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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돈인 사랑채 고가 이전항목 다음항목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4901524
한자 權敦仁-古家
이칭/별칭 이조 다실,부봉재
분야 생활·민속/생활,문화유산/유형 유산
유형 유적/건물
지역 서울특별시 도봉구 도봉산길 88
시대 조선/조선 후기
집필자 이명찬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현 소재지 권돈인 사랑채 고가 - 서울특별시 도봉구 도봉동 산 29-10지도보기
원소재지 권돈인 사랑채 고가 - 서울특별시 중구 삼각동
성격 전통 가옥

[정의]

서울특별시 도봉구에 있었던 조선 후기 문신 권돈인(權敦仁)이 지은 사랑채.

[개설]

이재(彛齋) 권돈인[1783~1859]은 1813년(순조 13) 증광시에 병과로 급제한 이래 이조 판서와 우의정·좌의정 등을 거쳐 1845년 영의정에 오른 문신이다. 추사(秋史) 김정희(金正喜)의 오랜 지기인 그 역시 서화가로 이름을 얻어, 예서체 비문(碑文)에 관해서는 동국에 전에 없었던 경지라는 칭찬을 받았다. 또한 당대의 국내외 서화에 대한 감상 결과를 김정희와 공유할 정도로 감식안이 높았던 것으로도 알려져 있다. 유작으로 국립 중앙 박물관에 소장된 「세한도(歲寒圖)」가 있는데, 김정희의 「세한도」와 화풍상 밀접한 관계를 보이는 것으로 평가된다.

[변천]

당초 서울특별시 중구 삼각동에 위치하였던 이 건물은, 주인인 권돈인김정희 등 당대의 유명 문인들과 교류하던 장소로 알려져 있다. 1960년경 중구 지역 도시 계획 사업의 일환으로 건물이 철거될 위기에 놓이자, 이 건물을 아끼는 후손들의 노력으로 서울특별시 도봉구 도봉동 산 29-10번지로 이전하였다. 시간이 흐르며 관리가 이루어지지 않아 폐가로 바뀌었고 주민들의 민원이 제기되자 2004~2005년에 훼철되고 그 터만 남았다.

[형태]

이조 다실(李朝茶室) 혹은 부봉재(富峰齋)라고도 불렸던 권돈인 사랑채 고가는 이건(移建) 당시에는 단층 목조의 상하 2채로 되어 있었다. 건물은 조선 후기 양반가 사랑채의 건축 양식과 가옥 구조의 특징을 잘 보여주었다고 평가된다. 도봉구로의 이건 당시에도 계곡물이 흐르는 주위의 경관과 잘 조화되어 옛 선조들의 풍류를 느끼게 해주었다고 회고된다.

[의의와 평가]

문화적으로 높은 안목을 지녔던 권돈인이 공들여 만든 사랑채 건물로, 등록 문화재로 등재되지는 못했지만 1960년대 도봉 지역으로 이건될 당시에도 매우 품위 있는 건물로 사람들 입에 오르내렸다고 구전된다. 관리가 제대로 이루어지고 그 가치가 널리 인식되었더라면 오늘날에 등록 문화재의 반열에 올라 잘 보존되었을 것이나, 건물이 훼철되고 그 터 내지는 몇 점의 사진과 기록만이 남았다는 점에서 안타까움을 금할 길이 없다.

[참고문헌]
  • 유홍준, 『완당 평전』(학고재, 2002)
  • 인터뷰(도봉 문화원 사무국장 홍기원, 남, 2012. 8. 23)
  • 인터뷰(도봉 문화원 부장 최영근, 남, 2012. 8. 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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