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시열
-
조선 후기 천안 출신의 학자. 본관은 청주(淸州), 자는 경숙(敬叔) 또는 지숙(智叔), 호는 경한재(景寒齋)이다. 고조할아버지는 시정(寺正)을 지낸 곽회영(郭懷英), 아버지는 사헌부 집의를 역임한 곽지흠(郭之欽)이다. 아버지 곽지흠의 첫째 부인은 선교랑(宣敎郞) 성준웅(成俊雄)의 딸 창녕 성씨(昌寧成氏)이며, 둘째 부인은 도사를 역임한 김옥(金鋈)의 딸 안동 김씨(安東金氏)이다....
-
충청남도 천안시 동남구 동면 행암리 시루개 마을에 있는 바위. 낙수암(落水巖)이 있는 시루개 마을은 행암리의 서부에 있는데, 마을의 서쪽에는 광덕산이 있고, 북쪽에는 행암 고개가 있다. 마을의 동쪽에서는 녹동천 상류부의 지류 하천들이 구릉성 산지의 곡간(谷間)을 흐르고 있다. 큰 바위가 누워 있는 사이로 개울물이 폭포처럼 흐른다 하여 낙수암이라 불렀다고 전해진...
-
충청남도 천안시 동면 행암리에 있는 현대 정자. 낙수정(落水亭)은 충청남도 천안시 동면 행암리 마을 입구에 있다. 약간 높은 언덕 위에 위치하고 있으며, 주변은 낮게 농경지가 펼쳐져 있다. 가까운 주변은 수목이 울창하게 자라고 있다. 낙수정은 1974년 지역 출신 유지와 마을 주민들이 정성을 모아 건립한 정자이다. 낙수정 아래 바위에 우암 송시열이...
-
충청남도 천안시에서 풍광이 수려한 곳이나 휴식 공간에 지은 누각과 정자. 누정은 다른 말로 누각과 정자를 통틀어 일컫는 말이다. 보통은 경관이 좋은 곳, 사람들이 모이기 쉬운 곳, 농경지 가까운 곳 등에 작은 건물을 지어 경관을 즐기거나 휴식을 취하려고, 또는 풍류를 즐기려고 누정을 건립한다. 그래서 누정은 강변이나 바닷가, 계곡, 언덕이나 산 위, 연못가, 마을 어귀나...
-
충청남도 천안시 동남구에 속하는 법정면. 백제 때에는 대목악군(大木嶽郡), 통일 신라 때에는 대록군(大麓郡), 고려 시대에는 목주(木州) 지역이었다. 조선 시대에는 목천군 소재지에서 동쪽으로 제일 멀리 있다고 하여 일원동면(一遠東面) 28개 리와 두 번째로 멀다는 이원동면(二遠東面) 24개 리 지역이었다. 1914년 행정 구역 통폐합 때 이원동면의 일탑원리, 이탑원리,...
-
충청남도 천안시에 있는 부피가 매우 큰 돌. 천안시에는 곳곳에 바위가 분포해 있는데, 3개의 장군(將軍) 바위, 낙수암(落水岩), 거북 바위, 남산(南山) 바위, 행암(杏岩) 바위 등이 대표적이다. 3개의 장군 바위는 모두 동남구 광덕면에 있는데, 구체적으로 광덕리 안산 마을 북쪽 광덕산 동측 사면, 광덕리 안산 마을 서남쪽 광덕산 남측 사면 및 매당리 북서쪽...
-
조선 후기 천안 출신의 문인. 본관은 남양(南陽), 자는 군석(君石), 호는 복재(復齋)이다. 아버지는 선무랑(宣務郞)을 지낸 서정지(徐挺之)이며, 큰아버지는 사봉(沙峯) 서정연(徐挺然)이다. 서한주(徐漢柱)[1622~?]는 조선 후기 성리학의 대가인 포저(浦渚) 조익(趙翼)의 문인이다. 1646년(인조 24)에 생원시에 2등 1위로 합격한 후 교관·주부·좌랑·정랑·사평...
-
충청남도 천안시 동남구 동면 행암리 사루개 마을 입구에 있는 바위와 관련된 이름 유래담. 천안시 동남구 동면 행암리 주변은 풍광이 뛰어나고 수석이 아름다워서 예부터 시인묵객(詩人墨客)이 많이 찾았던 곳이다. 봄의 신록과 여름의 녹음, 가을의 단풍, 겨울의 설경이 모두 뛰어난 곳이다. 「송시열과 낙수암」은 조선 후기 효종(孝宗)~숙종(肅宗) 때의 거유(巨儒)이자...
-
충청남도 천안시 동남구 동면에 속하는 법정리. 조선 시대에 목천군 이원동면 지역이었다. 1914년 행정 구역 통폐합 때 송정리, 연평리, 한계리, 산직리를 병합하고 송정과 연평의 머리글자를 따서 송연리라 하고, 충청남도 천안군 동면에 편입하였다. 1963년 1월 1일 천안읍과 환성면이 합하여 천안시로 승격됨에 따라 천원군 동면 송연리였다가, 1991년 1월 1일 법률 제...
-
충청남도 천안시 동남구 삼룡동에 있는 조선 후기의 누각. 영남루(永南樓)는 조선 시대에 천안 화축관(華祝館)의 문으로 사용되었던 누각이다. 1602년(선조 35) 천안 군수 노대하(盧大河)가 화축관을 건립하였을 때에 영남루도 세워졌을 것으로 보인다. 영남루는 천안시 동남구 삼룡동에 위치한다. 천안에서 공주 방향의 1번 국도[천안대로] 삼용 사거리에서...
