사용하기 시작하였다. ‘태광(太匡)’으로 표기하기도 한다. 문관과 무관에게 수여된 관계 중 실질적으로 최고위에 해당하며, 정1품 상계(上階)를 대광, 정1품 하계(下階)를 정광(正匡)이라 하였다. 고려 전기의 관계였던 대광·대승(大丞)·원보(元甫) 등은 958년(광종 9)...
-
강원도 강릉시 사천면 덕실리에 있는 청동기시대의 유물산포지. 사천면 소재지에서 좌측으로 난 콘크리트 포장도로를 따라 덕실리 방향으로 진입하여 가다가 사천천 남쪽에 위치한 덕실리 마을의 곡간 경작지대인 샘골과 덕실골 주변의 구릉 지역에 위치하고 있다. 동쪽으로는 방동리 청동기시대 유적이 위치한다. 덕실리 청동기시대 유물산포지는 2개소로, 1개소는 사천...
-
강원도 강릉시 옥계면 도직리에 있는 구석기시대의 유물산포지. 유적은 동해시와 강릉시 경계에 위치한 망운산[338m]에서 동해안으로 뻗은 단구성 구릉 말단부에 형성되어 있다. 유적지 주변에서 구석기시대 고토양층을 확인하였다. 마을의 평탄면에서 유물이 발견되었다. 석영제 돌감을 이용하여 제작한 석기가 출토되었다....
-
강원도 강릉시 연곡면 동덕리에 있는 신석기시대의 유물산포지. 태백산맥 오대산에서 발원하여 동해안으로 흘러드는 대하천인 강릉 연곡면 소재의 연곡천(連谷川) 하류 남쪽에 형성된 서에서 동으로 뻗은 해발 20m 내외의 산지성 구릉 일대에 분포하고 있다. 1997년과 1998년 사이에 강릉원주대학교 박물관 지표조사에 의해 유물이 채집되어 알려지게 되었다. 동덕리 유물...
-
강원도 강릉시 연곡면 동덕리에 있는 철기시대의 주거지 유적. 강릉 동덕리 유적은 행정구역상으로 강원도 강릉시 연곡면 동덕리 산 8-1, 8-2, 8-3번지 해발 약 5~7m 높이의 해안가 모래언덕이고, 경·위도 상으로는 북위 37°51′, 동경 128°51′에 해당된다. 유적지의 북쪽은 오대산에서 발원하여 동해안으로 흘러드는 연곡천 하구에 이르게 되는데, 연곡...
-
강원도 강릉시 연곡면 동덕리에 있는 청동기시대의 유물산포지. 동덕리 청동기시대 유물산포지는 7번국도 상에서 동덕리 좌측에 위치한 남-북으로 뻗어 내린 해발 30m의 구릉 지역이다. 구릉 북편 하단부는 연곡천 주변에 넓게 펼쳐져 있는 남평들이 위치하고 있다. 중앙에 작은 곡간지대를 사이에 두고 2개소의 유물산포지가 가까이 위치한다. 다량의 청동기시대 민무늬 토기...
-
지금의 함경남도와 강원 동북부 지역에 있었던 초기국가. 동예 지역은 처음 위만조선에 복속되어 있었는데, 서기전 108년 한(漢)나라의 침략으로 위만조선이 멸망하고, 한나라가 원산·안변 일대를 중심으로 임둔군을 설치하자 동예의 북부 지역이 그 지배하에 들어가게 되었다. 이후 서기전 82년 임둔군이 폐해졌고, 서기전 75년에는 현도군이 고구려족의 저항에 의해 군치(郡治)가...
-
고려 초기 지금의 강릉(江陵) 지역을 일컫던 지명. 강릉은 삼국시대에는 고구려의 세력권에 포함되어 313년(미천왕 14)에 하서량[河西良·阿慧羅]라고 하였다. 이후 신라에 포함되어 512년(지증왕 13)에는 하슬라주(何瑟羅州)를 설치하고 이사부(異斯夫)가 군주(軍主)로 파견되어 우산국(于山國)[지금의 울릉도]을 복속하였다. 639년(선덕여왕 8)에는 하슬라주로 북소경(北...
-
신사임당의 자녀 이매창이 그린 매화 그림과 이옥산이 그린 국화 그림. 매창(梅窓)은 신사임당[1504~1551]의 맏딸이고 옥산(玉山)은 막내아들이다. 두 사람 모두 어머니 사임당의 예재(藝才)를 받아 예능(藝能)에 뛰어난 솜씨를 가졌다. 후손인 이장희 가에 소장되어 오던 것을 1965년에 2개로 나누어 오죽헌 기념관에서 보관하고 있다가 현재는 후손이 강릉 오...
-
조선 제18대 임금 현종(顯宗)의 셋째 딸인 명안공주(明安公主)[1665~1687]와 관련된 유물. 명안공주 관련 유물은 개인 소장자가 수집한 것을 강릉시·오죽헌시립박물관에서 인수한 것이다. 현종의 셋째 딸이자 숙종의 유일한 친누이인 명안공주의 관련 유물들로 전적, 고문서, 유물 등 45점이 일괄 보물로 지정되어 있다. 전적류(典籍類)로는 현종과...
-
신라 하대 강릉을 중심으로 한 지역에 있었던 독자적인 세력. 김주원(金周元)이 명주군왕(溟州郡王)의 봉작(封爵)과 식읍(食邑)을 기반으로 하였던 일종의 제후국(諸侯國)이다. 김주원은 785년 선덕왕이 죽은 후에 김경신(金敬信)과의 왕위 계승전에서 패배하여 명주(溟州)[지금의 江陵]로 퇴거(退去)하였다. 원성왕은 786년(원성왕 2)에 김주원을 명주군왕(溟州郡王...
-
영동 지방의 중앙 및 강원도 동남부 해안에 접하여 1955년부터 1994년까지 존속했던 행정 구역. 1955년 9월 강릉군 강릉읍이 강릉시로 승격되면서 강릉군의 나머지 지역이 명주군으로 개칭되었다. 이후 인접한 양양군, 정선군, 강릉시에 명주군의 일부가 편입되었고, 1980년에 4월에는 묵호읍이 분리되어 신설되는 동해시에 통합됨으로써 명주군의 관할 구역은 계속 축소되었다...
-
강릉김씨의 시조인 명주군왕 김주원(金周元)의 묘. 신라 태종무열왕 5대 손으로 알려진 김주원이 명주군왕(溟州郡王)으로 봉(封)해졌기 때문에 왕릉이라고 한다. 신라 선덕왕(宣德王)이 후사(後嗣)없이 죽자, 신하들은 왕족 중에 김주원을 택하여 왕위에 추대하려고 했다. 그러나 마침 경주에 내린 큰 비로 강을 건너지 못해 김주원은 회의에 참석치 못하게 되었다. 신하들...
-
고려시대 22개 역도(驛道) 가운데의 하나. 983년(성종 2)에 개경을 중심으로 한 새로운 교통정책에 따라 편성한 역로(驛路)의 하나이다. 중심역은 대창역(大昌驛)[溟州]이다. 명주도의 관할 지역 범위는 강릉을 중심으로 북쪽으로 양양까지, 남쪽으로 삼척-울진-평해에 이어지는 역로와 서쪽으로 대관령을 넘어 평창-횡성에 이어지는 역로이다. 이에 속하는 역은 대창역을 비롯하...
-
강원도 강릉시 성산면 금산리에 있는 신라 하대에 쌓은 것으로 추측되는 성. 신라 하대에 원성왕과의 왕위계승 다툼에서 실패한 김주원(金周元)이 명주(溟州)[지금의 강릉]로 퇴거한 이후에 쌓은 성으로 추정된다. 강원도 강릉시 성산면 금산리 장안동에 있다. 명주성(溟州城)은 강릉시 성산면 금산리 장안동의 북쪽 구릉(122m)을 정점으로 그 남사면의 2개의...
-
강원도 강릉시 강동면 모전리에 있는 신라시대의 고분군. 구 강릉-동해간 고속도로의 군선강교에서 동해시 방향으로 800m쯤 가다 보면 도로변의 우측에 서-동으로 뻗은 지맥들 중의 하나인 앙장산이 있다. 유적은 도로변의 앙장산 동쪽 줄기의 사면에 위치하고 있다. 고분의 형식은 대부분 구덩식 돌덧널무덤으로 추정되고, 벽석을 할석을 이용하여 축조하였으며, 일부 덮개돌로 보이는...
-
강원도 강릉시 강동면 모전리에 있는 신라토기 산포지. 강원도 강릉시 강동면 모전리 마을의 농협조합 서쪽 해발 76m 구릉에서 동남쪽으로 뻗어 내린 능선 상에 위치하고 있다. 능선상에서 신라토기편이 채집되고 있다. 토기편은 일부만 남아 있어 정확한 형태를 파악할 수 없으나, 대체적으로 5~6세기의 긴 목 항아리 조각으로 추정된다. 현재 지표상에서는 관련된 유구가...
-
강원도 강릉시 강동면 모전리에 있는 청동기시대 유물산포지. 강릉에서 안인으로 가는 7번국도를 타고 가다가 모전리 방향으로 진입하면 강동초등학교가 보인다. 모전리 청동기시대 유물산포지는 강동초등학교 뒤편에 서-동 방향으로 펼쳐진 해발 48m 전후의 구릉 지역에 위치하고 있다. 유물산포지의 동쪽에는 장안성이 있으며 남쪽에는 군선강이 흐르고 있다. 구릉 정상부 민묘...
-
통일 신라 시대의 귀족. 아버지는 사인(思仁)이고, 아들은 김주원(金周元)이다. 부인은 연화부인(蓮花夫人) 박씨(朴氏)이다. 774년(경덕왕 3) 정월에 이찬(伊湌)으로 시중(侍中)이 되었는데, 745년 정월 아버지 사인이 상대등(上大等)에 임명된 직후인 5월에 천재지이(天災地異)를 이유로 관직을 사퇴하였다. 무월랑은 명주(溟州)[지금의 강릉]지방의 세력가인 박씨와 혼인...
-
강릉시 오죽헌 시립 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는 1513년(중종 8)에 실시한 문과·무과·잡과에 급제한 사람들의 명단. 사마방목(司馬榜目)은 옥산서원 소장의 『정덕계유사마방목(正德癸酉司馬榜目)』[보물 제524호]이 유일한 진본이고 문무잡과방목(文武雜科榜目)으로는 강릉시 오죽헌 시립 박물관 소장의 『문무잡과방목(文武雜科榜目)』이 유일한 진본이다. 1513년 문무잡과시(文武雜科試...
-
강원도 강릉시 사천면 미노리에 있는 청동기시대의 고인돌 유적. 강릉시 사천면사무소에서 동북쪽으로 본동 가는 시멘트 포장길을 따라 1.2㎞ 정도 가면 도로 우측 옆에 고인돌(1호)의 덮개돌이 갈라져 있고 이곳에서 북쪽의 보매기 능선에서 고인돌 3기(2, 3, 4호)가 동-서로 나란히 위치해 있다. 유적이 위치한 북쪽에는 사천들과 사천내가 있고, 북쪽 건너편 구릉...
-
강원도 강릉시 사천면 미노리에 있는 청동기시대의 주거지 유적. 미노리 유적은 행정구역상으로 강원도 강릉시 사천면 미노리 산 47번지 일원이며, 경·위도 상으로는 북위 37°52′, 동경 128°48′에 위치하고 있다. 유적은 강릉에서 7번국도를 따라 주문진 방향으로 북상하다 보면 사천면 사무소를 조금 못 미쳐 우측에 강릉 아산병원이 위치하고 있으며, 이 아산병...
-
강원도 강릉시 사천면 미노리에 있는 청동기시대의 유물산포지. 미노리 청동기시대 유물산포지는 강릉 사천천 남쪽 구릉 지대로 구릉의 하단부에는 곡간 경작 지대가 펼쳐져 있어, 청동기시대 유적이 위치하기에 매우 좋은 입지적 조건을 갖춘 지역이다. 이 지역에는 4개소의 유물산포지가 인접하여 위치하고 있다. 강릉 사천천변 남쪽 해발 25~40m 전후의 구릉...
-
조선 중기의 문신. 본관은 강릉. 자는 대관(大觀), 호는 강호(江湖)·사지(四止). 부친은 박시행(朴始行)이고, 모친은 영양남씨(英陽南氏)로 진사 남과(南薖)의 딸이다. 26세 때인 1495년(연산군 1)에 생원이 되었으나, 수신(修身)과 독서에만 힘쓸 뿐 벼슬에는 뜻이 없었다. 1516년(중종 11) 가을 금강산에 유람 왔던 충암(冲庵) 김정(金淨)이 박공달(朴公達)을 만나보고...
-
조선 중기의 문신. 본관은 강릉. 자는 군거(君擧), 호는 삼가정(三可亭). 부친은 교수(敎授) 박승휴(朴承休)이고, 모친은 영해이씨 감찰(監察) 이중원(李仲元)의 딸이다. 1504년(연산군 10)에 진사시에 합격하였으나 모친상을 당한 뒤로는 과거에 응시하지 않았다. 1518년(중종 13) 7월 현량(賢良)으로 천거되어 충청도사(忠淸都事)와 용궁현감(龍宮縣監)을 거쳐 사섬시주부(司...
-
조선 중기의 문신인 박수량(朴遂良)[1474~1546]의 묘비. 삼가 박수량은 1474년(성종 6) 강릉에서 출생한 인물로 현량과에 피천되어 용궁현감을 지냈다. 1814년(순조 14) 박수량의 행적을 기리고 후대에 보전하기 위해 후손들이 세웠다. 강원도 강릉시 사천면 방동하리 박수량 효자각 안에 효자비, 효자각기와 함께 있다. 효자각 옆에는 쌍한정이 있다. 비...
-
강릉 경포대를 건립한 고려 후기의 지방관리. 1326년(충숙왕 13) 박숙정이 존무사(存撫使)로 강원 영동 지방을 순행할 때 강릉 경포대를 건립하였다고 한다. 박숙정이 건립한 경포대는 현재 전해지는 경포대가 아니다. 즉 그가 경포대를 건립한 곳은 현재 경포현대아파트 옆 인월사 뒤 높은 대(臺)에 세웠다. 이곳에서 현재의 위치로 이건한 것은 조선 중종 때 강릉부사 한급에...
-
조선 전기의 문신. 박제상의 후손으로, 아버지는 회양교수를 지낸 박영근(朴榮根)이고 어머니는 강릉최씨 사직(司直) 최방(崔滂)의 딸이다. 박승소(朴承紹), 박승서(朴承緖), 박승필(朴承弼) 등 3명의 동생을 두었다. 부인은 영해이씨 이중원(李仲元)의 딸이다. 기묘사림이며 효자정려를 받았던 박수량(朴遂良)의 아버지이다. 강원도 강릉시 시루봉길68번길 18[난곡동...
-
조선 전기의 문신. 자는 자소(子昭). 강릉박씨 양주파(襄州派)의 파조이다. 고조는 박연(朴演)으로 고려 때에 국자박사(國子博士)였고, 증조 박지계(朴之桂)는 고려 때에 예문관제학참지정사(藝文館提學參知政事)를 지냈다. 조부는 박자검(朴自儉)으로 조선 세종 때에 단천군수를 지냈다. 아버지는 박중신(朴中信)으로 세종 때에 문과에 급제하여 영흥판관(永興判官)을 지냈고 이조참판(吏曹參判)...
-
조선 전기의 무신. 고조는 고려 때 국자박사(國子博士)였던 박연(朴演), 증조는 고려 때 예문관제학참지정사(藝文館提學參知政事)를 지낸 박지계(朴之桂)이다. 조부는 박자검(朴自儉)으로 조선 세종 때에 단천군수를 지냈다. 세종 때에 문과에 급제하여 영흥판관(永興判官)을 지낸 박중신(朴中信)이 아버지이다. 어머니는 강릉김씨 김예(金輗)의 딸과 광주이씨 이초지(李初之)의 딸이다. 박시창(...
-
조선 전기의 무신. 호는 수암(修庵). 고려 때에 국자박사(國子博士)를 지낸 박연(朴演)이 고조이고, 고려 때에 예문관제학참지정사(藝文館提學參知政事)를 지낸 박지계(朴之桂)가 증조이다. 할아버지는 박자검(朴自儉)으로 조선 세종 때에 단천군수를 지냈다. 아버지는 세종 때에 문과에 급제하여 영흥판관(永興判官)을 지냈고 이조참판(吏曹參判)에 증직된 박중신(朴中信)이다. 어머니는 강릉김씨...
-
조선 전기의 문신. 본관은 강릉. 아버지는 박중신(朴中信)이고, 어머니는 영양남씨 남매(南邁)의 딸이다. 형으로는 박시원(朴始元), 박시창(朴始昌), 박시형(朴始亨)이 있다. 1468년(예종 즉위년)에 생원시에 급제하고, 이듬해에 추장시(秋場試)에 올라 벼슬이 장악원정(掌樂院正)에 이르렀다. 젊었을 때 강릉의 기생 옥반주(玉盤珠)와 서로 사랑하였다. 감사(監司)가 강릉에 머물 때...
-
조선 전기의 문신인 박시행(朴始行)의 묘비. 박시행의 자는 가원(可遠), 호는 송계당(松桂堂)이다. 1468년(세조 14)에 생원에 올라 평창훈도(平昌訓導)를 지냈으며, 1469년에 문과에 합격하여 홍문관교리(弘文館校理)를 거쳐 부응교(副應敎)·사헌부장령(司憲府掌令)·장악원정(掌樂院正)을 지냈다. 그리고 고성(高城)·영월(寧越)·안변(安邊) 및 금교찰방(金郊察訪)을 지내...
-
조선 후기의 선비. 아버지는 학생(學生) 박상의(朴尙義)이다. 박시혁(朴時赫)[1747~?]은 순조 4년(1804) 식년생원에 1등으로 입격하였다. 합격 당시 나이는 57세였으며 직역은 유학(幼學)이었다. 박시혁에 대한 기사는 『증수임영지(增修臨瀛誌)』인물조에 기재되어 있다....
-
조선 전기의 문신. 본관은 강릉. 아버지는 박중신(朴中信)이고, 어머니는 김지(金祉)의 딸이다. 박시원(朴始元), 박시창(朴始昌)이 형이고 박시형(朴始亨)이 동생이다. 1456년(세조 2)에 생원·진사시에 동시에 합격하였고, 1459년에 발영시(拔英試)에 급제하여 사헌부 장령, 호조좌랑, 홍문관 박사·교리, 동부승지, 안동부사, 예문관직제학을 역임했고 후에 후원공신(厚原功臣)에 올...
-
조선 후기의 문신. 본관은 밀양(密陽). 자는 화경(華卿). 증조부(曾祖父)는 이조참판 박이서(朴彛敍)이고 조부(祖父)는 병조참판 박노이며 아버지는 초정공(草亭公) 박수현(朴守玄)이다. 1666년(현종 7) 식년문과(式年文科)에 급제(及第)하여 권지부정자(權知副正字)를 시작으로 저작박사(著作博士), 성균관전적(成均館典籍), 감찰(監察), 예조좌랑(禮曹左郞), 정언(正言), 병조좌랑...
-
신라 하대의 재상인 김주원(金周元)의 가신(家臣). 785년 선덕왕이 죽은 후에 김주원은 김경신(金敬信)과 왕위계승을 위한 다툼을 벌였는데, 이 과정에서 김주원이 패배하고 김경신이 원성왕으로 즉위하였다. 이때 박영은 최대나(崔大奈)·함신(咸信)·곽길(郭吉) 등과 함께 왕궁으로 들어가 거사(擧事)를 도모하려 하였으나 김주원이 허락하지 않아 실패하였다. 김주원이 명주(溟州)...
-
조선 전기의 선비인 박영근(朴榮根)[1427~1497]의 묘갈. 박영근의 자는 영숙(英叔)으로 영민하고 문장이 뛰어났으며 22세에 사마시에 올랐으나 병으로 고향에 내려와 후학을 양성하면서 관직에는 나가지 않았다. 최방(崔滂)의 딸을 아내로 맞이하여 4남 1녀를 낳았는데, 아들은 박승소(朴承紹), 박승휴(朴承休), 박승서(朴承緖), 박승필(朴承弼)이다. 넷째 아들 박승필이...
-
1666년(현종 7)에 강릉에서 일어난 살인 사건. 박옥지(朴玉只)의 아버지 박귀남(朴貴男)이 온몸이 썩어 문드러지는 병에 걸리자, 박옥지의 남편 어말남(於末男)이 산골짜기에다 초막(草幕)을 짓고 그곳에 박귀남을 데려다 두었다. 그러나 그 병이 집안에 전염될까 두려워 한 박귀남의 처 난개(難介)가 박옥지와 어말남 및 박옥지의 아들 어둔금(於屯金)과 모의하여 박귀남을 결박...
-
고려 후기의 문신. 본관은 영해(寧海). 할아버지는 박문규(朴文圭)이고 아버지는 박관(朴琯)이다. 1301년(충렬왕 27)에 문과에 급제하였다. 전주목사록겸장서기(全州牧司錄兼掌書記)를 거쳐 권지전교교감(權知典校校勘)이 되었다. 충선왕이 원나라 연경에 있을 때는 예문관검열로서 왕을 보좌하였다. 1335년(충숙왕 복위 4)에 감찰장령(監察掌令)이 되어서는 기강을 바로 잡은 공으로 집의...
-
강원도 강릉시 박월동의 원주~강릉 간 고속 철도 부지에서 조사된 구석기 유적지. 박월동 구석기 유적이 발견된 곳은 2018 평창 동계 올림픽을 대비하기 위해 건설되는 원주~강릉 간 고속 철도 건설 예정 부지 중 11-2공구에 해당하며, 행정 구역상으로는 강릉시 구정면 학산리 1260번지 일원과 박월동 산 90번지 일원이다. 원주~강릉 간 고속 철도...
-
조선 전기의 문신. 박제상의 후손이며 종성부사(鍾城府使) 박희유(朴希有)의 5대손으로 중서령 박종대(朴從台)의 증손이며 할아버지는 전객(典客)인 박령연(朴令演)이다. 아버지는 참지정사인 박지계(朴之桂)이며 어머니는 강릉김씨(江陵金氏)로 김언지(金彦之)의 딸이다. 1364년에 태어나 80세에 세상을 떠났다. 충효를 잘 실천하였고 백성들에게는 덕을 세우는 데에 힘써서 백성들...
-
조선 중기의 문신. 본관은 강릉. 자는 형부(亨夫), 호는 송곡(松谷). 박제상의 후손으로 생원인 박중경(朴中敬)의 5대손이다. 훈도(訓導)인 박영식(朴榮植)의 증손이며 할아버지는 박곤강(朴崑岡)이다. 아버지는 진사인 박유검(朴有檢)이며 어머니는 밀성김씨(密城金氏)로 사어(司禦)인 김충일(金忠一)의 딸이다. 박정원(朴貞元)은 삼가정(三可亭) 박수량의 종질(從姪)로서 15...
-
조선 중기의 문신인 박정원(朴貞元)의 묘비. 박정원은 박수량(朴遂良)의 종질(從姪)로서 1506년(중종 1)에 태어났으며 1534년에 생원에 합격하고 1542년에 문과에 급제하여 홍문관교리, 남학교수(南學敎授) 등을 지냈다. 비석은 1850년에 세워졌는데, 임진왜란 때에 거의 모든 문헌이 없어져 박정원의 관직과 연수(年壽)도 전해지지 않았다. 이에 11대 손인 박경로(朴...
-
조선 전기의 문신. 박제상의 후손이다. 문과부정(文科副正) 박연(朴演)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박지계(朴之桂), 아버지는 단천군사(端川郡事)를 지낸 박자검(朴自儉)이다. 어머니는 지제교(知製敎)를 지낸 밀성김씨(密城金氏) 김지(金祗)의 딸이다. 1447년(세종 29)에 생원에 입격하였으며 군위현감과 영월군수를 지냈다. 수헌(睡軒) 최응현(崔應賢)이 「취옹가기(醉翁家記)」를...
