콘텐츠목차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5501032
한자 朴在馨
이칭/별칭 백옹,진계,박재성
분야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유형 인물/문인·학자
지역 경상북도 청도군
시대 근대/개항기
집필자 박홍갑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출생 시기/일시 1838년연표보기 - 박재형 출생
활동 시기/일시 1870년 - 박재형 식년시 생원에 합격
활동 시기/일시 1898년 - 박재형 의령원 참봉에 제수
몰년 시기/일시 1900년연표보기 - 박재형 사망
묘소|단소 박재형 묘소 - 경상북도 청도군 금천면 신지동 산 20번지지도보기
성격 학자
성별
본관 밀양
대표 관직|경력 생원

[정의]

개항기 청도 출신의 학자.

[가계]

본관은 밀양(密陽). 자는 백옹(伯翁), 호는 진계(進溪), 초명은 박재성(朴在誠). 할아버지는 박정주(朴廷周)이고, 증(贈) 좌승지 박시묵(朴時默)과 사헌부 지평 이병영(李秉瑩)의 딸 숙부인 경산 이씨(京山李氏) 사이에서 장남으로 태어났다. 처는 군수 이박상(李博祥)의 딸 여강 이씨이다.

[활동 상황]

박재형(朴在馨)[1838∼1900]은 청도군 금천면 출신으로, 정재 유치명(柳致明)성재 허전(許傳)의 문하에서 수학하며 성리학과 퇴계학을 공부하였다. 33세 되던 1870년(고종 7) 식년시 생원 3등 84위로 합격하였으나, 벼슬길에 오르지 않고 학문에만 전념하였다. 이후 저술 활동과 후학 양성에 매진하였다. 선암 서원을 중창하였고, 자력으로 의창을 설치하여 구휼에 힘썼다. 문간계(文簡契)를 확충하여 학문을 장려하였다.

말년에는 도백(道伯)과 직지(直指)가 여러 번 박재형의 훌륭한 행실을 들어 포상할 것을 임금에게 건의하였으며, 1898년에는 의령원 참봉(懿寧園參奉)에 제수되었으나 나가지 않았다. 행장에 의하면, "1900년 8월 적당의 변란으로 거제에서 세상을 마쳤다."라고 하였으나, 노년기에 거의 반신불구 상태였던 점을 감안하면 그의 죽음은 의문으로 남는다.

[학문과 저술]

박재형은 학문이란 ‘경(敬)’ 자에 달렸다고 말하고는 선유들이 ‘경’ 자를 의론한 글을 모아 한 권의 책으로 만들어 제목을 『집경 요람(執敬要覽)』이라 하였다. 또한 신라·고려·조선 시대 유현들의 서론과 현인군자·절부·의사들의 사행(事行)으로서 세상에 모범이 될 만한 것들을 수집하여 『해동 속소학(海東續小學)』 6권을 편찬하였다. 선대의 유문(遺文)이나 필찰(筆札), 사우들의 수필 등을 편집하여 14권으로 만들고, 『척독 유편(尺牘類編)』이라 제목을 붙였다. 그 밖의 저서로는 『진계 문집』이 있다.

[묘소]

경상북도 청도군 금천면 신지동 산 20번지에 있다.

[상훈과 추모]

이돈영(李墩永)이 찬한 묘비명이 있다.

[참고문헌]
등록된 의견 내용이 없습니다.
네이버 지식백과로 이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