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480192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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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狎鷗亭記 |
분야 | 구비 전승·언어·문학/문학 |
유형 | 작품/문학 작품 |
지역 | 서울특별시 강남구 |
시대 | 조선/조선 전기 |
집필자 | 조세형 |
저자 생년 시기/일시 | 1415년 - 예겸 출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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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술|창작|발표 시기/일시 | 1450년(세종 32) |
특기 사항 시기/일시 | 1450년(세종 32) - 사행목적 반등극조사(頒登極詔使)로 예겸이 조선에 왔을 때 ‘압구정기’를 지음 |
저자 몰년 시기/일시 | 1479년 - 예겸 사망 |
배경 지역 | 압구정 - 서울특별시 강남구 압구정 |
성격 | 한문|기류 |
작가 | 예겸(倪謙)[1415~1479] |
[정의]
명나라의 예겸(倪謙)[1415~1479]이 조선에 사신으로 왔을 때 한명회의 부탁으로 정자의 이름을 ‘압구정(狎鷗亭)’이라 하고 지은 기문.
[개설]
「압구정」은 『신증동국여지승람』 제6권, 광주목에 나오는 예겸[1415~1479]의 기문(記文)이다. 예겸은 1450년(세종 32) 사행목적 반등극조사(頒登極詔使)로 조선에 왔으며 공조판서 정인지(鄭麟趾)의 원접을 받았다.
압구정(狎鷗亭) 상당부원군(上黨府院君) 한명회(韓明澮)가 두모포(豆毛浦) 남쪽 언덕에 정자를 지었다. 사신으로 명(明)나라에 들어가 정자의 이름을 한림학사(翰林學士) 예겸에게 청하였더니, 예겸이 이름 짓기를 ‘압구'라 하였다. 예겸은 1450년(세종 32)에 조선에 사신으로 와서 이 정자에 들렀다가 한명회의 부탁을 받고 기문(記文)을 썼다.
[구성]
세조정란(世祖靖亂)의 일등 공신이고, 세조와 성종의 두 임금을 들여세웠으며, 두 임금의 장인인 데다가 영의정이란 벼슬까지 올라 73살까지 장수한 한명회(韓明澮)는 두뭇개[지금의 옥수동 한강가] 건너에 호화 정자를 짓고, 명나라 사신인 예겸(倪謙)에게 청해서 ‘압구정’이란 이름을 짓고 정자 현판을 써 달았다. 예겸은 이 정자에 들렀다가 한명회의 부탁을 받고 기문(記文)을 쓴다. 기문의 첫머리에서 그는 “그 강[한강]은 넓고 물결이 아득하여 바람 돛이 오가고, 갈매기 오르내리니 마음이 시원하고 경치가 다함이 없어 황홀히 몸을 창해에 머문 것 같다” 이렇게 감탄부터 토하고 있다. 그러면서 ‘압구정’이란 이름을 짓게 된 이유를 이렇게 밝히고 있다.
“……오직 기심(機心)이 없으면 갈매기도 자연히 서로 친하고 가까이 할 수 있는 것이다. ……기심이 진실로 없게 되면 조정에서는 사람들이 더불어 친하기를 즐기지 아니할 사람 없고 이 정자에 오를 적에는 갈매기도 더블어 한가히 반겨하지 아니함이 없느니라. 이욕(利慾)과 관록(官錄)에 대해서는 자신에게 관계가 없는 것 같이 한다면 이는 도(道)에 나아감이 높은 사람이 아니겠는가. 정자를 이로써 이름짓는 것이 아마도 마땅할 것이다. ……”
또 그는 기문 속에 구양수(歐陽修)의 시 ‘어찌 기심을 잊어 갈매기가 믿는데 그치리. 만물은 다스리는 것인즉 본래 무심함에 있거늘’의 구절도 인용하면서 자기가 한명회에 바라는 것도 이와 같다고 기술하고 있다.
[내용]
압구정의 위치 설명부터, 정자 주변의 아름다운 자연 풍광을 예찬한다. 예겸은 한명회로부터 정자의 이름을 지어줄 것을 부탁받고 다음과 같은 뜻으로 정자의 이름을 붙여준다.
“갈매기는 물새의 한가한 자이다. 강이나 바다 가운데 빠졌다 떴다 하고, 물가나 섬 위에 날아다니는 것으로, 사람이 길들일 수 있는 물건이 아닌데 어찌 친압할 수 있겠는가. 그러나 위태로운 기미를 보면 바로 날아 떠오르고, 공중을 휘 날은 뒤에라야 내려앉는 것이니, 새이면서 기미를 보는 것이 이같은 까닭으로, 옛적에 해옹(海翁)이 아침에 해상으로 나갈 적에, 갈매기가 이르러 오는 수를 백으로 헤아린 것은 기심(機心)이 없는 까닭이요, 붙들어 구경하고자 하기에 미쳐서는 공중에서 춤추며 내려오지 아니하니, 그것은 기심이 동했기 때문이다. 오직 기심이 없으면 갈매기도 자연히 서로 친하고 가까이할 수 있을 것이다. 공은 큰 키가 옥처럼 섰고 거동과 풍도가 빼어났으며, 위대하여 번국(藩國)에서 벼슬할 때, 인재를 뽑아 쓰는 데 공명(公明)한 재주를 나타내었고, 천조(天朝)[중국]에 사신 오매 공경하고 두려워하는 예절로 삼갔으니, 나라에 돌아가면 등용됨이 융숭할 것이어서, 어찌 갈매기와 친압할 수 있겠는가.”
즉 남을 교묘히 속이는 순수하지 못한 마음을 버리고 무심한 갈매기와 벗삼기를 권하는 뜻을 담긴 내용의 기문을 지어주었다.
[특징]
압구할 수 없는 갈매기의 특성으로부터 선비가 지내야 하는 삶의 자세를 결부지어 표현하고 있는 특징을 가지고 있다.
[의의와 평가]
명나라 사신인 예겸이 ‘압구정’이란 이름을 짓고, 정자 현판을 써 달아 줌으로써, 중국 사신들의 명소가 되었다. 압구정의 자연 풍광까지 아름다워 조선의 문신들과 명나라 사신들이 여기에 들러 많은 시문을 남기게 되어 ‘압구정’은 조선 전기 하나의 문학장으로서 역할을 하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