-
조선 전기의 문신. 자(字)는 숙립(叔立). 할아버지는 봉선대부서운부정(奉善大夫書雲副正) 박지계(朴之桂)이다. 아버지는 통정대부 지단천군사(通政大夫 知端川郡事)를 지낸 박자검(朴自儉)이며 어머니는 봉정대부 봉상부령지제교 겸 예문춘추관편수관 성균직강(奉正大夫 奉常副令知製敎 兼 藝文春秋館編修官 成均直講) 밀성김씨 김지(金祗)의 딸이다. 먼저 강릉김씨 김예(金輗)의 딸을 아내로 맞이하였...
-
조선 전기의 문신인 박중신(朴中信)이 1438년(세종 20) 식년문과시(式年文科試)에 정과(丁科)로 합격하고 국가로부터 받은 합격 증서. 발급 시기는 1438년(세종 20)이다. 수급자는 단천 군수(端川郡守)를 지낸 박자검(朴自儉)의 아들 강릉박씨 박중신(朴中信)이다. 박중신은 1390년 강릉에서 출생하여 1438년에 문과에 급제하여 영흥판관(永興判官) 등을 역임하였으나, 부모를...
-
조선 전기의 문신. 할아버지는 고려 말 참지정사(參知政事)를 지낸 박지계(朴之桂), 아버지는 1392년(태조1) 문과에 급제하고 단천군수를 지낸 박자검(朴自儉)이다. 어머니는 밀성김씨로 봉상부령(奉常副令) 김저(金袛)의 딸이다. 박중실(朴中實)은 박자검(朴自儉)의 장남이었고 동생으로는 판관이었으며 이조참판에 증직된 박중신(朴中信)과 군수를 역임한 박중경(朴中敬)이 있다. 박중실(朴...
-
고려 후기의 문신. 본관은 강릉. 아버지는 박연(朴演)이다. 충숙왕 때 문과에 급제하여 예부좌랑(정5품)을 거쳐 서운관 부정(종3품), 예문관제학과 참지정사(參知政事)에 올랐다. 공민왕이 최만생·홍륜 등에게 살해당하고 정몽주·김구용 등이 유배되었을 때 박지계도 9년 동안 귀양살이를 했다. 복권된 뒤 정몽주의 천거로 조정에서 여러 차례 불렀으나 응하지 않고 학문에만 전념했...
-
고려시대 특정한 공물을 생산하던 곳. 향(鄕)·부곡(部曲)·장(莊)·처(處)와 함께 부곡제(部曲制) 지역을 구성한다. 생산물의 종류에 따라 금소(金所)·은소(銀所)·동소(銅所)·철소(鐵所)·지소(紙所)·자기소(磁器所)·염소(鹽所)·묵소(墨所) 등이 있었다. 소는 향·부곡이 신라시대부터 있었던 것과는 달리, 고려시대에 들어와 특정 공물을 확보하기 위해 설정된 것으로 여겨진다. 소가...
-
강원도 강릉시 연곡면 방내리 유적에서 출토된 청동기시대에 절구 구실을 한 분말용 도구. 한 세트를 이루어 ‘연석(碾石)’이라고 불리며, 나무 열매나 곡물의 껍질을 벗기거나 가루를 만들기 위한 곡식 가공 도구이다. 돌로 만들어진 갈판 위에 절굿공이나 갈돌을 이용해 상하 또는 좌우로 움직여서 식량 재료를 얻는 원시적인 방아 연장으로 확독·맷돌이라고 할 수 있다. 우리나라에서...
-
강원도 강릉시 연곡면 방내리에 있는 삼국시대 고분군. 연곡면사무소의 서쪽과 북쪽 구릉일대에 수십기의 고분들이 분포하고 있다. 고분군 위치하고 있는 곳은 서쪽의 태백산맥 줄기들이 서에서 동으로 뻗어 내린 해발 30~40m 높이의 낮은 구릉지대로, 동쪽으로는 영진리 고분군과 동해바다와 접하고 남쪽으로는 연곡천(連谷川)이 흐르고 있다. 1993년에 발굴이 이루어져...
-
강릉시 연곡면 방내리에 있는 고대의 토성. 보통 방내리성(坊內里城)으로 불리는 토성으로 고허성(稿虛城), 교허성(校虛城)이라고도 불린다. 이 성은 고현성(古縣城)의 성격을 갖는 성곽이며 또한 인근에 서원이 있었던 것으로 보아 후에 교허성(校虛城)으로 불렸을 가능성이 높다. 그러므로 ‘고허성(稿虛城)’이라기 보다는 ‘교허성(校虛城)’으로 불리는 것이 타당해 보인다. 성(城...
-
강원도 강릉시 연곡면 방내리에서 출토된 청동기시대 토기. 구멍무늬토기[공렬문토기(孔列文土器)]란 토기의 아가리 아래에 구멍을 연속하여 새긴 토기로서, 소위 골아가리무늬[구순각목문(口脣刻目文)]가 새겨진 토기와 함께 역삼동식토기(驛三洞式土器)라고도 불린다. 한반도에서는 팽이모양토기[각형토기(角形土器)]의 주분포지인 평안남도와 황해도를 제외한 전 지역에서 출토되며, 한반도...
-
강원도 강릉시 연곡면 방내리에 있는 신라시대의 고분군. 방내리 고분군은 강릉에서 주문진으로 올라가는 7번국도변의 홍질목고개의 서쪽 일대에 해당하며, 원래는 영진리 고분군과 같은 구릉 상으로 이어졌던 것으로 보인다. 1990년대에 방내리에서 청동기시대 주거지와 함께 7기의 신라시대 고분이 조사되었는데, 유구의 대부분은 파괴가 심하여 정확한 구조를 파악하기 힘들다...
-
강원도 강릉시 연곡면 방내리에 있는 청동기시대의 주거지. 강릉-속초간 7번국도를 따라 북상하여 연곡면 홍질목고개를 넘어 도로의 좌측으로 200m, 주문진 남쪽 약 2㎞ 떨어진 해발 35~45m의 낮은 구릉상에 위치한다. 유적의 동쪽으로는 영진리와 인접하고 남쪽으로는 오대산 진고개에서 발원하여 동해로 유입되는 연곡천이 흐르고 있으며, 연곡천 하류역에는 비교적 넓...
-
강원도 강릉시 사천면 방동리에 있는 청동기시대의 고인돌. 강릉 사천면의 중심 하천인 사천천(沙川川) 중하류의 남쪽에 복잡하게 형성된 태백산맥 줄기인 산지성 구릉지 네 곳에 각각 분포하고 있다. 강릉병원에서 산으로 난 소로를 따라 방동상리 방향으로 약 600m 정도 내려오면 홍형표 씨 댁이 있는데, 이 가옥 뒤 구릉에 1기의 고인돌이 있다. 고인돌의...
-
강원도 강릉시 사천면 방동리에 있는 청동기시대의 주거지 유적. 방동리 유적은 강릉시 사천면 방동리 산 90임 외 16필지에 해당하며, 강릉 과학일반지방산업단지 조성으로 인하여 형질이 변경되는 지역으로 경·위도 상으로는 북위 37°48′, 동경 128°51′에 위치하고 있다. 동 지역은 강릉에서 주문진 방향으로 7번국도를 따라 약 3~4㎞ 정도를 가다보면, 우측...
-
강원도 강릉시 사천면 방동리에 있는 청동기시대의 생활유적. 강릉에서 속초 방향으로 7번국도를 따라 좌측에 위치한 구릉 지역이다. 방동리 일대는 태백산맥에서 뻗어 내린 해발 100m 내외의 구릉들이 발달해 있으며, 이 구릉에서 청동기시대 유물산포지, 고인돌 등 많은 선사유적들이 폭넓게 분포하고 있다. 사천면 방동리 유적은 강릉 과학산업단지 조성 지역에...
-
강원도 강릉시 사천면 방동상리에 있는 고인돌. 강릉시 강릉병원에서 산으로 난 통로를 따라 방동상리 방향으로 600m 정도 내려오면 홍형표씨 댁이 있고, 이 집 뒤 구릉 꼭대기에 고인돌이 위치하고 있다. 고인돌의 덮개돌의 크기는 길이 250㎝, 폭 165㎝, 두께 30㎝이다....
-
강원도 강릉시 병산동에 분포하고 있는 신라고분군. 강릉시 남대천 하류 남쪽의 충적 사구지대와 산지성 구릉지에 각각 위치한다. 고분군의 남쪽으로는 병산동 마을과 섬석천 위치하고 병산들이 넓게 펼쳐져 있고, 북쪽으로는 대관령에 시작한 낮은 구릉이 끝맺고 있으며, 두산들이 형성되어 있다. 1997년 공항대교 접속도로 건설부지 내에서 고분유적이 파괴된 상태로 발견되어...
-
강원도 강릉시 병산동 고분군에서 출토된 은제관식. 삼국시대에는 신분을 나타내거나 특별한 의식을 집행할 때 그 권위를 상징하는 관과 관장식을 착용하였다. 삼국시대의 관은 대체로 금으로 제작된 것이 많으나 금동제, 은제, 백화수피제 관모도 상당수 발견되고 있으며, 나라마다 제작 수법과 특징이 다르다. 출토된 관식은 몸통과 날개를 따로 제작하여 연결하였던 것으로 보이며. 초당...
-
강원도 강릉시 병산동에서 출토된 철솥. 1998년 병산동 9호묘에서 약 100여점의 신라토기와 함께 출토되었으며, 음식을 조리할 때 사용된 것으로 추정된다. 삼국시대 이전에는 주로 흙솥을 사용하여 음식을 조리하였으나, 경주의 황남대총 남분, 전 미추왕릉 7지구 5호묘, 양산부부총 등의 무덤에서 철솥이 출토된 것으로 보아 5세경부터는 신라에서도 철솥이 사용된 것을 알 수...
-
강원도 강릉시 병산동 신라고분에서 출토된 토기장군. 장군[횡부(橫缶)]은 고분에 부장되는 도질토기(陶質土器)의 한 기종이다. 삼국시대 백제와 가야 지역에서만 출토되는 것으로 알려졌으나 최근 신라 지역에서도 출토되고 있다. 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는 예는 꽤 많이 있지만 발굴조사를 통해 출토지를 확인할 수 있는 예는 극소수에 불과해 그 출현과 전개 양상을 알기 어렵다. 200...
-
강원도 강릉시 병산동에 있는 철기시대 주거유적 및 신라시대 고분유적. 병산동 유적은 행정구역상 강원도 강릉시 병산동 329번지, 320-3번지 일대에 분포하고 있으며, 지난 1998년 공항대교 접속도로 부지에서 조사된 유적과 인접하고 있다. 동 지역은 강릉시의 동남쪽 끝부분에 해당되며, 남쪽으로 섬석천과 병산뜰이 넓게 펼쳐져 있고, 북쪽으로는 대관령에서 발원한...
-
강원도 강릉시 병산동에 있는 철기시대 및 신라시대 주거유적. 병산동 철기시대 유적은 행정구역상 강원도 강릉시 병산동 320번지 일대로 현재는 공항대로 접속도로가 개설된 지역이다. 경·위도 상으로는 북위 46°30′, 동경 128°65′에 위치한 지역이다. 동 지역은 강릉시의 동남쪽 끝부분에 위치하며 남쪽으로는 섬석천과 병산뜰이 넓게 펼쳐져 있고, 북쪽으로는 대...
-
강원도 강릉시 옥천동에 있는 조선 초기 권사균(權士均)이 별당으로 지은 건물. 권사균의 자는 공보(公父), 호는 보진당(葆眞堂)이다. 권사균은 1484년(성종 15)에 태어났으며, 시조는 권행(權幸)이다. 권사균은 학문과 문장이 사림들 가운데 뛰어나 중종반정 다음 해인 1506년(중종 1)에 사마양시에 합격하였다. 성균관에 입학하여 문장과 덕행으로 추중(推重)...
-
강원도 강릉시 지역에서 봉(熢)과 수(燧)로 변경의 급한 보고를 중앙에 전했던 고대의 통신 방법. 봉수는 군사적인 목적을 띤 통신망이고, 행정 기능 중심인 역제와는 달리 양반 관료들에게 사적으로 이용되지 못하고 변경 지방이나 국경 지방으로부터 일방적으로 중앙에 연락하는 통신 방식으로서 그 특수성과 한계성을 지니고 있었다. 중국의 통신 및 교통 제도 가운데 남송의 파포제,...
-
강릉 지역의 옛 명칭. 신라의 국가 발전과정에서 동북방면으로 진출하여, 지금의 강릉 지역은 신라의 영토에 편입되었다. 그리하여 신라는 512년(지증왕 13)에 하슬라주(何瑟羅州)를 설치하였으며, 639년(선덕여왕 8)에는 북소경(北小京)을 두었다가, 658년(태종무열왕 5)에 에는 소경을 폐지하고 다시 주를 설치하였다. 삼국통일 후 685년(신문왕 5)에 전국...
-
강원도 강릉 지역에 설치되었던 지방 특별행정구역. 신라시대에는 지방제도로서 주군제도와는 별도로 특수행정구역으로 왕경을 모방한 소경(小京)을 설치하였다. 주군이 군정적 거점으로서의 성격이 강한 데 비해 소경은 주로 정치적·문화적 중심지로서의 성격이 강하였으며 주군을 견제·감시하는 기능도 가지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통일신라의 지방통치조직은 삼국통일에 따른 영토...
-
신라시대 동북쪽 변경을 방어하기 위하여 설치하였던 군사행정구역. 『삼국사기(三國史記)』에 의하면 삼국시대인 658년(무열왕 5)에 하슬라(何瑟羅)[지금의 강릉] 지역이 말갈(靺鞨)과 맞닿아 있어 백성이 편안하지 못하다는 이유로 이곳에 설치되었던 북소경(北小京)을 폐지하여 주(州)를 설치하고 도독(都督)을 두어 지키게 하였으며, 실직(悉直)[지금의 삼척]으로 북진을 삼았다...
-
강원도 강릉시 사천면 사기막리 용수골에 위치한 조선시대 백자 도요지. 사기막리 백자 도요지[용수골]는 1984년 10월 사천천 상류 지역의 관개용수용 저수지를 만들기 위한 공사 시 주변 간이도로공사로 인해 도요지 유구가 파괴되면서 발견되었다. 이후 관동대학교 박물관에 의해 수습 조사되면서 소개된 유적이다. 그러나 발견당시 도요지의 수습 조사 이외의 조사는 이루...
-
신라시대 영랑(永郞)·술랑(述郞)·남랑(南郞)·안상(安詳) 등 네 국선(國仙). 인재를 선발하고 관리를 양성하기 위해서 진흥왕대에 제정된 화랑도(花郞徒)는 15~18세 사이의 청소년으로 조직되어 보통 3년 정도 수련하였다. 『삼국사기(三國史記)』「신라본기」 진흥왕 37년에는 “도의(道義)로써 서로 연마하고 혹은 노래와 음악으로 서로 즐겼으며, 산천을 찾아 노닐고 즐겨 멀리 이르지...
-
조선시대 향촌 사회 운영을 주도한 세력. 사족은 조선 사회의 지배계층으로서 향촌 내에서 통혼권과 학맥의 형성, 농장 소유로 인한 경제적 토대 마련 등을 통해 지역적 기반을 확고히 하였다. 동시에 과거급제를 통한 정계진출과 조선시대 국가통치 이념인 성리학적 지배질서를 지역사회에 구축하면서 향촌사회 운영을 주도하였다. 조선 초기에 향촌세력은 향리를 중심으로 한 이족과 고려 말 품관을...
-
강원도 강릉시 사천면 사천진리에서 발굴된 선사 및 역사 시대의 유적과 유물이 함께 분포하는 복합 유적. 사천진리 유적은 강원도 강릉시 사천면 사천진리 산 43-2번지 일원의 강릉 메리츠 화재 해상 보험 연수원 건립 예정 부지 내에 있다. 2012년 무렵 메리츠 화재 해상 보험에서 강릉 연수원 건립 계획에 따라, 본격적인 공사에 앞서 국강 고고학 연구소에서 문화...
-
강원도 강릉시 사천면 판교리 사화산에 위치한 봉수.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에 남쪽으로 소동산(所同山)에 응하고 북쪽으로 주문산에 응한다고 기록되어 있다. 『대동여지도』상에는 백두대간의 곤신봉에서 갈라진 동으로 벋은 지맥이 지금의 성산면 보현산[일명 대궁산][1,000m]을 거쳐 동쪽으로 낮아지면서 해안가에서 낮은 잔구 형태로 끝나는 봉우리에 위치...
-
강원도 강릉시 사천면 산대월리에 있는 청동기시대의 유물산포지 산대월리 청동기시대 유물산포지는 구릉의 남쪽 경사면에 민가 1채가 있고, 민가 우측의 넓은 밭과 해발 35m 구릉 정상부에서 청동기시대 적갈색 연질토기편이 지표채집되었다. 민묘 뒤쪽에서 집자리의 유구층과 적갈색연질토기편이 다수 채집되었다. 강릉시 안현동과 사천면 산대월리의 경계지점에서 약...
-
조선 전기의 문신·학자. 본관은 대구(大丘). 자는 강중(剛中), 호는 사가정(四佳亭)·정정정(亭亭亭). 호조전서(戶曹典書) 서의(徐義)의 증손으로, 목사(牧使) 서미성(徐彌性)의 아들이며, 어머니는 권근(權近)의 딸이다. 1438년(세종 20) 생원·진사 양시에 합격하고, 1444년 식년문과에 급제하여 사재감직장(司宰監直長)에 제수되었다. 그 뒤 집현전박사·경연사경(經筵司經)이...
-
강원도 강릉시 사천면 석교리에 있는 고려시대의 토성. 석교리 성지의 석교리라는 명칭은 사천천에 있었던 석교(石橋)에서 유래한다. 석교리는 사천면 북단에 위치하며 석교리 성지는 석교리의 제일 서쪽 부분에 해당된다. 최근 지표조사를 통하여 석교리의 윗구라미 지역에서 청동기시대의 석기(石器)와 집자리 단면이 확인되기도 하였다. 석교리 지역의 북서부는 해발...
-
강원도 강릉시 사천면 석교리에 있는 청동기시대의 유물산포지. 석교리 청동기시대 유물산포지는 모두 4개소이다. 유물산포지 2개소는 강릉-주문진간 7번국도에서 구라미천을 건너서 국도 바로 좌측에 위치한 구라미휴게소 좌측에 북-남으로 뻗은 구릉 지역에 인접하여 위치한다. 다른 유물산포지 2개소는 위의 유물산포지에서 서쪽으로 약 2㎞ 정도에 위치한 윗구라미 지역으로...
-
강원도 강릉시 강동면 하시동리에 있는 한송정(寒松亭)에 있었던 신라시대의 다구(茶具). ‘석조(石竈)’는 차를 달이던 도구로서 돌로 만든 아궁이라는 뜻이다. 『증수임영지(增修臨瀛誌)』에 ‘한송정에 석조(石竈)와 석지(石池), 석정(石井)이 있었는데 세상 사람들이 신라의 선인(仙人) 영랑(永郞)이 차를 달이던 도구들이라 하였다.’라는 내용이 있다. 현재 한송정에는 돌우물과...
-
역사 기록이 남아 있지 않은 시대의 유적과 유물. 보통 이 용어 속에는 고고학에서 다루는 석기시대, 청동기시대로 생각되고 있으나, 현존하고 해독이 가능한 문헌사료가 나타나는 시대는 지역에 따라 다르고 또 그 시대의 문화 사회 경제의 발전단계도 각양각색이니만큼, 이 용어의 개념은 상당히 막연하게 쓰이고 있다. 이 시기에 형성된 유적을 선사유적, 발견된 유물을 선사유물이라 정의한다....
-
인간이 살던 모든 형태의 살림 유적. 인간활동의 대부분은 집을 중심으로 이루어지는데 집이란 비, 바람, 맹수로부터 보호해 주며 인간생활의 근간이 되는 곳이다. 따라서 집터〔住居址〕란 인류가 지구상에 출현한 후 그들이 생활하며 남긴 구조물이나 유물을 통해서 당시의 생활상을 복원할 수 있는 종합적이고 복합적인 유적이다. 현재 우리 나라의 주거양식의 대표적인 기와집이 등장하는 시기는 고...
-
강원도 강릉시에 있었다고 전해지는 화랑 설원랑(薛原郞)을 기념하기 위해 세운 비. 화랑도는 수련 중에 “산천을 찾아 노닐었는데, 먼 곳까지 가지 않은 곳이 없었다(遊娛山水 無遠不至)”고 하였다. 산천은 젊은 화랑 무리의 수련의 근거지가 되었던 곳이다. 이들은 수련 기간 동안 경주 부근의 남산을 비롯하여 금강산, 지리산 혹은 최근에 알려진 울산군 두동면 천전리 계곡과 같은...
-
조선 중기의 문신. 본관(本貫)은 진주(晉州). 자(字)는 망여(望汝), 호는 월주(月洲). 부(父)는 소동명(蘇東鳴), 조부(祖父)는 소억선(蘇億善), 증조부(曾祖父)는 소건(蘇建), 장인은 권식(權植)이다. 1652년(효종 3) 진사가 되고, 1660년(현종 1) 식년문과에 장원, 전적을 거쳐 1663년 정언·지평이 되었다. 직언 때문에 권신의 비위에 거슬려 외직으로 전전하였다...
-
고려시대 강릉 지역에 있었던 특수한 지방 행정구획. 부곡은 향(鄕)·소(所)와 함께 군현(郡縣)에 임내(任內)로 예속되었으며, 거주민은 군현민에 비해 신분적으로 차별 대우를 받았다. 고려시대 사람들은 대개 거주지인 본관의 이름을 붙여 명주 사람, 처인부곡 사람 등으로 불렀다. 언뜻 보기에는 오늘날과 별로 다를 바가 없는 듯이 보인다. 그러나 그 사람의 본관(本貫)이 군현에 소속되었...
-
강원도 강릉시 연곡면 송림리에 있는 고인돌. 연곡-소금강 간 6번국도 약 2.3㎞ 지점 우측(북측)에 민석동마을이 위치한다. 민석동마을에서 북쪽 가마골로 이어지는 소로의 좌우측 구릉에서 토기 조각이 채집되었고, 우측 구릉과 인접한 구릉의 저부에는 고인돌이 위치하고 있다. 구릉의 바닥에서 발견된 고인돌 1호는 덮개돌이 밀린 상태로 동-서 방향으로 놓여 있고, 덮...
-
강원도 강릉시 연곡면 송림리에 있는 청동기시대의 유물산포지. 연곡천(連谷川) 중류역 북편에 소재한 송림리 민석동마을의 북쪽 가마골에서 주문진 교항리 금융동으로 이어지는 소로의 좌우측에 있는 해발 40~60m의 산지성 구릉지와 연곡천 남쪽의 아랫초시 남평뜰 주변의 산지성 구릉지에 폭넓게 위치한다. 구릉의 말단부에는 연곡천을 따라 경작지가 형성되어 있고, 동쪽으로...
-
강원도 강릉시 연곡면 송림리에 있는 신석기시대의 유물산포지. 강릉시 연곡면 연곡천 북편에 소재한 송림리 민석동마을의 북쪽 가마골과 주문진 교항리 금융동으로 이어지는 소로의 좌우측에 있는 해발 40~60m의 산지성 구릉지에 위치한다. 이 구릉은 북편에 위치한 해발 121m의 천마봉(天馬峰)에서 남쪽으로 비교적 길게 뻗은 줄기이다. 1990년에 강릉원주대학교 박물...