-
1852년에 편간된 천안군의 읍지. 『영성지(寧城誌)』는 1852년에 편간된 2권 2책의 천안군 읍지이다. 상권은 읍지이고 하권은 『문헌록』이다. 원래 천안에는 선생안(先生案)에 인물의 사적을 함께 수록한 「문헌록(文獻錄)」이 있었다. 「문헌록」은 1577년(선조 10)에 천안 군수로 부임한 손여성(孫汝誠)이 만들기 시작했다. 이를 1627년(인조 5)에 도임한 정지경(...
-
조선 후기 천안 출신의 효자. 본관은 남원(南原), 호는 반계(磻溪)이다. 취부(醉夫) 윤결(尹潔)의 종증손자이다. 윤취갑(尹就甲)[1625~?]은 목천 출신으로 어려서부터 집안이 매우 가난하여 부모의 음식과 의복을 갖추는 데 정성을 다하지 못함을 한탄하여 아우 윤현갑과 함께 고기를 잡아 봉양하였다. 아버지가 병이 들자 대변을 맛봐 병세를 살폈으며, 삼년상을 치를 때는...
-
충청남도 천안시에 묘소를 두고 있는 조선 후기의 문신. 본관은 연안(延安)이며, 자는 돈시(敦詩), 호는 조암(釣巖), 시호는 충익(忠翼)이다. 고조할아버지는 이수장(李壽長), 증조할아버지는 이기(李夔), 할아버지는 이정화(李廷華)이다. 아버지는 정사공신(靖社功臣)으로 우찬성까지 오른 연평부원군(延平府院君) 이귀(李貴)이고, 어머니는 인동 장씨로 증 참판 민(旻)의 딸이...
-
충청남도 천안시 광덕면 매당리에 있는 조선 후기 이시백의 신도비. 이시백(李時白)[1581~1660]은 연평부원군 이귀(李貴)[1557~1633]의 장남으로 1623년 인조반정에서 공을 세워 정사공신 2등으로 가선대부에 올랐다. 또한 연양군(延陽君)에 봉해졌으며 이괄의 난과 정묘호란 때에 큰 공을 세웠다. 훗날 연양부원군에 봉해지고 1655년 영의정이 되었으며...
-
조선 후기 천안 군수를 역임 문신. 본관은 연안(延安), 자는 동보(同甫), 호는 지촌(芝村), 시호는 문간(文簡)이다. 부제학을 지낸 이단상(李端相)의 아들이다. 이희조(李喜朝)[1655~1724]는 1680년(숙종 6) 유일(遺逸)로 천거되어 건원릉 참봉(健元陵參奉)에 임명되었으나 사퇴하였고, 다시 천거되어 전설별검(典設別檢)에 임명되었다. 이어서 의금부 도사·공조...
-
조선 왕조가 지속되었던 1392년에서 1910년까지 시기의 천안 지역의 역사. 1914년에 천안군(天安郡)·목천군(木川郡)·직산군(稷山郡)이 통합되어 천안군이 되었고, 1963년에 천안시와 천원군으로 분리되었다가, 1991년에 천원군이 천안군이 되고, 1995년에 다시 통합되어 현재의 천안시가 되었다. 따라서 1914년 이전의 천안시 지역은 천안(天安)·목천(木川)·직산(稷山) 지...
-
충청남도 천안시 병천면 도원리에 있는 조선 후기의 정자. 조선 시대 목천현 지역이었던 천안시 병천면 도원리 일대는 안동 김씨가 세거하던 곳으로 옛 지명은 노은동(老隱洞)이었다. 숙종 대의 학자 김상기(金相器)는 동네 이름을 따 호를 노은이라 하고 동성산(銅城山) 아래에 노은정(老隱亭)을 지었다. 천안시에 현존하는 누정 중 가장 오래된 것이다. 천안 노은정은 천...
-
충청남도 천안시 동남구 동면에 속하는 법정리. 1914년 행정 구역 통폐합 때 토복(土伏), 상행(上杏), 하행(下杏), 서지동(西芝洞)을 병합하고, 살구나무와 바위가 많아 행암리(杏岩里)[사두개]라 하였다. 조선 시대에는 목천군 일원동면 지역이었다. 1914년 행정 구역을 통폐합할 때 행암리를 개설하여 충청남도 천안군 동면에 편입하였다. 1963년 1월 1일 천안읍과...
-
충청남도 천안시 동남구 동면에 속하는 법정리. 1914년 행정 구역 통폐합 때 반계리, 화산리, 능암리의 일부 지역을 병합하여 화산리의 ‘화’ 자와 반계리의 ‘계’ 자를 따서 화계리(花溪里)라고 이름을 붙였다. 조선 시대에 목천군 일원동면 지역이었다. 1914년 행정 구역 통폐합 때 화계리를 개설하여 충청남도 천안군 동면에 편입하였다. 1963년 1월 1일 천안읍과 환성...
-
충청남도 천안시 동남구 오룡동에 있었던 조선 후기의 행궁. 화축관(華祝館)은 조선 시대에 천안군에 건립되었던 행궁이다. 천안 군수 노대하(盧大河)가 1602년(선조 35)에 건립하였고, 천안 군수 조경빈(曺敬彬)이 중수하였다. 이에 대한 우암 송시열의 기문이 남아 있다. 그 후로도 수차례 중수하였고 일제 강점기에는 경찰서와 헌병대 건물로 사용되다 이후 모두 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