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480055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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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金羲淳 |
이칭/별칭 | 태초(太初),산목(山木),경원(景源),문간(文簡) |
분야 |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
유형 | 인물/문무 관인 |
지역 | 서울특별시 강남구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이상배 |
[정의]
조선후기 서울특별시 강남구 지역을 포함한 경기도 광주일대를 관할하는 광주유수를 지낸 문신.
[가계]
김희순의 본관은 안동(安東), 자는 태초(太初), 호는 산목(山木)·경원(景源)이다. 아버지는 군수 김이인(金履仁)이며, 어머니는 참봉 이극현(李克顯)의 딸이다. 1757년(영조 33)에 출생하여 1821년(순조 21)에 사망하였다.
[활동 사항]
1789년(정조 13) 식년문과에 급제하여 사직서 직장(直長)을 지냈다. 그 해 초계문신(抄啓文臣)에 발탁되어 규장각(奎章閣)에서 학문을 닦으며 실력을 인정받았다. 1791년 『대학(大學)』과 『중용(中庸)』에 관한 책문을 시험하였을 때 수석을 차지하여 홍문관(弘文館) 수찬(修撰)에 임명되었다. 1793년 한 때 파직되었다가 1796년 다시 등용되어 괴산군수를 지내고, 교리(校理)·응교(應敎)·부응교 등을 지냈고, 포천과 영남에 암행어사로 파견되어 백성들의 곤궁함을 보살폈다.
1799년 전라도관찰사를 거쳐 이듬해 이조참의(吏曹參議)에 임명되어 내직으로 올라왔고, 다시 동부승지로 임명된 직후 정조가 승하하여 소렴(小斂)에 참여하였다. 순조가 즉위한 후에는 실록 당상에 임명되어 『정조실록(正祖實錄)』 편찬에 참여하였고, 내직의 주요 관직을 두루 역임하였으며, 한성부판윤, 홍문관제학(弘文館提學)을 지냈고 1809년 병조와 이조판서 등을 거쳐 1812년 광주유수가 되어 서울특별시 강남구 일대를 다스렸다. 1819년 경기도관찰사로 재임하던 중 어머니의 3년상을 치르고 세상을 떠났다.
[상훈과 추모]
1824년(순조 24) 문간(文簡)이라는 시호를 내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