-
강원도 강릉시 연곡면 송림리에 있는 청동기시대 후기 생활유적. 송림리 유적은 동해고속도로[동해-강릉] 건설사업 문화유적 지표조사에서 유적이 확인되어 한림대학교에서 발굴 조사하였다. 덧띠[점토대] 문화기에 해당하는 타원형 유구 8기, 장방형 유구 4기, 구상유구 1기, 평면 확인이 어려운 결실 유구 5기와 야외작업대 1기 등 19기와 삼국시대 고분 1기, 널무덤...
-
강원도 강릉시 연곡면 송림리에 있는 청동기시대의 주거지유적. 강릉시 연곡면의 중심 하천인 연곡천(連谷川) 중상류역의 북쪽에 형성된 산지성 구릉지에 위치한다. 연곡-소금강간 6번 국도를 따라 약 2.3㎞쯤 가면 민석동마을이 있으며, 이 마을의 북편에 있는 우측 구릉의 서쪽 경사면에 해당된다. 송림리 청동기시대 유물산포지는 1990년대 초에 강릉원주대학...
-
강원도 강릉시 송정동에 분포하고 있는 삼국시대의 신라고분군. 강릉시의 동쪽 거의 끝에 위치하는 송정동 일대는 태백산맥에서 발원하여 강릉 시내 중심을 관통해서 동해 바다로 유입되는 남대천 하류 북쪽에 형성된 비교적 넓은 사구지대(砂丘地帶)로서, 주변의 저지대에는 하평들이 넓게 펼쳐 있으며, 50년 이상 된 소나무 숲이 부분적으로 형성되어 있다. 고분군이 분포하고...
-
강원도 강릉시 송정동에 있는 신라시대 주거유적. 강릉시 송정동은 남대천의 하구 북쪽에 위치한 사구지대로 이미 이 일대에서 신라시대 토기편이 채집되어 알려진 유물산포지이다. 송정동 유적은 강릉시의 동쪽 끝에 위치하고 있으며, 행정구역상으로는 강원도 강릉시 송정동 247-1, 247-3번지에 해당하고, 경·위도상으로는 북위 37°46′, 동경 128°5...
-
조선 중기의 문신. 본관은 영월. 홍문관 부제학을 지닌 신응시(辛應時)의 조카이고, 평사(評事) 신경연(辛慶衍)의 동생이다. 신경원(辛慶遠)은 1596년(선조 29)에 강릉으로 이주하였다. 문장에 능하여 세 차례에 걸쳐 과거에 올랐으나 벼슬에 뜻이 없어 명산대천(名山大川)을 노닐며 시(詩)와 술을 즐겼다. 산천을 즐기던 신경원이 하루는 영남에 갔을 때, 그 곳 방백이 낙...
-
조선 중기의 문신. 본관은 영월. 자는 용석(用錫), 아호는 명호(冥湖). 신윤형(辛尹衡)의 증손이다. 할아버지는 신보상(辛輔商)이고, 아버지는 부제학 신응시(辛應時)로, 이이(李珥)의 문인이다. 어머니는 정기(丁琦)의 딸이다. 1573년(선조 6) 진사가 되고, 1584년 별시 문과에서 병과로 급제하였다. 승문원·예문관 등에서 관직 생활을 한 뒤 1591년 병조 좌랑으로 진주사(...
-
조선 중기의 선비. 본관은 영월. 아버지는 홍문관박사(弘文館博士)를 지낸 신응명(辛應命)이다. 당종(堂從)인 아호공(丫湖公) 신경진(辛慶晋)이 강릉에 부임해 올 때 같이 따라와 거주하였다. 일찍이 사마시에 올랐으나 벼슬길에 나가지 않고 산수를 찾아 유람하며 시와 술로 세월을 보냈다....
-
조선 중기의 문신. 자는 계흠(季欽), 호는 송정(松亭). 고려 때의 공신 신숭겸(申崇謙)의 후손이다. 증조는 문희공(文僖公) 신개(申槩), 할아버지는 신자승(申自繩), 아버지는 신숙권(申叔權), 어머니는 남양홍씨이다. 부인은 이사온(李思溫)의 딸 용인이씨이다. 아들이 없고 딸만 다섯을 두었는데 첫째는 장인우(張仁友)의 부인, 둘째는 이원수(李元秀)의 부인인 신사임당(申師任堂),...
-
조선 중기 강릉 출신의 여류 예술가. 본관은 평산(平山). 사임당(師任堂)은 당호(堂號)이다. 증조부는 성균관대사성을 지낸 신자승(申自繩)이고, 조부는 영월군수를 지낸 신숙권(申叔權)이다. 아버지는 신명화(申命和)이며, 어머니는 용인이씨 이사온(李思溫)의 딸이다. 남편은 증좌찬성 이원수(李元秀)이고, 조선 시대의 대표적 학자이며 경세가인 이이(李珥)의 어머니이다. 신사임...
-
조선시대 여류서화가 신사임당(申師任堂)[1504~1551]이 초서로 쓴 당시(唐詩) 오언절구 6수의 8폭 병풍. 「신사임당 초서 병풍」은 신사임당이 쓴 당시(唐詩) 오언절구(五言絶句) 6수의 초서를 뒤에 병풍으로 꾸민 것으로 강원도 강릉시 두산동의 최돈길(崔燉吉) 고가(古家)에서 지속적으로 전해내려 왔으며, 1971년에 강릉시가 넘겨받아 현재 율곡기념관[현 강릉시오죽헌시...
-
조선시대 여류화가 신사임당(申師任堂)[1504~1551]이 풀과 벌레를 소재로 종이에 채색하여 그린 병풍그림. 「신사임당 초충도병」은 신사임당이 그렸다는 여덟 폭의 초충도(草蟲圖)와 두 폭의 발문이 함께 병풍으로 꾸며진 것이다. 발문은 양쪽 가장자리에 위치하며 제2폭에서 제7폭까지가 초충도이다. 초충도 자체는 수본(繡本)으로 사용되도록 제작되었음이 확실하다고는 하지만 초...
-
강원도 강릉 지역에서 약 기원전 1만년 전부터 1천년까지의 석기시대의 최종 단계. 신석기시대에는 식량을 채집하고 뗀석기를 사용하던 구석기 단계에서 더 나아가 간석기의 사용으로 농경·수렵·벌채용의 식량을 생산할 수 있게 되면서 자연의 의존에서 벗어나 자연을 이용 개발할 수 있는 단계로까지 발전하였다. 이는 정착생활을 가능하게 하여 결과적으로 문명형성의 기틀이 마련되었다....
-
조선 후기의 선비. 본관은 영월. 홍문관 박사 신응명(辛應命)의 후손이다. 재주와 인품이 뛰어나고 효우(孝友)를 함께 갖추었다. 또한 총명하여 나이 13세에 시문(詩文)을 지었고 서체가 뛰어났다. 1804년(순조 4)에 강릉의 송담서원(松潭書院)에서 공부할 때 화재가 일어나자 여러 유생들이 어쩔 줄 몰라 하며 흩어졌으나, 신석로 홀로 동요하지 않고 먼저 묘우(廟宇)에 들어가 위판을...
-
조선 후기의 무신. 본관은 영월. 호는 북천(北川). 무과(武科)에 올라 훈련원(訓練院) 주부(主簿)와 의주진관(義州鎭管) 옥강만호(玉江萬戶)를 역임하였다. 일찍이 무과에 올랐으나 벼슬에 나갈 뜻이 없었다. 그리고는 재산을 모아 갑부가 되었다. 1688년에 삼연(三淵) 김창흡(金昌翕)이 문인(門人)들과 더불어 호해정(湖海亭)에서 강론할 때 김창흡에게 별도로 집 한 채를 지어 주고...
-
조선 전기의 무신. 본관은 영산(靈山). 호는 무절(武節). 판개성부사 신부(辛富)의 아들이다. 신유정(辛有定)은 음보(蔭補)로 산원(散員)이 되었고 용맹이 뛰어났다. 1386년(우왕 12)에 정용호군(精勇護軍)이 되어 족형인 충청도도원수 이승원의 휘하에서 남해의 왜구를 크게 무찔렀다. 1397년(태조 6)에 이산진 첨절제사가 되었고, 1400년(정종 2)에 왕세자가 된...
-
조선 말기 국권수호에 앞장 선 의병. 1907년 김용상(金龍商)의 휘하에 들어가 인제군 일대에서 의병 활동을 하였다. 1908년 3월에는 김용상으로부터 의병 모집 임무를 부여받고 횡성군 일대에서 활동을 하다가 체포되었다. 1908년 9월 17일 경성 지방재판소에서 내란죄로 유형(流刑) 7년을 언도받았다....
-
조선 후기의 선비. 조선 후기의 무신인 신성하(辛聖河)의 손자이다. 1688년 여름 신성하(辛聖河)가 호해정 옛터에 초옥 4칸을 지어, 삼연 김창흡(金昌翕)이 이곳에서 도학을 강하고 역학을 연구할 수 있도록 하였다. 이때 김창흡(金昌翕)의 문인으로 고원명(高遠明), 신석동(辛碩東), 김응경(金應鏡) 등이 있었고, 신정복(辛正復)은 아직 어린 학동이었으나 역시 김창흡의 문인이 되었다...
-
강원도 강릉시 강동면 심곡리(深谷里) 정동진 해안단구에 있는 구석기시대의 유적지. 정동진 해안단구의 성인과 형성 시기에 대해서는 여러 의견이 개진되어 있는데, 단구의 형성 시기는 유적 형성 시기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 단구의 평탄면은 해수면의 하강과 관련이 있는 해성 기원으로 보아, 기반암을 피복하고 있는 자갈층은 해성 기원으로서 제4기 초기에 형성된 것으로...
-
조선 후기의 학자. 본관은 삼척. 자는 경보(敬甫), 호는 만회(晩悔). 증호조참판(贈戶曹參判) 심유(沈楺)의 아들이며, 어머니는 증정부인(贈貞夫人) 경주이씨이다. 전처는 강릉최씨인 최유망(崔有望)의 딸이고, 후처는 안동권씨인 권윤중(權允中)의 딸이다. 문암(文庵) 이의철(李宜哲)[1703~1778]에게서 수학하였고, 하남재(河南齋)의 유사(有司)를 지냈다. 하남재에 우...
-
조선 중기의 문신. 본관은 삼척. 자는 사길(士吉), 호는 동해낭옹(東海浪翁). 삼척심씨로 시조로부터 8세손이다. 아버지는 심준(沈濬)이며 어머니는 강릉김씨(江陵金氏), 아우는 심언광(沈彦光)이다. 1479년(성종 10)에 태어나 대과를 통해 관직에 출사하였으며 1556년(명종 11)에 세상을 떠났다. 1510년(중종 5)에 생원(生員)과 진사시(進士試)에 모두 합격하였고, 151...
-
조선 중기 강릉 출신의 문신. 본관은 삼척. 자는 사형(士炯), 호는 어촌(漁村). 강릉 지역에 세거해 온 삼척심씨의 8세손이다. 사정(司正) 심충보(沈忠甫)의 증손이고, 할아버지는 증 병조판서 심문계(沈文桂)이다. 부친은 예조좌랑을 지낸 심준(沈濬), 모친은 강릉김씨(江陵金氏)로 사직 김보연(金普淵)의 딸이다. 형은 찬성을 지낸 심언경(沈彦慶)이다. 1487년(성종 18)에 태어...
-
강원도 강릉시 강동면 안인리 주거지에서 출토된 철기시대 토기. 경질무문토기(硬質無文土器)는 철기시대 토기 중의 하나로 일반적인 무문토기, 즉 청동기시대의 무문토기[민무늬토기]보다 그 경도가 단단하다는 의미에서 붙여진 명칭이다. 풍납리 토성에서 처음 발견되어 ‘풍납리식무문토기(風衲里式無文土器)’라 불렸는데, 김해식토기(金海式土器)의 영향을 받아서 가마가 개량되어 제작된 토...
-
강원도 강릉시 강동면 안인리에 있는 신라시대의 고분군. 안인리 송촌 고분군은 강릉시에서 안인리로 향하는 7번국도를 따라가다 군선강 다리 건너 바로 우측의 구릉 하단부에 위치한다. 이 고분군은 강릉시에서 승마장 건설 시에 처음 발견되었으며, 공사 당시 고분군은 공사구역에서 제외시켜 보존하였다. 주변으로는 고분의 축조 시 사용되었을 것으로 추정되는 냇돌들이 확인되...
-
강원도 강릉시 강동면 안인리에 있는 철기시대 주거유적. 안인리 유적은 행정구역상으로 강원도 강릉시 강동면 안인리 산 16-2번지 일대에 위치한다. 유적은 강릉 시내에서 7번국도를 따라 동남쪽으로 약 16㎞정도 가다보면 좌측으로 영동화력발전소가 위치하고 이 화력발전소 북쪽에 안인리 유적이 위치하고 있다. 이 유적은 동해 바다와는 약 300m쯤 떨어져 있고 하시동...
-
고려 후기의 문신. 본관은 순흥(順興). 자(字)는 사청(嗣淸), 호는 쌍청당(雙淸堂), 시호는 문간(文簡). 아버지는 첨의찬성사(僉議贊成事)를 지낸 안축이다. 1325년(충숙왕 12)에 태어났으며 17세에 과거에 급제하였다. 1382년(우왕 8)에 관직이 정당문학(政堂文學)에 이르렀다. 이후 판문하부사(判門下府事)가 되었으나 2년 뒤인 1394년(태조 3)에 세상을 떠났다. 13...
-
고려 후기의 문신. 본관은 순흥(順興). 자는 당지(當之), 호는 근재(謹齋), 시호는 문정(文貞). 할아버지는 안희서(安希償), 아버지는 안석(安碩)이며, 어머니는 검교 군기감 안성기(安成器)의 딸이다. 고향인 순흥의 죽계(竹溪)[지금의 풍기]에서 세력기반을 가지고 중앙에 진출한 신흥유학자층의 한 사람이다. 문과에 급제하여 전주사록(全州司錄)·사헌규정(司憲糾正)·단양부주부(丹陽府...
-
강원도 강릉시 안현동에 있는 고인돌. 경포에서 안현천 뚝을 따라 1.7㎞ 가량 북서쪽으로 가다 보면 양지교가 있는데 이 안현천을 사이에 두고 북서 방향에서 동남 방향으로 길게 뻗은 두 개의 구릉이 있다. 북쪽의 구릉은 해발 35m 미만의 낮은 구릉으로 구릉의 남단에는 양지마을이 형성되어 있다. 남쪽의 구릉은 해발 50m로 북쪽 구릉보다 다소 높으며 구릉의 남단...
-
강원도 강릉시 안현동 양지말과 안고개 근처에 있는 선사유적지. 발굴조사가 이루어지지 않아 유적의 뚜렷한 성격은 밝혀지지 않았지만, 낮은 구릉지대 사이의 좁은 곡저면을 따라 곡류하는 안현천을 중심으로 신석기시대 유물산포지·청동기시대 유물산포지·고인돌군 등 여러 성격의 유적이 복합된 상당히 광범한 유적군이다. 안현동 신석기시대 유물산포지는 양지말 뒤편 북서쪽에 자...
-
강원도 강릉시 안현동 양지말에 있는 신석기시대의 유물산포지. 강릉시 안현동 양지말 뒤편 북서쪽으로 능선을 따라 약 600m 지점에 위치한 해발 32m 높이의 구릉 정상부에 위치하고 있다. 주변 일대는 나지막한 구릉이 연접되어 있고 바다와의 거리는 멀지 않다. 안현동 신석기시대 유적이 자리 잡은 구릉은 강릉시 안현동과 사천면 산대월리의 경계 지점이며 동편으로는...
-
강원도 강릉시 안현동에 있는 구석기, 신석기, 삼국, 조선 시대 등 여러 시대의 유구가 함께 조성된 복합 유적지. 안현동 유적은 강릉시 안현동 89-13번지 강릉 샌드파인 리조트 신축 공사 부지 내에 위치한다. 2008년 무렵 이곳 일대에 승산에서 샌드파인 리조트를 신축할 계획에 따라, 본격적인 공사에 앞서 예맥 문화재 연구원에서 문화재 지표 조사를 실시하여...
-
강원도 강릉시 안현동 양지말에 있는 청동기시대의 유물산포지. 강릉시 안현천 변에 형성된 신석기·청동기시대 유적군 안에 있는 청동기시대 유물산포지를 말하는데 바로 주변에 강릉 지역에서는 가장 넓게 형성된 고인돌군과 공존하고 있다. 안현동 청동기시대 유물산포지는 동북 방향으로 뻗어나가서 곡류하는 안현천을 굽어보는 34m 높이의 구릉 정상부에 위치하고 있...
-
조선 중기의 문신·서예가. 본관은 청주. 자는 응빙(應聘), 호는 봉래(蓬萊)·완구(完邱)·창해(滄海)·해객(海客). 주부인 양희수(楊希洙)의 아들이다. 조선 중기에 문명을 떨쳤던 양사준(楊士俊)이 형, 양사기(楊士奇)가 아우이다. 1546년(명종 1) 식년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여 대동승(大同丞)을 거쳐 삼등현감(三登縣監)·평창군수(平昌郡守)·강릉부사(江陵府使)·함흥부윤(咸興府尹)...
-
조선 후기의 문신. 본관은 함종(咸從). 증승정원주서 어사상(魚史商)의 아들이며, 경종의 장인인 어유구(魚有龜)의 재종제이다. 시호는 정헌(靖憲)이다. 1710년(숙종 36) 사마시를 거쳐 1713년 증광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였다. 1717년부터 정언·수찬·지평 등 삼사의 관직을 두루 역임하였다. 경종 즉위 후에 지평·헌납·장령·사간 등 양사의 벼슬에 있을 때 노론·소론의 분란에서...
-
조선 후기의 문신인 어유룡(魚有龍)[1678~1764]의 공적을 기리는 선정비. 어유룡(魚有龍)은 조선조 문신으로 자는 경우(景雨), 본관은 함종(咸從), 1710년 진사에 입격하였고, 1713년 증광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였다. 1730년부터 1732년까지 강릉대도호부사를 지냈다. 1732년 강원도 관찰사로 승진하여 교체되었다. 어유룡(魚有龍)이 강릉대도호부사로...
-
조선 중기 강릉 부사를 지낸 문신. 본관은 함양. 자는 여효(汝孝). 1648년(인조 26)에 생원이 되었다. 1649년(인조 27)에 별시문과(別試文科)에 병과(丙科)로 급제하여 병조좌랑(兵曹佐郞)에 임명되었다. 후에 사간원정언(司諫院正言)·사헌부집의(司憲府執義)를 거쳐 재령군수(載寧郡守)·강릉부사(江陵府使)·철원부사(鐵原府使) 등을 역임하였다. 1669년(현종 10)에 강릉부사...
-
선사 시대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의 강원도 강릉시의 역사. 강릉 지역에 사람이 살기 시작한 시기는 선사 유적지를 통해 그 일부를 확인할 수 있다. 선사 유적지는 강릉시 연곡면 영진리·송림리, 사천면 가둔리·판교리, 강동면 안인리·하시동리, 강릉시 토성지와 지변동·교동·안현동, 옥계면 금진리 등 대부분 바닷가 호수변이나 하천 유역의 낮은 구릉 지대에서 발견되었다. 1992년...
-
강원도 강릉시 연곡면 방내리에 있는 삼국시대의 봉토돌방무덤. 연곡면사무소의 서남쪽에 돌출된 작은 구릉의 정상부에 위치하고 있다. 이 고분의 구조는 정확한 학술조사가 이루어지지 않아 묘제의 형식 및 조성연대 등에 대해서는 확실히 알 수 없으나, 동쪽에 인접한 구릉 상에 분포한 영진리 봉토돌방무덤[봉토석실분(封土石室墳)]의 구조와 비교해 볼 때 할석(割石)으로 4...
-
강원 영동지역의 고려시대 이름. 995년(성종 14) 지방행정구역을 10도로 나눌 때 함경도와 춘주(春州)·화주(和州)·명주(溟州) 등을 합하여 삭방도(朔方道)를 설치하였다. 1178년(명종 8)에 삭방도를 폐지하고, 함경도와 강릉 일대의 해안지방을 연해명주도(沿海溟州道), 춘천·철원 일대의 영서지방을 동주도(東州道)라고 개칭하였다. 1263년(원종 4)에 연해명주도는...
-
강원도 강릉시 연곡면 영진리에서 있는 삼국시대의 주거지유적. 주문진읍의 중심 하천인 신리천 하구에서 남쪽으로 약 1.2㎞ 정도 떨어진 해발 5~6m의 퇴적 사구 평탄지대에 위치한다. 동쪽으로는 동해와 접해 있고 남쪽으로는 사구지대 내에 영진리 마을이 들어서 있으며, 그 남쪽으로 연곡천 하구가 위치하고 있다. 북쪽으로는 교항리 철기시대 유적이 위치하고, 서쪽으로...
-
강원도 강릉시 연곡면 영진리 해안가에 위치한 성 터. 영진(領津)은 강릉시 연곡면 영진리에 위치하고 있다. 서쪽에 7번국도가 있고 동쪽으로 동해안이 펼쳐지고 남쪽에 연곡천이 동해와 만나는 해발 30m 내외의 낮은 구릉지를 형성하고 있는 지역이다. 동해안으로 돌출된 해발 33.6m의 구릉상이며 지금은 경작지와 민가로 변한 곳이다. 7번국도 동쪽 구릉상...
-
강원도 강릉시 연곡면 영진리에 있는 신라시대의 고분군. 강원도 강릉시 연곡면 영진리 홍질목 동쪽 구릉 일대로 강릉에서 주문진으로 올라가는 7번국도변의 홍질목고개의 좌·우측 구릉일대에 해당된다. 이 지역에 대한 정식 발굴조사는 1989년에 조사된 영진리 1호분으로부터 시발되었다. 1993년 7번국도 확장공사와, 1996년 주유소부지 내에 편입된 지역에 대해 2차...
-
강원도 강릉시 연곡면 영진리에 있는 신석기시대의 유물산포지. 주문진읍 신리천(新里川)의 남쪽, 연곡면의 연곡천(連谷川) 북쪽에 위치한 영진리 해변에서 약 700m 떨어진 완만한 사구지대 일대에 분포하고 있다. 영진리 유적은 1964년 서울대학교 임효재에 의해 빗살무늬토기편들이 발견되어 알려지게 되었다. 그 후 2002년 9월 16일부터 11월 4일까...
-
강릉 지역에 있었던 초기국가. 1915년에 ‘예국토성지(濊國土城址)’라고도 불리는 강릉토성지(江陵土城址)가 발굴조사되었는데, 총연장 2,800m, 누(壘)는 0.5~12m이다. 이곳에서 빗살무늬토기편과 민무늬토기편이 출토되었다. 『임영지(臨瀛誌)』에 의하면 ‘예국토성지’는 조선시대에 폐기되었다고 기록되었는데, 예국의 소군장(小君長)인 후(侯)가 거처하는 성읍(城邑)으로...
-
강릉 지역에 있었던 예국시대의 고대 성곽. 예국고성(濊國古城)은 강릉이 동예의 중심이었던 고대에 축조되었던 성곽으로 추정하며 명칭은 고대 부족국가의 명칭 ‘예(濊)’ 또는 ‘동예(東濊)’에서 유래한 것으로 판단된다. 강릉(江陵)은 본시 예(濊)의 고도(古都)로 철국(鐵國) 혹은 예국(蘂國)이라고도 하였으며 고구려의 하서량(何西良)이었다가 후에 신라에...
-
강원도 강릉시 강동면 정동진리 오근산에 위치한 봉수.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에 우계현 북쪽 20리에 있다. 남쪽으로는 어달산(於達山)에 응하고 북쪽으로는 해령산(海靈山)에 응한다고 기록되어 있다. 『대동여지도』상에 백두대간 중 강릉~임계에 이르는 백두대간의 안부(鞍部)인 삽당령 바로 밑에서 동으로 갈라진 산줄기가 점차 고도를 낮추어 뻗어오다가 북...
