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480062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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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申河均 |
분야 | 역사/근현대,성씨·인물/근현대 인물 |
유형 | 인물/인물(일반) |
지역 | 서울특별시 강남구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전우용 |
[정의]
서울특별시 강남구[옛 경기도 광주군] 출신의 독립 운동가, 서예가, 정치가.
[개설]
신하균는 9세 때 중국으로 건너가 수학하고 중국 국민정부 관리로 근무했다. 태평양 전쟁 이후에는 광복군에 입대하여 독립 운동에 투신했다. 해방 뒤 한때 사업가로 일했으나 아버지 신익희(申翼熙)가 사망한 이후 그 뒤를 이어 정계에 투신했다. 서예에도 일가를 이루었다.
[가계]
신하균의 본관은 평산(平山)으로 1918년 경기도 광주(廣州)에서 태어나 1975년 11월 10일 사망하였다. 독립 운동가이자 제헌 국회 의원, 국회 부의장, 국회 의장, 대통령 후보를 지낸 해공(海公) 신익희(申翼熙)의 장남이다.
[활동 사항]
1923년 중국 상해로 건너가 광화대학(光華大學) 상과를 졸업한 후 중국 국민정부 감찰원 위임관, 국민 정부군의 소교복무원(少校 服務員), 중앙은행 과원조장(科員組長), 중앙신탁국조장(中央信託局組長) 등을 지냈다. 태평양전쟁이 일어난 뒤 중국 중경(重慶)에서 한국광복군에 입대하여 정위(正尉)가 되었다. 해방 후 귀국하여 한국연건기업(韓國聯建企業) 사장, 한국외국어대학 강사 등을 지내다가 부친 신익희가 사망한 뒤 그 뒤를 이어 광주 보궐 선거에서 무소속으로 출마, 제3대 국회 의원이 되었다. 4.19 직후인 1960년 제5대 국회 의원 선거에서도 무소속으로 출마, 당선되었으며 민주당이 분당될 때는 구파인 신민당(新民黨)에 입당하였다. 5.16 이후인 1963년에 치러진 제6대 국회의원 선거에서도 민주당 구파가 주류를 이룬 민정당(民政黨) 소속으로 당선되었다. 그는 서예에도 뛰어나 몇 차례 서예전을 열었으며 1960년대 중반 관훈동 민중당 중앙당사 현판을 직접 쓰기도 했다.
[묘소]
묘소는 서울특별시 강북구 수유동에 있다.
[상훈과 추모]
1977년 건국 포장, 1990년 건국훈장 애국장이 추서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