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400C020103 |
---|---|
한자 | 自然災害- 地形- |
분야 | 지리/자연 지리 |
유형 | 마을/마을 이야기 |
지역 | 대구광역시 달성군 가창면 정대리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여수경 |
[정의]
자연재해는 마을의 지형을 바꾸다
[마을의 지형을 바꾼 태풍 매미]
2003년 9월 한반도를 강타한 태풍 매미는 막대한 피해를 입혔다. 1904년 기상관측 이래 가장 낮은 최저기압의 대형 태풍이다. 1959년 9월에 발생한 태풍 사라가 952ha, 1987년 셀마가 972ha, 2002년 발생한 루사가 970ha인 반면 태풍 매미는 950ha로 가장 낮은 최저기압이다. 이 태풍은 경상남도 삼천포 해안에 상륙한 뒤 영남 내륙 지방을 거쳐 경상북도 울진을 거쳐 동해안으로 빠져 나가면서 한반도의 남해안과 동해안을 지나며 경상북도와 경상남도에 집중적으로 피해를 남겼다. 피해 규모는 인명피해 130명(사망 117명, 실종 13명), 2006년 환산가격기준으로 재산피해 4조 2225억 원이며, 4,089세대 1만 975명의 이재민이 발생하였고, 주택 42만 1015동과 농경지 3만 7986ha가 침수되었다. 그밖에 도로·교량 2,278개소, 하천 2,676개소, 수리시설 2만 7547개소가 유실되거나 파괴되었다. 이로 인해 2002년 루사 발생 후 전국 16개 시도와 203개 시군구 및 1,917개 읍면동이 특별재해지역으로 선포된 데 이어 세 번째로 전국 14개 시도, 156개 시군구, 1,657개 읍면동이 특별재해지역으로 선포되었다. 정대1리도 특별재해구역에 포함되었다.
(태풍 매미때는 피해 많으셨다고 하던데) 많았어요. 다 묻었어요. 전신만신 다 묻었어요. 우리 집 마당에 토사가 들어 와가지고 26차 끌어냈는데. 자갈하고 모래하고 어딘고 마당인지 어딘가 뻘인지 몰라.(김0고)
추석을 하루 앞두고 고향에 돌아갈 사람들은 매미가 지난 후 정대1리로 들어가지 못하였다. 태풍이 지난 후 용계천을 따라 흘러 내려 온 토사들로 인하여 헐티로는 유실되면서 접근을 막았다. 집이 걱정된 사람들은 가창댐에서 약 5km 이상을 걸어서 올라가야 했다. 눈으로 직면한 마을은 이루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처참하였다.
[골이 둘러빠져버렸다]
정대1리 6개 자연마을 중 가장 심각한 피해를 입은 곳은 바깥매남과 배정, 안매남이다. 한더미와 윙계 등은 비교적 고지대에 위치했기 때문에 태풍에 비교적 안전하였다. 삼면이 산으로 둘러싸인 한더미의 경우 바람의 피해도 적었다고 전한다. 하지만, 용계천변에 자리 잡은 바깥매남과 배정은 길이 없어지고 교량이 부서지는 등 큰 피해를 잆었다.
여기에 2003년 매미 태풍이 왔을 때 저 다리가 저 밑에 굴보다 더 낮았어요. 고게 제일 처음에 놔졌는데 쪼매난게 있었는데 60년대 이후로 놨는데 원채 물이 많이 와가지고 금이 다가고 방천이 넘어가지고 잠기고 여기 골짝 여기가 매미 때문에 지도가 싹 바뀌었습니다. 지도가 완전히 바뀝습니다. 농토가 여기 매미로 인해서 최대로 피해가 많은 곳이 여기였습니다. 여기 골이 둘러빠졌부렸습니다. 집도 뭐 한 집은 방에 물 들어가고 방에 물어들어가야 보상을 그때 200만원도 컸어요. 2003년도에는 200만원 물 들어간 방은 200만원을 주고 마당에 들어가 빠진데는 어쩔 수 없고. 그래가지고 며칠 있었어요. 사람 사는게 말도 아이고.(김0생)
‘골이 둘러빠져부렸습니다’ 마을로 들어가는 교량 안매남교와 바깥매남교는 산에서 쏟아진 토사를 위태롭게 받아내고 있었다. 이미 많은 토사와 나무들은 교량을 넘어서 마을로 그리고 밭으로 쏟아져 내렸다. 어디가 논인지 어디가 도로인지 알 수 없을 정도로 많은 토사들이 바깥매남을 덮쳤다. 당시 밀려오는 토사로 인하여 바깥매남교는 심각한 손상을 입게 되고 다음해 2004년 새로 건설되었다. 비교적 고지대에 위치한 안매남은 집이 부서지는 피해는 비껴갔지만 마을을 연결하는 교량이 위험하여 건널 수가 없었다.
태풍이 지난 후에도 얼마 동안은 도로가 중간 중간 유실되고 산사태로 인해 막힌 헐티로에는 차량이 들어올 수 없었다. 중장비의 접근이 어려워지자 마을 사람들은 손으로 토사와 자갈을 치우기 시작하였다. 적은 인구에 비해 입은 피해는 막심하여 주민들로서 해결할 수 없자 인근 군부대 인원이 도움을 주었다. 그렇게 태풍의 피해에서 마을을 정상화하는데 약 10여년의 시간이 걸렸다. 토사로 인하여 더 이상 사용할 수 없는 논은 매입하여 결국 마을회관 주차장 부지로 사용하기로 결정하였다. 그렇게 지어진 것은 바깥매남 마을회관이다. 2011년 준공한 바깥매남 마을회관은 당시 논이었던 자리였으며, 이곳에 많은 자갈과 토사가 산을 이루면서 더 이상 논으로 사용하기 어려워 현재의 마을회관이 지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