-
고려시대 강릉 지역에 있었던 특수한 지방 행정구획. 부곡은 향(鄕)·소(所)와 함께 군현(郡縣)에 임내(任內)로 예속되었으며, 거주민은 군현민에 비해 신분적으로 차별 대우를 받았다. 고려시대 사람들은 대개 거주지인 본관의 이름을 붙여 명주 사람, 처인부곡 사람 등으로 불렀다. 언뜻 보기에는 오늘날과 별로 다를 바가 없는 듯이 보인다. 그러나 그 사람의 본관(本貫)이 군현에 소속되었...
-
조선 중기의 문신이자 서화가인 옥산(玉山) 이우(李瑀)[1542~1609]가 어린 시절에 쓴 초서로 만든 병풍. 「옥산 서병(玉山書屛)」은 신사임당의 넷째 아들이자 고산(孤山) 황기로(黃耆老)의 사위인 이우가 어렸을 때 도연명(陶淵明)의 「귀거래사(歸去來辭)」를 초서로 쓴 글씨를 뒤에 장황하여 병풍으로 만든 것이다. 민태식(閔泰植)이 원래 자기의 소유였던 것을 1965년...
-
고려 전기의 호족. 본관은 강릉. 본명은 김장명(金長命). 명주장군(溟州將軍)·지명주군주사(知溟州軍州事)인 김순식(金順式)의 아들이며, 형은 왕수원(王守元)이다. 신라 말기에 명주장군 김순식은 강릉 지역의 군사권을 장악하고 실질적인 지배권을 행사하던 대표적인 호족이었다. 처음 궁예와 결합했던 김순식은 태조 왕건이 즉위한 후, 쉽사리 태조 왕건에게 귀부(歸附)하지 않고 정세를 관망하...
-
고려 후기의 문신. 본관은 강릉. 초명(初名)은 여주(汝舟), 본성(本姓)은 김씨. 신라 태종무열왕(太宗武烈王)의 후손으로 왕씨는 사성(賜姓)이다. 충렬왕(忠烈王) 때 문과에 급제하여 충숙왕(忠肅王) 초에 규정(糾正)을 지냈다. 1321년(충숙왕 8) 좌사보(左司補)로 있을 때, 임금의 총애를 받던 이인길(李仁吉)의 장인 최득화(崔得和)를 수주(隨州)의 수령으로 임명하려...
-
신라 말 고려 초의 호족 출신 장군. 본성은 김씨(金氏)라고도 알려졌지만 분명하지는 않고, 왕은 사성(賜姓)이다. 생몰년은 알려져 있지 않다. 호족 출신인 왕순식은 명주(溟州)[지금의 강릉] 사람으로 신라 말에 스스로 명주장군이라 칭하며 독자적인 세력을 형성하여 궁예와 대치하면서 오랫동안 굴복하지 않았다. 왕건이 고려를 건국한 후에도 상당한 세력을 지니고 있었기 때문에 복종하지 않...
-
고려 전기의 호족. 본관은 강릉. 본래의 성(姓)은 김씨(金氏)로 명주군왕(溟州郡王) 김주원(金周元)의 6세손이며, 진골 출신인 김선희(金善希)의 아들이다. 태조 왕건의 14비(妃) 대명주원부인(大溟州院夫人)이 왕예(王乂)의 딸이다. 명주군왕 김주원이 김경신(金敬信)과의 왕위계승전에서 패배하고 강릉으로 퇴거한 이래, 그의 후손들은 강릉을 중심으로 한 동해안 일대에 강력한...
-
고려 전기의 문신. 본관은 강릉(江陵). 현종(顯宗) 때 문과에 급제하여 기거사인(起居舍人)을 지냈고, 이어 우승선 급사중(右承宣 給事中)을 거쳐 지주사예빈경(知奏事禮賓卿)을 지냈다. 1044년(정종 10)에 동북로 병마사참지정사(東北路 兵馬使參知政事) 김영기(金令起)와 함께 장주(長州)·정주(定州) 및 원흥진(元興鎭)에 성을 쌓았다. 1049년(문종 3)에 수사공 상주국(守司空...
-
강원도 강릉시 구정면 학산리 왕고개의 북동쪽 구릉상에 있는 토석혼축성(土石混築城). 왕현성에 대한 사료적 기록은 남아 있지 않다. 근간에 간행된 자료들이 민간에 전해오는 세 가지 이야기를 담고 있다. 첫 번째는 강릉의 남쪽 약 1리, 학산리 북서 구릉상에 있는 토루(土壘)로서 둘레 약 300간이며, 일반에서 장안성지라 칭하며, 강릉이 예국의 도읍이었을 때 축성...
-
강원도 강릉시 옥계면 현내리에 있었던 산성. 우계산성은 주수천(珠樹川) 하류의 충적지 쪽으로 돌출한 구릉의 말단부에 축조되었다. 성적은 남서쪽을 정점으로 하여 북동쪽의 완사면을 둘러싸고 있다. 축성 시기는 신라시대로 추정되고 있는데 그것은 옥계면 일대가 본래 고구려 우곡현이었으나 신라 경덕왕 때 우계현으로 개칭된 사실에서 이 성을 당시 현의 기능과 관련된 산성...
-
조선시대 강원도 강릉시 옥계면 일대에 설치되어 있었던 창고. 동창(東倉)·서창(西倉)·연곡창(連谷倉)·대화창(大和倉)과 더불어 조선 후기 영동지역의 세곡을 보관·관리하는 역할을 담당하였다. 우계창(羽溪倉)의 설치시기와 관련해서는 『현종실록(顯宗實錄)』의 기록을 참고할 수 있다. 현종 13년의 기사에서 원양도의 양양·강릉·삼척·울진 등 네 고을에 산불이 거세게...
-
강원도 강릉시 옥계면 일대에 있던 옛 고을 이름. 신라는 삼국통일 이후 중국식으로 행정체계를 갖추고 전국을 9주(州)로 정비하였다. 9주는 원 신라 지역에 3개 주, 옛 고구려 지역에 3개 주, 옛 백제 지역에 각각 3개 주씩을 두었다. 그리고 9주의 군현 명칭은 경덕왕 때에 이르러 한화정책(漢化政策)의 일환으로 향음(鄕音) 표기하던 것을 한자식 표기로 개명...
-
고려시대의 향직(鄕職). 918년에 궁예의 세력 기반을 물려받아 새 왕조의 창시자가 된 태조 왕건은 즉위한 후에 궁예를 지지하고 있던 각 지역 호족 세력들의 반발과 저항에 직면하게 되었고, 중립적인 입장에서 정세를 관망하고 있던 호족 세력들이 후백제로 기울어짐에 따라 정치적 불안이 가중되어 갔다. 이러한 현상은 특히 후백제 영역과 근접한 지역에서 더욱 심하게 나타나고 있었다. 이러...
-
신라시대의 청소년 수련단체. 화랑의 전신. 원시 공동체사회 이후 신라에는 연령별 청소년 단체가 있었다. 촌락 또는 씨족 단위로 조직된 이 단체를 통해 청소년들은 사회의 전통적 가치와 질서를 익히고 예절과 무술을 연마하였다. 신라가 주변의 소국들을 차례로 정복해 마침내 6세기 전반 무렵 경상도 일원을 차지하는 고대국가로 성장하고 문물 제도를 정비하게 되자, 이러한 새로운...
-
강원도 강릉시 두산동 월대산에 위치한 봉수대. 월대산 봉수는 해발 약 69m 높이의 봉우리 정상에 위치하고 있다. 봉수지의 정상에서 북쪽으로 약 500m 거리에는 강릉 남대천이 가로질러 흐르고, 남대천과 월대산 사이에는 논과 가옥들이 펼쳐져 있다. 월대산 봉수에서 동쪽으로는 낮은 구릉과 논밭들이 연결되면서 동해 바다와 접하고 있고, 서편 역시 논들이...
-
강원도 강릉시 월호평동에 있는 삼국시대의 신라고분군. 강릉시의 남쪽에 위치하는 월호평동 일대로 현재 관련 고분에 대한 정확한 소재지는 알 수는 없다. 오래전에 삼국시대의 것으로 추정되는 금제 귀걸이 1쌍과 쇠편·토기 조각이 출토되었다는 기록이 있다. 출토된 유물을 고려할 때 고분에 매납된 껴묻거리[부장품(副葬品)]로 판단되며, 이 지역 일대 또는 주변 지역에...
-
조선 전기의 문신. 본관은 문화(文化). 고려 밀직사(密直使) 유계조(柳繼祖)의 아들이다. 시호는 충경(忠景)이다. 고려 우왕 때 문과에 급제, 전의부령(典儀副令)을 거쳐 판종부시사(判宗簿寺事)가 되었다. 1392년 이조전서(吏曹典書)로 있을 때, 조선왕조 개국에 협력한 공으로 개국원종공신(開國原從功臣)에 책록되고 이듬해 중추원 부사가 되어 강릉도관찰출척사를 겸임하였다....
-
조선시대의 충노(忠奴). 박영수(朴英秀)의 종이었으며 타고난 성품이 충직하고 공손하였다. 상전인 박영수의 상사(喪事) 때에는 6년을 하루같이 죽만 먹고 지냈다. 유성에 대한 기사는 『증수임영지(增修臨瀛誌)』인물조에 기재되어 있다. 부사가 쌀과 미역으로 포상하고 요역을 면제해 주었다....
-
조선 후기의 문신. 본관은 진주. 아버지는 유학(幼學) 유운흡(柳雲翕)이고 어머니는 겸사복(兼司僕) 한덕룡(韓德龍)의 딸이다. 유원명(柳遠鳴)은 1789년(정조 13)에 진사(進士)에 올랐고, 1794년(정조 18)에 문과에 급제하였다. 1822년(순조 22)에 강릉에 부임되어 왔다가 1824년에 관직을 사퇴하고 돌아갔다....
-
조선 후기의 문신. 본관은 전주(全州). 승지 유태명(柳泰明)의 손자이며, 유무(柳懋)의 아들이다. 어머니는 한중희(韓重熙)의 딸이다. 1756년(영조 32) 생원이 되고 현감을 지낸 뒤, 1763년 증광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였다. 1765년에 정언(正言)·사서(司書)·수찬·교리를 역임하고 1775년(영조 51) 집의(執義)로서 영남어사(嶺南御史)가 되었다. 1776년 왕세손의 응제...
-
강원도 강릉시 유천동에 있는 신석기시대의 유물산포지. 강릉원주대학교 정문에서 유천동 진입로를 따라 약 2.2㎞ 정도 진입하다 보면 유천동 버스 종점이 나온다. 이곳에서 약 150m 우측으로 깎아지른 듯한 암벽이 나오고, 암벽 앞쪽으로 펼쳐진 해발 약 40m 높이 구릉 남단의 남쪽 경사면인 밭에서 신석기시대의 유물이 채집되었다. 아가리에 빗금무늬가 새겨진 토기류...
-
강원도 강릉시 유천동에 있는 청동기시대의 생활유적. 유천동 청동기유적은 강릉원주대학교 정문에서 마주 보이는 해발 약 32m 높이의 낮은 동산에 위치한다. 현재는 교동택지가 들어서면서 능선이 없어진 상태이다. 1991년 강릉원주대학교 박물관에서 지표조사 당시 청동기시대 돌화살촉, 그물추, 민무늬토기편 등이 지표채집되면서 알려진 유적이다. 이 지역에 대한 pit조...
-
조선 후기의 문신. 본관은 진주(晉州). 사간원 정언을 지낸 유성삼(柳星三)의 아들이다. 1681년(숙종 7) 알성시(謁聖試)에서 병과 3인으로 급제하여 문한관(文翰官)을 거쳐 1690년 사헌부지평에 올랐고, 같은 해에 부제학 이담명(李聃命)에 의하여 홍문록(弘文錄)에 이름이 올랐다. 이듬해에 홍문관교리가 되었고, 이후 수찬·교리·장령·부교리 등을 거쳐 참의에 이르렀다. 1707년...
-
조선 후기의 문신인 유헌장(柳憲章)의 공적을 기리는 선정비. 유헌장(柳憲章)은 1707년 강릉대도호부사로 부임하여 1712년 임기가 만료되어 교체되었다. 재임기간 동안 객사와 관방들을 중수하였으며 향교 대성전 석전제 때 사용하는 돗자리를 새로 만들었다. 굶주린 부민들의 구휼을 위해 자비곡(自備穀) 400석을 내 놓았으며, 후손이 없는 효자정문에 비를 새로 세웠다....
-
조선 후기 강릉 부사를 지낸 문신. 본관은 풍산(豊山). 유성룡(柳成龍)의 8대손으로 도정(都正) 유심춘(柳尋春)의 아들이다. 어머니는 이의수(李宜秀)의 딸이다. 시호는 문헌(文憲)이다. 1858년(철종 9) 정시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여 부호군(副護軍)·이조참판·공조판서를 지냈으며, 흥선대원군(興宣大院君)의 남인계 인사 중용책에 따라 1866년 우의정에 이르렀다. 이해 주청사(奏請使...
-
조선 후기 강릉 출신의 무인. 70세에 무과에 올랐다. 참군(參軍) 벼슬에 있을 때 오랑캐가 함경도에 창궐하였다. 그러자 적과 싸울 것을 자청하고 적진에 뛰어들어 맹렬히 싸우다 전사하였다. 윤국경(尹國卿)에 대한 기사는 『증수임영지(增修臨瀛誌)』인물조에 기재되어 있다....
-
조선 중기의 문신. 본관은 파평(坡平). 아버지는 윤옥진(尹玉珍)이며 어머니는 민윤(閔昀)의 딸이다. 1536년(중종 31) 친시 문과에서 을과로 급제하고, 2년 뒤 탁영시(擢英試)에 병과로 급제하였다. 1546년(명종 1) 장령에 이어 교리(校理)·사간(司諫)·사성·검상·사인·동부승지·대사간·부제학 등을 역임하였으나 진복창(陳復昌)의 탄핵을 받아 갑산으로 유배되었다. 어머니의 상...
-
조선 중기의 문신 율곡 이이가 사용하던 벼루와 토지양여문서. 강원도 강릉시 죽헌동의 강릉시오죽헌시립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다. 1971년 12월 16일 강원도 유형문화재 제 10호로 지정되었다. 오죽헌 어제각(御製閣)은 율곡 이이의 벼루와 토지양여문서를 소장하라고 정조가 지어 준 것이다. 벼루는 율곡 이이[1536~1584]가 쓰던 것으로, 1788년(정조 12)에 정조가...
-
조선시대의 충노(忠奴). 최빈현(崔斌鉉)의 종으로 상전이 대를 이을 자손이 없이 죽자 3년 동안 상식(上食)을 하루도 거르지 않고 올렸다. 또 상전의 4대에 걸친 제사를 받들고 산소의 성묘를 죽을 때까지 게을리 하지 않았다. 을득에 대한 기사는 『증수임영지(增修臨瀛誌)』인물조에 기재되어 있다....
-
조선 전기의 문신. 본관은 우계(羽溪). 할아버지는 우계[지금의 강원도 강릉시 옥계면] 출신 이지방(李之芳), 아버지는 참판 이광식(李光軾)이며, 어머니는 이세응(李世應)의 딸이다. 1543년(중종 38)에 생원시를 거쳐 식년문과에 을과로 급제하였다. 명종 연간에 정언을 비롯한 삼사(三司)의 관직을 두루 역임하면서 이언적(李彦迪)을 탄핵하는 등, 윤원형(尹元衡)을 좇아 사림파(士林...
-
조선 중기의 무신. 본관은 강릉 우계(羽溪). 지금의 강원도 강릉시 옥계면 지역인 우계(羽溪) 출신으로, 중종 조 명장이었던 이지방(李之芳)의 아들이다. 명종 초에 병조참판이 되었다. 1555년에 전라도에 도적이 들어 10개의 진이 함락되었다. 이때의 병란을 평정하는 데 크게 기여하였다. 집안을 다스리는 데 엄정하였으며, 그의 아들 이전(李戩)이 승지(承旨)로 있을 때...
-
이무강 처 강릉최씨의 이름·생일·죽은 날·자손 등을 적어 무덤 앞에 묻은 판석. 이무강 처 강릉최씨의 아버지는 최수당(崔壽塘)이고 어머니는 비인현감(比仁縣監)을 지낸 신수(辛守)의 딸이다. 조부는 통훈대부금구현령(通訓大夫金溝縣令)을 지낸 최세충(崔世忠)이고, 증조는 가선대부형조참판(嘉善大夫刑曹參判)을 지낸 최응현(崔應賢)이다. 이무강은 홍문관직제학(弘文館直提學...
-
조선 후기 지방 향리였던 이병화의 은혜를 기리기 위해 세운 비석. 이병화유혜불망비(李秉華遺惠不忘碑)는 대관령 옛길 등산로 입구에서 2㎞ 정도 올라간 곳에 자그마한 무덤과 함께 위치한다. 한겨울 대관령 험난한 고갯길에 변변한 쉼터가 없어 심지어는 목숨을 잃는 이들이 생기는 것을 안타깝게 여겨 사비를 내어 주막을 운영하도록 했던 이병화의 은혜를 기리는 비석이다. 조선 말기...
-
조선 중기의 무신. 본관은 우계(羽溪). 강원도 강릉시 우계 출신인 이지방(李之芳)의 후손이며, 중추부사를 지낸 이전(李戩)의 손자이다. 일찍이 무과에 급제하여 1592년(선조 25)에 나주판관이 되었다. 1593년에 전라방어사·충청조방장(忠淸助防將), 1594년에 남원부사·전라도병마절도사, 1595년 나주목사 등을 역임하였다. 다시 전라도병마절도사가 되어 1597년 정유재란 때...
-
조선 후기의 문신. 본관은 전주(全州). 아버지는 이후(李垕)이다. 1827년(순조 27) 생원에 합격하였으며, 예빈시 참봉(禮賓寺參奉)과 청안현감(淸安縣監), 통천군수(通川郡守)를 지냈다. 1859년(철종 10)에 경포호수 북쪽 언덕에 방해정(放海亭)을 건립하였다....
-
삼국시대 신라의 장군. 지증왕 이래 법흥왕·진흥왕 대까지 활약한 대표적인 장군이며, 신라 왕실의 중신이다. 일명 태종(苔宗). 내물왕의 4대손이다. 505년(지증왕 6) 신라에서는 군현제가 실시되어 최초로 실직주(悉直州)[지금의 삼척]가 설치되었는데, 이때 이사부는 실직의 군주(軍主)가 되었다. 그리고 512년(지증왕 13)에는 하슬라주(何瑟羅州)[지금의 강릉]의 군주가...
-
조선 후기의 문신. 본관은 영해(寧海). 아버지는 이형(李珩)이며 형은 이상복(李尙馥)이다. 사마시에 올랐으며, 병자호란 때 마을 사람들을 모아 의병을 조직하여 의병장에 추대되었다. 전쟁터로 향하던 중 갑자기 적들이 물러갔다는 소식을 듣고 중도에서 돌아왔다. 이상필(李尙馝)에 대한 기사는 『증수임영지(增修臨瀛誌)』인물조에 기재되어 있다. 이상필의 행적이 임금에...
-
조선 중기의 문신. 본관은 영해. 아버지는 이오(李璈)이고 어머니는 채흥후(蔡興後)의 딸이다. 1615년(광해군 7) 과거에 올라 벼슬이 병조참의에 이르렀다. 1645년(인조 23) 8월, 강백년(姜栢年)이 강릉부사로 있을 때 전 직장(直長) 김충각(金忠慤)과 함께 건의하여 향현사를 세워 최치운(崔致雲)·최응현(崔應賢)·박수량(朴遂良)·박공달(朴公達)·최수성(崔壽峸)·최운우(崔雲遇...
-
조선 전기의 문신이자 안성이씨(安城李氏) 강릉 입향조인 영재(瀛齋) 이석진(李錫珍)의 묘비. 이석진의 호는 영재(瀛齋)이며 자는 세보(世寶)이다. 1465년 평해에서 출생하였다. 16세의 나이로 강릉에 들어와 죽헌동에 거주하였다. 1489년에 생원진사 양시에 합격하고, 지역 유림인 춘헌(春軒) 최수(崔洙), 보진당(葆眞堂) 권사균(權士均), 어촌(漁村) 심언광(沈彦光),...
-
조선 중기의 문신. 본관은 우계(羽溪). 대사헌을 지낸 이감(李戡)의 아들이다. 1560년(명종 15)에 별시 문과에 급제하여 주서(注書)·찰방(察訪) 등을 지냈다. 이성헌에 대한 기사는 『증수임영지(增修臨瀛誌)』인물조에 기재되어 있다....
-
강원도 강릉시 대전동에서 출토된 조선 전기 문신 이수혼의 묘지명. 이수혼(李守渾)[1502~1577]은 본관은 안성이고, 증조할아버지는 만호 이계량, 할아버지는 훈련참군 이득원, 아버지는 성균관 생원 이덕진이다. 강릉부 선무랑 종성 교수(宣務郞鍾城敎授)를 지냈다. 부인 최씨와 결혼하여 두 아들을 두었다. 이수혼 묘지(李守渾墓誌)는 1980년대 후반 강원도 강릉...
-
강원도 강릉시 죽헌동에 있는 재산의 상속과 분배를 기록한 문서. 신사임당의 어머니 용인이씨는 아버지 생원 이사온(李思溫)과 어머니 최씨(崔氏) 사이에 태어난 무남독녀(無男獨女)로 남편 신명화(申命和) 보다는 네 살 아래이다. 생전에 다섯 명의 딸들에게 재산을 분배하기 위해 분급문기(分給文記)를 작성하였다. 분배내용이 먼저 나오고 재주(財主)인 용인이씨를 비롯한...
-
조선 전기의 무신. 본관은 우계(羽溪). 아버지는 참판 이광식(李光軾)이며, 어머니는 이세응(李世應)의 딸이다. 북도 절도사를 지냈다. 이용은 청백하고 엄정하여 아전과 주민들이 모두 공경하며 따랐다. 조·부·손 3대에 걸쳐 네 사람 모두 북문(北門: 함경도)을 진수하였는데, 위엄과 덕이 있었기 때문에 오랑캐들이 이용의 이름만 듣고도 겁을 먹었다고 한다....
-
조선 중기의 문신이자 서화가. 본관은 덕수. 초명은 이위(李瑋), 자는 계헌(季獻), 호는 옥산(玉山). 아버지는 증 좌찬성(贈左贊成) 이원수(李元秀)이며, 어머니는 신사임당(申師任堂)이다. 형으로 이선(李璿)·이번(李璠)·이이(李珥)가 있다. 고산(孤山) 황기로(黃耆老)의 딸과 혼인하였다. 1567년(명종 22)에 진사시에 입격하여 경기전참봉(慶基殿參奉)에 임명되었으나 취임하지...
-
조선 중기의 문신. 본관은 덕수. 자는 덕형(德亨). 아버지는 좌참찬(左參贊)에 추증된 이천(李蕆)이고 부인은 신사임당이며, 율곡 이이(李珥)의 아버지이다. 50세가 되던 해에 음직(蔭職)으로 수운판관(水運判官)에 임명되었고, 그 후 내섬시(內贍寺) 주부(主簿)·종부시(宗簿寺) 주부·사헌부 감찰 등을 지냈다. 당숙 이기(李芑)가 우의정으로 있을 때 그의 휘하에 잠시 있었다. 이기는...
-
고려 후기의 문신. 우계이씨(羽溪李氏)의 시조 이양식(李陽植)의 후손이며, 밀직원사(密直院事) 이사성(李思誠)의 아들이다. 고려 말에 여러 도(道)의 원수(元帥)를 역임하였으며, 공양왕(恭讓王) 때에는 밀직부사(密直副使)에 이르렀다....
