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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 우린 무얼 하며 놀았나 이전항목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23C010203
분야 지리
지역 경상북도 칠곡군 동명면 남원리 남창마을
시대 근대/근대
집필자 최엄윤

남창마을 사람들에게 옛 남창마을을 기억하는 것은 곧 유년을 추억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그래서일까, 지금은 수풀로 뒤덮여 마을이 있었다는 흔적조차 찾을 수 없는 옛 남창마을 자리에서 어린 시절 마을을 누비며 떡을 사먹고 누가 심었는지도 모르는 돌배를 따먹던, 지금보다 풍요롭지는 않아도 마음 가득 따스함이 전해지던 그 시절을 회상하는 사공태 옹의 얼굴에서 유난히 추웠던 지난 겨울 한파도 비켜 갈 만큼 환한 웃음이 번진다.

“추천이라고, 그네가 있었지, 지금 이대감 비석 있는데 회나무라고, 거기 그네가 있었지. 나무는 지금도 있어. 그때는 짚을 가지고 새끼를 꼬아서 매어놓고 아가씨가 예쁘면 타게 하고 못생긴 아가씨는 에이 안 돼~ 그러면서, 그네를 뚤뚤 말아가 제일 높이 올려 버렸어.”

마을 공동 놀이터인 그네를 두고 씨름했을 동네 처녀, 총각들의 모습이 해학적으로 그려지는 말씀이 아닐 수 없다.

일제강점기와 한국전쟁을 겪으며 남자가 귀하던 시기여서 몇 안 되는 총각들이 유세를 부리며 동네를 주름잡던 시절이었단다.

남자들은 돈 한 푼 없이 길에 나가도 배불리 간식을 먹을 수 있었다고 하니 그네를 높이 매달아 놓는 행패쯤이야 그러려니 했을 터…….

특별한 장난감 없이 하루 종일 뛰놀아도 즐겁던 시절, 자연은 그 자체로 술래잡기 무대가 되었고, 동네에서 힘 꽤나 쓰던 총각들은 반세기 훨씬 전부터, 특히 단오 때는 성문 밖에 있던 씨름판에서 힘자랑을 했단다.

남창마을 씨름판 씨름은 근동에도 널리 알려져서, 다른 동네 청년들도 찾아와 한 번씩 동네 대항 씨름으로 이어지기까지 했다고 한다. 또 가끔은 지금의 경마처럼 사람들이 내기돈을 걸어서 한 사람 쓰러뜨릴 때마다 1원씩 상금을 타기도 했는데, 사공태 옹도 젊은 시절 네 사람을 쓰러뜨려 4원까지 벌어 봤다며 호탕하게 웃으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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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 남창마을 씨름판 자리

옛 남창마을에서는 ‘이따기’라고 12세 무렵까지 하던 놀이가 있었단다. 아이들이 빙 둘러 앉아 있으면 술래가 앉아 있는 아이들 등 뒤로 돌면서 수건을 가지고 있는 사람을 찾는 게임이었다. 남녀 아이들이 총총히 쪼그려서 빙 둘러 앉아 다리 사리로 똘똘 만 수건을 전달하면 술래는 수건을 찾아 확 잡아당겨야 하는데, 이때 촘촘히 연결된 팔이 떨어지면 안 된다. 그리고 수건이 지나갈 때는 다음과 같은 「이따기」 노래를 불렀다고. “돌아간다, 돌아간다, 수떡 암떡 돌아간다, 수떡 암떡 돌아간다.” 하고 노래가 두 번 정도 지나갈 때까지 수건을 뺏지 못하면 술래는 벌칙으로 일어서서 노래를 불렀다.

10대 후반에 시집, 장가가던 시절이라 “남녀 7세 부동석”이란 말도 있었지만, 사공태 옹의 기억 속에는 12세라는 늦은 나이까지 남녀를 구분 없이 동네 친구들과 어울려 “수떡, 암떡 돌아간다”는 의미심장한 노래를 부르며 어깨와 어깨를 맞대고 다리 사이로 수건을 돌렸던 추억이 고스란히 남아 있었다. 남창마을은 사라졌으나 유년의 기억은 고스란히 남아 있는 것이다. 어린 시절 얘기를 전하던 사공태 옹이 한 마디를 덧붙이신다. “남창마을에 살 적엔 재미가 있었는데, 수해가 나고 요 밑에 내려가서 살고는 마을에 재미가 없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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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따기」

[정보제공]

  • •  사공태(남, 1933년생, 남창마을 거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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