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타데이터
항목 ID GC08001326
한자 蓬萊精舍
이칭/별칭 원불교 봉래정사,변산제법성지
분야 종교/신종교
유형 유적/유적(일반)
지역 전라북도 부안군 변산면 중계리 167
시대 근대/일제 강점기
집필자 안기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조성|건립 시기/일시 1919년 12월연표보기 - 실상초당[봉래정사] 건립
조성|건립 시기/일시 1921년 7월연표보기 - 석두암 건립
개축|증축 시기/일시 1948년 - 봉래정사 개축
훼손 시기/일시 1950년 - 석두암 소실
개축|증축 시기/일시 2003년 - 봉래정사 개축
현 소재지 봉래정사 - 전라북도 부안군 변산면 중계리 167지도보기
원소재지 실상초당 - 전라북도 부안군 변산면 중계리
원소재지 석두암 - 전라북도 부안군 변산면 중계리
성격 정사(精舍)
양식 팔작지붕
관련 인물 소태산
크기(높이,길이,둘레) 정면 3칸|측면 2칸
면적 59.4㎡

[정의]

전라북도 부안군 변산면 중계리에 있는 일제 강점기 원불교 성지.

[건립 경위]

봉래정사(蓬萊精舍)원불교(圓佛敎) 교법을 제정한 장소로써, 실상초당과 석두암을 통칭하며 그 일대를 ‘제법성지(制法聖地)’라 한다. 소태산 대종사(少太山大宗師)는 1919년 전라남도 영광[영산]에서 방언 공사[제방 공사]가 마무리될 즈음 음력 3월 부안군 변산면 월명암(月明庵)을 찾았는데, 이것이 변산 지역과의 첫 인연이었다. 소태산 대종사가 1920년부터 1923년까지 4년간 머물며 보림(保任)하고 교법을 초안한 변산 제법성지(制法聖地)는 부안군 변산반도 일대의 봉래산[예로부터 능가산·영주산·봉래산으로 불렀음] 중앙지인 실상사(實相寺) 옆으로, 이곳에 봉래정사를 짓고 교법을 초안하였다.

1919년 소태산 대종사가 변산으로 입산을 한 동기를 『원불교 교사』에서는 “다년간 복잡하던 정신을 휴양하시며, 회상 창립의 교리 제도를 초안하시고, 사방 인연을 연락하여 회상 공개를 준비하시며, 험난한 시국에 중인의 지목을 피하시기 위함이었다”라고 밝히고 있다. 소태산 대종사가 1919년 봄에 영광 구수산에서 맑은 기운이 뜨는 것을 보고 찾아간 곳이 변산 월명암이다. 법인성사(法認聖事) 후 8월에 제자 정산을 월명암에 먼저 보냈으며, 소태산 대종사가 변산에 정식 입산한 것은 그해 12월이었다. 이때부터 변산 월명암에 얼마 머물며 전주, 원평 등지에서 온 증산교를 신봉하였던 일부 제자들에 의해 실상동에 초당을 짓고 수양하는 한편, 원불교 교리 강령을 초안하였다. 이때 실상사월명암 선승들과 성리 문답을 하며 관심입정(觀心入定)과 견성성불(見性成佛)하는 법문을 설하여 많은 선화가 전해진다.

처음에는 3칸 규모의 초당을 짓고 머물렀으나, 신자들이 늘어나게 되자 1921년 7월에 실상초당 뒤쪽으로 2칸짜리 초당을 짓게 되었다. 소태산 대종사는 새로 지은 초당을 ‘석두암’이라고 하였다. 소태산 대종사는 1924년에 거처를 익산으로 옮겨 가게 되었다. 이후 1948년에 오창건이 봉래정사 개축 공사를 하였으나, 1950년 6·25 전쟁이 발발하여 모두 소실되어 터만 남게 되었다. 1980년에 봉래정사 석두암터비와 일원대도비(一圓大道碑)를 세웠고, 2003년에 일원대도비 아래 실상초당 터에 봉래정사를 건축하였다.

[위치]

봉래정사부안군 변산면 중계리 167번지에 있다. 불교 사찰 터인 부안 실상사지(扶安實相寺址) 우측에 자리 잡고 있다.

[형태]

현재의 봉래정사는 59.4㎡ 규모이며 정면 3칸, 측면 2칸의 팔작지붕 목조 기와집이다.

[의의와 평가]

부안군은 원불교 창교의 기초 터전이다. 원불교 봉래정사는 일명 ‘변산 제법성지’라고 부르며, 천하를 구원할 인생의 요도 사은사요와 공부의 요도 삼학팔조인 원불교 교리 강령을 완정 선포한 성지이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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