-
조선 중기의 학자이자 문신. 본관은 덕수(德水). 아명은 현룡(見龍), 자는 숙헌(叔獻), 호는 율곡(栗谷)·석담(石潭)·우재(愚齋). 아버지는 사헌부 감찰 이원수(李元秀)이며, 어머니는 신사임당(申師任堂)이다. 형으로 이선(李璿)과 이번(李璠)이 있고, 아우는 옥산 이우(李瑀)이다. 외가인 강릉 북평촌(北坪村) 오죽헌에서 출생하였으며, 어려서부터 어머니로부터 학문을 배웠다. 15...
-
조선시대 어린이들의 교육을 위해 율곡 이이가 지은 책. 이이 수고본 『격몽요결(擊蒙要訣)』은 1577년(선조 10)에 이이가 직접 쓴 친필 원본으로 한지에 행서체로 단아하게 썼다. 책머리에는 1788년(정조 12)에 임금이 이 책을 친히 열람하고 글을 지어 문신 이병모[1742~1806]에게 명해 쓰도록 한 '제율곡수초격몽요결(題栗谷手草擊蒙要訣)'이 있다. 『...
-
조선 전기의 문신. 본관은 영해(寧海). 1486년(성종 17)에 진사시에 입격하고, 1516년(중종 11)에 문과에 합격하였다. 1522년(중종 17)에 울진군수를 지냈으며, 이후 예조정랑(禮曹正郞)을 지냈다. 이전손은 『증수임영지(增修臨瀛誌)』인물조에 기재되어 있다....
-
조선 전기의 선비. 이자개(李自開)의 증손으로 이예하(李藝夏)의 손자이고 아버지는 호군(護軍) 이곤(李琨)이며 어머니는 장수전(張守專)의 딸이다. 성균관 진사였으나 출사는 하지 않았다. 형제간에는 우애가 있었으며 부모의 상을 당해서는 모든 정성을 다했다. 79세의 생애를 살았다. 묘소는 강원도 강릉시 성산면 오봉리에 있다....
-
조선 전기 선비인 이종손(李宗孫)의 묘비. 이종손 형제간의 우애와 덕행(德行) 및 지업(志業)을 기리고 후세에 전하기 위하여 세웠다. 이종손의 묘가 위치하고 있는 강원도 강릉시 성산면 오봉리에 있다. 비문 제목은 ‘유명조선국성균진사이종손묘갈(有明朝鮮國成均進士李宗孫墓碣)[조선의 성균관 진사 이종손의 묘]’이다....
-
조선 중기의 무신. 이지방(李之芳)은 1496년(연산군 2)에 무사 장정(張珽)·이원종(李元宗) 등과 함께 서정장수(西征將帥)에 임명되었다. 후에 종성·회령의 부사, 의주목사 등을 지내고, 1516년(중종 11) 경상좌도수군절도사가 되었다. 이듬해 왕비 윤씨(尹氏)의 책봉에 대한 주청사가 명나라에 파견될 때, 동지중추부사(同知中樞府事)로서 정조사가 되어 명나라에 다녀왔다...
-
조선 후기의 문신. 본관은 경주(慶州). 좌의정 이경억(李慶億)의 5대손으로, 감역 이진원(李進源)의 아들이다. 어머니는 조철명(趙哲命)의 딸이다. 1774년(영조 50)에 진사가 되고, 이듬해 별시 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여 한림에 들어갔다. 이조좌랑·장령·이조참의·대사성·승지를 거쳤다. 1790년에 강릉현감으로 부임하였으며 이어 대사간·대사헌과 외직으로 안동부사를 거쳤다. 1798...
-
조선 후기 강릉 출신의 문신. 본관은 간성(杆城). 자는 경민(景民). 아버지는 이흥상(李興商)이며, 조부(祖父)는 이만번(李晩蕃)이고 증조부는 이배근(李培根), 외조부는 신기(辛耆)이다. 1738년(영조 14) 24세의 나이에 식년시(式年試) 병과(丙科)로 과거에 급제, 여러 벼슬을 거치면서 많은 치적을 남겼다. 1745년(영조 21)에 사헌부장령을 거쳐 1750년(영조 26)에...
-
조선시대의 선비. 본관은 미상. 형은 이후(李垕)이고, 효자로 정려(旌閭)를 받은 이당(李堂)이 아우이다. 형 이후와 함께 문장에 뛰어나 일찍부터 세상에 이름이 알려졌다. 만년에는 음풍농월로 세월을 보냈는데, 일찍이 삼연(三淵) 김창흡(金昌翕)이 “임영(臨瀛)에서 시율에 능한 사람은 오직 이학 한 사람뿐이다.”라고 하였다....
-
조선 말기의 문신. 본관은 전주. 효령대군(孝寧大君)의 후손으로 군수 이봉구(李鳳九)의 아들이다. 1844년(헌종 10) 생원에 입격하여 1883년(고종 20)에 음사(蔭仕)로 순창원(順昌園) 수봉관(守奉官)이 되었다. 1887년에 공조좌랑으로 옮기고, 1894년에 도정(都正)으로 승진하여 동부승지에 제수되었다. 1894년 9월 26일에 강릉부사에 임명되었고, 10월 22일에는 관...
-
조선시대의 선비. 본관은 미상. 효자로 정려(旌閭)를 받은 이당(李堂)과 이학(李壆)의 형이다. 동생 이학과 함께 문장에 뛰어나 일찍부터 세상에 이름이 났다. 또한 과거시험의 폐단을 지적하고 스스로 앞장서서 바로잡을 것을 주장하였다....
-
고려 후기의 문신. 음사(蔭仕)로 예부주사(禮部主事)에 제수되었다가, 의종(毅宗) 때 문과에 급제하여 명주유수(溟州留守)와 합문지후(閤門祗侯)를 지냈다. 그 뒤 추밀원승선(樞密院承宣)·참지정사(參知政事)·중서시랑평장사(中書侍郞平章事) 등을 거쳐 수사공 중서시랑 동중서문하평장사(守司空中書侍郞同中書門下平章事)에 이르렀다. 명주(溟州)에 나와 다스릴 때, 하천을 준설하고 도랑...
-
조선 중기 강릉 지역의 사족들과 강원도 관찰사, 강릉부사가 함께 한 친목 모임. 강릉 지역을 순행하였던 관찰사나 강릉부사가 이 지역 사족과 족척관계임을 명분으로 함께 자리하였던 모임이다. 강릉 지역에서는 5차례의 ‘임영족회’가 개최되었다. 1615년(광해군 7)에 강원관찰사 여우길이 강릉 지역을 순행하던 중 이 지역 사족 55명과 족회를 가졌고, 1670년(현종 11)에...
-
강원도 강릉시 입암동에 있는 삼국시대의 신라고분군. 7번국도를 타고 강릉대교를 지나 동해시 방향으로 약 500m쯤 가면 병무청의 맞은 편에 있는 GS주유소 바로 뒤편 구릉에 위치한다. 구릉지에는 소규모의 경작지와 다수의 민묘가 조성되어 있으며, 구릉의 끝자락에는 여러 채의 민가가 들어서 있다. 이곳은 태백산맥에서 동해로 뻗어 내린 해발 20~30m 의 구릉들이...
-
강원도 강릉시 입암동에 있는 청동기시대의 주거유적. 입암동 유적은 강릉시 입암동 671-3번지, 671-4번지, 671-6번지, 671-7번지에 해당되는 지역이다. 입암동 유적은 7번국도를 타고 강릉대교를 건너 동해 방향으로 약 500m를 진행하여 병무청의 맞은편 GS주유소 바로 뒤편 구릉지에 위치한다. 조사 지역 서쪽으로는 7번국도가 남-북으로 통과하고 동쪽...
-
강원도 강릉시 주문진읍 장덕리에 있는 신석기시대의 유물산포지. 주문진의 중심 하천인 신리천(新里川)의 중류역에 소재한 장덕리 양지동마을의 경지내골 서쪽으로 위치한 해발 46.3m의 구릉 일대에 분포하고 있다. 장덕리 유물산포지의 동쪽과 북쪽 가까이에는 청동기시대 유물산포지 5곳이 위치해 있으며, 남쪽으로는 교항리 청동기시대 유물산포지 3곳이 인접하여 위치하고...
-
강원도 강릉시 주문진읍 장덕리에 있는 야철지로 추정되는 유적지. 강릉시 주문진읍 장덕리 1077번지를 중심으로 양지동마을 장덕사(長德寺)의 서남쪽에 위치한 해발 42m 구릉의 정상부에 위치한 유적이다. 주문진항에서 바다로 유입되는 신리천이 한번 곡류하여 나가는 지점의 북편 구릉에 해당된다. 구릉의 남쪽은 비교적 가파르고 북쪽으로는 나지막한 구릉이 연속되어 있다...
-
강원도 강릉시 주문진읍 장덕리에 있는 청동기시대의 유물산포지. 주문진읍의 중심 하천인 신리천(新里川)의 중류역의 장덕리 양지동, 사막골마을의 북쪽에 형성된 해발 40~50m 내외의 나지막한 구릉 일대에 5개소가 분포하고 있다. 장덕리 사막골의 제일 끝부분의 능선상에 민무늬토기편이 분포하고 있으며, 남쪽으로 100m 떨어진 구릉의 정상부에도 다량의 민...
-
고려 전기의 문신. 본관은 강릉. 병부상서(兵部尙書)를 지낸 장취정(張就正)의 손자이다. 명종(明宗) 때 문과에 급제한 후 관직이 형부상서(刑部尙書)에 이르렀다....
-
강원도 강릉시 강동면 모전리에 있는 토성. 장안성은 강동초등학교의 북쪽 구릉(70m)에 발달된 소곡지를 둘러쌓은 것으로 전면에는 군선강 하류의 충적지가 발달되어 있다. 명주성(溟州城)과 같이 석축부 위에 얇은 토층이 덮여 있다. 성벽의 높이는 3m, 상·하부의 폭은 각각 2m, 5m이며 성주는 약 600m이다. 남벽 중앙부의 절단된 부분에는 문의 초...
-
고려 전기의 문신. 본관은 강릉. 그의 손자인 장취정(張就正)은 인종 때 과거에 급제하여 병부상서(兵部尙書)를 지냈다. 문종(文宗) 때 문과에 급제하여 추밀원학사(樞密院學士)를 지냈다....
-
고려 전기의 문신. 본관은 강릉. 그의 아들 장칭제(張稱悌)는 희종(熙宗) 때 과거에 급제하여 은청광록(銀靑光祿)에 승계되었다. 명종(明宗) 때 문과에 급제하여 이부상서(吏部尙書)를 지냈다....
-
고려 전기의 문신. 본관은 강릉. 이부상서(吏部尙書)를 지낸 장충순(張忠順)의 아들이다. 고려 희종(熙宗) 때 문과에 급제하여 은청광록대부(銀靑光祿大夫 : 문관의 정2품, 혹은 정3품의 품계)에 승계되었다....
-
고려 전기의 문신. 본관은 강릉. 고려 신종(神宗) 때 과거에 급제하여 황주목사(黃州牧使)를 지냈다....
-
강원도 강릉시 장현동에 있는 청동기시대의 고인돌. 장현동 고인돌 유적은 장현저수지의 서변 구릉 남쪽 경사면에 위치한다. 1977년 9월경에 마을 주민 최봉학[당시 70세]이 유물을 채집하여 신고함으로써 알려지게 되었다. 그 후 1977년 11월에 백홍기가 고인돌의 구조와 유물을 조사하였다. 조사 당시 유구는 지하에 묻혀 있었고 남단이 파여져 내부 구조가 확인되...
-
강원도 강릉시 장현동에 있는 청동기시대의 유물산포지. 1960년대 이래 여러 차례의 지표 조사에서 많은 유물들이 채집되었다. 2005년 강릉원주대학교 박물관에서 지표 조사 당시 구릉 정상부에서 청동기시대의 민무늬토기편과 현재 등산로로 이용되는 구릉 사면에서 돌끌(石鑿) 1점을 지표 채집하였다. 현재의 모산초등학교 뒤쪽에 위치한 모산봉 주변 구릉 지역이다. 서쪽으로는 장현...
-
조선 중기의 문신. 본관은 인동(仁同). 태상경(太常卿) 장백(張伯)의 후손이며, 장철견(張哲堅)의 아들이다. 중종 때에 무과(武科)에 급제하여 부사직(副司直)을 거쳐 1534년(중종 29)에 조상현(曺尙賢)에 이어 강릉부사를 역임하였다. 권귀(權貴)에 아첨하지 않았다. 1547년(명종 2)에는 효릉시능관(孝陵侍陵官)을 지냈다....
-
강원도 강릉시 저동에 있는 신라시대의 고분군. 저동 고분군은 경포파출소 뒤 해발 16m의 구릉과 구릉의 동남쪽으로 이어지는 모래사구지대에 위치하고 있다. 이곳에서는 신라토기편과 돌덧널을 축조할 때 사용한 것으로 추정되는 석재들이 발견되고 있다. 주민들에 의하면 이곳 사구지대에 많은 돌덧널들이 있다고 한다....
-
강원도 강릉시 저동에 있는 청동기시대의 유물산포지. 강릉 경포대(鏡浦臺)의 서쪽에 솟아 있는 해발 72.9m의 시루봉에서 북동쪽의 호해골 동편 구릉상에 위치하고 있다. 저동 유물산포지의 주변으로는 난곡동 청동기시대 유물산포지와 고인돌, 안현동 청동기시대 유물산포지와 고인돌 등 다수의 선사유적들이 밀집하여 분포하고 있다. 북쪽으로는 산대월리에서 발원한...
-
강원도 강릉시 저동에 있는 청동기시대의 유물산포지. 강원도 강릉시 저동 만재골 구릉 정상부로 만재골은 경포호와 가까이 있다. 저동 청동기시대 유적은 경포호 주변 유적들 중 가장 높은 곳에 위치한다. 만재골 능선 중앙 부분에 시굴 피트를 넣은 결과 많은 양의 청동기시대 토기편이 수습되어 유적이 확인됨에 따라 보존하였다. 토기는 주로 구멍무늬토기와 민무...
-
조선 전기의 문신인 전계현(全繼賢)의 묘비. 전계현은 정선전씨로 자는 원구(元龜), 세종 11년(1429) 출생하였으며, 중종 14년(1519) 졸하였다. 부인은 삼척심씨 참봉 심양보(沈梁甫)의 딸이다. 3남을 낳았는데 장남은 진사 전순지(全舜智), 차남은 문과에 합격하고 교리를 지낸 전순인(全舜仁), 셋째는 습독이었던 전순철(全舜哲)이다. 1849년(철종 1) 후손들이...
-
조선 중기의 문신. 본관은 정선(旌善). 자(字)는 낙숙(樂叔). 조산대부(朝散大夫) 동몽교관(童蒙敎官) 전성명(全性命)의 아들이며 외조부는 권송(權悚)이다. 1517년(중종 12)에 별시문과(別試文科) 병과(丙科)로 급제하여 승정원 주서(注書)에 발탁되었다. 1531년(중종 26) 울진군수를 지냈으며, 개성판윤(開城判尹)·함흥판관(咸興判官)·강동현령(江東縣令)·평산부사(平山府使)...
-
조선 전기의 문신인 전성명(全性命)의 묘비. 전성명의 자는 호천(浩天), 호는 신암(愼庵)으로 신라전법판서(新羅典法判書) 전훤(全愃)의 후손이다. 증조(曾祖) 전우정(全遇禎)은 성균생원이었고, 할아버지 전륜(全崙)은 구례현감(求禮縣監)을 지냈으며 아버지 전민행(全敏行)은 통덕랑행정선훈도(通德郞行旌善訓導)를 지냈다. 전성명은 기자전참봉(箕子殿叅奉)과 희릉참봉(禧...
-
조선 중기의 문신. 본관은 정선(旌善). 자(字)는 원경(元卿). 통덕랑(通德郞) 전계현(全繼賢)의 아들이다. 1519년(중종 14) 문과에 급제하여 1528년(중종 23)에 사헌부지평(司憲府持平)을 역임하였다. 승문원교리(承文院校理)로 있을 때는 서장관(書狀官)으로 두 차례나 명나라에 다녀왔으며, 금으로 주조한 향로를 선물로 하사받았다. 그 후 풍천(豊川)·정선(旌善)·원주(原州...
-
조선 중기의 문신인 전순인(全舜仁)의 가계와 행적을 기록한 비석. 전순인의 자는 원경(元卿), 아버지는 전계현(全繼賢), 어머니는 삼척심씨 심양보(沈梁甫)의 딸이다. 어촌 심언광, 삼가 박수량과 교유하였다. 1519년에 과거에 올라 벼슬이 군자감정(軍資監正)에 이르렀다. 비문은 강릉부사를 지낸 박종정(朴宗正)이 지었고, 사헌부장령(司憲府掌令)을 지낸 심보영(沈普永)이 글...
-
최치운(崔致雲)의 아내인 정경부인(貞敬夫人) 함씨(咸氏)의 묘비. 정경부인 함씨는 함세린(咸世麟)의 딸로 1392년 출생하였고 천성이 정숙하였으며 효성 또한 지극하였다. 21살에 최치운에게 시집왔으며 시댁에서도 효행을 몸소 실천하였다. 서거정이 비문을 지었으나 비석을 세우지 않아 소실되었다. 그러나 9세손 최정태(崔挺泰)가 우연히 두타산 삼화사에서...
-
조선 중기의 문신이자 학자. 자는 경임(景任), 호는 우복(愚伏)·하거(荷渠)·승성자(乘成子)·석중도인(石衆道人). 조선 중기 여러 관직을 겸한 행정가이며 중앙과 지방행정에도 남다른 능력을 발휘하였다. 정치관은 충효사상을 바탕으로 덕치주의와 왕도정치를 지향하였다. 상주에 도남서원을 세우는 등 예학에 깊은 조예를 가졌으며 1608년 선조가 죽고 광해군이 즉위하자 만언소를 올려 사치의...
-
조선 중기의 문신. 본관은 청주(淸州). 자는 도가(道可), 호는 한강(寒岡). 정사중(鄭思中)의 아들이며, 김굉필(金宏弼)의 외증손이다. 성주이씨(星州李氏)와 혼인하여 성주에 정착했다. 1563년(명종 18)에 이황(李滉)·조식(曺植)에게서 성리학을 배웠다. 이듬해 상경하여 과거장까지 갔다가 시험에 응하지 않고 돌아와 그 뒤로는 과거를 단념하고 학문에만 열중했다. 1573년(선조...
-
조선 중기 선비인 정기평(鄭基平)의 묘비(墓碑). 정기평의 자는 정백(正伯)이고, 1584년(선조 17) 양주목사를 지낸 정약(鄭爚)의 아들로 출생하여 1629년(인조 7)에 졸하였다. 효행이 출중하여 부모상을 당하자 예제를 충실히 지켜 상을 치렀다. 비문을 지은 사람이 한성부좌윤 및 예문관제학을 지낸 채제공(蔡濟恭)인 것으로 보아 처음 세워진 것은 18세기로 추정된다....
-
조선시대 강릉대도호부의 면 이름. 영조 때 편찬된 『여지도서(輿地圖書)』 방리조(坊里條)에 의하면, 정동면(丁洞面)은 유천리(楡川里)·사전리(沙田里)·조산리(助山里)의 3개 리로 구성되었다. 인구현황을 보면, 유천리는 호수 69호, 인구수 271명(남 137명, 여 134명), 사전리는 호수 77호, 인구수 280명(남 136명, 여 144명), 조산리는 호수 79호,...
-
조선 후기 강릉 정동면 지역에서 향약을 시행하기 위해 조직된 모임. 상호 부조와 신분간의 분수를 강조하는 면 단위의 사회 질서 확립을 위해 조직되었다. 지방 장관인 수령 유후조가 절목을 작성하여 시행을 권장하였다. 향약의 4대 덕목을 앞세우고 각 덕목마다 시행 세칙을 마련하였으나, 이 세칙은 매년 열리는 총회에서 수정될 수 있었다. 도약정 1인, 부약정 1인, 직월 1인을 두고 운...
-
강원도 강릉시 강동면 정동진리에 있는 구석기시대의 유적. 유적의 위치는 행정구역상으로 강원도 강릉시 강동면 정동진리(正東津里)에 해당한다. 정동진 해안단구 북쪽 구릉상(해발 약 70m)에 위치한 썬크루즈 리조트 주변 절토면에 위치한다. 2004년 강원문화재연구소에서 정동진 유물산포지 내에 위치하는 50-89번지에 대한 시굴조사를 실시하였다. 광여기루미네선스와 화산재 연대...
-
조선 중기의 문신. 본관은 영일(迎日). 자는 천장(天章), 호는 낙전당(樂全堂). 정몽주(鄭夢周)의 후손으로 참봉(參奉) 정충원(鄭忠元)의 아들이다. 강릉 말산리(末山里)[지금의 강릉시 두산동]에서 태어났다. 5세가 되던 해에 아버지를 따라 강원도 삼척 초분리(草紛里)로 이주하였다. 1540년(중종 35)에 생원시(生員試)에 입격하고, 1544년(중종 39)에 별시 문...
-
조선 중기의 문인. 본관은 영일(迎日). 자는 경서(景瑞). 시조는 정습명(鄭襲明)으로 5대손인 정귀종(鄭貴宗) 대에서부터 삼척에서 살았다. 아버지는 강릉대도호부사(江陵大都護府使)를 지낸 정두형(鄭斗亨)이고 어머니는 김세정(金世貞)의 딸인 김씨이다. 1536년(중종 31)에 태어나 1609년(광해군 1)에 세상을 떠났다. 천성이 순수하고 기질이 온화하였다. 1568년(선조 1)에...
-
조선 중기의 문인인 정란(鄭鸞)의 경력과 인품을 기록한 묘지(墓誌). 정란은 1568년(선조 1)에 사마시에 합격하였으나 출사하지 않았다. 부친은 정두형(鄭斗亨)으로 강릉대도호부사(江陵大都護府使)를 지냈다. 강원도 강릉시 저동 전충사(全忠祠)에 있다. 개자판(蓋磁板)은 가로 15.2㎝, 세로 21.8㎝, 두께 3.3㎝이며, 저자판(底磁板)은 가로 14㎝ , 세...
-
강원도 강릉시 강동면 모전리에 있는 조선 전기 경휘옹주의 태실(胎室) 옆에 세운 비. 강원도 강동면 모전리에 있는 태봉산 정상부에 조선 9대 왕 성종의 소생인 경휘옹주의 태실비(胎室碑)가 위치하고 있다. 태실비 뒤편으로는 봉분이 있었던 것으로 추정되나, 오래전에 이미 파헤쳐진 상태이고 태실비 주변에서는 관련 석물들은 찾아볼 수가 없다. 태실비의 재질은 화강편마...
-
조선 시대 강릉부에서 산삼의 남획을 막고 궁궐에 공납하기 위해 세운 민간인 산삼 채취 및 출입 금지 표석. 1992년 강릉영림서에서 가리왕산 국유림도 개설공사 중 정선 강릉부 삼산 봉표가 발견되었다. 봉표는 금표(禁標)라고도 하며 산림에 출입을 금하거나 일정한 공간을 막아서 특정한 목적으로 활용하기 위해 세운다. 황장목의 보호를 위해서 황장금표를 세우고 산삼의 공출을 위해 관에서...
-
조선 중기의 문신. 본관은 연일(延日). 자는 사조(士朝), 호는 화곡(華谷)·벽은(薛隱). 아버지는 좌의정 인성부원군(左議政寅城府院君) 정철(鄭澈)이고, 어머니는 문화류씨(文化柳氏)로 류강정(柳强頂)의 딸이다. 1590년(선조 23) 진사시에 합격하고, 1592년 7월 의주행재소에서 실시된 별시문과에 장원으로 급제하여 예조좌랑이 되었다. 인조가 즉위하기 전 20여 년에 걸쳐 아버...
-
강릉시 왕산면 왕산리의 해발 840.6m의 제왕산 정상에 있는 고대 석축 산성. 제왕산성(帝王山城)은 고려말 우왕(禑王)이 이곳에 와서 성을 쌓고 피난을 하였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라는 설이 있으나 사실로 받아들이기는 어렵다. 우왕은 왕씨가 아닌 신돈(辛旽)의 아들 신우(辛隅)로 몰리어 쫓기는 신세였으며 강릉으로 옮긴 후 한 달도 못되어 공양왕(恭讓王)이 보낸...
-
고려시대 강릉 지역에 있었던 특수한 지방 행정구획. 부곡은 향(鄕)·소(所)와 함께 군현(郡縣)에 임내(任內)로 예속되었으며, 거주민은 군현민에 비해 신분적으로 차별 대우를 받았다. 고려시대 사람들은 대개 거주지인 본관의 이름을 붙여 명주 사람, 처인부곡 사람 등으로 불렀다. 언뜻 보기에는 오늘날과 별로 다를 바가 없는 듯이 보이나 그 사람의 본관(本貫)이 군현에 소속되었는지, 부...
-
조선시대 강릉 지역의 장수 인물. 사마시에 올랐으며, 성품(性稟)이 온화하고 기품이 있어 화려함을 따르지 않았다. 매화와 대나무를 즐기며 거문고와 책으로 여가를 보냈다. 94세에 가의대부(嘉義大夫)에 올랐으며, 3대에 걸쳐 추증되었다....
-
조선시대의 학자. 본관은 풍양(豊壤). 풍양군(豊壤君) 조신혁(趙臣赫)의 후손이다. 조시달(趙時達)은 일찍이 경학(經學)과 『사기(史記)』를 익혔다. 『예서(禮書)』를 두루 보고 『사례촬요(四禮撮要)』를 저술하여 관혼상제(冠婚喪祭)에 편리하게 이용하도록 하였다. 조시달에 대한 기사는 『증수임영지(增修 臨瀛誌)』인물조에 기재되어 있다. 가례(家禮)에 대하여 일가...
-
고려 후기의 문신. 본관은 풍양(豊壤). 평장사 조맹(趙孟)의 31대손이다. 조운흘(趙云仡)은 이인복(李仁復)의 문인이며, 1357년(공민왕 6)에 문과에 급제하여 안동서기(安東書記)가 되었다. 합문사인(閤門舍人)을 거쳐서 첨서밀직사사(簽書密直司事)에 오르고, 1390년(공양왕 2)에는 계림부윤(鷄林府尹)이 되었다. 1392년 조선 개국 후에 강릉부사로 제수되었으나 이듬...
-
조선 후기의 무인. 진사 호인(好仁)의 아들로 용맹하였고 의기가 남달리 뛰어났다. 무과에 급제하여 병자호란 때 선전관으로 남한산성(南漢山城)에서 인조를 호위하였다. 1637년(인조 15) 정월 적진을 염탐하기 위하여 강화도(江華島)에 들어가 임무를 마치고 돌아왔다. 인조가 이를 가상히 여겨 특별히 말과 좋은 옷을 하사하였다. 또 적의 동태를 파악하라는 명을 받고 적진으로 가던 도중...
-
조선 후기의 문신. 본관은 창녕(昌寧). 충정공(忠貞公) 조계상(曺繼商)의 후손으로 조근(曺瑾)의 아들이다. 1681년(숙종 7)에 문과에 올라 벼슬이 현감(縣監)에 이르렀다. 조징한에 대한 기사는 『증수임영지(增修臨瀛誌)』인물조에 기재되어 있다....
-
조선 중기의 문신. 본관은 창녕. 충정공(忠貞公) 조계상(曺繼商)의 증손이다. 음서(蔭敍)로 벼슬이 전생직장(典牲直長)에 이르렀다. 조철(曺哲)은 임진왜란 때에 벼슬을 버리고 경포에 숨어 살았다. 옥산(玉山) 이우(李瑀)와 헤어지면서 시를 짓기를 “석잔 술에 헤어지는 노래 한 곡조, 그대를 보내고 경포 가로 돌아가네. 이별의 정한을 알 리가 없어, 술잔을 거듭 잡고 나눈...
-
조선 후기의 문신. 본관은 창녕. 금구현령 조헌주(曺憲周)의 아들이다. 1711년(숙종 37) 사마시에 합격하였고, 1722년(경종 2) 장릉참봉(章陵參奉)에 임명되었으나 사퇴하였다. 1736년(영조 12)에 정시문과에 장원하였다. 이후 동몽교관(童蒙敎官)·공조좌랑·의령현령 등을 거쳐 1739년에 승지, 1741년에 대사간을 지냈다. 1742년(영조 18)에 강릉부사로 왔다가 17...
-
조선 후기의 문신. 본관은 풍양(豊壤). 조정벽(趙廷璧)의 아들이다. 1792년(정조 16)에 문과에 급제하여 벼슬이 부사(府使)에 이르렀다. 조항존(趙恒存)에 대한 기사는 『증수임영지(增修臨瀛誌)』에 올라 있다....
-
강원도 강릉시 옥계면 산계리 787번지에 있는 비각. 1780년 전후로 하여 산계리에는 기존의 전세(田稅)에 산삼(山蔘) 공납이 추가되었고 설상가상으로 심한 흉작으로 동민들의 유리(流離) 현상이 심해졌다. 고진창(高鎭昌), 우광택(禹光澤), 전삼박(全三泊) 등 14명이 상계(上啓)하여 관가로부터 경공(京貢)의 산삼을 감량 받았다. 그리고 어려움을 해결하고자 먼저 50양씩...
-
강원도 강릉시 주문진읍 주문리에 있는 신라시대의 고분군. 주문리 신라고분군은 주문진 항구에서 서쪽으로 약 300m 정도 떨어진 해발 30m 높이의 구릉 정상에 위치하며, 주변에는 주택이 밀집되어 있다. 이 유적은 1994년 10월 28일 개인주택 신축 후 주택의 동서쪽 배수로 작업을 하던 중 발견되어 강릉원주대학교박물관에 의해 1997년 발굴, 조사되었다. 발...
-
강원도 강릉시 주문진읍 주문진리에 있었던 봉수.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에 ‘북쪽으로 양양부(襄陽府) 양야산(陽野山)에 응하고 남쪽으로 사화산(沙火山)에 응하고, 연곡현 북쪽 12리에 있으며 부와는 42리 거리다’라고 기록되어 있다. 『대동여지도』상에는 백두대간 중 오대산에서부터 동으로 갈라진 지맥이 양양부와 경계를 이루다가 약간 남동쪽으로 꺾여...
-
강원도 강릉시 옥계면 주수리(珠樹里)에 있는 구석기시대의 유적. 주수리 구석기유적의 위치는 행정구역상으로 강원도 강릉시 옥계면 주수리에 해당한다. 유적 앞으로는 주수천이 흐르고 있으며, 주수천과 낙풍천 사이에 충적대지인 가평들이 넓게 펼쳐져 있다. 동해 바다와는 약 1.5㎞ 떨어져 있다. 주수리 구석기유적은 2001년에서 2002년에 걸쳐 강원대학교...
-
강원도 강릉시 옥계면 주수리에 있는 신라시대의 고분군. 강릉시 옥계면 주수리 고분군은 강릉시의 가장 남쪽에 위치하고 있으며, 남쪽으로는 동해시 망상동과 접하고 있다. 동 지역은 강릉에서 7번국도를 타고 내려가다 옥계면으로 들어가면 주수천 하구에 한라시멘트 공장이 위치하고 있으며, 유적은 한라시멘트 공장 남쪽에 위치한 구릉상에 분포하고 있다. 유적의 북쪽으로는...
-
강원도 강릉시 옥계면 주수리 동녘골 일대에 분포하고 있는 신라시대의 토기산포지. 주수리 고분군은 지표조사를 통해 확인되었으며, 옥계면 주수리 동녘골 동쪽 해발 65m 구릉의 정상 및 남서쪽 경사면에 주로 분포하고 있다. 현재 노출된 고분들은 대부분 도굴되었고, 주변에는 돌덧널[석곽]을 축조할 때 사용한 것으로 보이는 냇돌이 흩어져 있으며, 신라토기편으로 보이는...
-
강원도 강릉시 지변동에 있는 신석기시대 유물산포지 및 생활유적. 강릉원주대학교 교내 북서편에 위치하며, 해발 30~50m 정도의 야트막한 돌출된 능선의 사면과 곡간지대에 해당된다. 오래전부터 강릉원주대학교 내에서 가끔 신석기시대 빗살무늬토기편이 채집되었으나 유구의 정확한 포함층은 알 수 없었다. 그러던 중 1990년 8월 강릉 지역의 집중폭우로 인해 강릉원주대...
-
강원도 강릉시 옥계면 천남리에 있는 고인돌. 강릉시 옥계면 천남리 옥계중학교 운동장 동남쪽 아래 감나무 과수원에 5개의 고인돌이 인접하여 위치하며, 소로를 건너 윤동성 집 옆과 뒤쪽 구릉 상에도 3개의 고인돌이 위치한다. 고인돌의 덮개돌 평균 장축길이는 약 194㎝, 폭은 약 143㎝, 두께는 약 31㎝이다. 1호 고인돌의 덮개돌은 장축길이 240㎝, 폭 20...
-
강원도 강릉시 옥계면 천남리에 있는 구석기시대의 유물산포지. 행정구역상으로 강원도 강릉시 옥계면 천남리(川南里)에 해당하며, 옥계중학교 뒤편 경방말 일대의 해발 35~40m의 구릉지에 자리 잡고 있다. 이곳은 주수천과 천남천이 합수하는 지점으로 유적 주변으로는 험준한 산악 지형이 둘러져 있다. 하천 주변으로는 비교적 넓은 충적평야가 발달해 있으며, 해안선으로부터 약 3....
-
강릉의 옛 지명. 강릉 지방은 본래 예(濊)의 옛 땅이었다는 이른바 ‘강릉예국설(江陵濊國說)’에 대한 최초의 사료(史料)는 『고금군국지(古今郡國志)』를 인용한 『삼국사기(三國史記)』[권35, 잡지 제4, 지리2]의 기록이다. 강릉만을 국한하여 예국으로 인식할 수는 없지만, 대체로 B.C. 1세기경에서 A.D. 3세기경의 강릉 지역에는 거수(渠帥)를 지배자로 하...
-
강원도 강릉 지역에서 철기시대 이후로 사용되었던 철로 만들어진 각종 도구의 총칭. 철(鐵)은 적철광, 황철광과 같은 형태로 세계 각지에 분포하고 있는데, 이것을 인류가 도구로 만들어 이용한 것은 석기(石器)와 청동기(靑銅器) 다음이다. 철기는 현재도 계속 사용되고 있다. 철기는 제조 기술상으로 보면 주조품(鑄造品)과 단조품(鍛造品) 등이 있다. 철기의 제조법에는 해면철제...
-
강원도 강릉 지역에서 청동기시대와 초기 철기시대에 걸쳐 청동으로 만든 각종 도구의 총칭. 청동(靑銅)[bronze]은 구리[동(銅)]에 비소(砒素) 3%나 주석(朱錫) 10% 이상을 섞어서 만든 합금으로, 인류 역사상 처음 본격적인 도구 재료로 이용했던 금속이다. 청동에서 주석의 비율은 대체로 청동기의 종류와 용도에 따라 달라지는 경우가 많다. 25% 이상으로 높아지면...
-
강원도 강릉시 초당동(草堂洞)에 있는 구석기시대의 유물산포지. 초당동 구석기시대 유물산포지는 남대천과 해안선으로부터 약 1.5㎞ 정도씩 떨어져 있다. 석기가 발견되는 지점은 초당초등학교가 위치한 해발 40~45m 구릉지역 일대이다. 초당초등학교 뒤편의 절토면에서 토양쐐기 구조가 나타나는 고토양층을 확인할 수 있으며, 일부 지점에서는 자갈층이 노출되어...
-
강원도 강릉시 초당동에 있는 신라시대의 고분군. 1971년 공회당 건축 중에 돌덧널무덤 1기가 발견되어 초당동 고분군의 존재가 처음으로 알려지게 되었다. 1990년대부터 최근에 이르기까지 아파트 및 개인주택 건립공사로 인해 매장문화재 발굴조사가 계속적으로 이루어지면서 수많은 고분들이 조사되었다. 1971년에 조사된 1호분은 돌덧널무덤으로 장축은 동-서향, 길이가 4.5m...
-
강원도 강릉시 초당동 고분군에서 출토된 금동관. 강릉의 초당동 고분군에서는 지난 1993년도에 아파트 신축공사 중 신라고분군이 대규모로 확인되었으며, 이중 16호분에서 ‘出’자형의 금동관이 출토되었다. 금동관의 형태는 황남대총에서 출토된 것과 유사하며, 대체적으로 5세기대에 경주에서 제작되어 강릉으로 하사된 것으로 추정된다. 세움 장식의 곁가지인 '出'자형의...
-
강원도 강릉시 초당동에 있는 신석기시대의 주거지유적. 발굴지점은 초당마을 북서쪽 끝에 위치하며 해발 3~4m 정도의 사구지대이다. 발굴지점의 동쪽으로 현재 경작지로 이용되고 있는 사구지대가 계속해서 이어지며, 북서쪽으로 형성된 지금의 취락 주변으로는 50년 이상 된 소나무들이 군락을 이루고 있다. 이 소나무 숲을 통과하면 낮은 저지대를 사이에 두고 경포호수가 바라보인다....
-
강원도 강릉시 초당동유적에서 출토된 중국 한무제(漢武帝) 때 주조된 화폐. 오수전은 동전의 앞면에 ‘五銖(오수)’라고 표기한 화폐로, B.C. 118년(중국 서한 무제 원수(元狩) 5년)에 제정된 청동으로 만든 화폐이다. 수(銖)는 무게의 단위로, 기장·조 100립을 뜻하는 것으로 약 0.65g으로 추정되며 오수전이란 오수의 무게로 만든 화폐를 의미한다. 오수전의 주조를...
-
강원도 강릉시 초당동유적에서 출토된 타날문토기. 김해식토기는 중국의 전국시대(戰國時代)에서 전한대(前漢代)에 걸진 타날문의 회도(灰陶)의 영향을 받아 발생하였다고 한다. 우리나라에서는 한강 유역, 낙동강 유역, 충청도, 전라도, 강원도 등 초기 철기시대 유적에서 많이 발견되고 있어 남한 전역에서 널리 퍼져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주로 한강 이남에 분포되어 있는 철기시대의...
-
신라 하대 명주군왕 김주원(金周元)의 가신(家臣). 785년 선덕왕이 죽은 후에 김주원은 김경신(金敬信)[원성왕]과 왕위계승을 위한 다툼을 벌였는데, 이 과정에서 김주원이 패배하고 김경신이 원성왕으로 즉위하였다. 이때 최대나(崔大奈)는 곽길(郭吉)·함신(咸信)·박영(朴榮) 등과 함께 왕궁으로 들어가 거사(擧事)를 도모하였으나 김주원이 허락하지 않아 실패하였다. 김주원이...
-
고려 후기 강릉에 정착한 강릉 최씨의 문한계의 시조. 본관은 강릉. 호는 충재(忠齋). 고려 제27대 충숙왕(忠肅王)의 부마(駙馬)이며, 강릉최씨 문한계의 시조이다. 최문한(崔文漢)은 기상이 웅위(雄偉)하고 일처리가 명쾌해서 삼도(三道)의 안렴사(按廉使)를 지내면서 많은 공적을 남겼다. 고려 말 국운이 다하자 고려의 유신들과 함께 두문동(杜門洞)[경기도 개풍군...
-
강원도 강릉시 지변동의 마명산에 있는 고려 후기 문신인 최문한(崔文漢)의 묘비. 최문한은 충숙왕의 부마이며 고려 말에 국운이 다하자 강릉으로 낙향한 후에 강릉최씨 시조가 되었다. 1799년 강릉에 거주하는 최문한의 자손들이 최문한 묘지의 표석으로 묘비를 세웠다. 강원도 강릉시 지변동의 유천재사(楡川齋舍)가 있는 마명산 자락에 있다. 받침돌 위에 높...
-
고려 후기의 문신. 본관은 강릉. 최수황(崔守璜)의 아들이다. 최사립(崔斯立)은 고려 충렬왕대에 문과에 합격하여 예부전서(禮部典書)를 지냈으며, 글씨와 시에 능했다....
-
조선시대 강릉의 향리(鄕吏). 본관은 강릉. 향리로서 90세를 살아 수직(壽職)으로 가선대부(嘉善大夫)를 받았다. 최성복에 대한 기사는 『증수임영지(增修 臨瀛誌)』인물조에 기재되어 있다....
-
조선 중기의 문신인 최세건(崔世楗) 처 김씨의 성명·생몰연월일·자손의 성명 등을 기록한 돌. 최세건 처 김씨는 강릉김씨로 김세량(金世良)의 딸이다. 남편 최세건은 승문원 교리 최자점(崔自霑)의 아들로 비안현감(比安縣監)을 지냈다. 최세건 처 김씨는 1457년 출생하여 1535년 9월 1일에 병으로 졸하였다. 1535년 11월 30일 강원도 강릉시 주문진읍 장덕...
-
조선 중기의 문신. 본관은 강릉. 자(字)는 개지(介之), 호는 매창(梅窓). 조은(釣隱) 최치운(崔致雲)의 손자이며 수헌공(睡軒公) 최응현(崔應賢)의 셋째 아들이다. 1498년(연산군 4) 소과에 입격하고, 1504년(연산군 10) 별시문과에 장원급제를 하였으나 중종반정(中宗反正)으로 관직에 오르지 못하였다. 1506년(중종 1)에 왕에게 상소하여 성균관 전적에 올랐고, 이어 사...
-
조선 전기의 선비. 자(字)는 성숙(盛叔). 이조참판을 지내고 강릉 향현사에 제향된 최치운(崔致雲)의 손자이며, 생원 최진현(崔進賢)의 아들이다. 어머니는 죽산안씨로 여흥부원군(驪興府院君) 안치강(安致康)의 딸이다. 부인은 강릉김씨로서 주부(主簿) 김곤(金坤)의 딸이다. 사마시에 합격하여 생원에 올랐다. 성품이 호탕하고 고매하여 술과 시로써 평생을 보냈다고 한다. 강원도...
-
조선 전기의 문신. 본관은 강릉. 자는 종의(宗誼). 조은(釣隱) 최치운(崔致雲)의 손자이고, 수헌공(睡軒公) 최응현(崔應賢)의 맏아들이다. 셋째 아들인 최세절(崔世節)은 호조판서를 지냈다. 성종(成宗) 때 생원시(生員試)에 입격하여 진사에 올랐다. 음직(蔭職)으로 울진현령(蔚珍縣令)과 금구현령(金溝縣令)을 지냈다....
-
조선 중기의 문신인 최세충(崔世忠)의 생애와 행적 등을 기록한 비. 최세충은 사마시에 합격하고 익찬주부(翊贊主簿), 도총부도사(都摠府都事) 등의 관직을 지냈다. 강원도 강릉시 대전동 조산 강릉최씨 선영에서 출토되었으며, 현재는 원광대학교 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다. 개자판(蓋磁板)은 가로 26.5㎝, 세로 37㎝, 두께 2.3㎝이고, 저자판(底磁板)은 가로 27....
-
조선 중기의 문신. 본관은 강릉. 조은(釣隱) 최치운(崔致雲)의 손자이고, 수헌(睡軒) 최응현(崔應賢)의 아들이다. 부인은 철원최씨(鐵原崔氏)로서 승지(承旨) 최철관(崔哲寬)의 딸이다. 아들인 원정(猿亭) 최수성(崔壽峸)은 강릉 12향현(鄕賢) 중의 한 사람으로 향현사(鄕賢祠)에 제향되었다. 울진현령(蔚珍縣令)을 지낸 최세충(崔世忠)이 형이며, 호조판서를 지낸 최세절(崔世節)이 아...
-
조선 전기의 문신. 본관은 강릉. 강릉 12향현 중 한 사람이다. 최입지(崔立之)의 후손으로 아버지는 교수(敎授) 최여남(崔汝南)이고, 어머니는 정선전씨 생원 전무(全務)의 딸이다. 1468년(세조 14) 별시 문과에 급제하여 성균관 박사가 되었고, 1472년(성종 3)에 진잠현감(鎭岑縣監)으로 부임하였으나 병을 얻어 31세에 세상을 떠났다. 1466년(세조 12) 세조가 병을 치...
-
조선 중기의 문신으로 강릉최씨 필달계(必達系) 용연동파(龍淵洞派)의 파조. 자는 청수(淸叟). 강릉최씨의 시조 최필달(崔必達)의 20세손으로 최치운(崔致雲)의 후손이다. 아버지는 통훈대부(通訓大夫) 지평현감(砥平縣監)을 지낸 최세번(崔世蕃)이다. 어머니는 이계저(李季著)의 딸이다. 현량과(賢良科)로 공조좌랑(工曹佐郞)을 지낸 박공달(朴公達)의 딸과 혼인하였다. 5남 2녀를 두었는데...
-
조선 중기의 선비. 본관은 강릉. 자는 가진(可鎭), 호는 원정(猿亭)·북해거사(北海居士)·경포산인(鏡浦山人). 강릉 12향현 중의 한 사람이다. 최필달(崔必達)의 후손으로 증조는 최치운(崔致雲), 조부는 최응현(崔應賢), 아버지는 생원 최세효(崔世孝)이고, 어머니는 철원최씨 승지 최철관(崔哲寬)의 딸이다. 조광조와 함께 김굉필(金宏弼)에게서 수학(受學)하였다. 조광조는...
-
조선 중기의 문인이자 효자. 본관은 강릉. 호는 수림(秀林). 강릉 향현사에 제향된 최수성(崔壽峸)의 사촌이다. 1555년(명종 10) 함헌(咸軒)·최운원(崔雲遠)·최운우(崔雲遇) 등과 함께 오봉서원(五峰書院)의 건립을 발의하고, 감사(監司) 윤인서(尹仁恕)와 부사(府使) 홍춘년(洪春年)의 협조를 받아 이듬해에 오봉서원을 건립하였다. 지극한 효성으로 어버이를 섬겼고 상을 당했을 때...
-
고려 후기의 문신. 본관은 강릉. 고종 때 문과에 급제하였으며 기거사인(起居舍人)·군부정랑(軍簿正郞)을 역임하였다. 충렬왕 때 좌승지에 올라 동지공거(同知貢擧)가 되어 과거를 관장하였으며, 부지밀직사사(副知密直司事)를 거쳐 첨의찬성사(僉議贊成事)로 치사(致仕)하였다. 최수황은 독실한 불자(佛者)로 불법(佛法)을 좋아하고 시를 잘 지었으며 글씨도 잘 썼다고 한다. 또한 인...
-
조선 전기의 선비. 본관은 강릉. 호는 학구(鶴衢). 목사(牧使) 최경지(崔景智)의 5대손이며 참봉(參奉)인 최계원(崔季元)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현감 최홍(崔泓)이고 아버지는 훈도 최여림(崔汝霖)이다. 부사(府使)인 변효동(邊孝同)의 딸인 원주변씨(原州邊氏)와 혼인하였다. 1507년에 사마시에 합격하고 1508년에 성균관에 입학하였다. 출사는 하지 않고 경학에 심취하여 인의도덕...
-
조선 중기의 강릉부 향리. 강릉부(江陵府) 향리(鄕吏)로 있으면서 1628년(인조 6) 승려 담화(曇華)가 반역을 꾀하다가 도망을 가자 감영(監營)의 아전으로 들어가 담화를 체포하는 데 자원하였다. 변장을 하고 황해도에 이르렀을 때 한 중을 만났는데 바로 담화임을 알아차리고 춘천까지 유인하여 체포하였다. 참령 사훈권(參寧 社勳券)을 얻었으며, 가선대부(嘉善大夫)에 올랐다....
-
고려 후기의 문신. 본관은 강릉. 시호는 문충(文忠). 최입지(崔立之)의 아들이다. 최안소(崔安沼)는 충숙왕 때 경상도존무사(慶尙道存撫使)에 임명되었고, 1347년(충목왕 3)에 통정대부 안동판관(安東判官)에 임명되었다. 벼슬이 삼중대광 문하시중 동중서평장사 예부사(三重大匡門下侍中同中書平章事禮部事)에 올라 강릉군(江陵君)에 봉해졌고, 공민왕 때에 순성보리공신(純誠輔理功臣...
-
고려 후기의 문신. 본관은 강릉. 아버지는 최입지(崔立之)이며 형은 최안소(崔安沼), 동생은 최안언(崔安漹)이다. 1326년(충숙왕 3) 진사과(進士科)에 급제하고 1328년에 문과(文科)에 올라 정선군수를 지내고 한림학사(翰林學士)·성균관좨주(成均館祭酒)·밀직제학(密直提學)을 거쳐 정헌대부(正憲大夫)로 전리(典吏)·예조(禮曹)·이조전서(吏曹典書)에 올랐다. 1361년(공민왕 10...
-
조선 전기의 선비. 본관은 강릉. 자는 경열(景說). 강릉군(江陵君) 최유련(崔有漣)의 5대손이고 고조는 좌찬성(左贊成)인 최이(崔迤)이며, 목사 최경지(崔景智)의 증손이다. 할아버지는 진사 최계원(崔季元)이고 아버지는 문장령 최홍(崔泓)이며 어머니는 강릉김씨(江陵金氏)로 현감인 김정(金精)의 딸이다. 어릴 때부터 두루 경사(經史)를 섭렵하였다. 실학(實學)에 뜻을 두고 성명(性命...
-
조선 전기의 선비인 최여림(崔汝霖)의 묘비. 최여림은 어릴 때부터 두루 경사(經史)를 섭렵하고 실학(實學)에 뜻을 두고 성리학을 연구하였으며 관직에는 나아가지 않고 경포 부근에 은거하면서 후학을 양성하였다. 최여림이 죽은 후 380여 년이 지나 최여림의 생졸이력(生卒履歷)을 상세히 밝히고 후세에 전하기 위해 후손들이 세웠다. 강원도 강릉시 유산동 섬...
-
조선 중기의 문신. 본관은 강릉. 자(字)는 연지(演之), 호는 간재(艮齋). 아버지는 증 이조판서 최세건(崔世楗)이며, 어머니는 김세량(金世良)의 딸이다. 1519년(중종 14) 사마시를 거쳐 1525년(중종 20) 식년 문과에 을과로 급제하여 예문관 검열이 되었다. 이어 저작에 올랐다가 사가독서(賜暇讀書)를 받고 설서·사서를 거쳤다. 1531년(중종 26)에 김안로(金安老)의...
-
조선 전기의 문신인 간재(艮齋) 최연(崔演)[1503~1549]의 신도비. 최연의 호는 간재(艮齋), 자는 연지(演之), 시호(諡號)는 문양(文讓)이다. 고려조 충숙왕 부마 문한공의 후손이다. 아버지는 최세건(崔世楗)이다. 후손들이 최연의 행적과 공적을 후세에 남기기 위해 세웠다. 강원도 강릉시 주문진읍 장덕리에 있다. 비제(碑題)는 "자헌대부한성판윤증시문양간...
-
조선 중기의 문신. 본관은 강릉. 초명(初名)은 최의집(崔義集), 자는 일신(日新), 호는 누곡(樓谷). 호조참판을 지낸 최구담(崔具曋)의 아들이다. 1639년(인조 17) 생원시에 입격하고, 1651년(효종 2) 식년시 병과로 급제하여 통예정랑(通禮正郞)에 제수되었다. 후에 보안(保安)과 고산(高山)의 찰방(察訪)을 거쳐 예천·안산·정선·안성·양양의 수령을 지냈다. 벼슬이 동지중...
-
조선 중기의 문신. 본관은 강릉. 자(字)는 대중(大中), 호는 내한(內翰). 고성군수를 지낸 최자점(崔自霑)의 증손이며, 최해(崔瀣)의 아들이다. 부인은 권화(權和)의 딸로서 효행이 뛰어났다. 1567년(명종 22) 진사시에 입격하고, 1570년(선조 3) 식년시 을과에 급제하였으며 감찰(監察)을 지냈다. 『내한유고(內翰遺稿)』가 있다....
-
조선 중기의 선비. 최운우(崔雲遇)는 강릉 12향현 중의 한 사람이다. 본관은 강릉. 최문한(崔文漢)의 후손으로 아버지는 교수 최담(崔澹)이고, 어머니는 진주 강씨(晋州姜氏) 참봉 강준지(姜俊智)의 딸이다. 진사 최호(崔浩)에게 입양되었다. 김광진(金光軫)에게서 수학한 최운우는 1552년(명종 7) 생원에 급제하였고, 여러 번 과거에 응시하였으나 합격하지는 못...
-
강릉 출신의 고려 후기의 문신. 본관은 강릉. 호는 동강(東崗). 조은(釣隱) 최치운(崔致雲)이 손자이다. 99세를 살아서 기애(耆艾: 장수한 사람)에 속하였다. 영월군수와 정선군수를 지냈으며 중정대부(中正大夫)에 봉해졌다. 벼슬은 삼사(三司)의 좌윤(左尹)에 이르렀다. 조선 초에 이조참의(吏曹參議)에 추증되었다....
-
고려 전기의 문신. 자는 원택(元澤). 시호는 장경(莊敬). 최유는 선종 대 과거에 급제한 후 인종 대에 이르기까지 이부상서를 비롯하여 주요 관직을 역임하였고, 문하시랑평장사까지 지냈다. 명주(溟州)[지금의 강릉]의 주리(州吏)로 있다가 1090년 문과에 급제, 교서 교감(校書校勘) 중서사인(中書舍人)을 거쳐 1111년 시어사(侍御史)가 되었다. 1128년 이부상서(吏部...
-
고려 말 조선 초의 문신. 본관은 강릉. 할아버지는 강릉최씨의 시조인 최입지(崔立之)이고 아버지는 최안소(崔安沼)이다. 공민왕 때 문과에 합격하였고 문하시중평장사(門下侍中平章事)를 지냈으며 조선개국공신이다. 1392년(태조 1) 경상도병마도절제사(兵馬都節制使)로 있을 당시 왜구에게 사로잡혔다가 몰래 도망쳐 나온 명나라 사람 이순 등을 구해 주었다. 후에 참찬문하부사를 역...
-
1395년(태조 4) 공신도감에서 조선 건국에 공이 있는 최유련에게 발급한 녹권. 조선왕조는 개국한 다음 달인 1392년 8월에 공신도감(功臣都監)을 설치하고 왕조 창업에 직접적으로 공을 세웠던 52명을 개국공신에 책록하였다. 뒤이어 건국의 거사에 직접 참여하지는 않았으나 잠저(潛邸) 때부터 이성계를 따르고 왕위에 오르는데 공로가 있는 자에게는 개국원종공신의 훈호(勳號)를 내렸다....
-
조선 전기 강릉 출신의 문신. 본관은 강릉. 최필달(崔必達)의 후손으로 아버지는 최치운(崔致雲)이고, 어머니는 강릉함씨 현령(縣令) 함화(咸華)의 딸이다. 1448년(세종 30)에 사마시에 합격하고, 1454년(단종 2) 별시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였다. 저작·박사·전적 등에 임명되었으나 모두 사퇴하였고, 1462년(세조 8) 강원도사(江原都事)가 되었다. 그 뒤 고성·영월 두 고을의...
-
조선 전기의 문신인 수헌(睡軒) 최응현(崔應賢)의 행적을 적은 신도비. 최응현 신도비는 1687년(숙종 4)에 세워진 것으로 비문에는 신도비문 작성 경위, 최필달(崔必達)을 시조로 하는 강릉최씨의 상계와 조상의 공적, 수헌공의 행적과 후손들의 행적, 그리고 비명(碑銘)이 기록되어 있다. 최응현의 묘소에 비가 있었으나 오래되어 마모되자 후손들이 최응현의 행적을...
-
고려 후기·조선 전기의 문신. 본관은 강릉. 자는 유명(惟明), 호는 희경(僖景), 초명(初名)은 최원(崔遠). 강릉군(江陵君) 최유련(崔有璉)의 아들이다. 처음 벼슬로 도평의사사지인(都評議使司知印)을 지냈고, 1390년(공양왕 2)에는 사헌집의(司憲執義)가 되었다. 조선 개국 후 중추원우부승지를 거쳐 좌승지가 되었다. 1394년(태조 3)에 중추원부사(中樞院副使)로 승진하고, 1...
-
고려 말·조선 초의 문신. 본관은 강릉. 송성담(宋性潭)의 문인으로 고려 말 문과에 급제하였으며, 조선 건국 후 한성부 북부령(北部令)과 창원부사(昌原府使) 등을 역임하였다. 고려시대 관직은 알 수 없으나, 조선 개국과 함께 조선왕조에 참여하여 1394년(태조 4) 한성부 북부영을 역임하였다. 당시 한성부 중부령(中部令) 김염(金濂)과 함께 조선 건국 후 새 도읍지인 한양(漢陽)에...
-
조선 후기의 문신. 본관은 강릉. 자는 찬보(粲甫). 조은(釣隱) 최치운(崔致雲)의 후손으로 최하적(崔夏績)의 아들이다. 1729년(영조 5)에 식년시 병과에 급제하여 벼슬이 함경도판관에 이르렀다. 벼슬을 지낸 후 조급하거나 서두르는 일이 없이 분수를 지키며 살았다. 거처하는 곳에 집을 지어 ‘양한재(養閑齋)’라 이름 하였다. 소나무와 대나무·매화·국화를 매우 사랑하여 군자로서의...
-
고려 후기의 문신. 본관은 강릉. 자는 양필(良弼). 호는 성묵당(誠默堂). 시조 최흔봉(崔欣奉)의 12대손으로 할아버지는 최군보(崔君甫), 아버지는 최릉(崔陵)이다. 강릉최씨 평장공파(平章公派)의 시조이다. 장남인 최안소(崔安沼)는 평장사(平章事) 강릉군, 차남인 최안빈(崔安瀕)은 전리판서(典理判書) 예성군(芮城君), 삼남(三男) 최안언(崔安彦)은 예의판서(禮儀判書)에 올랐다....
-
고려 후기의 문신이자 강릉최씨 입지계의 시조인 최입지의 신도비. 최입지(崔立之)는 강릉최씨 입지계의 시조이다. 최입지는 고려 때 평장사(平章事)를 지냈고, 강릉군(江陵君)에 봉해졌다. 1844년(헌종 10)에 후손 최종태(崔鍾泰)·최양호(崔養浩) 등이 종인들과 함께 재원을 마련하여 건립하였다. 강원도 강릉시 성산면 금산리 최입지 묘 근처에 있다. 비좌와 비두는...
-
조선 전기의 문신. 본관은 강릉(江陵). 최문한(崔文漢)의 증손이며 직장(直長) 최윤행(崔允行)의 아들이다. 1465년(세조 11)에 진사와 생원 양시에 합격하였다. 1472년(성종 3)에 문과에 올라 사간원 정언으로 있었으나 간신들의 비위에 거슬려 고성군수로 나갔다. 이 때 강원도 감사 박원종(朴元宗)이 간신들이 사주를 받아 최자점을 파직시키기 위해 최자점의 재산을 조사하였다....
-
조선 전기의 문신인 최자점(崔自霑)[1434~1508]의 묘비. 최자점의 자는 자흡(子洽), 호는 괴헌(槐軒), 부마(駙馬) 최문한(崔文漢)의 증손이며 직장(直長) 최윤(崔沇)의 아들로 1465년(세조 11)에 생원진사시에 입격하였고, 1472년(성종 3)에 문과에 올라 사간원 정언, 고성군수를 지냈다. 강원도 강릉시 교1동 강릉시외버스터미널 북쪽 산록에 묘와...
-
조선 중기의 학자. 본관은 강릉(江陵). 최치운(崔致雲)의 후손이며 아버지는 최주명(崔柱溟)이다. 최치운(崔致雲)의 후손으로 진사에 올라 일찍이 시문으로 명성이 높았다. 풍모가 준수하고 위엄이 있었으며 사림(士林)에서도 뛰어나 고을의 자랑으로 여겼다. 1661년(현종 2)에는 향인들과 함께 향교를 새롭게 중수하였다. 최재태에 대한 기사는 『증수임영지(增修臨瀛誌...
-
조선 전기의 문신. 본관은 강릉. 세계(世系)는 알려져 있지 않다. 손자 대에 이르러 연안차씨와 인척관계를 이루면서 집안이 성하기 시작하였으며, 증손자 대부터 많은 관료를 배출하였다. 고려시대의 활동사항은 알 수 없으나 1392년(태조 1) 조선 왕조 창업과 더불어 실시된 문과 과거시험에 급제한 후 여러 관직을 두루 거쳐 성균관 대사성(大司成)까지 올랐으며 후진 양성에 힘썼다....
-
조선 전기의 선비. 본관은 강릉. 자는 국신(國臣), 호는 한송자(寒松子). 조선 세종조 이조참판을 지낸 최치운(崔致雲)의 아들이다. 부인은 죽산안씨 여흥부원군 안치강(安致康)의 딸과 강릉함씨 호장 함순(咸順)의 딸이다. 아들은 둘이었는데 첫째는 최세번(崔世蕃), 둘째는 최세창(崔世昌)이다. 1451년(문종 1) 생원에 입격하였고 음사로 의금부도사(義禁府都事)에 제수되었으나 부임하...
-
조선 전기의 선비인 최진현(崔進賢)[1424~1460]의 묘비. 1451(문종 1) 생원에 입격하였고 음사로 의금부도사(義禁府都事)에 제수되었으나 부임하지 않았다. 부인은 죽산안씨 여흥부원군 안치강(安致康)의 딸인데 향년 30세로 졸하였으며, 이때 묘표는 동생인 수헌공(睡軒公) 최응현(崔應賢)이 찬하였다. 그리고 다시 강릉함씨 호장 함순(咸順)의 딸을 아내로 맞이하였다. 최세번(崔...
-
조선 후기의 선비. 본관은 강릉. 생원 최만재(崔萬栽)의 아들이다. 1681년(숙종 7) 진사에 올랐다. 최징은 아버지 최만재(崔萬栽)와 함께 문한으로서의 임무를 맡아 수행하였다. 성품이 술을 좋아하였으나 취하여도 남과 시비를 하지 않았다. 소학대(巢鶴臺) 아래에 살면서 한가롭게 지내다 일생을 마쳐 학담주인(鶴潭主人)이라 불렸다. 『증수임영지(增修臨瀛誌)』에 강릉 강동면...
-
고려 말 조선 초의 문신. 본관은 강릉. 강릉최씨 충무공파의 시조인 경흥 부원군(慶興府院君) 최필달(崔必達)의 16세손으로 최한주(崔漢柱)의 동생 제학공(提學公) 최개(崔愷)의 증손이다. 최천유의 두 아들인 최점(崔店)과 최암(崔庵)이 1423년(세종 5) 진사시에 합격한 기록이 남아 있으며, 이후 많은 자손들이 조선시대의 관리로 등용되었다. 어려서부터 총명하고 문재(文才)가 뛰어...
-
강릉 출신의 조선 전기의 문신. 강릉 12향현 중의 한 사람으로 본관은 강릉(江陵). 최필달(崔必達)의 후손으로 아버지는 생원 최안린(崔安麟)이고, 어머니는 정선전씨 낭장(郞將) 전인구(全仁具)의 딸이다. 최치운은 1408년(태종 8) 19세 때 생원시에 급제하였고, 1417년(태종 17) 27세 때 문과에 급제한 후 승정원 정자(承政...
-
조선 전기의 문신인 최치운(崔致雲)의 행적을 기록한 묘비. 강릉최씨 필달계 후손으로 조선 세종 조에 이조참판을 지낸 최치운의 상계(上系) 및 혼인관계, 출생과 관직경력, 후손, 명문(銘文) 등을 기록한 것으로 최치운의 아들 최진현(崔進賢)이 세웠다. 강원도 강릉시 대전동 즈므마을 강릉최씨 필달계 선영에 있는 최치운의 묘 앞에 있다. 비석의 총 높...
-
고려 전기의 문신. 강릉최씨 필달계의 시조로서 고려 태조의 창업을 도와 918년(태조 1)에 삼중대광 삼한벽상 찬화공신(三重大匡三韓壁上贊化功臣)에 책록되었다. 영첨의 좌정승(領僉議左政丞)을 지낸 뒤 경흥부원군(慶興府院君)에 봉해졌다. 최필달은 고려 건국시 교육과 도의의 선양에 크게 공헌한 문무를 겸한 학자로서 해동부자(海東夫子)라 일컬어졌다. 작...
-
조선 전기의 문신. 본관은 강릉(江陵). 최필숭(崔必崇)의 아버지는 최옥연(崔玉淵)이다. 1480년(성종 11)에 생원시에 합격하였다. 1486년 문과에 올라 벼슬이 충청도사(忠淸都事)에 이르렀다. 최필숭은 『증수임영지(增修臨瀛誌)』인물조에 기재되어 있다....
-
고려 후기의 무신. 본관은 강릉. 경흥부원군(慶興府院君) 최필달(崔必達)의 13세손이며, 최열(崔烈)의 아들이다. 충렬왕 때 대중대부(大重大夫)로 종정경(宗正卿)과 정당문학(政堂文學)을 지냈다. 원(元) 태조가 일본을 정벌할 때 공을 세워 명주군(溟州君)에 봉해졌다. 원나라와 고려가 함께 일본을 정벌할 때 종군(從軍)하였다. 바다에서 갑자기 회오리바람을 만나...
-
조선 후기의 문신. 본관은 강릉. 최운우(崔雲遇)의 현손이다. 노봉(老峯) 민정중(閔鼎重)에게 글을 배웠으며, 1684년(숙종 10) 생원에 올랐다. 최해웅이 16세 때 지은 「경포대」 시는 널리 알려져 있다. 또 대관령에 올라 읊은 시가 전해진다. “대장부 칼을 집고 높은 봉에 의지하여, 맑은 정기 호흡하며 땅 끝을 굽어보네. 기운이 충만하니 산도 낮아 보이...
-
조선 후기의 선비. 본관은 강릉. 최치운(崔致雲)의 후손이다. 1777년(정조 1) 오봉서원이 수재로 훼손되어 원우(院宇)를 중건할 때 이론(異論)이 있자, 최현기는 함헌(咸憲)을 백 년간 철식(腏食; 여러 신에 제사 지낼 때 각 신을 동시에 제사하는 일)함은 그 공에 보답하기에 족하다고 하면서 위판(位版)을 몰래 묻었다. 1782년(정조 6) 9월에 최현기(崔顯基)를 비롯하여 민...
-
조선 중기의 충노(忠奴)였던 문리동(文里同)의 비석. 문리동은 관노로서 임진왜란 당시 강릉부사 이광준(李光俊)을 모시고 전란을 피하여 헤매다가 양식이 떨어지자 흩어진 나락을 주워 연명하게 하는 등 어려움 속에서도 정성을 다하여 부사를 섬겼다. 주민들이 충성을 다하여 주인을 섬긴 문리동의 행실을 갸륵히 여겨 비석을 세웠다. 현재 강원도 강릉시 성내동에 있었던 명주군청 안에...
-
강원도 강릉시 구정면 제비리 칠봉산 산정에 위치한 고대 산성. 칠봉산성에 대해서는 역대 지리지나 향토지에는 기록들이 보이지 않으나 『조선보물고적조사자료(朝鮮寶物古蹟調査資料)』와 『문화유적총람(文化遺蹟總覽)』에 그 기록이 보이는데, 내용은 다음과 같다. ‘강릉의 서쪽 약 2리, 구산리 남쪽 약 1㎞의 칠봉산에 있는 석성으로 주회 약 850간(間)이고, 대부분 붕...
-
강원도 강릉시 명주동에 있는 조선 후기의 관아 건축물. 조선 시대 수령의 주요 업무가 칠사(七事)로 규정되었던 데서 연유하여 지방에서 수령의 집무처를 칠사당(七事堂)이라 명명하였다. 칠사란 빈민과 노약자를 구호하는 존심인서(存心仁恕), 비용 절약에 관한 행기염근(行己廉謹), 명령의 준행과 전파 상황을 보는 봉행조령(奉行條令), 제언과 식목을 관리하고 농사를 장려하는 권과...
-
강원도 강릉 지역에서 신석기 이래 점토를 빚어 불에 구워 만든 용기. 토기(土器)는 신석기 이래로 사용되었는데, 이는 과거의 수렵·채집생활에서 농경을 바탕으로 하는 정착생활로 전환하면서 식량을 저장하고, 식수를 담아두는 용기가 필요하게 되면서 출현하였다. 처음에는 자연적인 구덩이나 풀로 만든 바구니, 목기 등을 토기 대신에 사용하였으나 점차 흙을 반죽하여 일정한 형태를...
-
강원도 강릉시 사천면 판교1리에 있는 신석기 시대의 유물산포지. 강릉-주문진 간 7번국도에서 사천을 지나 황새골고개에서 동쪽으로 약 0.5㎞ 지점의 동쪽으로 뻗어 내려가는 능선에 위치한다. 판교리 유적에서는 빗살무늬토기편과 그물추, 석기가 채집되었다. 빗살무늬토기편의 바탕흙은 고운 점토에 가는 모래와 굵은 모래가 함유되어 있다. 아가리는 곧고 입술...
-
강원도 강릉시 사천면 판교리에 있는 청동기시대의 유물산포지. 판교리 청동기시대 유물산포지 ①은 동덕리 청동기시대 유물산포지에서 남쪽으로 흘러내린 해발 약 20m의 능선 말단부에 민가를 짓기 위해 절단한 면에 위치한다. 판교리 청동기시대 유물산포지 ②는 판교리 청동기시대 유물산포지 ①과 섬석들을 사이에 두고 마주보고 있는 해발 약 30m의 구릉 일대에 위치한다....
-
강원도 강릉시 포남동에 있는 주거유적. 포남동 유적은 학술적으로 정식 발굴 조사된 유적이 아니고 관동대학의 학감(學監)으로 있던 리빙스턴이 1963년 여름 자기 집 앞마당에서 정원 작업 중 발견하여 유물을 채집한 것을 1964년 당시 국립중앙박물관의 이난영이 현지를 답사하여 조사 보고했던 유적이다. 발굴이 학술적인 조사절차로 진행되었던 것도 아니고 이미 파괴된...
-
강릉의 옛 지명. 『삼국사기(三國史記)』 「지리지(地理志)」에 의하면 “명주(溟州)[현재의 강릉]는 본시 고구려의 하서량(河西良)인데, 후에 신라에 속하였다.”라고 하여 이 지역이 고구려의 지명으로 하서량이라 하였음을 알 수 있다. 대체로 이 지역은 한(漢) 무제(武帝)가 고조선을 소멸시킨 후에는 임둔(臨屯)에, 그리고 그 후에는 동부도위(東部都尉)에...
-
통일신라시대 동북쪽 국경지대인 하서주에 설치된 군부대. 하서변수당은 통일신라시대 변경을 지키던 삼변수당(三邊守幢)의 하나이다. 삼변수당은 690년(신문왕 10)에 한산변(漢山邊)[지금의 廣州 지방]·우수변(牛首邊)[지금의 春川 지방]·하서변(河西邊)[지금의 강릉 지방]의 세 곳에 설치하였다. 하서변수당은 신라의 동북쪽 국경지대인 하서주(河西州) 관내 요새지에 설치된 것으...
-
강원도 강릉 지역에 배치되었던 신라시대의 지방군대조직인 육정(六停)의 하나. 육정(六停)은 신라시대 각 지방의 주(州)에 배치하였던 6개의 군단(軍團)을 말한다. 육정 중에서 제일 먼저 설치한 군단은 대당(大幢)으로, 544년(진흥왕 5)에 편성하여 경주 부근에 배치하였으며, 옷깃의 색깔은 자백(紫白)이었다. 다음으로 552년에 지금의 경상북도 상주 지방에 배치했던 상주...
-
신라시대의 지방행정구역. 삼국통일 직후에 완성된 9주(九州)의 하나로 지금의 강원도와 경상북도 북부지방에 해당된다. 주치(州治)는 지금의 강릉(江陵)이다. 삼국을 통일한 신라는 685년(신문왕 5)에 지방행정제도를 9주·5소경(小京)으로 새롭게 편성하였다. 전국을 9주로 나누고, 주 아래에는 군(郡)·현(縣)을 두었으며, 주에는 총관(摠管 : 후에 都督으로 개칭), 군에는 군수(郡...
-
강릉에 설치하였던 신라시대의 군부대. 활을 쏘는 부대로 한산주궁척(漢山州弓尺)과 더불어 이른바 이궁(二弓)의 하나이다. 한산주궁척은 경기도 광주(廣州) 지방에 두었고, 하서주궁척은 598년(진평왕 20)에 하서주[지금의 강원도 강릉]에 설치하였다....
-
통일신라시대에 하서주에 설치된 군부대. 만보당(萬步幢)은 통일신라시대 구주(九州)에 조직적으로 배치된 부대로, 주마다 각기 두 개씩 있었다. 하서주만보당(河西州萬步幢)은 하서주[지금의 강원도 강릉]에 설치되었다. 만보당은 각기 금(衿)의 빛깔이 달랐는데, 사벌주(沙伐州)는 청황(靑黃)·청자(靑紫), 삽량주(歃良州)는 적청(赤靑)·적백(赤白), 청주(菁州)는 적황(赤黃)·적록(赤綠)...
-
신라시대에 하서주에 설치된 군부대. 신라시대 지방의 다섯 고을에 설치한 오주서(五州誓)의 하나로, 672년(문무왕 12) 하서주[지금의 강원도 강릉]에 설치되었다. 오주서는 청주서(菁州誓)[지금의 진주], 완산주서(完山州誓)[지금의 전주], 한산주서(漢山州誓)[지금의 廣州], 우수주서(牛首州誓)[지금의 춘천], 하서주서(河西州誓)[지금의 강릉]의 다섯 부대를 가리킨다. 이 가운데...
-
신라시대의 지방행정구역. 하슬라(何瑟羅)[지금의 강릉]에 설치한 주(州)의 이름이다. 하슬라주는 신라의 동북지방의 군사중심지이며 북방진출을 위한 전초기지로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었다. 삼국시대 신라는 고구려·백제·가야를 상대로 영토를 확장하는 과정에서 주(州)의 설치와 폐지가 자주 일어나고 있었다. 하슬라가 언제 신라에 속하였는지는 분명히 알 수 없지만, 『삼국사기...
-
강원도 강릉시 강동면 하시동1리에 있는 고인돌. 강동면사무소에서 하시동1리 쪽으로 700m가량 내려가면 서당말 건너 대재골 안골의 김지벽 무덤 뒤편에 고인돌 1기가 위치하고 있다. 덮개돌의 크기는 길이 165㎝, 폭 85㎝, 두께 28㎝이다. 덮개돌 밑에는 현재 길이 104㎝, 높이 42㎝, 두께 12㎝ 크기의 돌널[석관] 한 면이 남아 있다. 하시...
-
강원도 강릉시 강동면 하시동리(下詩洞里)에 있는 구석기시대의 유물산포지. 하시동리의 불화산[43.4m]을 중심으로 해발 20m 내외의 해안단구면 일대가 구석기유적에 해당된다. 도로 개설과 객토용 토양을 채취하기 위한 절개면에서 구석기시대 고토양층과 석기가 확인되고 있다. 절개면에 드러난 퇴적단면상에는 최하부의 기반암 풍화층과 해성력층과 해성사층, 그 상부의 점...
-
강원도 강릉시 강동면 하시동리에 있는 신석기시대의 유물산포지. 하시동 신석기시대 유물산포지는 안인리 신석기·철기시대 유적지에서 북서쪽으로 약 1.2㎞ 정도 떨어진 불화산(不火山)[해발 43.4m] 남서쪽 능선에 위치한다. 강동면사무소에서 하시동1리 쪽으로 700m 가량 내려가면 서당말 건너 대재골 안쪽의 김진벽 무덤 뒤편 구릉 주위 무덤가에 있다....
-
강원도 강릉시 강동면 하시동에 있는 조선시대의 와요지. 강동면사무소에서 마을 길을 따라 동쪽으로 700m 가량 내려가 서당 뜰을 건너면 박태균 씨 집이 위치하고 있다. 박태균 씨 집 앞쪽 구릉의 서북쪽 끝 부분 무덤가와 도로가에 위치한다. 기와 조각과 와요지 소토들이 많이 흩어져 있다....
-
강원도 강릉시 강동면 하시동리에 있는 청동기시대의 유물산포지. 하시동 청동기시대 유물산포지 ①은 강동면 하시동리 풍호 서편 호장골과 진골 사이의 해발 34m 구릉의 정상부와 주위 무덤가에 위치한다. 하시동 청동기시대 유물산포지 ②는 강동면 하시동2리 새목이마을의 31m 높이 구릉 정상부의 개간된 밭과 새목이마을에 들어서기 전 좌측 구릉의 남서쪽에 위치한다....
-
강원도 강릉시 구정면 학산리에 있는 신라시대의 고분군. 학산리 고분군은 장현저수지 남쪽의 구릉지대에 위치한다. 현재 도굴된 고분들이 방치되어 있다. 주변으로는 돌덧널[석곽]을 축조할 때 사용한 것으로 보이는 냇돌이 흩어져 있으며, 신라토기편이 일부 채집되고 있다. 지난 1963년 10월 신라시대의 굽다리항아리 1점, 긴 목 항아리 1점, 굽다리 잔 1점, 손잡...
-
강릉 부사를 지낸 조선 중기의 문신. 본관은 청주(淸州). 자는 심원(深源). 한영삭(韓永數)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한유(韓愈), 아버지는 한충례(韓忠禮)이다. 1503년(연산군 9) 별시문과에 삼등과로 급제하였다. 장령을 거쳐 1510년(중종 5)에 강릉 부사로 재직하던 중 관물(官物)인 면포(綿布) 1백 50필로 양곡을 산 일이 발각되어 장오죄(贓汚罪)로 파출당하고, 추문(推...
-
조선 후기의 문신. 본관은 청주. 한배후(韓配厚)의 아들로, 한배연(韓配淵)에게 입양되었다. 어머니는 유익기(兪益基)의 딸이다. 1721년(경종 1) 사마시에 합격하여 성균관에서 수학하다가 벼슬길로 나아가 1740년(영조 16)에 정선군수를 거쳐 정랑에 올랐다. 1754년 증광문과에 을과로 급제하여 60세의 나이로 보덕이 되었고, 이어 지평·정언·헌납·장령을 역임하였다. 1756년...
-
조선 후기의 화가. 본관은 강릉. 일명은 영(瑛), 자(字)는 덕유(德有), 호는 운초(雲樵)·벽당(碧堂)이다. 1826년(순조 2)에 태어났다. 조선 후기에 활동한 화가로서 산수화를 특히 잘 그렸다. 1887년(고종 24)에 그린 설경(雪景)의 산수화인 「설중방매도(雪中訪梅圖)」가 있다. 「설중방매도(雪中訪梅圖)」는 암향소영(暗香疎影)의 의취(意趣)가 깃든 가작(佳作: 아름다운...
-
고려 말 조선 초의 문신. 본관은 강릉. 자(字)는 윤물(潤物). 호는 난계(蘭溪). 시호는 정평(定平). 검교중추원학사(檢校中樞院學士) 함승경(咸承慶)의 아들이다. 1385년(우왕 11) 25세의 나이로 문과에 급제하여 예문검열(藝文檢閱)·좌정언(左正言)을 지냈다. 1389년(공양왕 즉위년) 우헌납(右獻納)이 되었으나 탄핵을 받고 지춘주사(知春州事)에 좌천되었다가 뒤에 형조정랑이...
-
조선 후기의 화가. 본관은 강릉. 화원으로 교수를 지낸 함제건(咸悌健)의 아들이며, 역시 화원으로 교수를 지낸 김구성(金九成)의 사위이고, 김두량(金斗樑)의 외삼촌이며, 함도홍(咸道弘)의 아버지이다. 1733년(영조 9) 박동보(朴東普)·양기성(梁箕星)과 함께 '영조어진도사(英祖御眞圖寫)'에 참여하였으며, 1744년 이성린(李聖麟) 등과 함께 「장조헌경후가례반차도 (莊祖獻敬后嘉禮班...
-
고려 전기의 문신. 본관은 강릉. 자(字)는 자진(子眞), 호는 시은(市隱), 시호는 문익(文翼). 고려 태조 공신 양후공(襄厚公) 함규(咸規)의 6세손으로 공부상서(工部尙書) 함유일(咸有一)의 아들이다. 최충(崔冲)이 설립한 문헌공도(文憲公徒) 출신으로 1123년(인종 1) 문과에 급제하여 병부시랑(兵部侍郞)을 거쳐 양양익령현(襄陽翼領縣)을 지냈고 상식직장동정(尙食直長...
-
조선시대의 무신. 본관은 강릉. 형조판서를 지낸 동원군(東原君) 함부림(咸傅霖)[1360~1410]의 현손(玄孫)이다. 별시 무과에 장원으로 급제하여 감찰과 낭천현감(狼川縣監)을 지냈다....
-
고려 후기의 문신. 본관은 강릉. 자(字)는 선여(善餘). 고려 태조공신(太祖功臣) 양후공(襄厚公) 함규(咸規)의 12세손이며, 함주(咸住)의 아들이다. 공민왕 때 문과에 급제하여 보문각제학(寶文閣提學)·검교(檢校)·중추원학사(中樞院學士) 등을 역임하였다. 조선시대에 들어와 집현전 대제학(大提學)을 지냈다....
-
김주원(金周元)의 가신(家臣)·문객(門客). 785년 선덕왕이 죽은 후에 김주원은 김경신(金敬信)과 왕위계승을 위한 다툼을 벌였는데, 이 과정에서 김주원이 패배하고 김경신이 원성왕으로 즉위하였다. 이때 함신은 최대나(崔大奈)·곽길(郭吉)·박영(朴榮) 등과 함께 왕궁으로 들어가 거사(擧事)를 도모하려 하였으나 김주원이 허락하지 않아 실패하였다. 김주원이 명주(溟...
-
조선 중기의 문신. 본관은 강릉. 자는 문명(文命), 호는 송담(松潭). 참지의정부사(參知議政府事) 함부림(咸傅霖)의 아들이다. 음보(蔭補)로 사헌부 감찰이 되었다. 이어 고부군수·군기시부정·나주목사를 거쳐, 1451년(문종 1) 판사복시사(判司僕寺事)에 올랐다. 1453년(단종 1) 첨지중추원사(僉知中樞院事)·동부승지 등을 역임하였고, 1457년(세조 3)에는 공주목사·함길도관찰...
-
조선 전기의 문신. 본관은 강릉. 자(字)는 입지(立之). 교리(校理) 함승필(咸承弼)의 손자이며, 강릉함씨 예판공파의 파조(派祖)인 예조판서 함부실(咸傅實)의 아들이다. 아우는 함자명이다. 1419년(세종 1)에 율학(律學)으로 잡과(雜科)에 급제하여 사직(司直)에 제수되었다. 그 후 동부령(東部令)에 이어 문화현령(文化縣令)을 지냈다....
-
고려 후기의 문신. 본관은 강릉. 자(字)는 석정(石挺). 공부상서(工部尙書)를 지낸 문익공(文翼公) 함순(咸淳)의 5세손이다. 아들 함승우(咸承祐)는 보문각 학사(寶文閣學士)를 지냈다. 문과에 급제하여 승봉랑 전법좌랑(承奉郞典法佐郞)을 거쳐 벽상삼중대광(壁上三重大匡) 판밀직사사(判密直司事)를 지냈다....
-
조선 전기의 문신. 1423년(세종 5)에 생원시에 합격하였다. 1426년(세종 8)에 문과에 급제하였으며 벼슬은 호조참판(戶曹參判)에 이르렀다. 함한(咸漢)에 대한 기사는 『증수임영지(增修臨瀛誌)』인물조에 기재되어 있다....
-
조선 중기 강릉에서 교수를 지낸 문신. 본관은 강릉(江陵). 자는 가중(可中), 호는 칠봉(七峰). 조선 건국에 공을 세운 정평공(貞平公) 함부림(咸傅霖)의 5세손이며, 강릉 성산(城山) 건금리(建金里)에서 아버지인 부호군 함좌무(咸佐武)와 어머니 강릉최씨 사이에서 태어났다. 1531년(중종 26)에 24세의 나이로 사마시(司馬試)에 합격한 후 성균관에 입학하여 이황(李滉)과 동학...
-
강원도 강릉시 강동면 안인진리 해령산에 위치한 봉수.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에 ‘남쪽으로 오근산(五斤山)에 응하고 북쪽으로 소동산(所同山)에 응하고 부동쪽 27리에 있다’라고 기록되어 있다. 『대동여지도』상에는 연결되어 있지 않고 안인포(安仁浦) 북쪽에 자리 잡은 평탄지상에 위치한 잔구이다. 『세종실록지리지(世宗實錄地理志)』에는 해령(海令)으로,...
-
조선시대의 강릉 지역에 있었던 향촌 규약이나 그 규약에 근거한 조직체. 이율곡(李栗谷), 최도경(崔蹈景) 등이 '여씨향약(呂氏鄕約)'을 시행하기 전에 김윤신(金潤身)에 의하여 1506년에서 1521년 사이에 강릉 지방에 이미 향약이 시행되고 있었다. 『관동지(關東誌)』 권10, 『강릉부읍지(江陵府邑誌)』「김윤신조(金潤身條)」에는 '1476년(성종 7)에 문과에 등제(登第...
-
강원도 강릉시 주문진읍 향호리 발우봉에 위치한 봉수. 향호리 봉수에서는 사방이 트여 남으로 주문진 일대, 북으로 양양군 현남면 남애리의 양야산 봉수대까지 바라다 보여 봉수대의 위치로서는 매우 적합한 곳이다. 문헌에 따르면 북으로 양야산 봉수, 남으로 사화산 봉수와 응한다고 한다. 주문진-양양 간 국도 변의 향호교를 지나서 군부대를 돌아 서쪽으로 약...
-
강릉시 주문진읍 향호리에 있었던 성터. 향호리 성지는 주문진읍 향호리 향호(香湖) 서쪽에 1㎞ 정도의 거리를 두고 2개의 성곽이 있었던 곳으로 『문화유적총람(文化遺蹟總覽)』은 기록하고 있는데, ‘향호리 성지’와 ‘향호2리 성지’로 정확한 소재지를 밝히고 있다. 향호리 성지[향호리 1028번지 소재]는 ‘주문진의 서쪽 약 4㎞, 향동의 서쪽 약 654m의 절골(...
-
강원도 강릉시 주문진읍 향호리에 있는 청동기시대의 유물산포지. 향호리 청동기시대 유물산포지는 향호리 괴남마을의 남쪽 구릉 지역에 해당된다. 유물이 발견된 구릉 능선의 말단부에 서민들의 무덤인 민묘(民墓) 3기가 조성되어 있는데, 묘비(墓碑) 부근의 교란층에서 청동기시대 민무늬토기(無文土器) 조각이 흩어져 있다. 여기서 구릉의 위쪽으로 올라갈수록 폭이 좁아지고...
-
조선 중기의 학자이자 문신. 본관은 양천(陽川). 자는 단보(端甫), 호는 교산(蛟山)·성소(惺所)·학산(鶴山)·백월거사(白月居士). 아버지는 삼척부사를 지낸 허엽(許曄)이며, 어머니는 강릉김씨로서 예조판서 김광철(金光轍)의 딸이다. 이복형으로 허성(許筬)이 있고, 동복형제로 허봉(許篈)과 허난설헌(許蘭雪軒)이 있다. 21세인 1589년(선조 22)에 생원시에 입격하고, 1594년...
-
조선 중기의 강릉에서 태어난 여성 시인. 허난설헌[1563~1589]은 조선 중기의 강릉에서 태어난 시인으로 본관은 양천(陽川), 본명은 초희(楚姬), 자는 경번(景樊), 호는 난설헌(蘭雪軒)이다. 초당 허엽(許曄)의 딸, 허성(許筬)과 허봉(許篈)의 동생이고 허균(許筠)의 누이이다. 강릉 교산 애일당에서 태어나 초당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다. 15세 무렵 김성립(金誠立)...
-
조선 중기의 문신. 본관은 양천. 자는 공언(功彦), 호는 악록(岳麓)·산전(山前). 동지중추부사(同知中樞府事) 허엽(許曄)의 아들이고 허봉(許篈)과 허균(許筠)의 형이며, 허난설헌(許蘭說軒)의 오빠이다. 1568년(선조 1)에 생원이 되고, 1583년에 별시 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였다. 1590년 전적(典籍)으로서 통신사(通信使)의 종사관이 되어 정사 황윤길(黃允吉), 부사 김성일...
-
강원도 강릉시 옥계면 현내리에 있는 구석기시대의 유물산포지. 유적은 강릉시 옥계면 현내리 낙풍천 변의 단구상면에 위치한다. 동해고속도로 옥계 톨게이트를 빠져나오면 우측으로 충적대지가 넓게 펼쳐져 있다. 이 충적대지를 낙풍천이 길게 관통하고 있다. 유적은 낙풍천(樂豊川) 변의 남쪽 하안에 형성된 단구면에서 발견되었다. 석기가 출토되는 지점은 현재의 하상으로부터 15~20m...
-
강원도 강릉시 옥계면 현내2리에 있는 청동기시대의 유물산포지. 현내2리 교동마을과 응달마을 사이의 가지골 서쪽에 남에서 북쪽으로 이어져 내려오는 해발 15~20m의 구릉 지역으로 구릉 하단부에는 넓은 논 경작지대가 펼쳐져 있고, 낙풍천이 흐르고 있다. 서쪽으로는 현내리 구석기유적, 동쪽으로는 우계산성이 각각 위치하고 있다. 청동기시대 민무늬토기[無文土器] 조각...
-
고려와 조선시대 향리직의 우두머리. 나말여초 지방의 지배층인 호족의 전신이다. 신라 말에 이들은 중앙의 상대등(上大等) 이하의 관제를 본떠 당대등(堂大等)·창정(倉正)·병정(兵正) 등의 직제를 구성했다. 고려 건국 후에 지방제도를 정비하면서 향리제도도 점차 정비하여 983년(성종 2) 당대등을 호장으로 개칭했다. 고려시대에는 지방의 토호적(土豪的) 존재로서 상당한 세력을 가졌으며...
-
신라말·고려초 사회변동을 주도적으로 이끈 지방세력. 신라말 진골귀족 내부 정쟁으로 중앙정부의 통제력이 약화되면서 독자적 세력으로 등장하였다. 지방으로 낙향한 진골귀족이나 6두품 계통, 지방의 토착세력인 촌주, 해상 세력, 지방군사 세력에서 기원하고 있다. 이들은 독자적인 세력을 형성하여 스스로 장군이나 성주를 자처하였다. 호족은 대토지를 지배하고 있고, 사병(私兵)을 중심으로 한...
-
조선시대 선비인 홍인국(洪仁國)의 묘비. 홍인국은 남양홍씨 시조 홍은열의 21세손으로 생원이었다. 강원도 강릉시 성산면 산북리 묘소 인근에 묘제를 위한 전청인 영모재(永慕齋)가 있다. 홍인국의 아버지는 홍충양이고 어머니는 강릉김씨이다. 부인도 강릉김씨이다. 후손 홍재민(洪在珉) 등이 홍인국의 가계와 행적을 정리하여 세웠다. 건립시기는 병자년 윤3월로 되어 있으나 정확한...
-
고려 말·조선 초기의 강릉 기생. 홍장은 경포호수를 배경으로 한 강원도 안찰사 박신(朴信)[1362~1444]과의 사랑 이야기의 주인공이다. 시조 작가로서 시조 1수가 전한다. 강원도 안찰사로 온 박신은 강릉의 기생 홍장과 정이 두터웠는데, 임기가 차서 돌아갔다가 다시 와서 홍장을 찾으니 부사 조운흘(趙云仡)이 거짓으로 죽었다고 하여 매우 슬퍼하였다. 부사 조운흘은 경포...
-
강원도 강릉시 홍제동에 있는 고려시대의 고분군. 홍제동 유적은 강릉 남대천변의 북쪽 구릉지대로 선사인들이 거주하기에 매우 좋은 입지적 조건을 갖춘 지역이다. 조사결과 상당부분이 교란된 상태로 나오고 있으며, 지표에서 청동기시대의 것으로 보이는 민무늬 토기편과 석기 1점이 지표채집 되었으나 유구 포함층은 전혀 보이지 않는다. 유적의 남쪽 끝부분은 고속도로와 농로...
-
강원도 강릉시 홍제동(洪濟洞)에 있는 구석기시대의 유물산포지. 영동대학교 입구 우측 구릉에 위치한다. 영동대학교 입구 우측 구릉의 정상부에 구석기시대의 고토양층이 노출되어 있다. 홍제동 구석기시대 유물산포지 표토에 드러난 고토양층에서 구석기시대의 석기가 수습되고 있다. 남대천 북쪽의 도로와 인접하여 위치하는 유적은 영동고속도로와...
-
강원도 강릉시 홍제동에 있는 신석기시대의 유물산포지. 강릉고속버스터미널에서 유천동 방면으로 들어오면 죽일골과 정미소가 나온다. 이 정미소에서 남쪽으로 200m 정도에 남북으로 뻗은 41m 높이의 구릉에 위치하고 있다. 구릉 지대에서 신석기시대 토기편이 많이 채집되고 있다....
-
강원도 강릉시 홍제동에 있는 청동기시대의 유물산포지. 강릉 남대천 변의 북쪽 해발 50m 전후의 구릉 지역으로, 선사인들이 거주하기에 매우 좋은 입지적 조건을 갖춘 지역이다. 동쪽으로는 강릉교도소가 자리하고 있고, 서쪽편은 능선부의 말단부를 따라 민가가 들어서 있다. 청동기시대 유물은 민무늬토기 아가리편 1점과 토기편이며, 구석기시대 사암제 몸돌과 석영제 긁개...
-
조선 중기의 문신. 본관은 남양. 예문관대교를 지낸 홍계정(洪係貞)의 아들이다. 1534년(중종 29)에 생원시와 진사시에 합격하였고, 1535년(중종 30)에 별시(別試)에 올랐다. 1555년(명종 10) 강릉부사로 부임하였다. 1556년 강원도관찰사 윤인서(尹仁恕)와 전 부사 함헌(咸憲), 최운우(崔雲遇) 등과 함께 오봉서원(五峰書院)을 건립하였다. 오봉서원을 건립할 때에 윤인...
-
강릉시 오죽헌 시립 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는, 이군옥의 시를 황기로가 초서로 쓴 서예 작품. 「황기로 초서-이군옥시」는 2010년 1월 14일 보물 제1625-1호로 지정된 황기로(黃耆老)[1525~1575]가 쓴 서예 작품이다. 16세기를 대표하는 명필 황기로가 당나라 시인인 이군옥(李羣玉)의 오언 율시를 초서로 쓴 것이다. 황기로는 조선 전기의 서...
-
조선 중기 강릉 지역의 장수 인물. 1510년(중종 5) 74세로 진사시에 합격하고 고향으로 돌아올 때 200여 명의 동갑들이 잔치를 베풀며 시를 지어 주었다. 이 시를 그의 손자 황계우(黃季友)가 가보로 간직하고 있으며, 이장(李璋)의 서문이 함께 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